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전투에서 기관총 중대장 최인걸(崔仁傑)의 용맹한 이야기는 다시 들어도 감동이다. 그는 사수가 죽자 제 몸에 기관총대를 묶어서 쏘았다. 그렇게 쏘다가 기어이 탄환이 바닥나자적탄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전쟁터에서 충실히 자기 임무를완수하고 세상을 떠난 장렬한 죽음이었다.
김상하(河). 그는 아직 어린 소년인데 교전 중 얼굴에 총상을 입었다. 왼쪽 뺨이 찢어지고 아래턱이 깨어져 선혈이 낭자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악이 돋았다. 눈에서 불꽃이 활활타올랐다. 윗도리를 홱 벗어 던지더니 혼신의 힘으로 수류탄을집어 던졌다. 나중엔 죽은 전우의 몸에서 수류탄을 벗겨내어던지고 또 던졌다. - P613

1920년 경신년 10월 21일. 그날 늦은 아침부터 26일 꼭두새벽까지 무려 6일 동안을 격렬하게 싸웠던 청산리 독립전쟁. 그눈부신 혈전(血戰)의 막은 서서히 내렸다. 청산리 전투는 오로지 우리 겨레의 단합된 힘으로 제국주의 외세 일본의 정규군대 공격을 통쾌하게 무찌른 그야말로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대승리였다. 청산리 일대 여러 골짜기에서 여러 날 동안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로 군정서 사령부에서는 일본군 1,600명이 죽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 측 보도는 ‘2,000명 사망‘이라고 했다. 용정 일본영사관 비밀보고서는 가노 연대장 이하800명이 전사했다고 축소발표했다. 독립군 측은 200여 명이죽거나 다쳤다. 그 무엇보다도 군정서부대와 홍범도의 연합부대가 서로 힘을 합쳐 막강한 왜적을 쳐부순 것이 가장 큰 성과요 감격이었다. 이날의 패배가 너무나 창피하고 면목이 없었던 아즈마는 독립군의 숫자를 무려 세 배나 불려서 거짓보고를했다. - P629

1920년 경신년 10월 5일부터 11월 23일까지 간도 일대에서왜적에게 무참히 학살된 무고한 조선인 동포는 그 수가 어림추산으로 무려 3만 명이 넘는다. 훈춘, 화룡, 연길, 왕청과 기타남만, 북만 등지에서 체포된 사람은 5,000명이었고, 6,000호의동포들 살림집이 부서지고 불탔다. 학교는 50여 개소, 양곡 손 - P647

실은 4만 5,000석 등이다. 피해추산 총액은 187만 8,600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오로지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당한 놈들의패전 분풀이였다.
곳이였다역사는 이를 일러 ‘경신년대참변‘(庚申年大慘變)이라고 적었다. 다른 말로는 ‘간도대학살‘이라고 한다. 왜적은 놈들의 여러공식적 기록에서 ‘간도사변‘ 혹은 ‘간도토벌‘이라고 기록했다.
완전 무방비의 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 마을마다 찾아다니며총과 칼로 공격하여 집단으로 살상했던 대표적인 제노사이드(genocide), 즉 한국인에 대한 집단학살극이었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당한 것에 대한 화풀이를 그렇게 광기에 차서 서슴없이 자행했던 극악무도한 복수극이었던 것이다. - P648

조선민중의 항일 무장투쟁 기본 전선은 바로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의 국경지대였다. 그 주력부대가 바로 홍범도 장군을 위시한 여러 지도자들이 이끌던 대한독립군이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 독립군 수령들은 공명심과 소영웅주의,
영도권 독점의 야심 등등 마음속에 도사린 헛된 욕망들 때문에 - P660

