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 End of Pacific Series 2
오소희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참 부럽습니다.

여행이 끝난지 5개월이 지난, 책을 읽은지 6개월이 지난 어느날, 난 내 책상 위에 꽃힌 책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듯 하여, 서투른 글을 주워담아 봅니다.

처음 느낌, 정말 이런 곳이 있을까라며, 가슴 설레이며, 여기가 어딜까라는 -책을 읽을 때 까지, 라오스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부끄럽게도, 그렇게 내게 아시아는 너무 먼 거리였는지 모릅니다. 책을 읽으며, 캄보디아에서 여행하며 형에게 들었습니다. 난 라오스를 '위,아래 다 둘러 볼 것이며, 아마 한 달 정도 머무를 것이다'라고. 그렇게 내게 -라오스는 아름다운 곳이며, 그 아름다운 자리에 머물면 어디서나 웃음 띤 얼굴로 '사바이디'가 들려 올 것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참파싹을 거닐며 풍선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싸반나케의 공룡박물관의 상상력, 방비엥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픔저림,  루앙 프라방에서... 낯선 거리에서 낯선 나라를 떠올리며 마냥 가슴 설레였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태국 방콕으로 든 다음, 아유타야를 보고 긴 밤기차를 타고, -아마 저녁 8시 쯤, 그리고 10시간 정도-우본 차라타니로 든 다음, 꽁지암을 보고, 총멕으로 다시 내려와 라오스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라오스.  빡세로 가기 위해, 난 국경에서 생태우 뒷자리에 앉아, 5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간간히 아주머니가 손바닥 보다 작은 오징어와 숯을 들고와서 팔면, 배고픈 나는 얼릉 쪼그리고 앉아 먹습니다.

태국에서 사람이 건너오면 운전 기사는 '빡세' '빡세'하며, 예닐곱의 손님은 안중에 없다는 듯이, 스무명은 태워야 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흥분된 마음은 라오스에 대한 은근한 설레임을.

사바이디 케스트하우스2의 도미토리에 배낭을 내리고, 무작정 거리를 걸어봅니다. 내 나라, 내 작은 방에서 책을 읽으며 꿈꾸었던 그 거리를 걷는다는 생각에, 메콩을 바라보니 저 멀리서 비구름이 몰려옵니다. 비구름 앞에 무지개가 다리를 놓습니다. 구름이 건널 수 있도록.

우체국에 들러, 이쁜 우표를 달라합니다. 편지를 부치고, 빡세에서 이틀을 머무르고, 메콩강에 가서 물어봅니다. '참파싹으로 가는 배가 있나요?' 분명 여행책에는 적혀 있는데, 아저씨는 없다고 합니다. 다시 버스터미널로 와서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생태우에 배낭을 내립니다. 지은이가 '눈치 없는 뚝뚝기사 양반, 곱짜이'라 말한 그 자리. 나 역시 뚝뚝을 타고 왔는데, 아저씨는 친절하게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생태우를 가르켜 줍니다. 하지만 나는 국경에서 이 놈의 생태우 맛을 보았는지라. 역시 지은이처럼 사진기를 들고, 시장을 걷습니다. 그리고 두 어 시간이 지난 다음, 생태우에 스무다섯명이 닥지닥지 붙어 앉은 다음, 생태우는 떠납니다.

참파싹에서 시판돈으로 갈 때, 차가 멈춰서면 자연스레 생태우의 손님들은, 원시적이거나 자연스런 행위로 볼일을 봅니다. 여자분은 치마를 높이 올리고서는 칸막이를 만듭니다. 여기는 시간이 멈춰버린 거리, 라오스입니다.

다시 메콩강을 건너 만난 사 천 개(씨판돈)의 섬, 아무도 달려오지 않습니다. 아무도 들려주지 않습니다. 어린이 몇 몇이 언덕에서 옷을 입은 체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강이 어린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빡세, 참파싹, 씨 판 돈. 내게 라오스는 '심심함'과 '시간이 정지'한 두 개의 느낌으로 안겨옵니다. 난 다시 비엔티엔으로 24시간 버스를 타고 올라옵니다.

왕위앙에서 넘쳐나는 서양 배낭객과 메콩을 벗어난 건너 마을의 어린이를 만났습니다. 서양객들은 저희끼리 신이 나고, 건너마을 아이는 다 헤어진 옷을 입고 소쿠리로 고기를 잡습니다. 손가락만 한 고기를. 넘쳐나는 외국 배낭여행객은 강을 건너지 않고, 저희끼리 강을 따라 내려올 뿐입니다. 건너마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굴 앞에서 손전등을 빌려주며 입장료(1달러)를 받는 묘령의 아가씨는 헤픈 웃음을 나에게 날립니다. 어린 꼬마는 고기 대신에 가이드가 되어 나를 주선합니다.

왕위앙에서 루앙 프라방, 세계 문화유산 속에 하루살이를 하는 라오 사람들의 야시장. 루앙남타로 달려가는 산속길과 초가집.  스무 날 가까이 내가 본 것은 라오 사람들이였고, 그네들의 삶이였다. 난 라오스를 벗어날 때 쯤에 열이 올라,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독설만 줄줄이 외웠다.

그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넉넉한 삶으로, 라오 사람 깊숙이 들지 않고 오직 '쉬려고 이곳'에 왔을 뿐이고, 내게는 '아무것도 없는 자리'였다고 되씹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싫다하면서 차마 내리지 않고 내 책상 위 책들 속에 꽃힌 책을 보며 근래에는 '참 부럽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는 그가 본 모습을 내게 들려주었고, 난 그와 같이 못 보았기에 그가 과장되었거나 옳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그가 본 것을 들려주었고, 난 나를 버리고 그가 되려고했다.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나와 라오스 사람들과 관계, 즉 내가 그에게 다가가는데에 기인한 문제이다. 이렇게 나에게 고개를 돌리니,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자리를 만나고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희재씨의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는 책을 읽고, 티벳을 동경하여, 그가 걸은 자리를 걸을 때에도 나는 정희재가 될 수 없었고, 나였다. 그가 풍요롭게 들려준 이야기를 내가 그릴 수 없다고 그가 거짓믈을 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았지만, 난 같은 잘못을 두 번이나 저질렀습니다.




내가 뒤돌아보아야 할 것은 그의 풍요로운 이야기와 내 여행 발걸음이다. 분명 라오스는 라오스이고, 같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난 그의 걸음걸이와 마음씀씀이가 부럽고, 내 게으른 걸음걸이가 부끄럽습니다. 다시 라오스를 꿈꾸어도 될 까요?

한동안 책상에 놓아두고, 시비를 오래도록 걸며, 내가 걸은 지난 걸음을 오징어마냥 오래 곱씹어야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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