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도나 바르바 이게라 지음, 김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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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없는 세상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 P82

기억을 강제로 지우고 다른 기억을 채운다면? 과거를 잊고 살아가야 한다면? 나의 과거가 모두 끊어진다면?

기억은 총체적인 집합체이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내가 경험한 것일수도 있지만 누군가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이야기나 지식도 기억을 구성하는 물질이 된다.

"나도 할머니처럼 되고 싶어요. 이야기 전달자요."
"이야기 전달자, 그래. 그건 네 핏속에 흐르지. 하지만 그냥 나처럼 되고 싶다고? 아니, 아가. 넌 네가 누구인지 알아내야 해. 그리고 알아낼 거야."
"넌 이야기를 망칠 수 없어. 이야기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왔으니까.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거쳐 너를 찾아냈어. 이제 그걸 네 이야기로 만들렴."
나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엄마를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알까? 그 사람들을 뒤따르는 나는 누구일까? - P12

할머니를 제외하고 페트라 페냐의 가족은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 밖의 세이건이라는 행성에 가게 되었다. 페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으라는 리타 할머니의 당부를 안고 두렵지만 발걸음을 내딛는다. 2061년 7월 28일 그렇게 그들은 지구를 떠났다. 우주선에는 모니터 요원들이 배치되고 실험 대상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끊임없는 감시가 이어진다.콜렉티브는 엔 코그니토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을 모두 지우려 한다. 콜렉티브가 이야기한 것은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지울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벤을 비롯하여 우주선에 탄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콜렉티브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고 저항했다. 규칙과 단합, 동지애를 강요하며 사람들은 계속 희생당하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최소한의 기억을 잡으려고 분투한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제 단 하나의 유닛입니다. 과거의 악은 없습니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새 역사를 창조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콜렉티브와 새로운 행성은 우리의 시초가 될 것입니다. 콜렉티브는 우리의 새로운 집을 훨씬 나은 곳으로 바꿀 것입니다." - P151

사람마다 다 다르다. 때로는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다채롭고, 획일적이지 않으며, 아름답다. - P348

새로운 행성을 찾는다는 허울 같은 명분으로 사람들의 다양성은 철저히 무시된다. 그곳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내뱉지 못하는 우주선 안의 세계다. 페냐는 우주선 안에서도 그들에게 조용히 반항하며 할머니가 어릴 적부터 들려준 이야기(쿠엔토)를 친구들과 나눈다. 친구들은 이제 어느덧 페냐가 쿠엔토를 들려줄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이야기의 힘은 그런 것이다.

이야기가 전승되는 한 자신과 가족, 그 조상의 이야기는 먼 미래까지 이어질 것이다. 기록과 이야기는 자신의 책을 가지는 것과 같다.

책을 읽다가 감정이 점점 고조되었다. 자연스레 지구의 운명을 생각해보게 된다. 결말이 궁금해서 중간부분부터는 끝까지 한 번에 읽어내려갔다. 외로운데 외롭지 않은 느낌, 묘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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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05 2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뉴베리상 100주념 기념 수상작이라고 해서 킨들로 냉큼 구매 해 놓고 아직까지 터치 하지도 않았는데
화가님 리뷰 읽으니 마지막 문단에 여운이 !ㅎㅎ

거리의화가 2022-11-06 09:16   좋아요 2 | URL
원서는 킨들로 주문하려고 했는데 가격 확인해보니 쿠폰 쓰면 알라딘이 더 저렴하더라구요. 환율이 워낙 올라서 킨들 이북도 할인할 때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ㅠㅠ 암튼 은근히 여운이 가는 책이었어요.

희선 2022-11-06 02: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난날에 붙잡히는 건 안 좋겠지만, 지난날도 알아야 지금을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와 다르지 않네요 한사람 한사람의 이야기는 중요하죠 지금 세상도 똑같기를 바라기도 하는군요 다른 것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11-06 09:17   좋아요 2 | URL
희선님 말씀처럼 역사와 전통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겠구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각자의 이야기가 모이면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되고 그런 것이겠죠. 세상을 하나로 통합시킨다는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도 느끼게 했어요^^

호우 2022-11-06 09: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세상은 무섭죠. 세상은 혼돈 그 자체이지만 그래서 살만한 거겠지요.

거리의화가 2022-11-06 20:31   좋아요 3 | URL
대한민국 사회가 특히 갈등을 두려워하는 게 큰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모나고 튀는 것을 유별나다고 많이 이야기를 듣기도 하니까요. 이런 문화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호우님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2-11-07 15: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SF군요?? 이야기의 힘이라.. 궁금합니다.
뉴베리상은 아동문학인데, 보니까 얇아보이진 않던데요. 그래도 아동문학이라 비교적 쉬운 편일까요?

거리의화가 2022-11-07 17:42   좋아요 1 | URL
네. 아동문학 치고 얇지는 않은데 스토리의 힘이라고 금방 읽혀요!ㅎㅎ 근데 단어는 좀 원서를 읽어보니 약간 용어들이 초등학교 수준은 아니고 5~6학년 이상 수준 정도인 것 같아요. 아니면 중학교?ㅎㅎ 암튼 그래도 문장 구조가 어렵지는 않아요.

mini74 2022-11-07 16: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누베리상 책들은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거 같아요. 이야기의 힘은 정말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전달자 책도 생각나네요 ~

거리의화가 2022-11-07 17:43   좋아요 2 | URL
맞아요. 어른들 가끔 찌들 때 이런 책 한번씩 읽어주면 좋은 것 같습니다^^
기억전달자 책과 비슷한 거 맞아요. 역시 미니님!ㅎㅎㅎ
 
콜롬비아 엑셀소 디카페인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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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입안에 들어가면 산뜻함이 먼저 느껴지고 잠시 머물 때 전체적으로는 달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산미가 있다. 늦은 오후나 저녁에 마시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적절함이다. 역시 드립백보다 원두라서 내릴 때의 향긋함이 좋았고 부드러운 뒷맛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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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2-11-05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이번에 이거 샀어요.^^

거리의화가 2022-11-05 20:15   좋아요 0 | URL
오! 난티나무님 평 궁금합니다^^ 향긋한 커피타임~!!!

scott 2022-11-05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원두로 구매해야 맛의 깊이를 느낄 수 있죠

