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은 "말하기의 기술"이 - P310

라고 정의된다. 그렇지만 그리스어 "그라마타"(Ypáwata)는 "문자‘
를 가리키기 때문에 "문법"은 "글쓰기의 기술"이라고 정의할 수도있을 것이다. 실로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정의했다. 실상은 사실이 그러했다. 왜냐하면 모든 민족이 본디 벙어리여서 글을 씀으로써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225, 400, 435].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법"과 관련된] "문자"는 "관념", "형상", "유형"을뜻하며, 시적 문자가 명확하게 분절된 음성보다 먼저 출현했다. - P311

첫 번째로 초기의 모든 민족은 벙어리였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관념과 자연적으로 연관되는 몸짓이나 물건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것이 확실하다[224, 401]. 두번째로 그들은 자신 땅의 울타리를 고정시키거나 그들의 권리에대한 영속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기호를 사용했던 것이 확실하다[486]. 세 번째로 그들은 모두 화폐를 사용했다[487]. 이러한모든 진리는 언어와 문자의 기원, 그에 따른 상형문자, 법, 이름, 가족의 문장(章), 메달, 화폐의 기원을 제시해줄 것이다. 그리고그 결과로서 여러 민족 초기의 자연법을 말하고 글로 썼던 초기언어의 기원을 우리에게 제시해줄 것이다. - P318

언어는 농축된 영웅어법 표현이 풍부할수록 더욱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런 언어가 더 아름다운 것은 더 생생하기 때문이며, 더 생생하기 때문에 더 진실에 가깝고 더 믿음이 간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언어가 어원을 알 수 없는 단어들로 번잡할 때 그것은 즐겁지 못하고, 따라서 모호하고 혼란스러우며 따라서 기만적이고 오도될 공산이 크다. 이 후자의 언어는 많은 야만적인 언어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확실하며, 따라서 그 어원과 비유적의미가 전해져 내려오지 않는다. - P334

모든 고대의 언어에서 명사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뒤에 동사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동사의 빈약함을 명사와 결합시켜 보완하기 위해 복합어가 만들어지는 것은 모든 최초의 언어에 공통적인 특징이었음이 확실하다. 이것이 모르호펜이 독일어와 독일시 개설에서 논했던 원리였음은 확실하다. - P358

[487]민족들마다 글 쓰는 법을 몰랐던 시대에 문장의 필요성이란 대체적으로 소유권의 확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훗날 평화 시에 그것이 공적인 휘장이 되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메달도 출현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이러한 것들이 군기(軍)가 되었다. 그것은 초보적인 상형문자로서의 용도가 있었는데, 서로 다른 언어를사용하는 민족들 사이의 전쟁이란 결과적으로 그들 사이의 묵음의 전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 P366

가장 오래된 법은 한 사람만을 겨냥하여 명령하거나 금지하도록 입안된 것이었고, 그 이후에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최초의 민중은 보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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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읽었던 <조선을 떠나며>, 얼마 전 읽은 <다시 조선으로>를 더 들여다보고 싶어 주말 동안 그 과정을 짧게나마 진행했다. 더 깊이 읽고자 하면 미주에 있는 참고 사항을 확인해보며 정리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기엔 시간상 제약이 크니 최소한 꼭 보아야 할 기사나 영상 위주로 체크를 해둔 상태였다. <다시 조선으로>를 한 번 더 읽었다. 초독 때도 간단하게 내용을 적으면서 읽기는 했는데 재독 때도 열심히 적어가면서 읽었다(역시나 놓쳤던 내용이 이다지도 많은지).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은 따로 읽어도 좋지만 함께 읽으면 시너지가 더 상승되고 보충이 된다고 생각했다. 