제대로 된 연합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오직 단독행동으로 무언가를 펼치려 했다. 이것은 우쭐거리는 소영웅주의에 불과했다.
독립군 수령들은 대개 자기네 관할로 일정 구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영토 안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대상으로 여러 사업을실시했다. 군중문화 사업에 아동교육 사업에 후생 사업에 웬만한 민사사건은 물론이요, 강도 일제의 밀정 침투를 막는 방첩사업까지 모두 독립군 부대가 맡아서 처리했다. 그런데 사업은여기서 끝나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함부로 휘둘러서 말그대로 봉건 영주를 닮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적지않았다. 이것은 그들의 일그러진 공명심과 자기과시, 우쭐거림,개인적 탐욕, 터무니없는 야심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홍범도 장군만이 이러한 지방세력을 전혀 갖지 않았다. 단한 가지 빛나는 경력인 항일투쟁 사례 하나만으로도 그 신망은다른 어떤 지도자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크고 우뚝194했던 것이다. - P661

일본군 토벌대와의 그토록 치열한 전투에서도 모진 목숨이용케도 이날까지 잘 버텨왔다. 그런데 살벌한 러시아 땅 자유시의 한구석에서 같은 핏줄을 나눈 동족들에게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으니 이처럼 원통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홍범도 장군은 부하들과 함께 다니며 죽은 병사의 시신을 일일이 수습하고외곽지 한곳에다 큰 구덩이를 파서 묻었다. 이 궁핍한 시기에염습인들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ㅇㅂ그저 길게 파놓은 흙구덩이에 한 줄로 시체를 가지런히 눕혔다. 그러곤 그 위에 하얀 광목천을 덮고 그대로 흙을 덮었다.
매장을 끝낸 다음 홍범도 장군은 가까운 언덕 솔밭 속으로 들어갔다. 비 맞은 소처럼 크게 흐느끼는 통곡 소리가 들렸다. 무릎 꿇고 엎드려 땅을 치며 우는 홍 장군의 슬픈 울음이었다. - P712

1941년 봄 최진동이 일본군 정보기관의 호출을 받고 그곳을다녀온 뒤로 그는 일본군의 노골적인 협조자로 변신했다. 점차확고한 신임까지 얻어 당당하게 일본 여행도 다녀왔고, 일본방문길에는 내각대신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를 접견했다. 도조란 놈은 최진동의 손을 잡고 "그대는 대일본제국의 모범적 신민"이라며 "잘 부탁한다"는 칭찬과 부탁의 말만 자꾸 되풀이했다. "천황폐하가 그대를 높이 평가하신다"는 말로추켜세우기도 했다. 최진동은 그로부터 삶의 가치관과 방향성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그의 일본행은 시종일관 일본 측의극진한 환대 속에서 우호와 친선의 분위기로 이루어졌다. - P732

그로부터 최진동은 완전히 일본을 위한 충성파로 변신했다.
‘일본군 간도성 선무부 도문본부 정보계 경리‘가 왕년의 독립군이었던 최진동의 명함에 표시된 공식적 직함이었다. 혹시라도 남아 있을 조센징의 항일역량을 철저히 감시하고 그것을 아주 뿌리 뽑는 역할을 충직하게 수행하고 다녔다. 자기 휘하에배정된 200~300명가량의 특무 밀정을 운영하며 미친 듯이 항일독립군 전력자들을 잡아들였다. - P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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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티크M Critique M 2023 Vol.6 - 마녀들이 돌아왔다
김정희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8월
평점 :
품절


이 섹션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이 잡지를 애써 구매하고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녀들이 돌아왔다> 섹션은 내 기대를 대체적으로 충족시켰다.

