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도시의 산물이다. 도시라는 공간이 생긴 뒤에 산책자들이 나타난다. 도시의 산책자란 근대라는 박물관의 관람자이자 탐색자라는 뜻을 갖는다. 산책자들은 어떤 도취감에 이끌려 도시 이곳저곳을 떠돈다. “오랫동안 정처없이 거리를 쏘다니는 사람은 어떤 도취감에 휩싸인다.” 그 도취감에 휩싸여 거리의 스펙터클을 감각적으로 흡수해버리는 것이다. 이때 대도시 거리는 그 자체로 방대한 문헌이고, 산책자는 그 문헌을 탐욕스럽게 연구하는 자다. - ⟪이상과 모던뽀이들⟫ P241


얼마 전 한국 근대 문학가와 미술가의 삶을 담아낸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읽었던 책과 강연이 떠올랐다. 구체적으로 어떤 강연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그 책을 확인해보니 자그마한 쪽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민음 아카데미’였다. 무려 10년도 더 된 강연이었는데 ‘근대의 탄생과 경성의 작가들’을 다루었다. 

예전에 내가 임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이 때 이상과 김유정, 임화, 그리고 박태원의 삶과 문학을 통해 한국 근대의 풍경이 어떠했을지 상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이전까지는 거시적인 역사에만 관심을 두다가 이런 일상사와 미시사의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1930년대 당시 문단은 카프의 세력이 맹렬했다. 카프 운동의 중심에 있던 임화는 이상과 보성중학 동문으로 시인이자 문학이론가다. 당시 보성중학에는 동기생인 이상 뿐 아니라 선배인 김기림, 김환태 등도 있었는데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임화는 학교를 중퇴하면서 이들과는 멀어졌다. 그 후 임화는 모더니스트에서 무산자 계급문학의 수장으로, 자유주의자에서 공산주의자로, 그 너른 간격을 가벼이 건너뛰며 사상적 선회를 한다. 하지만 자발로 간 북한에서 그는 ‘미제 간첩’이라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사형으로 생을 마쳤다. 


카프의 반대편에 선 모더니즘 단체로 구인회가 있었다. 문학가인 이종명과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김유영은 정치색을 띠지 않는 문단 풍토를 만들기 원하여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구락부 형식의 단체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구인회가 태동하게 되었다. 이 때 염상섭은 문단 싸움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여 모임 추대에 반대하면서 최종적으로 이종명, 김유영, 조용만, 정지용, 이태준, 이무영, 김기림, 이효석, 유치진으로 구성이 되었다. 모임의 시작은 이종명과 김유영이었으나 구인회를 이끄는 것은 이태준이었다. 이태준은 월간 문예지 ‘문장’을 펴내며 조선 문단의 중심 권력으로 확고한 위치에 있었으며 뛰어난 소설가이기도 했다. 


꽤나 알려진 사실인데 이상의 ⌜오감도⌟는 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되었는데 이 때 이태준이 신문의 학예부장으로 있었다. 빗발치는 독자들의 항의에 꽤나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의 회고가 남아 있다. 

이상의 ⌜오감도⌟는 처음부터 말썽이었다. 당초에 원고가 공장으로 내려가자, 무선부에서부터 ⌜오감도烏瞰圖⌟라는 것은 ⌜조감도鳥瞰圖⌟의 오자가 아니냐고 물으러 오지를 안나, 자전에 조감도란 말은 있어도 오감도란 말은 없으며, 보지도 듣지도 못한 제목이라고 법석이었다. 간신히 사정을 하다시피 해서 조판을 하여 교정부로 넘어갔는데, 이것도 시라고 하는 거냐? 이것은 신문을 버리는 근본이 되니 싣지 말자고 정식으로 항의가 들어오는가 하면, 학예부에서 응하질 않으니까 결국 편집국장에까지 진정이 들어가는 법석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내부의 장애를 부릅쓰고 실었더니 이 시가 계속되자 이번에는 날마다 몇 장의 공격 투서가 들어와서 난처했던 것이다. ‘미친 놈의 잠꼬대냐’, ‘무슨 개수작이냐’, ‘그게 대체 어쩌자는 시냐’ 따위의 독자 항의문은 곧 산적되었다. - ⟪이상과 모던뽀이들⟫ P237


박태준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조선중앙일보에 1934년 연재되었다. 알다시피 이 신문은 손기정의 일장기를 지운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 때 사장은 여운형이었다. 이태준은 일제강점기 막바지 쓰는 것을 강요받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고 해방이 될 때까지 일체의 행동을 거부한 채 낙향하여 칩거에 들어간다. 하지만 해방 후 1946년 월북을 하면서 그의 작품을 남한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의 빼어난 소설들을 이후에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구보는 갑자기 걸음을 걷기로 한다. 그렇게 우두커니 다리 곁에 가서 있는 것의 무의미함을 새삼스러이 깨달은 까닭이다. 그는 종료 네거리를 바라보고 걷는다.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 아무런 사무도 갖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 내어놓았던 바른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中


구보는 산책을 통해 식민지 근대의 중심지였던 경성을 탐닉한다. 나도 어느 곳을 가든 걷는 편이다. 오늘과 내일의 풍경이 같은 듯 보여도 매일 공기는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때 행복하다. 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걷기도 하지만 공상을 하기도 하고 사물을 마주 대하며 생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즐겁다. 