먼저 나는 다큐 <조선총독부 최후의 25일>을 보았다. KBS 광복절 특별기획 <조선총독부 최후의 25일>(2013), 일본 종전기념일 특별기획 NHK <망각된 귀환자> 2부작(2013)에 저자의 <조선을 떠나며> 내용을 참고로 제작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해서다. 다만 NHK 방송은 내가 일본어가 전혀 안되기 때문에 자료 검색 자체를 할 수가 없어 보기를 내려놓았고 KBS 다큐멘터리만 시청했다. KBS 다큐멘터리의 시선은 명확히 보였다. 주로 해방 직후 25일 간 조선총독부의 태도 변화에 주목하며 그들의 범죄를 추적하는데 집중했다. 조선총독부는 8월 20일이 되자 조선 반도의 책임 통제를 재천명했고 일본 주류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게 되었다. 이는 소련군의 남하를 걱정했던 그들의 지연이 늦어진 것이 결정타였다. 조선총독부는 이제 미군을 어떻게 맞이할지 고민해야 했고 이를 위해 당시 미 24사단 하지 중장에게 비밀 서신을 80여통 보내 조선의 사정을 알렸다. 다만 그들은 사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달하고 새로 꾸려진 건준 등 조선의 정치 세력을 깎아내리거나 불온한 세력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조선인들의 폭동 제지를 위해 치안 유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강변했다. 9월 8일 미 24단이 들어왔을 때 하지는 조선(인)에 대한 편견이 있는 채 도착했을 것이지만 결정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앞선 서신 로비는 미군 도착 시 일본 경찰이 조선인을 향해 발포하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게다가 조선총독부는 조선은행권 화폐를 불과 2주 만에 140억 발행하면서 남한 경제를 교란시켰다. 이 돈의 절반은 예금 인출로 사용되었지만 나머지 반은 조선총독부 관리, 귀환하는 조선군, 기업인의 퇴각 자금으로 쓰여졌다. 다만 남한의 혼란한 상황을 제대로 이용한 이들은 친일파를 비롯한 투기꾼들이었다. 이들의 내용은 다큐멘터리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지 않다. 말미에 김계조 댄스홀 사건이 언급되는 정도인데 분량을 보면 소략하다. 이 때문에 비리와 범죄의 온상은 조선총독부이고 이를 비호해준 것은 미군정이라는 단순한 시선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NHK 방송의 내용은 조선총독부 관련 내용보다는 소련군이 남하하면서 북한에 있던 일본인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고발에 집중했다고 한다. 

해방 후 남북한의 귀환 과정은 다르게 전개되었다. 남한의 일본인 귀환은 미군정에 의해 1946년 2~3월이 되면 대부분 다 이루어졌으나 북한에 있던 일본인은 소련군의 진주로 사실상 귀환이 늦어져 1946년 3월 이후에나 귀환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참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같은 책의 내용이 포커싱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다른 시선으로 다른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일방적인 수용이나 비난보다는 비판적인 자세가 요구되듯 시청각 자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책 <다시 조선으로>에서는 일본인의 귀환이 늦어지고 조선인의 수용이 늦어지면서 이루어진 양민족 간의 불편한 동거 전개 내용을 잘 다루고 있다. 남한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거류민의 안전 확보를 위해 세화회 조직을 만들고 미군정 정책에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했다. 여기에 도움을 주었던 친일파나 투기꾼들은 국공유, 사유 부동산, 기업체를 불법 매수하고 구호품을 횡령하였으며 생필품 등을 사재기하고 밀수하며 자기 배를 불렸다. 일본인들이 재산을 돌려 감시를 피해 밀항하는 동안 미군정은 일본인들의 사유재산을 허용해주면서 투기를 사실상 방조하고 묵인, 비호했다. 


두 번째로 다큐멘터리 <사할린, 광복은 오지 않았다>(2019)를 보았다. 

얼마 전 읽었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에 사할린의 한인을 다루는 챕터가 다큐 시청에 도움이 되었다. 사할린의 남쪽 지역은 러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사할린에 자발적 또는 강제 징용으로 간 한인 노동자들이 1941~42년에는 개인적으로 도주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1943년 이후가 되면 집단 도주가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노동 환경이 악화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러시아 공식 기록 문서에 의하면 종전까지 인구 만명 정도였던 조선인의 수가 그 후 5천명으로 감소한다. 이는 피난, 귀환의 이유도 있지만 일본인에 의한 학살이 원인이라고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다큐멘터리에는 특히 ‘카미시스카 학살’, ‘미즈호 학살’에 대한 참상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증언자들의 증언과 참상에 대한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 너무 잔혹하고 끔찍했다. 일본군은 조선인을 항상 특별 관리(특수부대가 있었다고)하며 경계와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고 한다. 소련이 전쟁에 참전하자 일본(군)은 다급해진 나머지 피난 명령을 내린 뒤 군 시설 등을 모두 파괴했다. 문제는 조선인들을 소련군의 스파이 취급하여 유치장에 가두고 몰살시켰다는 데 있다. 미즈호 마을은 27명으로 집계되었다가 나중에 피해 규명이 되면서 35명으로 늘어났다(이들은 심지어 민간인들이었다). 카미시스카에서도 18명의 학살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협정 당시에도 사할린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정부는 초반에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경계로 이들을 다루지 않고 그 이후에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1992년 사할린 영주 귀국의 길이 열렸을 때 증언과 사료를 모았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생각했다. 심지어 이때 영주 귀국 자격 조건은 1945년 이전 건너간 사람들로 제한되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다큐 마지막에 조국과 한국인들은 사할린 한인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하는 인터뷰이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이래서 이 역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세 번째로 한겨레 기사 <‘우키시마호 사건’ 특별한 남북일 시민연대>를 읽었다.

