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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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의 나이와 성격만 다르면 뭘 하나? 하나같이 치밀하고 냉정한 데다가 말도 어찌나 잘하는지 마치 정유정의 1인극을 보는 듯했다. 아무리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것이 그저 잘 만든 가면들에 불과하다면 무슨 소용인가. 소설은 가면극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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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서머셋 몸 단편선 - 사르비아총서 608 범우 사르비아 총서 608
서머셋 모옴 지음, 이호성 옮김 / 범우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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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온 지 15년도 넘은 책이라 구성이나 번역이 허술하지 않을까 했는데 기우였다. 특히 번역이 기대 이상으로 깔끔했다. 수록작이 대체로 통속적이긴 한데 문장에 온갖 분칠을 하느라 작가 스스로 결국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길을 잃은 채 출간되는 쓰레기들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무엇보다 재밌다!




서머셋 모옴은 우리가 선망해 마지않는, 이른바 절제되고 금욕적인 인간군상이란 전부 쓰잘데기 없음을 선언하며 그러한 가치관에 ‘카 아악 퉤!’ 하고 침을 뱉을 줄 아는 작가였다. 일테면 그는 삶의 가치를 유예한 채 오로지 '노오력'이 최고라 믿는 개미보다는 허구한 날 방구석에 처박혀 기타줄이나 퉁기며 ‘노오래’를 부르다 죽더라도 ‘지금 여기’에 살 줄 아는 ‘베짱이가 짱이야!’라고 외칠 수 있는 넘나 훌륭한 작가였던 것.


그는 묻는다. 금욕과 절제된 삶이란 것이 대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냐고. 방탕과 사치를 일삼고(「약속」) 심지어 충동에 못 이겨 살인을 저지르더라도(「편지」) 지금 이 순간 내 감정, 내 선택에 충실한 자와 비교해 종교와 제도, 타인의 평판과 명예에 묶여 사는 이(「비」, 「최후의 심판」)가 진정 살고 있기나 한 것인지를 말이다.


작품들이 주는 메시지의 공통점은 '지금'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삶의 의미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지 과거나 미래, 종교와 명예 따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평생을 금욕으로 일관하며 지루한 삶을 연명하느니 방탕한 삶을 살았더라도 짧은 생 자신에게 정직했다면 그로써 족하다는 것이다. 과연. 무릎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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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서머셋 몸 단편선 - 사르비아총서 608 범우 사르비아 총서 608
서머셋 모옴 지음, 이호성 옮김 / 범우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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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묻는다. 금욕과 절제된 삶이란 것이 대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냐고. 종교와 제도, 타인의 평판과 명예에 묶여 사는 이가 방탕과 사치를 일삼고 심지어 충동에 못 이겨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 감정, 내 선택에 충실한 자의 인생과 비교해 진정 살고 있긴 한 것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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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인 알고 계세요" 하고 그녀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조이스 씨는 그녀에게로 다가가서 편지를 빼앗아 들었다. 성냥을 켜서 종이에 불을 붙였다. 그녀는 편지가 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들고 있을 수 없게 되자 그는 타일을 깐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두 사람은 종이가 곱슬곱슬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발을 들어 산산이 부서지도록 짓밟아 버렸다. "무엇을 말입니까?"

p.98

그것은 얼굴이 아니었다. 말을 지껄이는 하나의 무서운 가면이었다.

p.103

지금 저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고, 사랑의 세계에선 현재만이 문제니까요.

p.116

오랜 결혼 생활의 경험으로, 마지막 말을 아내가 하도록 하는 것이 평화를 가져오는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하고 있었다.

p.134

"당신도 사내지, 사내들은 불결하고 추잡한 돼지들이야! 당신도 똑같아. 모든 사내들이란 돼지! 돼지들이란 말이야!" 맥파일 박사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p.227

"만약 하느님이 악을 미리 막을 수 없다면 전능이 못 되고, 또 막을 수도 있는데 그럴 의사가 없다면 전선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p.232