이상은 1933년 종로 다방 ‘제비’를 개업한다. 당시 다방 ‘제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다방이 아니고 온갖 경성의 인사들이 들락날락하는 문화 아지트이자 공동체적 장소였다. 박태원은 ‘제비’를 오가며 이상과 급격히 친해지는데 그의 작품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함을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둘 다 경성 토박이였던데다가 나이까지 비슷했으니 통하는 면이 있었을 것이라 본다. 두 사람은 연인처럼 붙어 다녔다는데 방종한 생활을 하기로 유명했다. 박태원은 “이상과 나는, 당시에 있어 서로 겨 묻은 개였고, 동시에 서로 똥 묻은 개였다.” 라고 자폭한 것을 보면 그 실상을 짐작할 만하다. 박태원은 1951년 한국 전쟁 중 월북했고 북한에서 사망했다. 


김기림은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출신으로 구인회의 일원이었다. 그는 이상을 보자마자 천재성을 알아보았던지 진폭적인 신뢰를 보내며 후원을 했다. 이상이 무질서한 생활과 나태와 방종, 질병 등으로 고생을 할 때도 김기림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고. 이상은 글만 잘 쓴 것이 아니고 미적 감각도 뛰어났던 모양이다. 김기림의 시집인  ⌜기상도⌟를 디자인했는데 오늘날 보아도 촌스럽지 않고 깔끔하고 멋스럽다. 김기림은 누구보다도 우리 시에 근대성과 현대성을 접목한 뛰어난 시인이었다. 가령 백화점이라는 근대 공간을 “‘메피스토’의 늙은이”로 보고 그 늙음의 추함을 가리기 위한 “메이크업”을 읽어낸다. 근대 공간의 황홀경에 유인된 군중을 “어족”이라고 보기도 했다. 정작 김기림의 시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 향후 읽어보고 싶다. 김기림은 한국 전쟁 중 인민군에 붙잡혀 납북되었는데 이 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지용도 구인회의 일원이었다. 김기림은 정지용을 가리켜 “우리 시 속에 현대의 호흡과 맥박을 불어넣은 최초의 시인이며 우리말의 각개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무게와 감촉과 광光과 음陰과 형刑과 음音에 대하여 적확한 식별을 가지고 구사하는 시인”이라고 했다.  문학계의 선배 격이었던 만큼 많은 후배 문인들에게 영향을 준 시인었다. 정지용 하면 윤동주가 자동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구본웅과 이상의 우정도 각별했다. 화가 구본웅은 이상의 자화상을 그려주기도 했고 이상이 ‘제비’의 문을 닫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인쇄소에 이상의 일자리를 알선하여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구본웅은 초기에는 거친 질감의 표현주의적 화풍인 야수파적 색채를 벗어나 불교적 색채로 변화한다. 아쉽게도 한국 전쟁 중 자택이 폭격을 맞아 대부분의 작품들이 소실되고 말았다. 그래서 남아 있는 구본웅 작품들은 초기작들인데다 그 수도 극히 적어 아쉬울 따름이다. 


올해 5월에 다녀왔던 전시회(다시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에서 구본웅의 그림이 몇 점 있었다. 그 중 1940년대 그렸다는 ‘중앙청이 보이는 풍경’이라는 그림을 소개한다. 

화면 오른편에 하얀 중앙청 건물이 서 있고 그 앞에는 낮은 건물들이 자리한다. 특이하게도 굵은 선으로 윤곽을 분명하게 구획한 한옥들과는 달리 중앙청은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다. 게다가 한옥들은 다채로운 색깔들로 되어 있어 중앙청과 분명하게 구분된다. 화가의 의도라고 보여지는데 지금은 사라진 중앙청 건물을 둘러싼 풍경을 보며 당시의 풍경을 떠올려보게 된다. 



