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저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책을 사들였다. 은유? 처음 보는 이름인 데다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제목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제목은 지금도 영....). 그런데 샀다. 그리고 펼쳤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나는 참 운이 좋은 독자인 듯하다.


글쓰기의 ‘기술’ 을 알려주는 책은 많다. 내방 책장에도 지금 몇 권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여 있다. 그런데 ‘왜 쓰는가?’ 라고 묻는 책은 찾기 어려운 것 같다. 적어도 내 책장에는 없다. 아니, 없었는데 이제는 한 권이 꽂혀 있다. 바로 이 책이다. 작법서를 샀는데 대뜸 왜 쓰냐고 묻는다. 질문을 받았으니 그에 맞는 답변을 궁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내가 왜 쓰는지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고 든다면 그저 좋아서 쓰는 것이지 뭔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 책은 ‘왜 좋으냐?’ 까지 나아간다. 한 마디로 ‘쓰기라는 행위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 인 것이다.


사실 저자가 왜 쓰느냐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진 것은 아니다. 그냥 읽다보니 그런 질문을 끊임없이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 쓰는지, 그게 정말 당신을 위해 쓰는 것인지를 말이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듯싶다. 결국 나의 쓰기 역사를 돌이켜 볼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건 아마 작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의 상황도 한몫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쓴다는 것에 일종의 과부하에 걸린 상태였다. 기술적인 면에 몰두한 채 온갖 방법론을 찾아봤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그때 이 책을 만났고 과부하의 원인을 찾았다. 그 원인은 바로 나였다.




다른 강좌가 잘 살기 위한 방향과 목표를 이미 결정한 이들에게 글쓰기의 실용적인 기법을 전수하는 방식이라면, <글쓰기의 최전선>은 왜 그 직업을 욕망하는지, 밤이고 낮이고 쓰는 글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등등 자기 생각과 욕망을 글로 풀어내며 나를 알아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p.31



내가 그 수많은 글쓰기 기술에 만족하지 못한 이유는 왜 기술을 배우려는 것인지 확실히 내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엄마라는 이유로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에 좌절하며 지내다 우연히 글을 쓰게 되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p.9) 고 말한다. 쉽게 말해 저자 은유에게 있어 글쓰기란 일종의 치유인 셈이다. 이런 식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독자가 글쓰기 행위에 대한 근원을 만나게끔 유도한다. 기술은 그다음이다. 근원을 만나 서로 정리를 보지 않고서는 글을 쓰는 데 있어 어떤 것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 이것이 이 책에서 내가 얻은 하나의 정답이었다.


다들 이미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단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내가 왜 쓰는지, 지금 쓰는 글이 정말 ‘나’ 를 위한 것인지 확실히 하지 않고 기술부터 운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것은 일테면 목표물은커녕 출발점도 잊은 채 바다 한가운데 오도카니 떠 있는 배 한 척과 진배없다. 저자는 묻는다. 어딘가로 가고는 있는데 대체 왜 가는 것인지 모르는 이 멍청한 항해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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