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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 젊은예술가의 세계기행 2
박훈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뒤늦게 제대를 하고, 어떻게 할지 몰라 나라밖으로 떠난 오스트레일리아. 그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이를 만나며서 차츰 자아를 찾아간다. 그 여행은 지루하지 않고, 삶에 깊이가 담긴 혜안으로 비춰진다.
떠남
"시드니의 이곳저곳을 헤메 다녔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작정 일자리를 부탁했다.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았다. "(26쪽)
"100달러 짜리 지폐를 손에 쥐고 있으니 기쁘고 행복했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30쪽)
"어느날, 나는 주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그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물론 그는 아시에서온 친구의 그림 실력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완성된 그림을 건네주니 단박에 표정이 바뀌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그 초상화 한 자응로 그날부터 청소하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11하우스의 아티스트'로 불리는 영광마저 누렸다. 무엇보다 그때까지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던 그들이 비로소 나를 의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46쪽)
"호주에서의 생활도 점점 익숙해졌다. 일을 하면서 배운 영어덕에 자신감도 회복하고 있었다."(50쪽)
"목사님은 액자 학교에서 액자를 만드는 법을 배운 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고, 매일매일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과 즐겁게 일하셨다. 한국 교민들이 이 사회에서 정착하며 실패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끈기가 부족하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 등 여러 가지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 난 목사님 말씀처럼 그때까지 거리를 우습게 여겼다. 솔직히 천하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향해 손가락하고 비판만 하는 그런 젊은이였다. 거리에 대한 생각을 바꾼 그날 밤 내 삶의 '전환점'이었다. 이제 거리로 나설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52쪽)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이리저리 머리를 부딪혀가며 스스로를 상처내는 이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낯선 곳에 가서 자아를 찾아가고 있다. 그는 단 돈 100달러에 부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청소부 아저씨에게 그림을 그려 주어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 내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고 상대방이 다가오기를 바라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는 철저히 자기를 숨기며는 몸짓이며, 상대방과 진실어린 이야기를 이끌 수가 없다. 언제나 상대방을 경계하기 때문에 할 말과 안할 말을 먼저 생각하고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런 거짓에서 나온다. 그는 거리의 사람들을 천하다고 생각했지만 '사고의 전환'을 통해 내 이웃, 친구로 보게 된다. 차츰 영어를 하면서 자신감도 회복하게 된다고 서술한다. 언어를 문법이나 완벽하게 구사하기를 바라는 우리나라 교육은, 내 발음이 틀리지나 않을까 혹은 문법이 어긋나지나 않을까라는 선물을 던져주어 쉽게 말문을 못 열게 한다. 말이라는 것은 하면서 늘어나는 것인데... 문법이 틀리다고 발음이 조금 샌다고 상대방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틀린 부분을 바로 잡아 주며, 손짓발짓해 가며 말이 자연스레 늘어가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를 누군가의 교육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닌 체험적 습득을 통해 익힌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값지다라고 할 수가 있다.
거리에 나서기
"'용기를 내야해, 어서 고개를 들어'
슷로에게 주문하고, 또 주문했다. 결국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었다. 하나, 둘, 셋...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런, 놀랍게도 누구 한 명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 누구도 날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단 한명도... 그저 나 혼자 스스로 쳐놓은 덫에 걸려 있었던 것이었다."(56쪽)
"우리는 알고 있었다.
무엇인가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게 아니라는 것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비록 성공의 보장이 없더라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66쪽)
"무엇보다 나는 그 카페에서 비로소 커피를 마시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놀아운 것은 그 카페에서 여유를 찾은 후부터 그림을 그리는 데 더욱 열정적으로 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효과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때였다. 사람이 휴식을 취한다는 건 단순히 쉬는 것만은 아니다."(96쪽)
"처음 여행을 떠나며 나는 다짐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물론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세운 계획과 목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110쪽)
처음 마음 먹은 일이, 막상 현실 앞에서는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지은이는 여행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거리에 나가 그림을 그리려 하지만 얼굴을 들지 못한다. 마음 먹은 대로 몸이 따라가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용기라는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가 하나, 둘, 셋하고 고개를 들기 까지는 몇 번이고 이 숫자를 세어 보았을 것이다. 용기가 없었다면,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는데, 혼자 고민하고 집으로 돌아왔을런지도 모른다.