전 한 번에 구매 할때 2킬로 그램씩 구매를 해놔서
알라딘 커피는 주로 드립백으로만 구입 하게 되네요 ^^

거리의화가 2022-11-06 09:13   좋아요 1 | URL
헉. 2킬로ㅋㅋㅋ 저도 커피를 많이 마셔서 원두를 쟁여놓는 편이긴 합니다. 알라딘 커피 쿠폰 써야 해서 매달 주문하는데 역시 드립백은 향이 좀 덜하고 그래서 원두가 낫더라구요. 물론 드립백은 편하지만ㅎㅎㅎ
 

[보급판 서문]

[초판 서문]
샌드라 길버트 - 밀턴에 대한 글, 교수와 제인 에어에 대한 에세이, 에밀리 디킨슨
수전 구바 - 제인 오스틴, 셜리와 빌레트에 대한 에세이, 조지 엘리엇


1부 페미니즘 시학을 향하여

[1장 여왕의 거울]
에드워드 사이드의 작가라는 단어에 담긴 창조자, 증식의 의미
남성이 생명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에서 나오는 것들
조너선 스위프트의 작품(특히 시)에 잠재되어 있는 여성혐오
백설공주에 담긴 두 얼굴의 세계와 은유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말처럼 고전이 말해야 할 것을 결코 멈추지 않고 말하는 책이라면,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페미니즘, 사실상 모든 해설적 글쓰기의 고전이다. - P11

누구도 위대한 남성 작가들과 비교해 자신들을 ‘이류’로 경험한 19세기 여성 작가들을 그렇게 박학다식하고 광범위하게 연결시킨 적이 없었다. 글 쓰는 여성의 삶에 따라다닌 일상적 방해와 글 쓰는 일에 대한 출판업자 및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즉각적 저지를 집중적으로 다룬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내내 그런 비방이 여성들의 자기 평가를 형성했다. - P12

여성으로 젠더화된다는 말은 (특히 종교가 여전히 보편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19세기의 여성 작가 모두가 타락과 인간의 모든 악은 이브 탓이라는 전통 속에서 작업했음을 의미한다. 길버트와 구바가 수두룩한 19세기 소설에 영향을 끼친 작품임을 보여준 밀턴의 『실낙원』에서, 이브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제멋대로 구는 일탈 본성(여자도 남자도 억누를 수 없고 물리치고 싶은 본성)을 지닌 전형적 인물이다. 이런 여성성의 양극화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이상화된 여성이란 성모 마리아, 19세기 집 안의 천사, 도덕성의 보유자, 법정에 선 순수하고 탈성애화된 무고한 사람 등이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주춧돌을 무너뜨리면 괴물, 살인자, 물고기 꼬리를 지닌 인간으로 추락한다. 그런 문화 속 양극성이 개인에게 지울 수 있는 긴장은 지대하다. - P14

길버트와 구바는 여성 시인을 두고 ‘평범성과 교훈성‘ 둘 다를 못마땅해하고 ‘생각이 모자라 피상적이고 심오한 주제를 멜로드라마적으로 수행한다‘고 공격하는 ‘남성 우월주의자‘ 비평가들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이런 통찰을 더 깊게 밀고 나아갔다. - P16

길버트와 구바는 몸, 광기, 그리고 이들과 정신의 관계가 여성의 (따라서 불가피하게 남성의) 글을 읽어나갈 때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학 영역의 토대를 구축했다. - P18

실제로 극단적으로 다른 장르에 속하는 여성문학을 연구할 때도 여성문학의 고유한 전통이라 할 법한 것을 발견했는데, 이미 많은 여성 독자들과 작가들이 그 전통을 연구하고 그 가치를 인정했지만 아직 누구도 그 전체상을 규명하진 못했다. 감금과 탈출 이미지, 미친 분신이 온순한 자아의 반사회적 대리인으로 기능했던 환상, 얼어붙은 풍경과 불길에 싸인 실내에 나타난 육체적 불편함에 대한 은유-이런 유형들은 대물림되며 거식증, 광장공포증, 폐소공포증 같은 질병의 강박적묘사와 함께 거듭 나타났다. - P19

19세기 여성문학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가 내내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19세기 여성 작가들이 처한 사회적 위치이고, 또 하나는 그들 자신의 독서 행위다. 우리가 연구한 예술가들은 삶과 예술 둘 다 실제로도 비유적으로도 감금되어 있었다. 압도적인 남성 지배 사회구조에 갇힌 여성 문인들은 거트루드 스타인이 ‘가부장적 시학‘이라고 말할 수밖에없던 문학 구조물에도 분명히 갇혀 있었다. 19세기 여성 작가는 남자들이 짓고 소유한 조상의 저택(또는 오두막)에 거주해야 했을 뿐 아니라, 남성 작가들이 고안해낸 소설의 집과 예술의 궁전에도 갇혀 제한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자아·예술·사회를 전략적으로 재정의함으로써 사회적 문학적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한 여성의 공통적인 투쟁 욕구를 들어 보이며, 여성문학에서 발견한 놀라운 일관성을 설명하기로 했다. - P20

나에게 ‘권위authority‘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의미들의 집합체다. (…) 이 단어에는 또한 저자authour, 즉 무엇을 생겨나게 하고 존재하게 하는 사람, 낳는 사람, 개시자, 아버지 또는 조상, 문서화된 성명서를 발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여기에 또 다른 의미 덩어리도 달라붙는데, 저자는 동사 ‘증식하다‘의 과거분사 ‘아욱투스auctus‘와 관련되어 있다. 에릭파트리지에 따르면 ‘아욱토르auctor‘는 글자 그대로 증식시키는사람, 즉 창립자다. ‘아욱토리타스Auctoritas‘에는 소유권이라는 의미 외에 생산, 발명, 원인이라는 뜻이 있다. 결국 그것은 연속 또는 계속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할 때 이런 의미는 모두 다음과 같은 개념에 기초한다.
① 한 개인이 창시하고 제정하고 확립하는 힘, 즉 시작의 힘.
② 이 힘과 이것에서 나온 산물은 이전보다 증식된다.
③ 이 힘을 휘두르는 사람은 힘의 결과와 파생을 통제한다.
④ 권위가이 과정이 지속되도록 지켜준다. - P75

『율리시스』에서 스티븐 디덜러스가 말했듯, 부권 개념 자체는 ‘합법적 허구’, ‘ 믿음까지는 아니어도 상상력을 요구한다. 남자는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감각이나 이성으로 확인할 수없다. 자기 아이가 자신의 자녀라는 것은 그 아이의 존재를 자기 자신에게 설명하기 위해 되뇌는 말일 뿐이다. 그런 이야기속에 내재한 불안은 (가부장적 남존여비를 암시하는) 남성의 우월함에 대한 재확인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사이드가 묘사한 계보적 형상화가 구현한 허구처럼 말씀으로 보상하는 허구를 필요로 한다. - P76