우키시마호 사건 현장과 기록은 일본에 있고 생환자와 유족은 한국에 있는 사건인데 시민단체가 이에 접근하여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우키시마호 사건 발생 원인에 대해서 미군이 설치한 지뢰에 의한 폭침 때문이다라는 설과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에 의한 공격 때문이라는 설이 존재한다. 사건 발생 후 재일조선인연맹이 일본 정부에 진상 조사를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어서 연합국 총사령부에 조사 요청을 했으나 미군정도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1950년 선체 인양을 하면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신원 확인된 유골 일부를 봉환할 수 있게 한 것은 모두 재일조선인 연맹 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우키시마호의 출항지인 아오모리 지역 시민 단체, 침몰지인 교토의 시민그룹인 ‘우키시마호 순난자 추도 실행위원회’, 사건 소송을 주도한 ‘일본국에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재판을 추진하는 모임’은 소송을 하고 사건에 관한 사료들을 발굴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진행했다. 한일(+미국) 정부가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동안 발벗고 나서준 사람들 덕분에 그나마도 이런 자료들이 쌓일 수가 있었다. 정부는 앞으로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 여전히 관심조차 없을지 답답하다.


재일조선인의 북송 과정을 다룬 KBS 파노라마 다큐멘터리(2013)를 보고 싶었는데 자료를 아무리 검색해도 영상을 찾지 못해 다큐를 언급한 기사를 보고 짧게만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재일조선인을 관리하며 차별하고 특별 대상으로 삼았던 시기였다. 이때 북한은 현대식 고층 아파트를 제공하고 무상 의료 서비스를 보장한다며 달콤한 유혹을 했다. 이에 조총련 중심으로 북한 귀국을 촉구하는 운동이 벌어지면서 많은 재일동포들이 북한에 들어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들은 다시 가난과 차별에 직면해야 했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왔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한번 들어간 그곳에서 다시 빠져나올 길은 만무했다는 데 있다. 이후에도 조총련은 북한의 실제 현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재일동포를 계속 북한으로 보내는 일을 계속 했다. 다큐멘터리에는 10만명에 이르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유괴했다(?)고 다소 자극적인 언급을 했는데 너무 궁금하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아쉽지만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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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인간은 인간 정신의 불명확한 본성 때문에 무지로 빠져들어갈 때마다 자기 자신을 만물의 척도로 만든다. - P148

[122] 인간 정신의 또 다른 속성은 멀리 떨어져 있고 알지 못하는 사물에 대해서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그들 앞에 존재하는것에 의해 판단한다는 것이다. - P148

[124]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53, 59] 자만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민족의 자만심이고 다른 하나는 학자의 자만심이다. - P149

[161] 인간사의 본질 속에는 모든 민족에게 공통적인 정신의 언어가 전제되어야 함이 확실하다. 이 언어는 인간의 사회생활.
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의 본질을 균일하게 이해하도록 해주며 그사물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측면의 다양한 양태를 설명해준다[387]. 민중적 지혜의 금언인 속담이 그 예인데 고대와 현대의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가 그 민족들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445]. 201 - P162

[173]이집트의 고대는 우리에게 두 개의큰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 하나는 이집트인들이 세계의 모든 시간을 신의 시대,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라는 세 시대로 구분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세 시대의 순서에 따라 각 시대마다 세개의 언어를 사용했다고 하는 것이다. 즉 상형 언어 또는 신성한언어, 상징 즉 비유를 통한 언어 또는 영웅의 언어, 서간체 언어또는 인간의 민중 언어로 민중 언어란 일상적인 삶의 필요를 소통 - P127

