태백산맥은 없다 - 이 땅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이다
조석필 지음 / 산악문화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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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학창시절

학교를 다닐 때에, 지리 공부를 워낙 못하여 산맥 하나 정도밖에 외우지 못했다. 태백산맥이라고. 외울 시기를 놓치고 나니, 영영 다시 마주서기가 힘들었다. 선생님이 칠판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말씀을 하셔도 나는 창밖을 보기 일쑤였다. 수학시간에 공식을 모르고 다음 장을 공부하는 셈이니 오죽 답답하였으랴. 지금도 산맥은 '태백산맥' 밖에 알지 못한다. 하지만 1대간 1정간 13정맥은 어렴풋이 듣으며 컸다.

1대간은 흔히 '백두대간'이라 불리는 호랑이의 등줄기 격, 백두(白頭山)에서 지리(智異山)까지이다. 몇 해 앞에는 구두닦이 하는 아버지가 짬짬이 대간을 종주하였다고 신문에 나오기도 했다.

한 10년 전 부터 태백산맥과 백두대간이 혼용되어 쓰여지고 있다.(내가 접한 기억으로...) 어깨너머로 들은 '백두대간'만 알 뿐이지 정간이나 정맥에 대해서는 나 또한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겨울이 되면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춥다고 소문난 곳은 철원이나  인제, 원통, 태백 등 북산간이 아닌  봉화(奉化)라는 곳였다. 위도 상으로 볼 때에는 한참 아래인데 왜 이리 추운것일까라는 의문. 두번째는 새재, 새재라 불리는 문경새재가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 문경에서 전략적 관광지로 만들고 홍보를 한 것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을까? 이런 몇 몇 의문은 대동여지도에 까지 흘러들어갔다.

여행속에 만난 의문

지난 가을에 포항, 구미, 청송, 보은 등을 걷쳐 문경 쪽으로 여행을 간적이 있다. 문경은 새재로도 유명하고 백두대간이 지나가기에 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걷쳐가는 길목이다. 나는 주흘산과 새재를 보고 돌아나오다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그때 보고 말았다. 처음으로 대동여지도를 보았던 것이다. 2/3 크기로 축소 한 것이라고 하지만 내 키를 훌쩍 넘기는 크기다. 대동여지도에는 백두대간이 보이고 수많은 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다.

비로소, 문경새재가 알려질 만한 이유, 봉화가 추운 이유를 나름대로 유추할 수 있었다. 선 몇 개 그린 산맥을 보고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것을 나름대로 찾아가곤 했다.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이 왜 무진장인지. 육십령 고개가 나올 만한 지리적 근거가 무엇인지 나는 하나씩 더듬어 보았다.(물론 과학적 사실이 아닌 직관적 추리일 뿐이다) 이 모든 해답은 대동여지도를 보면 알 수가 있다.

 05, 10, 12일 문경 주흘산을 내려오다.

 05, 10, 12일 문경 주흘산을 내려오다."에서
주흘산을 내려오니, 어제처럼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장원급제의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다. 아마도 여기가 수학여행에서 찍고 넘어가야 할 곳인가 보다. 제1관문에서 2관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단순한, 길인데 문경에서 의미를 참 잘 부여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무엇을 보고 가란 말이냐라는 생각과 왜 이 길이 영남의 관문이 될까라는 반대되는 생각이 일어난 새재다. 산을 5시간 정도 타고 내려오니, 배도 고프고 그냥 차로 돌아가고 싶은데… 문경새재 박물관이 있지 않은가. 나가 버리면 다시 돈을 내어야 하고, 언제 올까라는 생각에 들어섰다. 솔직히 박물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데…

문경새재 박물관에 들어서니, 대동여지도가 딱 버티고 서 있다. 실물의 2/3로 축소한 것이 들어서있다. 우와, 이렇게 큰 지도였는지 몰랐다. 나는 내가 서 있는 곳과 우리 동네와 지리산, 보길도, 매물도 등을 찾아 본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조금씩 느끼는 것인데, 김정호라는 이에 대한 놀라움과 존경심이다. 산을 오르지 않았을 때에는 그냥 지도를 넘겼는데, 산을 오르고 나서는 대동여지도가 다시 보여진다. 나는 한 동안 대동여지도 앞에 서 있다.

관람실로 올라가 이리저리 구경을 한다. 한참을 돌아보다, 신기한 것을 보았다. 그것은 조선의 옛길이다. 동래에서, 충무에서, 동해 어딘가에서 한양가는 길이 조그마한 불빛 따라 줄을 선다. 그곳에는 지리산 저편은 없었다. 즉 전라도의 소외가 드러나 있고, 왜 문경새재인가에 대한 의문점도 나름대로 하나씩 풀려간다. 조선 인재의 반이 영남에서 나왔고, 그 가운데 반은 선산에서 나왔다는 말은… 참 이중적이다. 전라도를 제외한 조선 인재의 반이라 해야함이 옳지 않을까? 영남 인재의 반이 선산에서 나왔다는 말은 정확할지 모르나,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이라는 말은 옳지가 못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북쪽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는 옛길도 아니 본 듯 하다.