‘문인‘은 저자이기에, 신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이자 주인 또는 지배자이며 소유자다. 서구 사회가 그 용어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르자면 그는 정신적 유형의 가부장이다. - P79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는 (사회학적으로도 생리학적으로도 불가능하기에) 여성이 문학에 관여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남성의 섹슈얼리티가 문학 권력과 끈끈하게 연관되어 있는 반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19세기 사상가 오토 바이닝어의 표현에 의하면) ‘여성은‘ 문학 권력이 없기에 ‘존재론적 실재를 [남성과]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고로 이어진다.
부권/창조성 은유가 나타내는 암시는 또 있다. 여성은 문학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관능의 대상으로서 남성의 행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바이닝어와 사우디의 편지에 공히 드러나는) 생각이다. - P81

리처드 체이스가 ‘남성적 열정‘이라고 일컬었던 것을 거부하고 ‘여성성‘이 주는 비굴한 위안을 암암리에 거부하는 여성 문인 역시 이중적으로 ‘영‘이다. 왜냐하면 여성 문인은 (저메인 그리어가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 전체에게 적용했던 놀라운 비유를 사용하자면) 사실상 ‘거세된 남자‘이기 때문이다. 최근 앤서니 버지스는 제인 오스틴의 글이 ‘강력한 남성적 공격성‘이 부족해 실패했다고 말했으며, 윌리엄 가스 또한 여성 작가에게는 ‘그 모든 위대한 문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피가 끓어오르는듯한 생식적 충동이 부족하다‘고 한탄했다. - P82

역사상 소설을 소설로 반박할 수 있는 도구인 펜/페니스가 없었던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재산으로, 또 남성 텍스트에 갇힌 인물과 이미지로 환원되어왔다. 앤 엘리엇과 앤 핀치가말하듯, 여성은 그저 남성들의 요구와 생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성을 남성이 만들어낸 최고의 창조물로 당연시하는 생각도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와 마찬가지로 그 역사가 유구하고 복잡하다. 가부장적 신화는 이브를 비롯해 미네르바, 소피아, 갈라 - P87

테아 등의 여성이 남성에 의해, 남성으로부터, 남성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정의한다. 여성은 남성의 두뇌, 갈비뼈, 재능에서 나온 아이인 것이다. - P88

시, 창조 행위, 생명의 행위, 원형적 성행위.
섹슈얼리티는 시다. 여성은 우리의 창조물 내지 피그말리온의 조각품이다. 여성은 시다. [페트라르카의] 라우라는 실제로 시다.

은유와 원인론이 뒤섞인 이런 고정관념은 그야말로 서구 사회의 지독한 가부장적 구조를, 그리고 가혹한 가부장제가 딛고 서 있는 여성 혐오를 반영한 것이다. - P88

리가 말해주는 것은,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라면 여성은 남성이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이 여성을 만들어냈다면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라고 단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89

작가는 생명을 불어넣을 때조차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감금시키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독립적으로 말할 자율성을 박탈해 침묵시킨다. - P90

남성 작가들 자신이 ‘괴물 같은‘ 자율성을 지닌 여성 인물을 만들어냈으면서도 작가/소유자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여성을 꾸짖는 것은 문학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여성 입장에서 보면 ‘변덕‘은 고무적인 성격이자 덕성이다. (이중성을 수반하긴 해도) 변덕은 여성이 그 자신을 인격으로 창조할 능력, 더 나아가 거울/텍스트 반대쪽에 갇혀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그녀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줄 능력까지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 P94

그러나 여성 작가는 문학적 자율성을 향해 거울을 통과하는 여정을 떠나기 전에 먼저 거울 표면에 있는 이미지와 타협해야한다. 그 이미지는 남성 예술가들이 여성의 ‘변덕‘에 대한 두려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창조해낸 여성을 ‘영원한 여성의 전형‘과 동일시함으로써 더욱 철저하게 소유하기 위해 여성의 인간적인 얼굴에 단단히 씌워놓은 신화적 가면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여성 작가는 남성 작가가 만들어놓은 ‘천사’와 ‘괴물’이라는 양극단의 이미지를 특별히 더 읽어내고 적응하고 초월해야 한다. - P94

모든 작가에게 자아 정의는 자기주장보다 반드시 선행한다.
창조적인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 ‘내‘가 알지 못한다면 언어화할 수 없다. 그러나 여성 예술가에게 자아 정의의 본질적 과정은 그녀와 자신 사이에 끼어든 모든 가부장적 정의 때문에 복잡해진다. - P95

성모마리아에서 집 안의 천사로 이어지는 문학적 계승은 뚜렷하게 이어지는데, (몇명만 들어보면) 단테, 밀턴, 괴테를 꼽을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대부분의 신플라톤주의자처럼, 단테는 성모마리아의 순결한 수행원인 베아트리체를 알게 됨으로써 신과 그의 시녀 성모 마리아를 알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밀턴도 (나중에 검토하겠지만) 명백하게 여성 혐오를 드러내는 가운데서도 ‘천사가 된 죽은 아내’의 환영을 보았다고 말한다. - P100

"아이히너는 괴테의 ‘영원히 여성적인 것‘을 더 자세히 설명하면서 ‘가장 숭고한 여성성‘의 전형적이며 극단적인 예로 괴테의 후기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절』 등장인물 마카리에를 든다. 마카리에 묘사는 ‘집 안의 천사‘의 철학적 배경을 잘요약해 보여준다.

그녀는 […] 아주 순수한 명상적 삶을 영위해나간다. […] 시골 영지에서 완전히 고립된 채[…] 이야기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외적인 사건이 없는 삶을. 그녀의 존재가 쓸모없는 것은아니다. 그 반대다. [・・・] 그녀는 어두운 세계에서 횃불처럼 빛난다. 이야기가 있는 삶을 살아가는 다른 여행자들이 방향을 잡을수 있게 움직이지 않는 등대처럼 빛난다. 감정과 행위로 뒤얽혀있는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녀는 충고와 위로를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타심과 순수한 마음의 본보기이자 이상형이다.

