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는 나의 역사가 된다.

People who read letters, journals, other documents, and monuments to find out what happened in the past are called historians. And the story they write about the past is called history. -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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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국내를 둘러싼(싸고) 여러 사태를 보고 있다 보면 분노와 짜증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들이 노리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싶어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을 부릅뜨며 이성을 차린다.


눈이 절로 가는 일들이 있다. 기사를 보더라도 주목하게 되는 기사들이 있는 것처럼. 이는 내가 관심을 거기에 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1923년 9월 1일 꼭 100년 전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은 중부 간토 지방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해서 국내 여론을 의식하여 구실이 필요했고 이에 일본 내각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으니 경계하라"는 전문을 전국에 보냈다. 이 때 그곳에 발을 붙이고 살던 조선인 구학영은 경찰서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런데 자경단이 경찰서에 난입하는 바람에 그는 죽창에 60여차례 찔린 후 ‘벌 일본 무죄(罰 日本 無罪)’라는 글을 바닥에 쓰고 눈을 감았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83109490002450


일본 군경과 자경단은 조선인 6600여명을 무참히 학살했다(그 때 조선인이 잘 하지 못하는 일본어를 발음하게 해서 학살 대상자를 골라냈다는 사실은 이제 국내에도 제법 알려져 있다). 사실 저 통계가 믿을만한지는 모르겠다(더 많지 않을까). 심지어 당시 일본 내무성과 조선총독부는 사상자 규모를 축소하였고 현재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전문가들의 의견일 뿐 일본 정부 견해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조선인 폭동을 일으켰다'가 유언비어라는 것이 드러나자 일본 정부는 조직적으로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시신은 불태워지고 강에 버려졌다). 그리고 매년 일본 우익은 학살을 부정하는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올해는 추모비 바로 앞에서 감행한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 와중에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제대로 된 해명 조차 요구하지 않고 있는 현실은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게 만든다.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는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와 민병래 작가가 함께 쓴 책으로 지난 수십 년간 간토대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해 온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백년 동안의 증언>은 일본의 시인 쓰보이 시게지(1898~1975)의 장시 '15엔 50전'이 최초로 번역돼 실렸다. '15엔 50전'은 일본어로 발음했을 때 '쥬우고엔 고쥬센'으로 읽히는데, 학살 당시 탁음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조선인을 분별하는 데 쓰였던 어구였다. 


<1923 관동대학살>은 다큐 시집으로 관동 대학살의 참상을 표현한 시를 모은 것이다. 200여 명 자료와 생존자의 실화와 증언을 바탕으로 책을 저술하였기 때문에 시지만 참상이 드러나 읽는 것이 무척 참담할 것으로 생각된다.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은 하버드대학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2019에 발표한 논문 「경찰 민영화: 일본의 경찰, 조선인 학살 그리고 민간 경비 회사」에서 ‘관동대지진’의 혼란에서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 자경단은 기능부전의 사회가 만들어낸 경찰 민영화의 한 사례라고 주장하며 이는 정당한 방위 행위였다고 강변했다. 저자는 그의 ‘학살 부정론’을 검증하기 위해 책으로 펴냈다.





토지 10권에도 관동대지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가는 현실을 무시해도 되는가에 대해서 관련하여 대화를 나누다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 비롯해서 관동대지진(책에서는 '관동대진재'로 자주 표현됨)은 다른 권에서도 인물들의 대화 속에 수시로 튀어나오는 걸 보면 이것이 조선인들의 기억 속에 뿌리 박힌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떼죽음을 당했는데 어찌 참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침 8월 1일부터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간토대학살 관련 전시를 진행 중이다.

https://youtu.be/sIle_nh1eTs?si=XDlvcfWadhuKpimm



'기억해야 한다'라는 말이 '지겹다'라는 말로 변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건을 잊기는 너무나 쉽고 일본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더불어 홍범도 장군 관련해서도 책을 읽어볼 참이다. 집에 평전이 있었는데 그것을 읽을지 올해 한길사에서 새로 나온 책을 읽어볼지 고민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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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9-01 1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예 보고 싶지도 않게, 외면
하게 만드는 게 그들의 전략
이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평전을 이미 보유 중이시군요.
전 오늘 아침에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9-01 18:00   좋아요 3 | URL
가면 갈수록 국민을 분노의 시험대로 몰고 가는 것인가 싶습니다.