문장이란 언어의 기록이다. 언어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언어, 즉 말을 빼놓고는 글을 쓸 수 없다. 문자가 그림으로 바뀌지 않는 한, 발음할 수 있는 문자인 한, 문장은 언어의 기록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문장작법⟫ 중中


❖ 운동


1층 위의 2층 위의 3층 위의 옥상정원에

올라 남을 봐도 아무것도 없고 북을 봐도 아무것도

없으므로 옥상정원 아래의 3층 아래의 2층 아래의

1층으로 내려왔더니 동에서 뜬 태양이 서로 지고

동에서 떠서 서로 지고 동에서 떠서 서로

지고 동에서 떠서 하늘 한가운데에 와 있으므로

시계를 꺼내어 보니 멈춰는 있으나 시간은

맞음에도 시계는 나보다도 젊지 않은가라고

하기보다는 나는 시계보다도 늙어 있지

않다라고 어찌해도 여겨지는 것은 분명 그러함에 

틀림없으므로 나는 시계를 버리고 말았다.


-1931,8,11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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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0-21 15: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 이상의 일화와 작품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라는 감탄만 듭니다~!!
1930년대 시대가 우울했어도 문학인의 활동은 활발했던것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10-23 11:36   좋아요 2 | URL
시대는 우울했지만 그 와중에도 많은 문학인들이 인연을 맺으며 활동했다는 사실을 일화를 통해 들여다보는 일이 즐겁습니다^^
이상은 여러 모로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었던 것 같아요. 본인 스스로는 고독과 우울함을 많이 느꼈다고 하는데 주변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떨칠 수는 없었나봅니다.

호시우행 2023-10-21 1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대사에 기록될 문인들의 스토리를 배울 수 있었어요.

거리의화가 2023-10-23 11:36   좋아요 1 | URL
이 당시 문인들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 하나가 흥미롭습니다.

희선 2023-10-22 0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이상 시를 다 알기 어렵겠지요 그때 사람들이 꽤 안 좋게 여겼군요 그런 걸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이 북으로 가고, 바로는 그 사람들 글은 읽지도 못했네요 시간이 지나고서야 보게 됐군요 그렇게라도 돼서 다행이기는 합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10-23 11:39   좋아요 1 | URL
이상 시는 지금 읽어도 난해하다 느껴지는 구석이 많습니다. 당시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지요^^
천재 문인들이 북으로 참 많이 넘어가서 안타깝지만 이렇게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됨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역사비평 144호 - 2023.가을
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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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70주년을 맞이한 2023년 한국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남북 관계는 진흙 속에 처박혀 있고 북한은 중국, 소련과 관계가 여전히 공고함을 내비쳤으며 한미일 동맹 관계는 더 굳건해진 상황을 이용하여 일본은 군비를 더욱 확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간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얼마 전 가자 지구를 둘러싸고 충돌이 발생하여 수천 명이 희생되면서 전쟁의 위기에 돌입했다.


평화를 기대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암울하고 각자도생을 하기 위한 셈법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나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나를 둘러싼 세계를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호의 특집 내용은 시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전쟁사나 정치, 경제사가 아닌 사회사를 다룸으로써 북한 인민들의 삶을 돌아보고 이를 통해 미래의 비전을 이야기한다.


북한 인민들은 정전(停戰)의 성립을 폭격의 공포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는 계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북한 사회는 전 사회적 역량을 전쟁 이전 수준으로 산업 시설을 복구, 재건하는 데 집중했고, 모든 직능 분야에서 체제의 요구에 호응하도록 독려했다. 당과 각종 직능단체들은 산하 기관지와 다양한 책자를 통해 전후복구 시책들을 전파하며 조직화에 나섰다. 공장과 농촌과 도시의 주민들은 두려움과 공포, 가족을 잃은 상처를 딛고 토굴과 방공호를 벗어나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 P44

 

정전 후 사회주의 국가였던 북한과 동유럽의 문화 교류가 있을 거라 예상하였으나 그동안은 이와 관련해서 정보를 얻었던 적이 없었다. 다양한 교류 경로가 있었겠지만 해당 글에서는 북한의 월간 『조선문학』에 수록되었던 기행문과 번역문학을 분석함으로써 당시 국가간의 문화교류를 짐작해볼 수 있도록 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친선 및 ‘사회주의 건설‘은 시대적 과제로 대두되었으며, 전후복구의 선행 경험을 지닌 동유럽 국가들은 북한에 대한 원조나 협력의 원천으로서 적극적인 교류의 대상이 되었다. 북한 문학자들은 동유럽 국가들과의 이질성을 넘어 국제주의적 연대를 구현하기 위해, 전쟁·혁명의 공통 경험을 환기하거나 소련이라는 이념적·문학적·산업적 보편항의 매개를 필요로 하는 면모를 보였다. 이러한 조선-동유럽 간 동질성의 모색은 동일한 창작 주제를 공유하는 사회주의 세계문학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전후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일(一) 국가의 시대적 과업을 세계라는 보편적 공간 내에자리매김하기 위한 목적하에 수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개별 작가들의 관점은 1955년 12월의 반소련 캠페인 이후 소련이라는 보편항으로 포용될 수 없는 상호간의 이질성을 발견하거나, 개인의 생각과 내면을 부각시킴으로써 가족애·낭만적 사랑 등의 ‘생활 감정‘을 새로운 보편항으로 발견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이질성이나 ‘보통사람‘의 삶에 대한 주목은 북한 문학자들이 소련이라는 보편항의 중재나 이념 · 국가라는 거시적 프레임의 매개에 매몰되지 않은 채, 동유럽의 다채로운인민들과 마주할 수 있는 위치에 근접했음을 의미한다. - P79~80


