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묻힌 태양 - 세계문화예술기행 4
최수철 지음 / 학고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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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한다는 것은 나와 비아의 소통이고, 꿈꾸는 행위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을 품고 낯선 길을 걸으면서, 낯선 공간에서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보면서 풍경과 마주하고 소통하게 된다.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알몸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행위와 같다. 소설은 화려한 옷으로 가려입을 수 있고, 수필은 짧은 사유로 사람 앞에 나설 수가 있고, 시는 몇 몇의 노래로 은유를 품을 수 있지만 여행기는 내 머릿속에 숨어 든 모든 지식과 낯선 거리에서 마주하는 경험이 우러나기에 무엇을 숨기거나 감출 수가 없다. 그렇기에 여행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를 알몸으로 마주한 듯 한 느낌을 간혹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집트를 다녀온 이.
피라미드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 쯤, 적어도 내게는 동경의 자리이다. 그런 곳을 오늘 보다 10여 전에 다녀온 글쟁이의 글을 따라 읽다가 덮어 버린다. 좋은 여행기를 읽으면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으지고, 거짓이거나 자기를 들어내려는 여행기를 읽으면 괜시리 머리가 아파온다.

최수철이라는 이가 그려온 이집트의 이야기. 나는 어느 문사의 헌사를 다 지워버리고 여기에 내가 느낀 글을 몇 자 메모하는 것으로 긴 글을 생략한다.

+ 일반화 -길에서 아주치는 젊은 이집트 여인들은 대부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들에게는 강렬하게 활짝 폈다가 스러지는 열대의 꽃의 이미지가 있으면서도, 서양 여자들에게서 간간히 엿보이는 공격성은 전혀 없는 순박함을 지니고 있다.(56쪽)

+ 억지스런 의미부여 -그러한 입장에서 보자면 문화와 인종을 초월하여 일정한 나이에 있는 모든 여인들에게는 분명 나름대로 평균적인 아름다움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동양인들, 혹은 한국인들은 그런 독자적이면서도 평균적인 미를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것일까.(56쪽)

+ 지례짐작 -방금 그는 상점 측으로부터 커미션을 받느나로 나를 기다리게 한 것이 분명했다(64쪽)

+ 거리감 -이탈리아 피자 식당에서, 피자를 먹으며 스텔라라는 이집트 맥주를 마시다.(55쪽)

그의 일반화 오류나 억지스런 의미 부여를 통해 깊은 성찰을 들어내려는 의도를 몇 번이고 참고 읽어왔고, 시장 한 구석의 장터보다 깔끔한 자리에서 밥을 먹거나 크루즈를 타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난 이 다음 부분에서 폭발해버렸다.

+ 살생 -그때 나는 우리 나라에서 보던 것과 똑같이 생긴 작고 새카만 모기 한 마리가 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 집중적으로 약 세례를 가했다. 그러자 그 모기는 약물에 젖은 날개를 한 번 부르르 떨고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단순히 모기라는 이유 만으로 한 생명을 죽이면서, 그는 사디스트적인 희열을 느낀다. 글을 적는다는 이가, '존재의 본질'을 담으려는 이가 죽어 없어진 피라미드에서는 감격하고, 곁에 다가온 모기를 죽이면서 행복하다니. 난 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보며 느끼는 어떤한 사유도 들지 않는다. 지식인은 얇은 펜대로 깊은 사유를 끓어내려 하지말고, 흙탕묻은 신발이나 다 헤어진 신발을 끓고 시장 바닥을 하루 종일 돌아다닌 다음에 그가 다음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 것이다. 마냥 이것이 나만의 아집이라면, 난 펜대를 사유하는 지식과는 영원히 결별할런지 모른다.

슬프다.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고 깊은 글을 쓴다는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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