홍범도 평전은 집에 가서 책 확인하고 새로 구입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소설은 상호대차로 신청해놓은 상태입니다. 매냐님이 나눠주실 소감이 기대가 되네요. 이렇게 우리는 계속 읽고 공부하며 투지를 불태워야할 것 같습니다^^

청아 2023-09-01 15: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램지어 교수 친일 망언 전문가네요? 분노의 에너지를 모아모아 더 읽고 공부해야겠습니다! ^^

2023-09-01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3-09-01 16: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알아야 할 일, 알고 싶은 일들이 참 많네요!
<주전장>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다가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가 미국 내 우익의 자금이나 활동에 상당히 관여한 정황을 이야기해서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언론 조작은 국내외로 꽤나 조직적인 듯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9-01 18:04   좋아요 2 | URL
네 맞습니다. 애써 찾지 않으면 가려진 진실을 발견하기 쉽지 않지요. 일본의 정치, 외교, 언론 플레이는 예나 지금이나 혀를 내두를만합니다. 우리는 그에 비해 너무 허술한 것 같고요.
초란공님 덕분에 알라딘 서재 내에 홍범도 장군의 관련 책 읽기에 불이 붙을 것 같습니다. 저도 참여하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려요^^

희선 2023-09-02 0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토대학살이 100년이 됐군요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니... 지진이 일어난 걸 기회로 조선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그때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그걸 숨기려 했다니... 일본이 숨기려는 건 그것만이 아니겠습니다 기억해야 할 일을 지겹다고 하면 안 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9-03 07:58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이 보호를 받지도 못한 채 허망하게 떠나신 만큼 지속적으로 일본에 사과 및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해야하겠습니다. 희선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호시우행 2023-09-0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참살, 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적 팩트이자 일본 극우 세력의 조작과 선동정치였음을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요. 조작과 선동정치는 정말 악귀들이나 하는 잣이지요.ㅠㅠ

거리의화가 2023-09-03 08:01   좋아요 0 | URL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그들의 행태 때문이라도 우리의 논리적인 대응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백석 시, 백 편 - 한국 시의 독보적 개성, 백석 깊이 읽기
이숭원 엮음 / 태학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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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고독과 우수의 정서가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애썼던 흔적이 엿보였다. 세심한 관찰력과 돋보이는 묘사, 맛깔나는 단어와 문장들을 보면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시선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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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9-04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본 백석으로 읽었습니다.
옛 정서와 모더니티를 지향하는 지식인의 정서가 복합되어 있는 그의 시에서 그리움도 사랑도 갈등도 느꼈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9-04 11:0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정작 백석 시인은 외모도 그렇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는데 시에서 느껴지는 향토, 토속성이 놀랍더라구요^^ 그리움이란 정서가 전반적으로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 - 소돔과 고모라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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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무심한 나그네여,
내 어깨에 이마를 대고 꿈을 꾸지 않으려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붙들고, 석양빛 속에 멀리 푸르스름한 골짜기들이 나란히 사슬을 이루며 닫혀 있는 지평선까지 펼쳐지는 그 물에 잠긴 말 없는 커다란 초원을 가리켰다. - P25

나와 알베르틴은 베르뒤랭 부인의 만찬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들은 동시에르 역에 가기 전까지 빈 객차만 찾아다니며 틈만 나면 포옹을 하는 등 화기애애했다. 역에 도착하니 생루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루는 나와 알베르틴의 관계를 인지했기 때문에 알베르틴의 반응을 무시하려고 했고 이를 느낀 알베르틴이 화가 나서 다다다다(!) 하면서 분위기가 싸해졌다. 뒤에 화해를 했지만 이전에도 알베르틴이 생루에게 보인 호의에 질투를 느꼈기에 이번에도 나는 내심 둘의 만남이 불편했던 것이다.