작년에 민병래 작가의 <송환>이라는 책에서 한국 사회의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 알게 되었었다. 여기서는 '강제전향'한 장기수들을 인터뷰 발췌한 내용을 실어 그들이 출소 후 남한 사회에 어떻게 정착하고 살아왔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들은 감옥에 몇 년째 수감되어 강제로 고문이나 협박, 회유 등을 통해 전향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 출소했더라도 사회안전법(보안감찰법)에 의해 끊임없이 감시를 당했다. 어딜 가도 내 궤적을 추적하고 추궁받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사람을 피말리게 할까 상상만으로도 힘겹다. 


연재기획 시리즈인 '현대 중국의 공간과 이동'에서는 군사화학공장에서 고급 리조트로 변신한 ‘809공장’ 공간의 역사에 대해서 다룬다. 중국이 개혁 개방 후 발전 경제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탄생한 '809공장'은 고무를 생산하는 곳이었으나 최근에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고급 리조트로 변모하였다. 


마침 기획인 '20세기 동아시아 농어업과 사회'가 있어 연재기획 시리즈와 자연스레 연결하며 읽을 수 있어 유익했다. 

해당 글은 1950년대 마오쩌둥 시대 초기 고무 생산이 핵심 자원으로 부상했으나 냉해 피해가 발생하면서 해결 방법론(기상 상황과 위치에 따라 환경을 바꾸어야 하느냐 기후 조건을 바꾸어야 하느냐)을 두고 '과학적’ 환경 개조관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오늘날 '근대'라는 산물로 이루어진 과도한 개발로 인해 기후 위기라는 직격탄을 맞은 지구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후로도 기획으로 다루어진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역비논단에서는 특히 누에 연구를 한 농학박사 계응상을 알게 되어 수확이 있었다. 그는 북한에서 리승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과학자로 인식된다고 한다. 북한으로 가서 아마도 대중 뿐 아니라 연구자들에게도 이 이름이 낯설 수 있겠다 싶다. 

계응상은 식민지 조선인의 신분으로 양잠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우수한 여건을 갖춘 일본(1920년대 일본은 세계 생사 시장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므로 연구 환경이 갖춰져 있었다)에서 안정된 과학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식민지 조선인이 감히?라는 불평등한 조건). 그는 일본의 제국대학에서 양잠학에 관한 교육과 연구 경험을 쌓았음에도 중국으로 건너가서야 연구 활동을 활발히 벌일수 있었다. 해방 후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그의 자리는 보장되지 않았고 그를 둘러싼 연구 여건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 무렵 요청을 받고 북한으로 올라간 후에야 국가적 지원을 받으며 양잠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김일성의 후한 지원을 통해 북한의 누에고치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고 잠업과학연구소를 설립하며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의 방문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는 죽어서 애국열사릉에 묻히는 영예를 누린다. 그렇지만 그는 시대적 한계로 연구를 위해 여러 번 국가를 이동해야 했던 사람이었다. 


서평에서는 읽었던 책(『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이 포함되어 있어 반가웠다. 근대를 일본으로부터 상당수 받아들인 우리로서는 근대와 번역의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백제와 관련된 책(『백제의 이주지식인과 동아시아 세계』)이 오랜만에 보여서 반가웠다. 이주지식인으로서의 백제인이 고대 동아시아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론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강만길이다. 내가 이 학자의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는 확인해봐야겠으나 어쨌든 이미 갖고 있는 책이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 70년대 『분단시대』를 거론하며 본격적으로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한 연구와 관련한 책을 쏟아내셨다. 그 중 역시 '분단시대의 역사 인식'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대중을 위한 역사를 저술하셨고 그런 글쓰기를 지양하셨다는 것에 존경심이 이는 분이었다. 얼마 전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시간을 내어 관련 책들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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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성구매의 불법화를 전적으로 지지해왔다.
한쪽에 적용되면 다른 쪽에도 적용돼야 균형이 잘 잡힌 입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상황이 평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을 때는 애당초 균형이 잡혀 있지 않다. 따라서 성매매에 관해서는 전반에 걸쳐 평등한 법적 접근을정당화하기 어렵다. 공정성이 있다면 착취되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범인 취급할 수는 없다. - P312