새재를 둘러보고, 철길자전거가 있는 진남역을 둘러보았다. 가기 전에는 뭐 볼 것이 있는가라는 생각에 가 보면 우와 우와~~, 이렇듯 기대와 실망은 반비례 관계인가 보다.

 대동여지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태백산맥은 없다]라는 이 책에 까지 손이 오게 되었다. 지은이는 무슨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줄까? 나는 한장 씩 책장을 넘긴다.

백두대간은 우리곁에 있다.

지은이는 백두대간을 밀어내고 '고토 분지로' 의해, 어떻게 산맥으로 자리잡았는가를 알려준다. 산맥이 들어서기 앞서까지 우리나라는 산경표라는 지도가 있었으며, 그 뒤에는 이후형이라는 사람에 의해 다시 산맥으로 찾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의 재미나는 부분은 '제2장으로 산의 원리 물의 원리'라는 부분인데, 산과 강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강을 보고도 산을 읽을 수가 있다. 산에서 어떻게 하면 길을 잃지 않고 내려서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쳐준다. 또한 '제4장 한국학의 바른 잣대 산경표'에서는 동학혁명이 왜 전라도를 넘지 못한가에 대해서도 산을 통해 들려준다. '그림30'을(155쪽) 통해 보여주는 동학명명의 2차 봉기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고 보여진다.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것을 두고 뒤에 역사학자들은 큰 실수였다고 한다. 전략적 요충지를 버리고, 배수진으로 적을 막아서기에는 그들의 무기를, 무리를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전략적 요충지는 일당백의 자세를 지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을 알기 위해서는 산맥이 아닌 산경표 등으로 읽어야 한다. 또한 바람은 산을 너머 오면서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고, 사람을 건너거나 넘지 못하게 하는 등 다양하게 우리곁에 있다. '나라의 헌법에도 문제가 있다(224쪽)'며 들려주는 이야기도 신선하다.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양하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다. 산맥으로는 접근하거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간간히 상대방의 표절과 잘못에 대해 큰 목소리를 높이지만, 스스로의 잣대에는 너무 무르다는 것이다.

뺏기기?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는 금남호남정맥이 백두대간에서 분지하는 고원지대의 하늘 아래 첫동네다. 해발 60미터. 섬진강 지류인 요천의 발원지기도 하다. 여정이는 지지리에 살았다. 직선거리로 따졌을 때 지지리는 장수읍(금강유역)에서 8km, 함양읍(낙동강유역)에서 15km, 남원(섬진강유역)에서 25km쯤에 떨어져있다.
"여정아, 장 보러갈 때 주로 어디로 가지?"
답은 "남원"이었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가장 멀지만, 넘어야할 산이 없는 남원이 실제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물길 흐르는 대로 걷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태백산맥은 없다』,163쪽)

산줄기인 대간, 정간, 정맥은 하천을 고려하여 설정했다. 여기에는 산은 음이고 물은 양이라는 동양철학의 기본인 음양 오행설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대간, 정간, 정맥으로 둘러싸인 지방의 모든 물은 반드시 한 하천으로 모인다. 같은 물을 마시는 유역의 주민은 문화가 동일하며,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한다.
위의 지도를 보자. 이 지역은 금강, 낙동강, 섬진강의 세강이 나누어지고 있다. 해발 600m의 고지대인 지지리는 직선 거리로 잡아 장수읍에서 8km, 함양읍에서 15km, 남원읍에서 25km 떨어져 있다. 문제를 하나 풀어 보자. "지지리 사람들은 어디로 나들이할까?" 답은 남원이다.(『교실밖 지리여행』 ,26쪽) * 웃기는 것은 지도까지 닮았다.

고산자 김정호의 이야기(『태백』,243쪽)
김정호는 감옥에서 죽었는가(『교실』,75쪽)

고산자에 이야기가 상당히 비슷하다. 옥사하지 않은 점과 조선시대에 지도가 많아 산을 3번 8번 올랐는가에 대한 물음 등....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지은이는 산맥이라는 개념 대신에 1대간 1정간 13정맥을 들려주면서, 산과 강이 우리곁에 머무르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줍니다. 그리고 일제의 산재로 인하여 무참하게 밟혀진 산들과 왜곡된 역사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말합니다. 그의 글쓰기는 전혀 새롭고, 단순히 '산이 거기 있었네'라는 문구가 아닌 실제로 우리곁에 머무르는 애기는 재미납니다. 다른 책과 겹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추신: 표절은 그의 저서 산악문화에서 나온 『산경표 이야기』에 실린 내용임을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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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2 22: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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