아무래도 국내 필자가 쓴 내용들이 나와 대체적으로 더 맞는 것 같았고 '마녀사냥' 이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칼럼에서 언급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 잡지를 읽기 전 그 책을 읽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페데리치는 중세 유럽에서 억압당한 여성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여성들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마녀로 몰렸는지를 밝히고 있다. 소외된 여성이 마녀로 몰렸다. 정부와 교회는 주류에서 벗어난 여성들을 공격해 기준을 세웠다. 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여성들, 즉 독신으로 사는 여성, 자유분방한 여성, 부랑자 여성, 근대 의학이 등장해 이 시기에 사라져가는 민간요법을 잘 아는 여성들이 타깃이었다. [ 재조명되는 마녀의 시대 by 나이케 데크슨 ]

중국에 양리라는 코미디언이 마녀사냥으로 집중 포화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큐 <피의 연대기>를 다룬 칼럼도 인상적이었다(다큐를 막상 보지는 못했지만 여자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칼럼은 현대미술에서 제의로 표현되는 예술가의 표현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이 예술가의 이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브라모비치, 이름이 알려진 만큼 아시는 분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세(!)를 탄 작품 때문에 그녀는 이후 활동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한국 현대 미술계에도 초기 박영숙 선생님 등이 활동을 시작하신 후 오늘날에는 점점 더 많은 여성 예술가들의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는 것 같다. 현대 미술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멀리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조금씩 이해도를 높여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여름의 더위에 고기와 지방이 부패하는 악취가 지하에 가득했다.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소뼈 더미 위에 앉아 브러시를 들고 뼈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고향인 유고 슬라비아의 민요였다. 노래를 부르며 뼈를 닦다가 울부짖는 행위가 나흘 동안 지속되었다. 1997년 6월,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작품 <발칸 바로크>(1997)다. 영적인 에너지를 탐구하고 신체를 적극 활용하며 파격적인 형태를 선보이는 작품들 때문이기는 하지만 결정타는 <영혼요리>(1996) 때문이다. (...)


<발칸 바로크>는 1990년대 발칸 반도에 피바람을 불러온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고향인 유고 슬라비아가 자행한 대량 학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속죄의 퍼포먼스였다. 완전한 외부인이 아니었던 그는 전쟁과 인종 청소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하기도, 그렇다고 외면할수도 없었기에 피를 닦아내고 노래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에 쌓인 업을 지워내고 희생자들의 안녕을 빌었던 것이다. - [ 현대미술의 제의적 순간, 마녀와 예술가 사이 by 김지연 ]



다만 아쉬운 것은 성서에서의 마녀, 악마의 이미지에 대한 해석인데 내가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냥 훓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성서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덧) 100자평을 쓰기에는 모자란 것 같고 리뷰 쓰기에는 내용이 빈약한 것 같았지만 100자가 넘어서 리뷰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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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9-05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화가님 빠르게 읽으셨네요! 👍👍👍
역시 성경 공부는 언젠가 해야 하는 숙제일까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3-09-05 09:15   좋아요 1 | URL
잡지는 오래 읽으면 좀... 한 번에 후딱!ㅎㅎ 근데 내용이 은근히 많아서 나중엔 대강 훓어 읽은 느낌이!
뒷부분의 성경 인문학도 그렇고 <마녀들이 돌아왔다> 섹션에도 관련 칼럼이 있었는데 내용이 제겐 많이 어려웠습니다. 성경 공부까지 할 시간은 안 되는 것이 현실!ㅎㅎㅎ

건수하 2023-09-05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펴보지 못했는데 화가님 리뷰를 보니 얼른 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리뷰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거리의화가 2023-09-05 09:14   좋아요 1 | URL
수하님 저야말로 감사하죠. 덕분에 구매해서 읽게 되었네요^^*

청아 2023-09-05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중국 코미디언 양리를 검색해 봤는데 우리나라 게임 업계의 여성혐오가
떠올랐어요. 저도 마저 읽어야겠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3-09-05 11:3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미미님. 저는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왜 남성들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농담이나 개그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 그 반대는 포화를 가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어요. 정작 양리는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는데 남성들의 공격이 참... 아무튼 미미님 즐독하시길요!
 