친구와 논쟁하다가 성매매가 합법화되면 ‘아마도‘ 신체적으로 안전할지도 모르겠다고 수긍한 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아일랜드의 성매매 여성들은 여전히 그렇겠지만,
불법이라는 환경에서 경험했던 성매매에서의 모든 시간 동안, 성매매가 합법화되면 성매매 경험에 어떤 질서를 부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구타가 없어지거나 적어도 줄어들리라 추측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던 전반적인육체적 피해가 합법화로 감소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탈성매매 후 접한 국제 연구에서 나의 추측이 사실 - P313

이 아니었음을, 실상 그 반대였음을 인지하게 됐다.
비범죄화와 합법화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한다는 개념은 성매매의 또 다른 신화이며, 특히나 위험하다. - P314

성매매가 합법이 된 나라들에서 업주들이 근절되었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있겠다. 그렇지 않다. 업주의 역할이지방정부의 조직된 역할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정부가업주이다.

스웨덴에서는 여성과 소녀 들을 위한 법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평등의 원리들을 견지하길 요구하는 사회라면 여성과어린이, 그중 대부분인 소녀들이 사고 팔리며, 남성에 의해 성적으로 착취될 수 있는 상품이라는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고여겨진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존재 중에서도 구별된 계층으로서의 여성, 특히 경제적, 인종적으로 주변화된 여성과 소녀들이 이러한 장치들 그리고 지난 50년 동안 발전해온 국제 인권 조약들에 명시된 보편적 인권 존엄성 보호에서도 마찬가지로 제외됨을 용인하게 된다.
-구닐라 에크버그, 『성구매를 금지하는 스웨덴 법』 - P315

스웨덴은 1999년에 성구매를 금지하는 획기적인 법안을 소개했다. 스웨덴은 단순히 성구매만 금지한 게 아니라성매매 여성들이 직업 교육이나 학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치들을 마련하면서 성매매되는 사람들을 비범죄화했다. 감탄할 만한 법안이었다. - P316

•1999년 스웨덴에서 개정한 법안들 중 성매매와 관련한 법이 가장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개정된 법안은 절대 성매매 관련 법안 하나만은 아니었다. 여성들의 안전과 관련한 다른 법안들이 집중적으로 향상되었다. 특히 남편이나파트너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당하거나 추행당한 경우에 적용하는 위법 행위(여성의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 항목을 신설했다. 가정폭력 쉼터에 지원되는 연간 재정 지원이확대되었다. 폭력 또는 성폭행을 경험한 여성들을 지원하는 국가 센터는 추가 지원을 받았다. 여성할례(성기 절제)의 감옥 형량은 배가 되었다. 여성 인신매매를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국가 경찰 위원회에 부여됐다.
특정 성범죄를 인지하고도 보고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벌받게 되었다. 강간의 정의는 성기 이외의 물건을 강제로 삽입한 경우도 포함할 수 있게 확대되었고 직장 내 성희롱을대응할 조항들이 더욱 엄격해졌다. - P317

성매매될 ‘인권/시민권‘에 기반해 성매매를 승격시키려는 정책은 성매매 산업을 운용하기 위해 모든 법적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성매매된 여성들의인권에는 아무런 기반을 두지 않는다. 성매매가 존재할 권리라는 오직 한 가지 권리만 상정한다. - P326

아일랜드 문제이니까 외국의 해결책을 들여오지 말아야 한다면서 스웨덴식의 법안을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 이주장은 성매매가 아일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다. 성매매는 젠더 불평등문제이기에 국제 문제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국제 문제에 걸맞는 국제적 대응이다. - P328

성매매는 많은 면에서 ‘일‘이라는 용어에 적합하지 않지만, 소위 말하는 이 ‘일‘에서는 유일하게 서비스 제공자가 동시에 상품이 된다는 사실이 실상을 가장 효과적으로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성매매가 맥도날드에서 버거를만드는 것보다 더 좋거나 나쁠 것이 없다는 주장에 한 성매매 생존자는 이렇게 응답했다.
‘맥도날드에서 당신은 고기가 아니다. 성매매에서는 당신이고기다. ‘34‘성노동자‘라는 용어는 성매매를 보편화하는 과정에서사용하는 수사학적 무기이다. 성매매가 전적으로 보편화된사회라면 그 수사학적 무기가 수용되겠지만, 아무런 의도없이 대화 중에 성매매 여성을 ‘성노동자‘라고 지칭하는 걸들어본 적은 없다. - P334