하기 위해 기호를 사용한 언어이다[52,432]. - P168

첫 번째 공리는 민중이 신화를 만들고,
그것도 호화롭게 만들려는 자연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인류의 소년기에 있던 초기의 인간은 사물을 개념화시킬 범주를 형성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시적인 인격체를 만들어야 할 자연적 필요성을 갖고 있었다. 시적인 인격체란 상상력의 속(屬) 또는 보편적 상상력으로서, 모델이나 이상적인 초상화처럼 그것을닮은 모든 특수한 종(種)들을 거기에 맞추어 환원시킨다. 이러한유사성 때문에 고대의 신화는 호화롭게 꾸며서 만들 수밖에 없었다. - P179

[250] 모든 민족은 어떠한 신성에 대한 숭배와 함께 시작하였기때문에, 가족 국가의 가부장들은 전조를 통한 점복에 능통한 현자였음이 확실하다. 그들은 점복을 수행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희생 의식을 거행하는 신관이면서 그들 가족에게 신성한 법을 전달하는 왕이기도 하다: - P190

[311] 씨족들의 자연법은 민족들의 관습과 함께 출현했고, 그것은 아무런 이성적 사고도 필요 없는 인간의 상식에 일치하며,
따라서 민족들 사이에 모방도 없다. - P215

모든 민족은 종교를 갖고 있고, 엄숙한 혼례를 거행하고, 죽은 사람들을 매장한다. - P225

방종한 인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타고 난 힘이 결핍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신앙에의존한다. - P232

육체의 운동을 통제하는 것은 인간 선택의 자유, 즉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과임이 확실한데, 그것이야말로 정의를 포함한 모든덕성의 고향이자 안방이다. 정의의 지시를 받아 자유의지는 모든올바른 것의 원천이 되며, 올바른 것의 부름을 받은 모든 법의 원천이 된다. - P233

학문의 여왕인 형이상학은 "학문은 그것이 다루는 소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314] - P238

새로운 학문이 사용하는 기준이란 사람들 전체 혹은부분이 옳다고 인식하는 것은 사회적 삶의 규칙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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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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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을 몇 년 이상 구독하면서 매주 꼬박꼬박 읽지는 못하지만 관심 가는 코너들이 있다.
저자도 시사인의 한 코너를 맡아 연재를 해왔던 칼럼들을 모아 이 책을 펴냈는데 나도 그 애독자 중 하나였다.
매주 시사인을 정독하지는 못해도 그 코너만큼은 꼭 읽고 넘어갔으니 말이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관습과 통념에서 벗어나서 다르게 생각해보자 제안한다.
예를 들면 제국주의 국가였던 독일과 일본에 대한 전후 인식과 태도에 대해서 말이다.
일본은 자신을 전범국가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 코스프레하고 있는 반면 독일은 그래도 사과라도 하고 반성이라도 하지 않았느냐는 우리의 통념 같은 것 말이다. 과연 그렇게 단순할까?

이 책은 다양한 지역의 역사를 다루는데 지리적 범위가 따지고 보면 전 세계를 아우르는 만큼 역사도 그만큼이나 다양하다.
챕터마다 한 지역의 역사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와 비교하여 제시해주며 말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독자로서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면서 생각하고 관련 자료를 찾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으면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각 챕터의 역사에서 다루는 사건이 하나만이 아니고 관련 인물도 많다 보니 읽는 일이 만만치는 않다 여길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인물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사건을 다 파고들지 않아도 ‘오~ 이런 인물도 있었어? 이런 사건도 있었어?‘ 또 ‘아... 이렇게도 연결지을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얻을 수 있다면 저자가 의도하고자 한 바가 독자에게 가 닿는 거라 여긴다.
나 또한 칼럼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역시 책으로 읽을 때도 챕터당 기억할 거리가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소개한 역사 속 빚어낸 사건과 인물이 흥미로워서 흡인력 있게 읽을 수 있었다.