~ 7부

홍 대장은 뒤늦게 모든 음모와 흉계를 알았다. 늦게라도 알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저놈들 뒤에는 늙은 관리사 이범윤이 노회한 미소를 지으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수백명 바람잡이들이 박문길(朴文吉)의 집 앞에 몰려와서 대문을 발로 박차 부수고 거기 머물던 홍대장을 끌어내어 결박했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등을 떠밀어 왕거우의 유사장네 집 튼튼한 곳간으로 거칠게 끌고 가서 가두었다.
그날부터 홍 대장을 심하게 문초하기 시작했다. 대들보에 밧줄로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온몸을 두들겨 패고 쇠꼬챙이로 찌르며 각목으로 주리를 틀었다. 왜적들에게도 안 받던 갖은 고통과 고문을 연해주 동포에게 당하고 말았다. 왜적이라면 차라리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겠지만 동족에게 당하는 더러운 유린과 모욕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홍 대장의 두 눈에선 눈물이 아니라 핏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찌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 P440

"이 땅에서 왜적을 말끔히 물리치는 날, 그날에 나는 비로소죽을 수 있으리라. 그날까지 나는 제국주의자 침략자들과 싸우고 또 싸우리라. 없던 힘을 새로 내어 이젠 의병대가 아니라 독립군대의 조직으로 새롭게 출발하리라. 용맹한 군대를 새로 짜서 식민지가 되어버린 신음하는 내 조국으로 진격하리라."
이로써 홍 대장은 독립군 조직과 국내 진출사업 구상에 모든 힘을 쏟았다. 열혈청년들을 불러 모아 조직의 힘도 확충하고 강화시켰다. 독립군 모집대가 사방으로 떠나갔다. - P448

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임국정(林國植, 1894~1921),
한상호(韓相浩, 1899~1921), 윤준희(尹俊熙, 1892~1921), 이용맹한 애국청년들의 이름을 길이 기억하자. 그들은 죽기 전크게 한 마디 외쳤다.
"일제 강도 놈들이 우리의 작은 몸이야 죽일 수 있겠지만 조선독립에 대한 우리 민족의 강한 의지는 결코 죽일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점점 강해져만 갈 것이다. 들어라 일본아! 조선은곧 해방된다! 하지만 일본은 마침내 멸망하고야 말리라."
한편 최봉설은 뒤늦게 잡혀갔다가 놀랍게도 탈옥에 성공했다. 이후 이름을 계림으로 바꾸었다. 최계립(崔桂立)은 과연 죽음터에서도 죽지 않는 놀라운 불사조였다. - P484

주린 범의 코앞에 서서 먹잇감 찾아준다는 못된 창귀(張鬼)처럼 밀정이란 것들은 자기를 버린다. 자기뿐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윗대 조상의 족보 따위도 썩은 짚단처럼 걷어차 버린다. 그의 창자는 일찍이 뒤집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환장자‘(換腸者)라고 부른다. 살아서 적의 꼭두각시 노릇이나하니 ‘괴뢰’(傀儡)요, 일제의 더러운 발톱이나 독한 송곳니 되는 일을 자청했기에 ‘조아‘ (UI)라고도 부른다.
피로 얼룩진 역사의 책갈피에 몰래 숨어서 아, 지금도 기회 - P513

를 엿보고 있는 악질 밀때꾼의 무리여. 그들의 호시탐탐이여. - P514

"북로독군부 소속의 전체대원은 일본군 본대가 포위망에 들때까지 그곳에서 결코 자리를 뜨지 말고 철저히 매복하라! 나홍범도가 맨 먼저 권총을 발사하면 그것을 신호로 일제 사격하라! 어떻게든 독 안에 들어온 왜적을 섬멸시키자!"
홍 장군 전술은 이번에도 『육도삼략』과 『손오병법』을 적절히응용하고 배합시킨 놀라운 활용이었다. 모든 부대가 산 높은곳에만 진을 치면 적에게 포위되기 쉽다. 그래서 산 밑에 진을치면 적에게 포위되고 만다. 이때 음양을 두루 갖춘 조운(趙雲)의 진(陳)을 친다. 혹은 음(陰)의 지역 혹은 양(陽)의 지역에다산의 양쪽으로 두루 산병선을 설치한다. 그런 다음 양에선 음을 방어하고 음에선 양의 방향을 지킨다. 진이 산의 왼쪽이면오른쪽을 방어하고 오른쪽 진이면 왼쪽을 방어한다. 적이 무리하게 몰려오면 아군이 일면 방어한다. 이때 급히 지름길을 - P534