성매매의 보편화 전략들 중 다른 한 가지는 성매매된여성들을 별개의 두 부류로 구분하려는 시도이다. 소위 ‘자 - P337

유로운‘ 부류와 ‘강제된‘ 부류이다. ‘강제된’부류란 대개속아서 인신매매되고 감금된 채 업주에게 강간 당하고 낯선 사람에게 성적인 고깃덩이로 팔리는 신체적으로 노예상태에 처한 여성들을 말한다. 그리고 물론 ‘자유로운’ 부류는 소위 말하는 자유의지를 발현해서 자신들이 선택한운명에 만족하며 즐거워하는 여성들을 지칭한다. 만약 여- 성들이 그렇게 쉽게 성매매를 선택한다면, 왜 그다지도 많은 여성이 속아서 노예화되어야 할까라는 타당한 질문을해봄 직하다. - P338

아무에게도 강요받지 않은 나와 같은 여성들은 우리의목소리를 찾아 누군가 강요하지 않았다는 그 말이 아무것도 우리를 강요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강압적인 상황에서 지구상 가장 강력한 강제성은무형으로 존재하는데, 강제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 주먹이나 총, 칼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건 무척이나 인간적인 어리석음이다. 내 성매매 경험은 강요되었다. ‘자유로운‘ 범주에 속하는 우리들을 강압한 건 삶이다. - P339

성매매를 보편화하려고 이용하는 또 다른 거짓은(현대이전 매우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성매매가 존재하기에 남성들이 지니는 성적인 공격성이 비성매매 여성으로 향하지않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 P341

미국의 노예 옹호론자들은 노예제가(…) 그들에게 가장 민주적이고 품위 있는 관계들을 유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견지하면서 노예제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시도했다. 그들에게? 그 주장 안에 정당성이 있나?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성매매가 일반적인 여성 인구를 보호한다는 개념은성매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성매매 내부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양심적 사고를 하지 않으면서성매매를 지지하는 데 사용된다.
성매매가 다른 여성들을 보호한다는 개념은 거짓이기때문에 양쪽 여성 모두 기만당했다.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 반대이다. 성매매는 교묘하고 교활한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세상의 비성매매여성들이 이 사실을 모르는 까닭은 일어나는 일들이 다른 곳에서, 닫힌 문 뒤에서 일어나기때문이다. - P342

성매매가 보편화된다면 성매매 내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교류와 태도 또한 모두 보편화되어야 하지만 사람들을 이렇게 대우하는 현실은 정상적이지 않다. 그러므로성매매를 보편화하려는 시도는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시도이고, 이 비정상적인 교류 방식은 인간 고통을 야기하므로 비도덕성을 인정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 P347

어떤 이들은 성매매 여성들을 성소수자로 표현하기 위해 성매매 여성을 동성애 그룹에 포함시키려고도 시도했다. 성매매는 성적 지향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이시도는 잘못됐다. 그렇게 묘사하려는 시도는 마치 이 세상에서 좀 더 부유한 곳에 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옷을 짓는 개발도상국가에 사는 빈곤한 사람이 마치 성을 표현하는 활동을 한다는 제안과도 흡사하다.
이 전략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그릇된 전제에 기대어 성매매와 관련한 생각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며, 성소 - P347

수자들의 적법한 권리를 합당하게 주장할 수 없는 성매매가 그럴 권리가 있는 것처럼 상정하면서 성매매와 관계된정치적 풍토를 바꾸려 한다. - P348

성매매를 벗어나자 성매매를 살아내던 삶에서 그것으로 인해 휘청거리는 매일을 살게 되었다. 성매매를 견뎌내던 삶에서 면밀히검토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그 삶 각각에는 나름의 고통이있지만 바뀐 삶에서는 분열되는 느낌과 새로운 씨름을 해야 했다. - P351

언제나 글을 썼다. 10대에는 종잇조각들, 상자, 맥주 받침 뒤에다 끄적거리곤 했다. 공책, 책 앞뒤에 붙은 백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급하게 찢어 낱낱이 흐트러진 종이 쪽지들로 가방이 꽉 차곤 했다. 영수증은 모두 펼쳐서,
납작하게 눌러 뒷면에 반 정도만 알아볼 만한 낙서로 뒤덮었다. 한번은 여성 경찰관에게 붙잡혔는데 그 경찰관이 내시와 운문 들을 읽는 부끄러움을 참아야 했는데,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이거 네가 쓴 거니?"라고 물었다. 수치가 증발했다. 비웃을 거라 짐작했다. 대신 그 경찰관이 감동해나도 감동받았다. 내가 살던 삶이 내게 적합하지 않음을 누군가 생각해줬다는 사실을 알아서 좋았다. - P355