마카리에에게는 자기 이야기가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충고와 위로’를 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미소 짓고 공감해준다. 이런 특징은 마카리에가 서구 문화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여자들의 후손일 뿐 아니라, 코번트리 패트모어가 쓴 집 안의천사(이 명칭의 시조가 된, 19세기 중반의 가장 인기 있는 시집의 여자 주인공)의 직계 조상임을 보여준다. - P102

사회 역사학자들은 겸양, 우아, 순수, 섬세, 온순, 순종, 과묵, 순결, 상냥, 공손이라는 ‘영원히 여성적인‘ 미덕이 (이 모든 것이 오노리어의 천사 같은 순진함을 구성하고 있는 규범적 행실의 양상들이다) 어떻게 생겨났는지 충분히 탐구했다. 예의범절 책의 저자들은 여성에게 ‘우리의 모든행위에는 (심지어 우아하게 자는 법에 이르기까지) 법칙이 있다‘고 확신시켰고, 우아함이 남편 앞에서 지켜야 할 의무라고 말했다. ‘여성의 존재 이유가 남자를 이롭게 하고 위로해주는것이라면 여성은 남자를 만족시키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당연한 귀결이기 때문이다.’ - P105

예술품이 되든 성녀가 되든, 아름다운 천사-여자의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자신의 안락, 개인적 욕망, 혹은 둘 다를) 포기한다는 것이며, 그녀를 죽음과 천상으로 몰고 가는 것은 바 - P107

로 이런 희생 행위다. 자아를 버리는 것은 고귀해지는 길일 뿐아니라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없는 삶은 괴테의 마카리에의 삶처럼 사실상 죽은 삶이고 산 죽음이다. ‘명상적인 순수함‘의 이상은 결국 천상과 무덤 둘 다를 환기시킨다. - P108

전통적으로 남성 작가들은 비둘기의 단순함을 찬양하고, 뱀의 교활함은 늘 (적어도 교활함이 그녀 자신을 위해 쓰일 때는) 혹평한다. 마찬가지로 자기주장을 하고 공격성을 내보이는(’의미 있는 행동‘으로 가득 찬 남성적 삶의 모든 특성을 가진) 여성은 ‘괴물’로 묘사한다. 그런 특성은 ‘비여성적인’ 만큼 ‘명상적이며 순수한’ 부드러운 삶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12

테르툴리아누스나 성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초기 기독교 교부의 여성 혐오 이후 르네상스와 왕정복고 시대의 문학(시드니의 세크로피아, 셰익스피어의 레이디 맥베스와 고릴과 리건, 밀턴의 [사탄의 딸] ‘죄‘와 나중에 논할 밀턴의 이브)에서 계승된 여성 괴물은 18세기 풍자가들의 작품을 채웠다. 여성들이 이제 막 ‘펜을 든’ 시기, 일군의 남성 작가들이 드러낸 여성 적대적 관점은 여성 독자들에게 특히 두려움을 안겼을 것이다.

여성의 입에서 어휘는 의미를 잃고 문장은 용해되어버리며 문학적 메시지는 왜곡되거나 파괴된다. 동시에 좀 더 교묘하게, 바로그 이유 때문에 더욱 더 의미심장한데, 남성 작가들은 여자 천사‘가 사실 여자 ‘악마‘였으며 귀감이 된 귀부인은 사실 숙녀답지 않은 괴물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정교한 반反로맨스를 기어냈다. - P116

몇몇 비평가들은 스위프트가 만들어낸 여성들이 암시하는 여성 혐오가 단지 아이러니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같은 맥락에 놓인 가장 분노에 찬 시들에서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공포, 육체를 구원하거나 변형시킬 수 없는 여성의 예술적 무능(무력함)에 대한 혐오가 드러난다. 따라서 스위프트에게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시종일관 타락, 질병, 죽음과 동일하고 여성의 예술은 불가피한 종말을 앞당기려는 하찮은 시도일 뿐이다. - P117

여신은 고양이처럼 발톱이 있다. 그녀의 머리, 귀, 목소리는 당나귀를 닮았다. 이는 진작 빠져버렸고, 눈은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는 듯 안쪽을 향해 있었다. 여신이 먹는 음식은 줄줄 흘러나온 자신의 쓸개즙이었다. 비장은 어찌나 큰지 훌륭하게 모양 잡힌 젖꼭지처럼 돌출되어 있어서 젖꼭지 모양 혹이라 하기에도 손색이 없었는데, 흉측스러운 괴물 무리가 모여서 그 사마귀 같은 것을 탐욕스럽게 빨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점은, 빠는 행동이 비장의 크기를 축소하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키운다는것이었다.

‘스펜서의 ‘에러‘나 밀턴의 ‘죄‘처럼 여신 비판은 새끼 치고 먹고 토하고 먹이고 다시 먹어 치우는 영원한 생물학적 순환과 관련되어 있다. 세 시인 모두 이런 순환이 초월적 지적 삶에 파괴적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각각의 괴물 같은 어머니가 만들어낸 창조물은 전부 그녀의 배설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의 배설물은 전부 그녀의 음식이자 무기이기 때문에, 어머니는 새끼와함께 자폐적인(서로를 잡아먹는 유아론적인)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 육체로 구현된 세계의 창조성은 파괴적이다. - P120

타자인 여자는 삶(파괴되도록 만들어진 삶의 우발성을 나타낸다. ‘남자가 여성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육체적 우발성에 대한 남성 자신의 공포‘라고 보부아르는 말한다. - P121

모든 괴물 여자와 연관되어 있는 성적 혐오는 왜 그토록 많은 여자들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여성 신체에 대해 혐오감을(또는 적어도 불안감을 끊임없이 표현해왔는지 설명한다. (…)
더 의미심장한 것은 여성의 변덕이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남몰래 품고 있던 여성에게는 위압적인 훈계의 이미지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이 이미지는 영원한 여성성 개념에 내재한 침묵하라는 경고를 강화시키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 P122

여성의 순종하는 삶, ‘명상적인 순수한‘ 삶은 침묵의 삶이요, 이야기도 없고 펜도 갖지 못한 삶인 반면, 반항하는 여성의 삶, ‘의미 있는 ‘행위‘의 삶은 침묵을 강요받고 괴물 같은 펜으로 끔찍한 이야기를 말하는 삶이다. 어느 쪽이든 여성 예술가가 자신을 찾기 위해 들여다보는 거울 위의 이미지는 여성 예술가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여성 예술가는 누명을 쓰고 함정에 빠진, 고발되고 기소된 ‘영‘이라고, 또는 ‘영’이 되어야 한다고. - P124

디즈니가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로 제목을 단 이 이야기는 사실상 ‘백설공주와 사악한계모‘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핵심 행위(사실상 유일한 실제 행위)는 두 여성의 관계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
이 두 여자의 갈등은 주로 투명하고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진다. (…) 두 여성은 가부장제가 그들 스스로를 죽여서 예술로 만드는 데 사용하라고 권하는 도구(마법의 거울, 마법에 걸린 유리 관, 마법을 거는 유리관 등)를 무기로 휘두르며 솜씨를 부려 문자 그대로 서로를 죽이려 한다. - P125