고 다른 기습 부대는 적의 교통을 차단한다.
대장기를 높이 올리고 전군을 경계하며 왜적이 우리의 정보를 쉽게 알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을 옛 중국의 전법에서는 산성(山城)이라 일컫는다. - P535

그날 밤 홍 장군의 방에는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부하들 앞에서는 호랑이 같은 지휘관이었지만 만상이 잠들어자 앉은 깊은 밤, 장군의 눈은 서러운 물기에 젖었다.
"이 아비는 항일투쟁에 바친 몸. 네가 평범한 부모를 만났다면 남들처럼 따뜻한 가정생활도 해보았으련만…" 교생각하면 할수록 가엾고 측은한 심정이 치밀어 가슴은 무너져 내렸고 심장은 갈가리 찢겨져나가는 듯했다. 급기야 아픈가슴을 쓸어안고 신음하며 엎드리니 온몸의 피란 피가 거꾸로솟는 것 같았다.
"에구 불쌍한 것, 애처로운 것..." - P556

연길 주재 중국군 대장 맹부덕(德)은 곧바로 응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반일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겉으론 일본군 요청을 수락하는 척하면서 비밀리에 대한국민회와 연락을 가졌다. 대한독립군을 자신의 경계 지역에 주둔시키다가 봉천에서 쫓기면 길림으로, 길림에서 수색이 시작되면 다시 봉천으로 이렇게 왕래하라는 자세한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민족은 달라도 그는 항일투쟁의 대열에서 둘도 없는 동지였다. 맹부덕의 중국 군대는 모든 독립군 부대가 자신의 근거지로 이동하도록 은근히 도왔다. 이로써 북간도 일대의 모든독립군 부대 근거지 대이동은 일사불란하게 단행되었다. -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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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 무엇이고 고고학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This man is doing history-even though he doesn‘t haveany written letters or other documents. He is discovering theof the people of the village from the things that they leftbehind them. This kind of history is called archaeology. Histo-rians who dig objects out of the ground and learn from themare called archaeologists.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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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부

두만강 너머 하산, 그곳 동포들이 키우는 소는 하루에 세나라를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다고 했다. 사냥꾼이 아침에 두만강을 넘어가면 저녁엔 그날 잡은 들새를 들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만큼 세 나라 국경은 바로 지척에 머리 맞대고 있었다. 조선과 중국과 러시아가 바로 한곳에 서서 휘둘러보이는 곳. 동포들은 여기에 터 닦고 농사짓고 사냥했다. - P42

그로부터 한인들의 노령 이주행렬은 늘어만 갔다. 1910년대에만 10만 명, 1920년대엔 20만 명. 이들이 건너가서 황폐한연해주 일대를 모두 개척했다. 신한촌(新韓村) 개척리, 수창 석인동 등지에는 제법 큼직한 한인마을이 생겨났다. 개척리(開拓里)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변두리에 있던 한인마을이다. 수창은 수찬으로 불리던 지금의 파르티잔스크의 한국식 명칭이다. 당시 러시아 지명 카레이스카야 스라보카를 현지 동포들이일컫던 지명이다. 그곳으로 수많은 의병과 망명자들, 새 삶을찾아 떠나온 한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 P43

딱 벌어진 가슴, 다부진 체격, 짙고 숱 많은 눈썹은활처럼 굽었고, 두 눈은 슬픈 코끼리를 닮았다. 턱수염이 점차돋아나고 굳게 꽉 다물린 입, 어느 틈에 소년은 차분하고 사려깊은 청년의 꼴을 갖추고 있었다.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불의엔 냉정하고, 다른 사람의 슬픔에 마음 아파하는 다감한 청년이었다. 오랜 머슴살이의 고달픔은 범동이에게 땀과 슬기와 신의를 가르쳤다. 범동이는 미투리 삼다가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오봉산 위의 저녁놀을 보았다. 노을은 이글이글 불타듯 한순간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더니 곧 가없이 깊은 어둠 속으로 잠기어 갔다. - P60