아무튼 둘은 베르뒤랭 부인의 살롱으로 이동했고 이번에도 사교 모임의 장면은 계속 이어진다. 기존에 게르망트 사람들이 아닌 지난 번 모임부터 등장한 베르뒤랭 부인과 셰르바토프 대공 부인, 캉브르메르 부인이 새롭게 등장했다. 주최자가 모임을 개최할 결정을 하면 모임을 위한 준비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물밑 교섭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이런 모임합니다. 꼭 오세요. 이런 것을 할 예정입니다. 어때요?" 모임의 주최자가 어떤 훌륭한 가문과 출신이냐가 중요하겠지만 주최자도, 참석자들도 여기에 누가 참여하느냐에 따라 모임의 질이 결정된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사교계에는 주최자와 참석자들을 둘러싸고 질투를 넘어선 암투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참석한 뒤에는 어떤가.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자신은 높이면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이런 과정이 너무 부담스럽고 지루해서 '제발 좀 끝나라!'를 연발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이 시기에 태어났다면 이런 곳 참여는 결단코 사절이었을 것 같다. 내가 하필 공주이거나 아니면 부유한 귀족이나 부유한 상공업자 출신 딸이어서 가야 하는 상황이었더라도 어떻게든 그 상황을 피하며 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베르뒤랭 살롱은 음악의 전당으로 통했다(뱅퇴유 소나타도 탄생했다는데 소나타 이름은 가상이고 당연히 실제 모델은 따로 있다. 이런 장치들을 끊임없이 심어두면서 독자로 하여금 유추해보게 하는 프루스트는 역시 대단하다). 셰르바토프 대공 부인은 부를 이용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데리고 모임에 참석했다. 참석자 가운데에는 아카데미 회원인 브리쇼, 유명 학자인 코타르, 바이올리니스트 모렐, 샤를뤼스씨도 있었다. 독자들도 유추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베르뒤랭 댁과 캉브르메르 댁 사이는 불꽃을 튀기며 설전을 벌였고 당연한 듯 사이는 좋지 않아졌다. 사교계에서 얻어야 할 가르침은 무엇일까, 주최자와 참석자 간에 화합을 표방하며 마련한 자리였다지만 모임이 파하면 허무해지는 것처럼 닿을 수 없는 것을 쫓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게는 그대만이 우리가 늘 찾는 사람으로 보였도다."
그 작은 동아리 회장은 죽을 때까지 ‘신도‘를 확보하고 싶어, 대공 부인에게 두 사람 중 나중에 죽는 사람이 먼저 죽은 사람 곁에 묻히자고 제안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 그중에는 멸시 받는 게 가장 고통스러워서 우리 자신이 가장 많이 속이는 자, 즉 우리 자신도 포함하여 - 셰르바토프 대공 부인은 세 여인과의 우정, 즉 대공비와 베르뒤랭 부인, 그리고 뛰트뷔스 부인과의 우정이, 그녀의 의지와 무관한 대홍수가 일어나서 나머지 모두를 파괴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자신이 여느 다른 우정보다 좋아해서 고른 것이며, 또 고독과 검소함의 취향이 그 선택을 제한한 그런 유일한 우정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 P46~47

인간은 하룻저녁에도 보통 때는 환대를 받던 모임에서 자신이 지나치게 경박하고 유식한 체하며 세련되지 못하고 무신경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고 짐작하면서 비참한 마음으로 귀가한다. 그가 남들에게 엉뚱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흔히 여론이나 조직의 문제 때문이다. 흔히 그는 이런 사람들이 자신보다 가치가 없다는 걸 아주 잘 안다. 그들이 자신에 대해 하는 암묵적인 비난의 도움을 받아 그 궤변을 쉽게 분석할 수 있으며, 그래서 그들을 방문하고 편지를 쓰고 싶지만, 보다 신중한 그는 다음주에 있을 초대를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때로 이런 실총은 하룻저녁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달 계속되기도 한다. 사교계의 불안정한 판단에서 비롯된 실총은 그 불안정성을 더욱 가중시킨다. - P176~177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며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우리를 위대한 ‘전체‘ 속에 녹아들게 하는 불교의 니르바나(涅槃] 같은 훌륭한 학설을 이론적으로는 전혀 반대하지 않습니다.(그 전체가 지적인 차원에서는, 뮌헨과 옥스퍼드와 마찬가지로, 파리 근교인 아니에르나 부아콜롱브보다 훨씬 파리에 가까우니까요.) 그러나 일본군이 어쩌면 우리 비잔틴 문명 바로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르는 지금, 사회주의의 반군국주의자들이 자유시의 주요 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하는 건, 훌륭한 프랑스인으로서 또는 훌륭한 유럽인으로서 적절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브리쇼가 말했다. - P186~187

사실 몇몇 사람들은 ㅡ 내 경우에는 유년 시절부터 그러했지만 - 타인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고정된 가치를 가진 온갖 것들, 즉 재산이며 성공이며 높은 지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환영이다. 그들은 이런저런 환영을 만나기 위해 모든 걸 실행하고 이용하면서 나머지는 희생한다. 그러나 환영은 지체하지 않고 곧 사라진다. 그러면 우리는 비록 첫 번째 환영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 있을지언정 다른 환영을 쫓아 나선다. - P286