여왕의 남편이자 백설 공주의 아버지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베텔하임에 의하면 이 두 여자는 왕의 주목을 받기 위해 여성 버전의 오이디푸스적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사실은 이 이야기가 거울에 비친 어머니와 딸, 여자와여자, 자아와 자아 사이의 갈등에 숨 막힐 정도로 강렬하게 집 - P126

중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왕이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만큼은 분명히 존재한다. 거울의 목소리는 분명 왕의 목소리다. 그것은 여왕의(그리고 모든 여자의 자아 평가를 지배하고 심판하는 가부장적인 목소리다. - P127

거울의 목소리가 여자들을 반목하게 만들기 때문에 여자들은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백설 공주에 대한 증오심을 야기한 것은 자아도취 의식을 행하는 여왕의 강한 절망인 것 같다(또는 증오심인 것 같다).
(…)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우리는 여왕이 전략가, 술책가, 음모자, 마녀, 예술가, 분장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왕은 전통적으로 모든 예술가들이 그러듯 거의 무한한 창조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위트 있고 교활하며 자아도취적이다. 반면 절대적인 순결성, 얼어붙은 순수성, 사랑스러운 무라는 측면에서 백설 공주는 우리가 이미 논했던 ‘명상적인 순수성’의 이상(문자 그대로 여왕을 죽일 수 있는 이상)을 정확하게 표상한다. - P128

여왕은 자신을 내세우고 과장할 양으로 세이렌의 빗과 이브의 사과 같은 여성적 계략을 전복적으로 사용해 천사 같은 백설 공주를 죽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술수는 딸을 통해 자신이 실현하려던 바와는 정반대 효과를 낸다. 한마디로 백설 공주가 수동적인 처녀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공주를 영원히 아름답고 생명력 없는 예술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바로 가부장적 미학이은 여자에게 바라는 것이다. - P130

사실 이 이야기 전체에서 백설 공주가 드러내는 유일한 이기심은 변장한 살인자가 주는 코르셋의 끈과 빛과 사과에 대한 ‘자아도취적‘ 욕망이다. 베텔하임이 말했듯이, 이는 ‘계모의 유혹과 백설공주의 내적 욕망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암시한다. - P131

여왕의 계략으로 죽어서 예술품이 된 백설공주는 이전보다 더 ‘계모‘의 자율성에 위험한 존재가 된다. 백설공주는 몸과 마음 두 측면에서 모두 ‘계모‘의 자율성과 더욱 더 대립하기 때문이다. 죽어서 자아 없이 유리관 속에 누워 있는 백설 공주는 전시된 욕망의 대상물, 가부장제의 대리석 ‘작품‘, 모든 통치자가 자신의 거실을 꾸밀 때 쓰는 단아한 장식용 갈라테이아인 것이다. - P132

「노간주나무는 남자아이가 성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자기 확신과 자기표현을 향한 성장이며 언어의 힘을 발전시키는 일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남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마법 거울에 의해 규정되거나 만들어진 침묵의 이미지로서, 혹은 비탄에 잠긴 침묵의 춤, 즉 말하기보다는 몸으로 공연하는 무용가로서) 침묵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 P134

18세기 말까지 여성들은 글만 쓴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 책 전반에서 우리가 보게 될 가장 중요한 현상인데) 가부장적인 이미지와 인습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허구의 세계를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앤핀치와 앤 엘리엇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자부심 강한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텍스트라는 유리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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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05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다 보면
이 책의 저자 두분 교수님에게 수업 듣고 싶어집니다 !
함께 문학 작품 읽고 토론 하면서 ^^

거리의화가 2022-11-06 09:1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스콧님은 진작 이 책 독파하셨지요^^ 읽다보니 문학 토론 수업듣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750~1870 - 근대 세계로 가는 길 하버드-C.H.베크 세계사
세바스찬 콘라드.위르겐 오스터함멜 책임편집, 이진모.조행복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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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라는 명사는 오랫동안 그리 일상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사실 19세기 후반부였다. 이 새로운 용어를 처음 만들어 낸 것은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1821~1867)였다. 그는 ‘근대‘라는 용어를 통해 도시적 삶의 일시적이고 덧없음을 표현했으며, 그 과정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의 급격한 단절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시간 개념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수많은 동시대인들은 보들레르보다 훨씬 먼저, 그리고 ‘근대성‘ 개념(독일에서는이 개념이 1895년에 처음으로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Brockhaus-Enzyklopadie』에 수록되었다.)이 확립되기 훨씬 전에 매일의 일상 속에서 근대 세계를 접하고 있었다. - P31~32

베크 세계사 이번 시리즈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을 다루지만 큰 범위에서 19세기를 다룬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장기 19세기로 정리했다). 지난 시리즈(1350~1750)는 너무 방대한 세기를 한꺼번에 담고 있어서 폭이 굉장히 넓은 느낌이었는데 이번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100여년의 시간을 담고 있어 압축적인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책임 편집자가 제바스티안 콘라트와 위르겐 오스터함멜인데 이전에 오스터함멜 19세기 세계사인 대변혁(3부작)을 읽은터라 상대적으로 읽기 좀 수월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 시리즈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파트로 각 단락이 나누어져 있어서 앞 내용과는 별개로 뒷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가능한 각 챕터는 한 번에 읽는 것이 더 좋겠다.

'근대적'이라는 개념은 개인, 행위자의 생각,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역사 속 행위자들은 자신이 생각한 근대화 개념에 따라 움직였다. 19세기는 미래와 전통이 접목되고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이동이 있었으며 사람 간의 만남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19세기 정치사는 전지구적 세계 공동체만 집중하면 안되고 여러 국가로 구성된 지역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의 지역은 1770년대에서 1920년대 역사적 흐름에 토대를 둔 것으로(지리적 결정론과 상관없이 정치적 정체성과 지정학적 가상 네트워크에 따른 것) 각 지역 내의 정치 중심지를 중심으로 지역 내부와 교류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각 시기를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1750~1815(과도기): 이슬람 세계, 동아시아, 유럽-대서양 영역이 서로 상대적으로 존재하다 대서양 혁명으로 유럽의 질서가 재조직된 시기. 지역들이 연결된 세계에서 유럽과 이슬람 지역이 밀접히 연계되는 전환 과정. 아메리카의 등장.
1830~1880: 유럽이 지배하는 제국적 세계에 동아시아 지역이 통합된 시기. 왕실 간 방문과 국가 간 조약 체결, 국제 협회 가입 등의 국제 외교, 국제법의 관행을 이용한 정당성 확보. 유럽 제국의 기독교 정체성과 무슬림 왕조(오스만) 사이의 대립과 긴장 발생.
1880~1차 대전 이전: 세계질서의 지정학화와 재지역화. 인종과 문화를 서열화하여 지배를 정당화한 제국들의 등장. 아프리카, 이슬람 세계의 역할 부각.