그 신앙은 격렬하고 편협한 것이었다. 그녀의 친절한 행위마저 애정이 아닌 이성(理性)에 의한 것이어서 냉혹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녀는 오만하고 아량이 없고 앙심깊은 여인이 되었다. 존도 사랑을 단념하였으나 시무룩하고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되어, 여생을 아무런 희망도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죽음이 세파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줄 날만 기다릴 따름이었다.

p.236

"나는 때때로 생각하지만, 별이 길가 개울의 흙탕물 속에 그 빛을 반사할 때만큼 아름답게 빛난 적은 없다" 하고 불멸의 신은 말했다.

p.238

"나는 가끔 기이한 생각이 드는데, 도대체 어째서 인간들은 내가 궤도를 벗어난 성관계를 그렇게 중요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좀더 주의하여 내가 만든 것을 이해해 준다면, 특히 이러한 인간적 약점에는 내가 언제나 동정을 기울여 왔다는 것쯤은 깨달을 만도 한데."

p.239

확실히 하찮은 수효이긴 하지만, 인생을 자기 손아귀에 꼭 쥐고 그걸 자기의 뜻대로 형성해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매력을 느낀다.

p.240

그의 원대한 야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그에 관한 기억이 겨우 친구들 몇 사람의 가슴 속에만 고이 간직되어 있을 뿐이다. 슬프게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것마저도 점차 그 수효가 줄어들 것이다. 그는 살아 있을 때 그러하였듯이, 죽어서도 세상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의 생애는 성공적인 것이었다. 그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한 것이었다. 즉 그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다가 결승점을 바로 눈앞에 두고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의 그 환멸의 비애 따위를 맛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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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에게는 항상 설명을 해주어야만 한다. … 어른들은 늘 스스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항상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 일이 어린아이에겐 피곤할 수밖에 없다.

p.7 ~ 8

그 천문학자는 당시 국제천문학회의에서 자신이 발견한 별에 대해 굉장한 증명을 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입은 옷 때문에 아무도 그 천문학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른들은 늘 그런 식이다.

p.20

어른들에게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고 지붕엔 비둘기가 있는 예쁜 붉은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 그러면 어른들은 "얼마나 멋진 집일까!" 하고 감탄한다.

p.22

꽃들은 수백만 년 동안 가시를 만들어왔어. 양들도 수백만 년 동안 변함없이 꽃을 먹어왔지. 그런데도 꽃들이 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를 만들기 위해 그런 고생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심각하지 않다는 거야? 양들과 꽃들 사이의 전쟁이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p.38

"누군가 수백만 개의 별 중에 어느 별 하나에만 있는 꽃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어.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지. ‘내 꽃이 저 위 어딘가에 있어…….’ 하지만 양이 꽃을 먹어버린다면, 그 사람에겐 마치 갑자기 모든 별들이 꺼져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도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p.39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어! 꽃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꽃을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 꽃은 내게 향기를 가져왔고 나를 환하게 밝혀주었지. 나는 절대 도망가지 말아야 했어! 꽃의 어리석은 수작 밑에 숨기고 있는 다정한 마음을 읽어냈어야 했지.

p.46

나비들을 사귀려면 애벌레 두세 마리쯤은 참아야 해. 나비들은 무척 아름답잖아. 그렇지 않으면 누가 나를 찾아오겠어?

p.51

어린 왕자는 궁금했다.‘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그는 왕의 눈에는 세상이 아주 단순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왕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신하인 것이다.

p.52

권위는 무엇보다도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 만약 네가 백성들에게 바다에 뛰어들라고 명령한다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야.

p.57

"아저씨가 별들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럼."
"하지만 제가 전에 만났던 왕은……"
"왕은 별을 가지고 있지 않아. ‘다스릴’ 뿐이지. 아주 다른 거란다."
"그렇다면 별을 가지는 게 뭐에 소용이 되는데요?"
"부자가 되는 데 소용이 되지."
"그럼 부자가 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다른 별을 사는 데 소용이 되지. 누군가 발견한다면 말이야."

p.81

"꽃을 한 송이 갖고 있는데, 날마다 그 꽃에 물을 주지요. 그리고 화산 세 개도 갖고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재를 긁어내죠. 저는 활동을 멈춘 화산의 재도 긁어내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그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제 화산들에게나, 제 꽃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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