뜨거운 컵이 탁자 위에 남긴 동그란 자국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성매매 경험으로 나는 두드러지고 자국이 남았다. 상관없다. 경멸을 거절하는 일은 내가 잘하는 일 중 하나이다. 성적인 경멸감과 사랑에서 오는 친밀감이 다름을인식하는 일은 다르다. 강렬한 진실은 남자가 섹스를 통해사랑을 표현할 때 놀라운 치유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인데,
이성애 여성이 특히, 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이 그 사실로인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고마워하는지 남성들이 이해하고 알기를 바란다. - P362

아무런 수식어가 붙지 않은 여성으로서 여겨지는 느낌을 알기 전에도 이미 수년 동안 여성이었다. 하지만 마침내이제 나와 비성매매 여성으로서 나의 새로운 정체성이 머뭇거리며 만나 친밀하게 연결되는 새로운 현실을 경험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 느낌은 차분하고 평화로운 질감을가진다.
이 느낌을 꼭 붙든 채 더 쌓아나가고 싶고, 내 자신에대해 생각할 때 언제나 이렇게 더 가깝게 다가가 성매매 경험을 들여다보면서 그 경험을 그저 응시하는데 머물지 않고 현재의 나로부터 이전의 나를 풀어줄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 P365

성매매 여성이던 당시 의사와는 보통 성매개감염병 검사에 관한 얘기를 주로 했고 그렇지 않을 때는 구매자들이 부러뜨린 뼈를맞추려고 응급실에 갈 뿐이었다. 우리 건강에 대한 염려는거기서 시작하고 끝났다. 신체적 기능을 유지할 뿐,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건강 관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성매매 여성은 자신의 정신 건강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이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 성매매에 유입된 채로 항우울제를 받으러 의사에게 가는 일은, 골초처럼 담배를 피우면서 폐암 치료를 받는 일 만큼이나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여성들이 알기에 이런 상황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성매매에 근접해 있는 한성매매란 항우울제 한 갑으로 피할 수 있는 해악이 아니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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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 27 ] The Rise of Rome


Romulus and Remus

로마는 이탈리아 언덕에 조그만 마을에서 시작했다. 다음은 로마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옛날 Numitor라는 왕에게 두명의 손자 Romuls와 Remus가 있었다. Numitor의 못된 남동생이 그의 왕권을 훔치려 했다. 두 손자는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하인이 Tiber River에 두 아이를 바구니에 넣어 흘려보냈고 무화과 나무에 막혀 있던 바구니를 늑대가 발견하곤 우리로 데려가서 기른다. 어느 날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다가 늑대 우리를 발견한다. 목동은 두 아이를 집으로 데려갔고 아이가 없던 부부는 정성껏 키운다. 아이들이 다 자란 후 자신이 발견된 그곳에 가 마을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로물루스는 왕을 선언하고 마을을 보호할 벽을 세우려 하지만 레무스는 형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가 왕이 된다는 것에도 화가 났고 자신은 외부와 단절된 채 벽을 세우는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물루스가 화가 나서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의 첫번째 왕이 된다.


The Power of Rome

이탈리아에는 여러 부족들을 합치며 로마는 점점 더 힘을 키웠다. 이탈리아 부족 중 에트루리아인이 있는데 그들이 로마인들에게 그리스와 이탈리아 간에 교역을 통하여 그리스 문자를 비롯한 그리스 문화의 많은 것들을 전달해주었다. 로마의 왕은 에트루리아의 왕이 하던 것처럼 특별한 보라색 테두리의 togas를 입고 권력의 상징인 fasces라 불리는 기구를 듬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내보였다. 오늘날 미국 법정과 정부 당국도 로마의 상징 같은 것을 사용한다고 한다. 

로마는 법을 집행하고 리더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뽑기를 원했다. 로마는 아테네처럼 민주정이 아니라 patricians(귀족들)만이 정부에서 말할 권한을 가진다. 그리고 두 귀족들 중 두 명이 다른 귀족들에 의해 임명되는데 이들이 consuls(집정관)이다. 


* faces: bundle of rods with an axe blade in it, as a symbol of royal power. The rods showed that the king had the power to punish anyone who did wrong. The axe blade shoed that he could execute people who did very evil things. 



[ Ch 28 ] The Roman Empire


The Roman Gods

에트루리아인들은 이탈리아에 그리스신들에 대한 내용도 전달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신을 자기 식으로 이름을 개명했다. 