불평등한 권력관계, 정치성을 띤 정체성, 국제기구의 작동 방식에 대한 불만, 지역 동맹 모색, 종교적·인종적 정체성과 외교정책 사이의 관계 등 현대의국제 질서가 던지는 수많은 도전은 장기 19세기에 그 뿌리를 갖고 있다. - P302

세계가 서양과 아시아, 이슬람 세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라는 몇 개의정치 블록으로 구분된 것은 18세기 이래로 이어져 온 현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20세기 초의 제국적 질서가 세계화되는 과정에 발생한 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적으로나 대륙별로 구분된 지역들은이미 이전에 존재했던 지역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유산이라기보다 19세기 말의 제국적 세계화의 결과였다는 말이다. - P302

19세기 경제는 산업화와 국제 무역이 핵심이다. 산업화는 세계 무역의 경제적 성격을 크게 변화시켰고 각국은 이로 인해 전략을 모색해야 했다. 국제 무역이 발전하게 된 이유는 1850년 이후, 특히 1870년 이후 산업 혁명과 새로운 운송 기술을 통해서였다.
19세기 산업화는 유럽의 발전을 만든 토대였다. 영국은 공장 기반의 산업 시설인 방적기와 직조기를 바탕으로 19세기 내내 직물 산업의 부흥을 만들어낸다. 유럽은 에너지원으로 석탄을 사용하고 철과 강철을 대량 생산하면서 교량과 선박, 기차를 만들어내는 바탕이 되었다. 다만 그 외 지역은 이전과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산업화는 경제, 사회를 전반적으로 변화시키면서 국민의 삶도 바꾸는 계기가 된다.
1900년대에 들어오면 미국이 세계 최대의 국민 경제를 달성하며 유럽을 잇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다. 반면 남아메리카는 산업화와 무역에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소수에 불과했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는 모두 정치적으로 공화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차이가 있었던 것은 남아메리카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다양한 구성의 주민 집단에 원인이 있었다.
산업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로 이루어진 19세기 말 대서양 경제는 금융 제도가 확대되고 산업이 성장하고 무역이 증가하면서 서로 긴밀히 연결되었다. 현재의 산업, 금융 경제는 이 시기가 바탕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국가 주도 성장 모델이 일본의 국가 주도 산업화 프로젝트에 의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제적 측면에서 19세기의 산업화에는 새로운 기술, 기계 도입을 위한 자본, 그 기계를 다룰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유럽이 19세기 말의 산업화를 위해 필요한 자본과 기계, 노동력을 제공한 원천이었다. 인도에서는 원주민들의 노동력과 국내외 자본이 서양 기술을 도입하고 산업 영역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산업화가 발전하고 확산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은 서양인들 때문이 아니다. 많은 부분이 지역적 조건과 관계가 있다. 라틴아메리카에도 남아시아에도 수많은 지역을 광범위한 교역 네트워크로 통합하고 주민들을 거기에 많이 참여시킬 수 있는기존의 무역 체계가 없었다. 해외무역과 지역 교역을 연결하는 구조도 유럽이나 미국보다 덜 발달해 있었다. - P423~424

19세기 문화사에는 대체로 세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근대화론, 탈식민주의, 복수의 근대성이다. 첫 번째 해석은 역사는 진보했다라는 관점에 맞춰진 것으로 유럽과 서구 중심성에 근거를 둔다. 두 번째 해석은 근대화론과 상반되는 것으로 근대적 세계관을 제국주의의 관점에 의거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세 번째 해석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형태의 근대화와 세계적으로 나타난 초기 근대성의 형성에 주목한 것이다.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다고 볼 수 있는데 초기 근대화, 특히 아시아의 근대성에 주목한 것이 특징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관점에 더하여 상호 작용과 교류에 주목하며 통합적 관점도 함께 제시한다.
19세기 후반 전통적 지역이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연결, 대체되면서 새로운 통합 지역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 유럽 제국의 팽창, 교통과 통신의 혁명, 국제적 국가 체제의 확립, 자본주의의 발전이 역할을 담당했다. 계몽주의는 유럽 중심주의적 해석이라 재해석이 필요하지만 초국적 교류의 증대와 세계의 점진적 통합을 이루어내자라는 주장은 세계 역사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시간 체계의 변화로 전 세계가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 이는 표준화된 시간, 세계시의 발명 등으로 나타났다. 종교는 상호 연결과 상호 작용이 증대하는 상황에서 변화의 역할을 맡았다. 다만 대표 종교들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부응했다는 점은 씁쓸했다.

시간 혁명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관행과 세계질서에 나타난 광범위한 변화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많은 과정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국민국가가 수행한 표준화 기획, 시간의 정밀한 계측을 촉진하는 동시에 시간의 우주론적 의미를 훼손한 자연과학의 발전, 증기기관 시대의 기술적 성취, 생산과 사회적 관계의 점진적인 자본주의적 변화, 마지막으로 제국주의 시대의 변화하는 지정학적 질서. 이러한 과정들은 영국이나 세네갈, 오스만 제국이나 인도네시아의 역사적 행위자들이 시계와 시간 엄수, 진보의 체제를 점차 자명하고 유익하며 나아가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에 영향을 끼쳤다. - P627

19세기 사회사는 지역이나 국가의 개별 역사를 이어 붙이거나 총합과 일반화를 통해 귀납적으로도 구성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이 와 닿았다. 1800년대 접어들면 유럽에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치 영역은 힘과 권력에 좌우되고 경제 영역은 재산이나 화폐 유통과 교환에 좌우되었다. 법률의 중요성이 나타나고 노동자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런 관념들은 유럽 곳곳에 수용되었으나 그 이외 지역에 받아들여지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1900년 즈음이 되면 표준 체계가 생긴다. 세계의 모든 대륙은 개별 접촉을 넘어 소통하기 시작했다. 1860년대 우편통신을 시작으로 기술과 행정이 표준화되면서 국경을 넘게 된다. 하지만 사회의 발전에 따른 위계질서가 강화되었다. 귀족과 평민이 대립했고 사람들의 이주가 증가하며 계층 구조가 더 심화되었으며 피부색이나 종족에 의한 불평등도 강화된 것이다. 상업이 발달하고 화폐가 교환되기 시작하면서 소비 사회가 팽창한다. 운송 수단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각 거점은 도시로 발달하였다. 증기선과 철도 등의 등장으로 상인 네트워크의 반경이 확대됨으로써 이주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곧 디아스포라 사회, 유입 사회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커뮤니케이션의 양이 증가하면서 책이 제작되고 신문이 발행되었다. 또 세계적으로 전신망이 곳곳에 구축되면서 속도가 빨라진다. 사진, 영상이 시작되었으며 건축도 등장한 시기다.