"나는 그동안 내 몸의 힘만 믿고 살아왔구나. 맑고 깨끗한 마음, 어질고 부드럽고 살뜰한 마음.… 이런 마음이 나에겐 너무나 부족했구나. 맑은 산골 물아. 너는 내 가슴으로 흘러라. 흐르고 흘러서 마음속 오물과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다오."
범동은 수계를 받고 지담 스님의 상좌가 되었다. 스님이 새법명을 지어주었다. 등불 등(燈), 밝을 명(明). 어두운 세상의밝은 등불이 되라는 뜻이다. 새 이름도 지어주었다. 광막한 세상에서 백성들에게 널리 도움을 주는 큰 그릇이란 뜻이 담겼다. 우주의 이치가 낱낱이 들어 있다는 홍범(洪範)의 그림과 구주(九縣)를 생각하다 문득 얻은 이름 홍범도!
‘아! 홍범도!‘ - P85

당시 대다수 포수들은 머리를 삼베로 감아 맨 노랑포수였다.
백두산 밀림 속에서 가시덤불을 헤쳐가며 달리는 그들은 한번나가면 몇날 며칠 머리를 못 감았다. 옷자락이 가시덤불에 걸리는 것보다 상투가 나무에 걸리는 것이 더 힘들었다. 이 때문에 상투는 진작 잘라버리고 대신 삼베노끈으로 망을 떠서 썼는데 그 땀에 절은 노란 빛깔 때문에 노랑포수라 했다. 포수들의 복장을 살펴보자. 미투리에 감발하고 바짓가랑이엔 끈으로행전(行纏)을 묶었다. 함경도식 긴 저고리는 허리띠로 동여매고 어깨에는 화승총을 메었다. 단도는 가죽집에 넣어서 허리에찼다. - P134

아무르강 어느 외진 숲 그 사방에 널브러진 어느 유망민(民) 일가의 백골을 생각한다. 낯선 타관을 정처 없이 떠돌다함박눈 내리던 날, 해저문 숲 계곡 틈에 쓰러진 채 고향 하늘그리며 숨져간 그들의 마지막 웅얼거림을 생각한다.
‘어머니‘라고 불렀을까.
사랑하는 애인의 이름을 불렀을까.
찬바람 맞으며 돌아가는 귀향 길 홍범도는 연추에서 훈춘으로 훈춘에서 밀강(密江)으로 한 바퀴 휘돌아 온성마을이 안개속에 묵묵히 바라다 보이는 국경 어구에서 두만강을 넘었다.
그토록 삼엄하던월강봉금령(越江封禁令)도 풀리어 이제는많은 이주민들이 일본군 국경수비대 분견소(分遣所) 앞을 길게장사진 이루어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서 있다. 한 사람이 넘어온 두만강을 그들은 새삼스레 건너가려 하는구나.
범도는 이번에 러시아 땅 곳곳을 다녀와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언제나 겨레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그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 P202

일본군 토벌대는 말로는 폭도를 잡는다며 나섰으나 속으로는 홍범도와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혹시라도 접전하게 되면겁을 먹고 먼저 꽁무니 빼기가 일쑤였다. 혜산진 남쪽 30리 고거리 습격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수비대 진영을 기습하니일본군 병사들은 황급히 총을 버리고 숲으로 달아났다. 용맹하다는 제국군대의 꼬락서니는 이렇듯 가관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당시 적들의 보고서는 자신의 허점을 감추기에급급했다.
마을주민들은 원래 성품이 간악하여 폭도를 동정하는 자가 많고, 폭도를 위해 원조적 행위로 나가는 자가 있다. 이런 정황으로 금일에 이르러서는 설유(說) 및 기타 어떤 방어수단도 그 효과가 없고 형세는 날을 따라 나쁘다. - P274