어느 날 수확의 신인 케레스와 딸인 프로세르피나가 숲에서 놀다가 케레스가 시원한 개울물을 마시는 동안 프로세르피나는 근처 백합 수풀이 있는 걸 발견하고 고개를 숙였다가 빠져서 사라진다. 14일간 케레스는 찾아 헤매다 한 요정을 만나 딸이 플루토에게 붙잡혔다는 걸 알게 된다. 케레스는 분노하고 주피터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주피터는 플루토를 설득해보겠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그동안 어찌 지냈는지 물었는데 딸은 지하 세계에서 거의 먹지 못했다며 몇 분 전에 6알의 씨앗만 먹었다고 이야기한다. 화가 난 케레스는 딸을 데려가겠다고 말하자 주피터는 딸이 6알의 씨앗만 먹었으니 6개월은 지상에서 케레스와 지내고 나머지 6개월은 지하에서 플루토와 지내는 것으로 합의를 본다. 프로세르피나가 지상에 오면 봄이 시작되고 지하에 가면 나뭇잎이 떨어지는 계절이 되었다고.


The Roman Builders

로마는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닦았다(아피안 가도). 로마인들은 콘트리트를 사용한 최초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물론 당시 콘크리트의 품질은 별로여서 volcanic ash, water, lime과 섞은 혼합물(근데 왜 lime을 섞었는지 신기하다)로 만든 건물들은 쉽게 붕괴되어 사람들이 많이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건물 밖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면서 슬럼화되었고 가족들 모두가 한 방에서 지냈다. 쓰레기는 도로 위에 내버려졌고 사람들은 께끗한 물이 필요했다. 이에 상수도(aqueduct)가 건설되었다고. Aqueduct는 30마일 떨어진 곳에서 도시 내부로 물을 끌어올 수 있는 시설이었다. 또 로마인들은 매일 목욕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욕조는 모두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목욕탕에 가서 사람들은 목욕을 했다 한다. 오늘날에도 로마인들이 만든 건물과 목욕탕과  상수도 시설이 남아 있다.


The Roman Gladiators

오늘날 로마 검투사가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세르비우스라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몇 천년간 이와 같은 이들이 있었다. 

세르비우스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고 밤에는 친구들과 놀며 평범하게 지냈다. 어느 날 그가 새로운 괭이를 만들려고 하다 우뢰와 같은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의 정체는 마을에 쳐들어온 침략자의 말발굽 소리였다. “우리는 로마인들이다. 우리는 로마를 접수하려고 한다. 항복해라!” 세르비우스는 벽에 걸려 있던 괭이로 그들을 공격하려다 잡힌다. 로마인들은 세르비우스를 로마로 데려가 검투사 학교로 데려간다. 


The Gladiator School

검투사 학교(양성소)는 마치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으며 매일 fighter 훈련을 받았고 그는 시험에 통과해야 했다. 나머지 시간은 기초 체력을 키웠다. 시험을 통과하면 검투사가 되겠다는 서약을 한다. 훈련자들은 검투사가 되면 경기장에 들어가 수만의 로마인 관중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싸움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그들을 위해서는 투사가 되어야만 한다. 어느 날 세르비우스는 경기를 나가게 되었다. 경기장에서 만난 대결자를 그와 대결하기 싫어서 계속 피해 다녔다.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세르비우스는 “난 널 죽일 수가 없어. 난 동물이 아냐. 이건 스포츠맨쉽에 위배되는 일이야” 라며 경기장 밖으로 나가기 위해 돌아선다.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까.



[ Ch 29 ] Rome’s War With Carthage


The Punic Wars

로마는 더 원했고 카르타고도 더 원했다. 그들은 포에니 전쟁을 시작했고 264 BC/BCE에 시작한 싸움은 146 BC/BCE가 되었는데도 끝나지 않았다. 100년 넘게 이어진 것이다. 카르타고는 해군이 강력했는데 로마인들이 이탈리아 해변에 부서진 카르타고의 배를 분해하여 연구한 끝에 자신들의 군함을 만들어낸다. 로마 장군 클로디우스 풀처는 닭을 배에 가져다놓고 그것이 전투에서 행운을 가져다주기를 빌었다. 그러나 닭은 바다를 견디지 못했고 이것은 불행한 전조였다. “신이 우리에게 대항하려 한다. 우리는 패배할 운명인가.” 그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했고 마침내 닭들을 던져버리라고 하여 수장시킨다. 카르타고 장군은 꾀를 내어 코끼리로 로마군의 배를 공격할 생각을 하고 알프스 근처에 있던 로마군은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코끼리를 본 로마군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은 자신의 계획이 먹혔음을 알고 흐뭇해한다. 한니발은 이탈리아 육지에 코끼리와 함께 입성한다. 로마인들은 두려워했고 한니발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로마 장군 스키피오는 한니발을 물리치기 위해서 최상의 로마군을 데려와 카르타고로 향한다. 한니발은 카르타고를 구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카르타고군은 결국 로마에 굴복하고 소아시아에서 이 소식을 들은 한니발은 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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