언제나 두려움과 설레임
"얼마 후, 런던 히드로행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호주로 향할 때와 달리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솔직히 나누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설레고 있었다. 또한 그만큼 두려웠다.
비록 호주에서 잘 적응해 왔지만, 태어나서 처음 찾는 영국이란 나라는 내게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었다."(144쪽)
"나는 런던에 '홀로' 서 있었다. 나를 반기는 살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정말 완벽하다. 완전히 소외된 것이다.
나는 완벽하게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계속 웃음이 나왔다."(148쪽)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이야기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보게 친구! 이곳의 수많은 화가들이 하루에 100파운드 이상을 벌어들이는 게 부러운가? 그러나 너무 부러워하지 말게. 자네처럼 누가 보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 비록 당장은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훗날 단 한번의 기회만으로 그들과 비교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거야."(196쪽)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거리의 화가라는 직업을 가지며 생활을 꾸준하게 해온 그도, 런던이라는 낯선 도시에서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는 처음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항상 우리의 만남은 익숙함과 낯설음이 엇갈린다. 익숙함은 편안하기에 두려움이 없지만 낯설음은 전혀 새롭기에 두려움이 따라온다. 한 번 낯선 곳에 갔다왔다 하여 그가 모든 낯선 경험을 두려움 없이 마주하리라는 것은 착각이다. 몇 번의 더 낯선 만남을 통해 얼굴에 철판을 까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이 떠나는 것이 아닐까? 지은이는 또한 인도의 다큐멘타리 사진작가의 만남을 통해 꿈과 희망을 키운다. 비록 오늘의 삶이 경제적으로 궁핍하다 할지라도 그에게는 더 큰 꿈이 있는 것이다. 이는 현실을 사는 사람이 아닌 내일을 사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여유와 행복을 안겨준다. 이 여유와 행복이 없다면, 내 이웃의 아파트와 자동차를 비교하며 나를 더 힘들게 할 뿐이다.
처음과 끝 그리고 처음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일은 언제나 작은 흥분을 동반한다. 나처럼 비교적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사람이더라도 새로운 곳을 찾을 때면 긴장되기 마련이다."(220쪽)
"분명한 것은 여해잉 나를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처음 이 땅을 떠났을 때의 나는 그야말로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나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나를 회복하고, 찾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대견해 했다.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던 내 자신을 '격려'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244쪽)
삶에 대한 깊은 회안을 간직하고 나라밖으로 떠난 이가, 아픔을 묻어두고 활기찬 기운으로 돌아왔다. 비록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이변이나 우여곡절 끝의 상처를 말하지 않았지만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 상처 마저도 약으로 온몸에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삶에 대한 길을 찾지 못한 이가, 좋은 면만 담아내는 글쓰기를 통해, 여행이 얼마만큼 그에게 큰 의미를 던져 주었나라고 곰곰히 생각해 본다.
지은이는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꺽지 않는 한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익숙함에 길들여지면, 온실 속에 머무를뿐이다. 온실 속의 꽃은 살짝 이는 바람에도 겁을 먹고 움츠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온실에서 나와 찬서리를 맞고 하루이틀 지내다보면 시나브로 내 안에서 힘이 생기게 된다. 이 힘은 새로움을 접할수록 더 크지며 나에게 어떠한 낯선 일도 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 준다. 그렇지않고 온실 속에만 머무르면 내성마저 숨어버릴지도 모른다.
젊은 날에 여행을 떠나라는 것은, 전혀 낯선 곳에서 자아를 찾아보라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400여일 동안, 세 도시를 걷히면 사람을 만나고 들려주는 이야기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어지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