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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처럼 질문하라 - 합리적인 답을 이끌어내는 통섭의 인문학
크리스토퍼 디카를로 지음, 김정희 옮김 / 지식너머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세상에 편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저마다의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낳아지는 그 순간부터 이미 누군가의 편견으로 걸러진 세상을 감각하고, 누군가의 편견으로 걸러진 육아를 거쳐 누군가의 편견으로 걸러진 가르침을 발판으로 사회에 뛰어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바로 누군가의 편견이 만든 총합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편견은 평생을 나와 함께 해온 오장육부와 같아서 어떤 고통을 동반해야만 비로소 대면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은 『철학자처럼 질문하라』이다. 나도 그랬지만 다른 독자들도 제목이 말하는 ‘질문’ 의 대상에서 일찌감치 자신은 제외하고 책을 펼쳐 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질문의 가장 첫 번째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빅 파이브 질문,‘1.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2.나는 왜 여기 있는가? 3.나는 누구(어떤 존재)인가? 4.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5.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을 던진다는 것은 한마디로 앞서 언급한 내 오장육부와도 같은 편견을 들추는 작업과 다름없다. 실제로 저자는 서문에 독자가 이 질문에 답하게끔 공란을 마련해두었다. 그런데 내 편견을 발견하는 것과 논리를 주제로 한 이 책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기 믿음에 허점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이 그 역할을 하면 누구도 당신의 말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십중팔구는 당신을 골칫덩이나 잔소리꾼, 눈엣가시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맨 먼저 할 일이 나 자신을 점검하고 내가 아는 지식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걸 파악하고 나면 모든 사람이 가진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p.21
정리하자면, 누군가의 논증을 파헤치고 허점을 발견하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는 옳다’ 를 전제로 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알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과연! 나는 여기서 우리가 매번 토론이라는 이름의 말싸움을 벌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논리를 주제로 한 많은 책이 이 기본을 건너뛰고 기술부터 가르치니 모두가 상대방의 허점만을 지적하다 사이 좋게 손잡고 진창에 다이빙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 책의 장점은 이렇게 기본에 충실하다는 데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술과 관련된 부분이 허술한 건 또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의 핵심 포인트라 할 수 있는 빅 파이브 질문을 심화하기 전에 맥락 파악하기, 논증 도식화하기(이 부분이 매우 유용했다),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논리적 오류들, 토론의 달인이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추론 방식 등을 세세하게 짚어준다. 사실 빅 파이브 질문이라는 것도 이 기술들을 익혀야만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편견을 발견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것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고백하듯 표출되곤 하는데 그렇게라도 발견한다손 치더라도 타인에게 이미 그것을 밝히게 된 셈이니 좋은 상황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는 벌써 피해자가 생겼을 공산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라도 주어진 반성의 기회를 대개가 불행한 상황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몹쓸 편견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때문에 그 편견을 덮으려 자구지단을 내세우고, 그 자구지단을 덮으려 또 다른 자구지단을 궁리하는 자충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자신을 대중에게 자주 내보여야 할 유명인들은 특히나 그 자충수의 늪에 더 자주 빠져들게 되는 듯하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빅 파이브 질문이라는 것이 남들의 말에 허점을 찾아내는 것보다‘내 편견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돕는다는 점’ 에서 내겐 더 유용하게 다가왔다. 메모해두고 자주 꺼내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