19세기에 인간의 이동성은 기존 국민국가들 사이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이동성은 국가와 사회를 형성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많은 경우에 사회와 국가는사실상 이동성으로부터, 이동성을 통해 생성되었다. 유입 사회는 19세기에 전세계적인 사회적 경관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 P941


19세기는 여러 모로 지금의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만들어졌다. 산업, 금융을 바탕으로 한 경제 시스템, 사진, 인쇄술, 영상을 대표하는 사회적 산물,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구조 등이 우리 곁에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다.

다음 시리즈는 한국 근대사와 일제 강점기에 해당하는 시기라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시기다. 이 책도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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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04 2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방대한 역사 리뷰로 정리 하기 힘들 정도 인 것 같습니다

다음 시리즈 기대!

천페이지! 분량 화가님 완독 응원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11-05 07:41   좋아요 1 | URL
100여년이 넘는 세월인데 압축적으로 획기적인 변화들이 일어난 시기라 당시 사람들은 요지경 세상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다음 시리즈도 기대되어요. 스콧님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2-11-05 1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 묵직한 책 다 읽으셨군요! 이게 연대별로 시리즈로 있는 거예요? 칭찬 많이 하셔서 항상 역사지식 부족에 부끄러움을 갖고 있는 저는 일단 담아두긴 했습니다만..ㅎㅎ

거리의화가 2022-11-05 13:32   좋아요 0 | URL
네 괭님^^ 이게 고대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인데 1350년 이전의 두 시리즈는 아직 출간이 안되었고 그 이후만 출간되어 있는 상태예요. 나중에 마저 출간되면 모아놓고 읽어야겠죠!
이 책이 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 잡기에는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이런 책들 두 세 시리즈 정도 읽으면 확실히 개념이 잡히더라구요. 괭님 댓글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2-11-05 13:33   좋아요 1 | URL
이런 책들 두세시리즈… 쉽지 않겠지만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때는 역사전문 화가님이 추천하시는 책들로^^
 

4부 위계와 연결: 세계적 사회사의 양상

많은 동시대인이 변화나 변형의시기로 이해한 국면에 있는 세계의 사회사"는 근대라는 개념을 절대적으로필요한 만큼만 사용해야 한다. 그 수준을 넘어서면 그 개념이 너무나 부정확해진다. 의미론적 광채의 배후에 근본적인 공허함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법 같은 효력을 지닌 낱말 앞에서 지나치게 움츠러들면 세계 사회사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다. - P746

1800년을 전후로 몇십 년간 유럽의 철학자와 정치이론가들이 내놓은 수많은 저술에서 정치와 경제의 분리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원칙적으로 정치영역은 힘과 권력에 좌우되었고,(법이 완화 효과를 낼 수는 있었다.) 반면에 경제 영역은 재산, 화폐의 유통, 재화의 평화로운 교환에 좌우되었다. 재산은 화폐가치로도 표현될 수 있었으므로 토지는 점차 상업상의 제품으로서 갖는 가치의 관점에서 규정되었다. 극소수 이론가만이 정치가 경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종종 자유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스미스조차도 국가가시장의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사사로운 개인을 위해 공정한 규칙을 정립할 것을기대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누구도 무제한의 경제 통제를 옹호하지 않았다.
힘은 법으로써 제한해야 했으며, 입헌군주제는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적절한 국가 형태로 보였다. 이들 중에 군주제에 반대해 독립하고 획기적인 공화제헌법(1787)을 채택한 미국을 하나의 모델로 환영한 자들은 소수였다. - P770

사회의 복잡성이라는 개념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쓰이는 몇몇 개념과 사고방식은 스펜서가만들어 냈다. 스펜서는 사회를 개인과 집단의 총합으로, 다른 개념으로 말하면 구조와 기능에 따라 분화된 유기체로 보았다. 스펜서의 주요어 중 하나인‘문화’는 오늘날 체계 이론의 기본적인 범주다. 빅토리아 시대의 이 박식가는사회의 성장과 진화라는 문제도 다루었다.
마르크스와 그가 세운 역사적 유물론은 19세기의 세 번째 사분기에 사회의 자율화 이론을 더욱 진척시켜 국가를 사회적 갈등의 부산물로만 보이게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부르주아지 시대의 국가는 단지 지배계급의 도구였을 뿐이다. - P773

서구의 ‘사회‘ 개념은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이 개혁을 정당화하고 뒷받침하고 실행하기 위해 받아들였다. 이러한 개혁은 그 집단들의 권력 장악 야심과 연결되었다. 이 개혁이 해당 사회의 폭넓은 계층에 침투하기까지는 몇십 년이 걸렸다.
여러 나라에서 개혁이 결정적인 문턱에 도달한 것은 사회 관념이 새로운 민족주의와 결합하고 ‘사회‘가 국민 전체와 동일한 것이 되었을 때였다. - P776

민족의 성격에 관해서는 오랫동안 진부한 관념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16세기 이래로 더 멀리 떨어진 세계가 점차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유럽의사회 기술 전통은 해외의 ‘타자‘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뒤이어19세기에 유럽에서 사회과학이 출현했고, 그곳으로부터 사회과학은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1760 년 무렵에서 1840년까지의 몇십 년은 타자의 시각으로 이루어진 사회 기술이 지배한 마지막 국면이었다. 이는 어느 정도는 유럽에도 해당되는이야기다. - P777

초창기 사회과학은 이론적으로 사회적 ‘사실‘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중심으로, 사실상 그러한 사회적 사실을 자연과학의 엄격한 요구까지 충족시키는 기준에 따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중심으로전개되었다. 135수집해 분류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회적 사실이 있다는 관념은 19세기에 들어선 후에야 나타났다. 그때가 되어야 나폴레옹 국가의 등장과 더불어통치술(나중에 식민 통치도 포함된다.)은 과학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국가기관들은 신민이나 시민에 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의무로 여겼다. 심지어 식민지에서도 그러했다. - P795