알베르틴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나는 알베르틴과 매일 밖으로 나가 산책을 했다. 나와 알베르틴의 관계는 그렇다면 이제 흔들림 없이 갈 수 있는 것인가. 그치만 어머니는 나와 알베르틴의 만남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어느 부모고 자식의 만남을 100% 지지해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내 자식을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해도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은 또 하나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세월이 가면 나도 그 애는 바로 그런 사람이란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그 아이가 너를 행복하게만 해 준다면 항상 좋게 생각할 거다. 그러나 나의 행복을 결정하는 일을 내 손에 맡기는 이런 말을 통해, 어머니는 예전에 아버지가 내게 「페드르」를 보러 가는 것을, 특히 작가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었을 때 나를 사로잡았던 것과 같은 의혹의 상태로 빠져들게 했는데, 그때 나는 갑자기 막중한 책임감과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 나날이 우리의 미래를 은폐하는 타인의 명령에 따르는 일을 멈추고 드디어 진지하게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우리 각자의 재량에 맡겨진 유일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를 사로잡는 그런 우울한 감정을 느꼈다. - P133~134

어둠이 내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언제나 이렇게 옆에 있는 것임을 떠올리며, 스카프와 토크 모자와 더불어 내 몸에 밀착한 그녀를 느끼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어쩌면 나는 알베르틴을 사랑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사랑을 그녀가 알아차리도록 내버려 둘 용기는 없었다. 설령 그 사랑이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해도, 경험에 의해 검증되지 않는 한 그것은 가치 없는 진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랑이란 내게 실현될 수 없으며 삶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의 질투로 말하자면, 내가 알베르틴과 영원히 결별할 때라야 거기서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음에도, 이런 질투심이 오히려 가능한 한 그녀 곁에서 떨어져 있지 않도록 부추겼다. 나는 그녀 옆에서도 질투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질투를 내 마음속에 다시 깨어나게 하는 상황이 재개되지 않도록 조처했다. - P290~291

계속되는 알베르틴을 향한 질투의 감정으로 나는 헤어질 생각을 했고 어머니께도 결별하겠다 말씀드린다. 어머니의 반응은 "잘 생각했다." 였다. 역시 그런가.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처럼 쉽사리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떠나겠다던 나의 결심은 오히려 알베르틴을 더 붙잡게 만드는(붙잡고자 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알베르틴은 만나면 만날수록 더 타오르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나보다.
질투라는 감정은 생각보다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고 여긴다. 이것이 없다면 사랑이 시시해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질투는 그만큼 피곤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정말로 밀당을 못하는 타입이어서 연애할 때 그 피곤하고 지지고볶고 하는 것을 왜 하나 생각할 때가 있었다. 밀당은 자연스럽지 않고 부자연스러운데 왜 이것을 하는 거지? 아무튼 내게는 여전히 멀고도 험한 밀당의 길...

그녀는 덧붙였다. "당신을 떠나지 않겠어요. 이곳에 계속 있을게요."그녀는 바로 ― 그녀만이 내게 줄 수 있는 ㅡ 나를 타오르게 하는 독약에 맞선 유일한 해독제를, 게다가 독약과 같은 종류의 약을 주었는데, 즉 하나는 달콤하고, 다른 하나는 쓴 것으로 둘 다 똑같이 알베르틴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나의 병(病)인 알베르틴은 내게 고통을 유발하기를 포기했고, 그러자 이번에는 나의 약(藥)인 알베르틴이 나를 회복기에 접어든 환자처럼 온순하게 만들었다. - P472~473


"특히," 하고 베르뒤랭씨의 말을 듣지 못한 코타르가 브리쇼에게 말했다. "베르뒤랭 부인 앞에서는 ‘모튀스(motus)‘하기요." "걱정 마시오. 오! 코타르, 당신은 테오크리토스의 말처럼 현자를 상대하고있소. 게다가 베르뒤랭 씨의 말이 맞아요. 우리가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하고 덧붙였다. 그는 언어 형태와 그것이 자신의 마음속에 유발하는 관념을 비교할 수는 있었지만, 정교함이 부족한 탓에 베르뒤랭 씨의 말에서 가장 용기 있는 금욕주의적 표현을 발견하고 감탄했다. - P89