리샹란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몇 달전 한중일 근대 시기의 예술인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를 알게 되었기에 보자마자 반가웠다.
그녀는 만주국 배우이자 가수로 중국, 일본, 조선 삼국에서 모두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고위급 관리가 그녀의 팬을 자처했다고 하니(팬클럽이 있었다고) 든든한 후원으로 활동 내내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전쟁이 끝나고 부역자로 체포되었는데 이때 그녀는 자신의 실제 국적이 일본인임을 고백한다. 중국에서 추방당할 위기였는데 이것이 그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일본에 돌아가서도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헐리웃에 진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후에는 방송인으로 얼마 간 활동하다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나는 뒷 내용에 사실 놀랐는데 1990년대 위안부 고백이 시작되었을 때 위안부를 위한 운동가로 활약했다고. 만주국에서 노래를 하고 영화를 찍어 부역이 있었던 사람이 이런 활동을 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과연 그녀가 심적으로나마 빚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떨쳐내려는 의도였을까… 생각해보게 만든다.
추가로 언급할 인물은 진비후이(일본 이름으로는 리샹란과 이름이 같은 가와시마 요시코)다. 그는 청 황실의 친왕인 숙친왕의 14번째 딸로 태어났으니 그야말로 금수저였다. 그러나 그녀는 일본 제국주의 첩자 노릇을 하며 특급 인재로 대우받았다고. 오죽하면 그녀의 별명이 동양의 마타하리, 만주의 잔다르크일까. 리샹란은 일본 국적이라 매국노 처벌을 받지 못했지만 진비후이는 매국노로 1948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책의 제목과 동명인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는 어느 면으로 뜯어보나 참으로 비극적인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태국-버마 전선 철도 공사는 당시 사람들에게도 무척 위험한 난공사로 악명이 높았다. 이곳에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약 천여명이 투입되었음은 이학래의 회고록 등을 읽었던지라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최근 들어 고백한 영국 포로 부대원이었던 알리스터 어쿼트라는 사람의 회고록을 언급한다. 그는 당시 상황을 담은 영화가 사실을 포장한 부분이 많다고 설명한다. 아무래도 제국주의 국가였던 일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지 않았나 하고 말이다. 영화는 습윤한 기후, 열악한 환경에 대한 상황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포로들에 대한 가혹 행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특히 조선인 포로 감시원들은 악질적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또 그들 모두가 악질은 아니었고 일부는 그들에게 동정을 표현하기도 했다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개인이 어떤 집단에 속하여 단체 생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모두가 다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집단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이 분명한데도 동화되어 잘못인지 인지조차 않고 가학 행위를 하는 경우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구의 시선이 동양을 지배하던 관념인 오리엔탈리즘은 세계대전 이후에도 한참을 이어졌다. 이를 그린 문화 예술 작품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이른 시기 동양 여성에 대한 서양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그린 <나비부인>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기원을 따라가보면 <국화부인> 소설이 있다. 해군 장교를 지낸 피에르 로티가 1885년 일본 체류 당시 35세 나이에 18세의 일본 소녀와 일종의 계약결혼을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결혼 계약에 들어가기 전 로티는 곧 자신이 프랑스로 돌아갈 몸이며 그 뒤에 소녀는 바로 일본인 남성과 재혼하게 될 것임을 양측이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1880년 <로티의 결혼>을 발표하고 이 작품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나비부인은 이 모티브를 따와서 극화시켰던 것이다.
이후 베트남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미스 사이공>이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크리스는 사이공에 있던 한 클럽에서 바걸로 일하던 베트남 소녀 킴을 만나 결혼해서 아이까지 가졌지만 이후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그녀와 아이만 남고 만다는 이야기. 한편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영화화한 <지옥의 묵시록>도 있다. 소설 속 배경은 19세기 콩고였는데 영화는 이를 베트남으로 변경했다. 정글에 갇힌 병사들은 플레이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고… 아무튼 정글에서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 때문에 병사들은 미쳐간다는 이야기다.

