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고생담은 대개 지루하고 재미없기 마련이다. “이래서 힘들었고 저래서 힘들었어. 그래서 나 힘들어쪄. 호―해죠” 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 어쩌란 말이냐 지루한 이 마음을. 쉽게 말해 자신의 힘들었던 감정 따위의 순전히 본인만 아는 그 ‘느낌’ 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작가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고생했고 힘이 들었다면 무엇이, 어떤 것이 그토록 나를 힘들게 만들었는지 독자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만들면’ 그만이다. 작가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자신의 고생담을 ‘무려’ 재미있게 써내는 작가들을 보면 부럽다.


『와일드』의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는 그런 방면에서는 타고난 작가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어보면 이 작가가 겪은 일들은 재미있게 읽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심각하고 무거운 일화투성이다. 그녀가 영리하단 생각이 들었던 부분은 바로 이런 심각한 이야기들, 남들이 고개를 저으며 듣길 거부할 이야기들을 일종의 모험담 형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이야기’ 가 있는데 이것을 누군가에게 들려줘야 한다면? 그럴 때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 꼰대식 훈계가 아니라 셰릴 스트레이드와 같이 서사의 기본적 구조 정도는 인지한 후에 펜을 드는 게 맞지 않을까?


때문에 이 책은 일종의 참고서 역할로도 충분히 기능할 성싶다. 아버지의 학대, 어머니의 죽음, 가족의 해체, 약물 중독, 남편과의 이혼, 무모한 도전, 목표 획득, 귀환 등 작가가 아닌 사람이라도 글을 한 편 쓰고 싶게 만드는 이런 아이템들이 있다면 이 책을 필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은 정확히 3막 구조에 ‘갔다가 돌아오는’ 영웅 서사의 원형을 꼭 빼닮았는데 이것은 자신이 겪은 일을 그저 단순하게 기록했다고 보기 어려운 기술적인 부분이다. 나는 그녀가 분명 이것을 의도했을 거라고 본다. 의도했다는 것은 이러한 기술에서 작가가 되기 위한 그녀의 부단한 노력이 느껴진다는 얘기다.




말 그대로 나는 거의 언제나 엄청난 높이를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냉혹한 현실에 매번 거의 울 뻔했고 근육과 허파는 전력을 다해야 했다. 언제나 내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야 PCT는 내리막길을 보여주곤 했다.

p.392



군대서 40km 행군한 이야기도 지루한데 무려 4,285km 등산한 이야기를 누가 듣고 싶어할까? 책을 펼치기 전 들었던 내 생각은 이렇게 그녀가 풀어내는 흥미로운 모험담이 500쪽을 넘어갈 때쯤 착각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책은 내게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완주가 어째서 위대한 여정이 될 수 있는지 알려주었고 셰릴 스트레이드라는 뛰어난 이야기꾼을 통해 여러 작가적 가르침을 안겨주었다. 한 편의 참고서이자 재미난 소설로서 읽히기까지. 새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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