"김원홍! 네 이놈! 네가 수년을 진위대의 참령(參領)으로 나랏돈을 수만 원씩 받아먹다가 나라 망하게 되면 벼슬자리 마땅히 내어놓고 시골로 들어가 감자농사나 지어 먹고 지내는 것이백성의 도리가 아닌가. 저 왜놈들 정미칠조약에 적극 참가해서인민의 반역자를 자청하니 너같은 놈은 열 번을 죽어도 시원치 않다."
홍 대장이 이어서 외친다.
"임재덕! 들어라! 네놈은 이놈보다 훨씬 악독한 도적놈이니내 너와 무슨 긴말을 나누겠는가. 그동안 네놈에게 억울히 당하여 목숨을 잃었던 백성의 이름으로 너희 두 놈을 즉각 사형에 처하노라! 다른 앞잡이 놈들도 내 말 똑똑히 들어라! 너희나내나 다 같은 동포로서 무슨 원한 그리도 많아 저런 천하 역적놈과 공모하여 나를 해치려 했느냐. 저 왜적 높은 남의 강토를제 땅으로 만들자 하니 그럴 수 있다 치자. 너희 놈들은 이 강토의 백성으로 태어나서 어찌 동족을 해치는 독사가 되었는가.
네 아비 네 어미 다 너와 같이 세상에서 아주 씨를 말려야겠다." - P303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구국사업에 기꺼이 온몸을 내던진 겨레의 별들.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잡혀간 부하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홍대장의 범 같은 눈에선 푸른 불꽃이튀었다.
그대들 원수를 내 기어이 갚아주리라. - P335

유인석은 이국 땅 호롱불 밑에서 평소 구상해오던‘의병규칙’(義兵規則)을 드디어 완성했다.
의병은 어떻게 만드는가.
의병은 어떻게 이끌어가는가.
의병은 어떻게 싸우는가.
이 세 가지 방법이 가장 중요한 골격이었다. - P348

현재 그대의 형세를 보건대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다만 몽매함이며, 용기가 아니라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이제 일을 이루려 - P405

면 한두 사람의 지략이나 용기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여러 사람의 지혜와 용기를 합해서만 가능합니다. 나는 우리의 홍여천이 의도하는 바를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병사를 거느리고 가벼이 나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비록 용감하다고 하나 어찌 옛날의 명장을 따를 수 있으리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병서(兵書)의 상식이라 모든 사람이 늘 외우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대가 병사를 거느리고 여전히가벼이 나아갈 뜻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지피지기가 아닙니다. 그대는 이 점을 깊이 헤아려서 마음에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이 편지를 받고 나서 홍 대장은 밤을 꼬박 새우며 생각에 잠겼다. 모든 악조건과 궁지에서 당장 벗어날 방책과 앞으로의투쟁방향을 헤아렸다. - P406

관일약이란 민중의 마음을 관통하여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매우 필요한 약속이란 뜻이다. 구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관일약이었다. 약(約)이란 엽전을 꿰는 일과 같으니 비록 만금(金)이 있다 하여도 그것이 낙엽처럼 흩어져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한마음으로관일,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관일, 한 사람을 얻어서 관일, 열사람을 얻어서 관일, 백천만 명을 얻어서 관일, 한 나라의 모든 - P411

백성이 오직 관일을 실천한다면 국권회복의 길은 뜻밖에도 수월히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유인석은 이 관일약 사상을 알리려고 사방으로 편지를 보내어 공지했다. - P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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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9-04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계시군요
저도 사서 읽으려구요
도서관에도 희망도서 신청했어요

거리의화가 2023-09-04 11:00   좋아요 1 | URL
네 분량은 제법 되는데 마치 문학처럼 쑥쑥 읽히는 마법 같은 책이네요. 그레이스님께도 좋은 독서가 되시리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