사할린 한인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나 궁금했는데 덕분에 잘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얼마 전 읽은 책을 통해 이들에 대한 역사를 추가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사할린에는 총 인구의 5.5%로 약 3만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 어쩌다가 그들은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러일전쟁 때 승리한 일본은 사할린의 남부 땅을 얻어 그곳을 식민지화했다가 1943년에 본토로 편입하였다. 최초 한인 이주민들은 함경도에서 연해주로 일부 건너간 사람들이 정착했다. 두 번째는 조선 내 일자리가 없어 자발적으로 떠난 경우다. 세 번째는 강제 징용으로 가게 된 경우다. 그렇다면 해방이 되었음에도 이들은 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을까. 1946년 미소 간 협정이 이루어졌으나 귀환 대상은 일본인만이었고 조선인은 호적이 조선이라는 이유로 버려졌기 때문이다. 1957년에서 1959년까지 진행된 소련과 일본 간 협상 때도 조선인은 논외 대상이었다. 그후로 수십년이 지난 1990년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가 이루어질 때 이들은 비로소 한국에 방문이 가능해졌다. 한국 정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도 없는 것 같고 그들의 귀환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조차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할린 한인들은 이제 몇 세대가 지나갔을테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넋놓고 있어도 되는건가하는 생각을 했다.

추가로 한 두개의 내용만 더 언급해보자.

우선 근대 시기 과학과 제국의 시대였으나 조선의 지식인들이 받아들인 과학은 유용성이나 편리함에 치중해 있다는 지적은 뼈아팠다. ‘세계적인 과학저술가 사이먼싱은 말한다. “기술은 삶(그리고 죽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반면,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자 호기심이다.”’ 우리가 받아들인 과학은 이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인다. 기술 만능주의, 편리하면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라는 식으로 수십년이 이어진 결과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곱씹어볼 부분이다.
같은 의사라는 직업을 지녔지만 다양한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이미륵은 압록강을 건너 독일에 정착했고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책을 펴냈고 세계피압박 반제국주의의회 유일한 한국대표단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박서양은 간도에서 독립군 군의 활동을 했고, 김필순은 독립 운동을, 그 아들인 김염은 중국에서 항일배우로 활동했다. 이태준은 난징, 몽골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의료 봉사를 했다. 유상규는 오롯이 계속 의사의 길을 고집한 경우다. 그러나 그도 민중을 위한 봉사를 하다 사망했다고. 지금 의료개혁 문제로 몇 년째 환자와 의사 간 갈등이 극도로 달해 있어서인지 이들의 이야기는 울림이 깊었다.

이를 비롯하여 흥미로운 이야기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이 책은 관련 자료를 직접 찾고 확인하면서 읽으면 훨씬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경우는 따로 빼야하겠지만 음악 같은 경우는 책을 읽으면서 듣는다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힘이 없는 개미일 따름이라고 주저하거나 세상 일에 관심을 등한시하며 살고 있지 않나. 그러나 작은 사람이라고 해서 역사의 책임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작은 사람이야말로 역사를 더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성숙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말은 노트에 적어 두고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들여다보고 싶은 말이었다. 좋은 책 감사하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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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1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든 역사이든 기록에 박제되어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걸 실례로 알려주는 책이었어요. 그리고 각각의 순간들이 다른 장면들과 연결되는 것도 좋았고요. 저도 화가님처럼 이 책 무척 재밌게 읽었네요.

거리의화가 2025-05-13 18:40   좋아요 1 | URL
누군가 장면을 기록하고(이것도 선택적인 기록이지만) 이것을 독자가 읽어야지만 접할 수 있는 것인데 이마저도 기록되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숨겨져 있을까 저도 그런 생각을 하며 들었어요.
증언의 경우도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뜨거운 감자일테니 그때는 이야기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나중에라도 밝히는 경우도 있을테구요. 이야기를 여럿 엮어내니 생각해볼 거리가 더 많아서 좋았습니다.

다락방 2025-05-1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희진의 공부에서 소개됐기 때문에 제목이 기억에 남습니다. 비록 사서 읽지는 않았지만요. 거리의화가 님 리뷰를 보니 흐음, 그렇다면 나도 한 번 읽어볼까 하게 되네요.

거리의화가 2025-05-13 18:41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매거진 생각했었네요. 다 읽고 나서 관련 에피소드 들어야지 생각도 했었답니다.
저는 재미나게 읽었어요. 다락방 님이 읽으시면 어떨까 궁금해집니다^^
 
[eBook]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 살림지식총서 248 살림지식총서 248
박종성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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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서 벗어났는가. 이 책은 탈식민 이론가들을 여럿 소개하고 탈식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가져야할 다양한 시선과 질문을 던진다. 탈식민주의를 이해하고 개괄하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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