베르뒤랭 부인은 진짜 뛰어난 사람들은 수많은 미친 짓을 한다고 확신했다. 거기에는 뭔가 진실이 담겨 있지만 틀린 생각이다. 물론 사람의 ‘광기‘란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깨닫게 되는 불균형은, 보통 섬세한 생각을 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인간의 두뇌에 섬세한 생각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결과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력적인 사람들의 기이한 모습에 분노하는데, 사실 매력적인 사람치고 기이한 점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 P160

자동차는 아픈 사람도 그가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어, 그 장소를 개별적인 기호 혹은 대용품이 없는 변치 않는 아름다움의 본질로 여기는 것을 내가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 ㅡ 방해한다. 또 자동차는 아마도 내가 예전에 파리에서 발베크에 갈 때 탔던 기차처럼, 그곳을 일상적인 삶의 우연성에서 벗어난 목적지, 우리가 출발할 때면 거의 이상적으로 보이고 도착할 때도 여전히 그렇게 남아 있는 목적지로 만들어주지 못했다. - P273

우리에게는 몇몇 새들에게 있는 방향 감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리감과 시정감(視程感)도 부족하여 우리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는 이해 당사자의 관심을 그들과는 반대로 매우 가깝게 상상하며, 또 그런 시간 동안 우리가 오히려 다른 이들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음은 짐작하지 못한다. 이렇게 샤를뤼스 씨는, 자신이 헤엄치는 모습을 반사하는 물이 어항 유리 너머로까지 펼쳐져 있다고 믿는 물고기처럼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물고기는 옆 그늘에서 자신의 뛰노는 모습을 쫓으며 즐거워하는 산책자나, 예기치 못한 운명의 순간에 지금 남작에게는 훗날로 미뤄진 ―자신이 좋아하던 그곳에서 무자비하게 끄집어내어 다른 곳으로 내던질 그 전능한 양어가(養魚家)(파리에서 이 양어가는 베르뒤랭 부인일 것이다.)의 모습은 보지 못한다. - P345

지금 내가 상륙한 곳은 무시무시한 ‘미지의 땅‘이었으며, 예상치 못한 새로운 고통의 시대가 열렸다. 그렇지만 우리를 함몰시키는 이 현실의 홍수는 비록 우리의 소심하고도 미미한 가정에 비하면 엄청난 것이라 할지라도, 이미 그 가정을 통해 예상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지금 막 들은, 알베르틴과 뱅퇴유 양의 우정과도 같은, 내 정신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을 테지만 앙드레 곁에 있는 알베르틴을 보면서 어렴풋이 불안에 떨며 두려워했던 것이다.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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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품고있는 걸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든다는 건 자네를 모독하는 일처럼 생각되었네. 그들이 자네에 대해 질문해도 소용없었네. 크로니온의 딸인 그 성스러운 ‘수치의 여신‘이 나를 침묵하게 했으니까." 나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을 만큼 그렇게 취향이 - P444

저속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런 ‘수치 혹은 신중함의 여신‘
은, 그대를 찬미하지만 그대가 군림하는 은밀한 전당에 무식한 독자와 신문기자들의 무리가 몰려들까 봐 그대 얘기를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비평가의 신중함과, 그대와 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섞지 않으려고 그대에게 훈장을 수여하지 않는 정치가의 신중함과, 또는 재능 없는 X………의 동료가 되는 수치심을 면하게 해 주려고 그대에게 투표하지 않는아카데미 회원의 신중함과, 마지막으로 아무리 무덤에 경건하게 바쳐진 화환이라도 그런 화환보다는 사람들 입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편을 더 좋아할 공적이 많은 그 불쌍한죽은 아버지에게 침묵과 휴식을 마련해 주기 위해, 고인을 살아 있는 상태로 보존하는 것을 방해하고 고인의 명성이 주위에 퍼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고인에 관한 글을 쓰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자식들의 존경스럽지만 범죄와도 같은 신중함과 - 크로니온보다 훨씬 더 유사해 보였다. - P445

그녀는 덧붙였다. "당신을 떠나지 않겠어요. 이곳에 계속 있을게요."그녀는 바로 ― 그녀만이 내게 줄 수 있는 ㅡ 나를 타오르게 하는 독약에 맞선 유일한 해독제를, 게다가 독약과 같은 종류의 약을 주었는데, 즉 하나는 달콤하고, - P472

다른 하나는 쓴 것으로 둘 다 똑같이 알베르틴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나의 병(病)인 알베르틴은 내게 고통을유발하기를 포기했고, 그러자 이번에는 나의 약(藥)인 알베르틴이 나를 회복기에 접어든 환자처럼 온순하게 만들었다. -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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