18세기에 유럽인들은 확실히 비유럽 사회 여성이 처한 상황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지만, 이 분야에서 특히나 빈번하게 그릇된 판단에 빠졌다. 그러한 그릇된 판단은 오랫동안 역사 서술에 스며들었다. 남성여행자들에게 여성의 삶은 좀 더 공적인 남성의 삶보다 훨씬 더 눈에 띄지 않았다. 따라서 여성의 삶은 보통의 사료에서 훨씬 적게 나타나며 더 많이 감추어져 있다. - P813

변경 사회는 19세기의 특징적 사회 유형의 하나가 되었다. 거의 전부 폭력과 민족 갈등에 휘말렸으며, 현지 주민들은 불가피하게 패자가 되었다. 그러한 사회들은 일반적으로 지극히 외진 곳에 있었지만(변경은 고립된 개인들, 가족들, 소집단들의 고향이었다.) 또한 세계경제의 그물망에 걸려들었다. 그러므로 변경 사회는 세계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 사이의 연결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또한 변경 사회는 반드시 유럽 팽창의 직접적인 결과물일 필요는 없었으며, 모든 경우에서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정착민 식민주의로 귀착되지도 않았다. 원주민의 추방과 보호구역 안으로의 봉쇄는 매우 특별한 의미에서만 ‘식민주의‘라고 할 수 있었다. - P833

1900년 무렵의 세계에는 여전히 주민들이 자급자족이나 인근 주민들을상대로 한 교환으로만 근근이 삶을 꾸리는 사회가 무수히 많았다. 대체로 민족학자들이 발견하고 묘사한 외진 곳의 공동체들이었다. 그러나 초기 민족학의 몇몇 고전적인 연구는 이미 외국인과 어느 정도의 교류 경험이 있는 사회들에 관한 것이었다. 대다수 사람은 매우 다양한 세계화 과정의 결과로 서로연결된 사회에 살았다. 이들은 이주, 상품과 자본의 교환, 종교 사상이나 기타 사상의 이전 같은 식민 통치의 구조들에 통합되었다. 그러나 이 통합이 반드시 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일상생활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까지도인구가 조밀하고 근대성의 모든 외적 징후를 다 띠고 있는 세계의 몇몇 지역에서도 외국인은 흔히 볼 수 없는 존재다. 1900년 무렵에는 당연히 더욱 흔치않았다.
많은 사람이 전례 없는 이동성에 직면해 무기력과 협소한 시각을 보여 주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850

제1차 세계대전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 사회가 태도는 물론 조직에서도 부르주아지 사회가 이론상 암시했던 자기 이미지보다 실제로 폭력을 행사할 준비가 훨씬 더 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P863

비단 거대한 해외 제국뿐만 아니라 19세기의 특징적 사회 형태였던 식민지 사회도 군사적 정복의 산물이었다.255 식민지 정권의 부대와 경찰이든, 일반적으로 토착민 민간인들보다 특혜를 누렸던 토착민 보조군(세포이)이든 군대는 특수한 역할을 수행했다. 사회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스펜서는 군사적 유형의 사회와 산업적 유형의 사회를 구분했다.256 식민지 사회는 군대가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궁극적인 지배 기구였던 ‘군사적 유형‘의 사회다. - P864

노예무역과 노예제의 역사는 진정으로 세계적인 무대에서 전개되었다. 육지와 바다를 통한 노예 거래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거의 전역과 아시아의 큰 부분에서 이루어졌다. 노예의 최종 목적지에서는 그들이 가져온 문화적 지식이 현지 문화에 통합되어 새로운 혼성 문화를 이루었다. - P892

부르주아지는 개인의 측면에서나 기능에서나 사회의 다른 집단들보다 지역에 얽매인 ‘지방적‘ 성격이 덜했고 더 쉽게 이동했다. 부르주아지는 이전移轉의 제공자였으며, 이 일을 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행했다. 그렇지만 모든 행상인과 소상점주가 다 부르주아지가 되지는 않았다. 부르주아지개념은 어느 정도 팽창적인 위세를 포함한다. 부르주아지는 자기가 속한 지역세계를 뛰어넘는 포부를 지니며, 소비 습관을 비롯해 여러 방식으로 이를 드러낸다. 부르주아지는 일찍부터 의복처럼 멀리 떨어진 외국의 느낌을 주는 소비재를 구매하려고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열등한 취급을 받는 이웃과 자기를구분했다. 부르주아지는 남의 것을 제 것인 듯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부르주아지는 세계주의적 성향을 지녔다. - P901

새로운 운송 수단으로써 창출된 이동성 공간은 엄격하게 조직되고 분리되었다. 기관차와 객차를 생산하고 수출할 수 있는 기술적으로 앞선 경제들과 운항과 보수를 넘어서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 기술의 수혜자들은 매우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극소수 국가에서만 철도 여행은 국내의 기술적·산업적 기반에 의지했다.
항해와 철도 여행의 연결 효과를 지적하는 것은 시시한 일이다. 네트워크의 형태가 더 흥미롭다. 어디에 철도를 건설할지는 지리로부터 자동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대개는 민간 투자자들의 발언권이 가장 컸다. 도시들은 중추를 차지하려고 다투었으며, 어디서나 공공연하는 은밀하든 정치적 책략이 역할을 했다. 항해는 세계 도처를 연결했던 반면에 철도는 대륙에 국한되었다. - P931

교통 혁명의 전체적인 효과는 일련의 부수적 효과와 연결된 직접적인 운송 개선에서 생겼다. 그러한 부수적 효과의 하나는 철도 역사의 건축에 따른도시 경관의 개조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경제적 공간의 창출이다. 따라서철도와 해운의 역사는 단순한 교통의 역사를 뛰어넘는다. 가장 중요한 결과의 하나는 이주의 성장과 변화다. 이는 몇몇 지역에서 발흥한 산업자본주의와 새로운 변경의 개척 같은 다른 자극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한 세계사의 한과정이었다. - P933

19세기에 인간의 이동성은 기존 국민국가들 사이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이동성은 국가와 사회를 형성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많은 경우에 사회와 국가는사실상 이동성으로부터, 이동성을 통해 생성되었다. 유입 사회는 19세기에 전세계적인 사회적 경관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 P941

19세기 중엽의 유럽 중간계급에서 남편의 가내 권위 상실에 동반된 여성의 가정화는, 그리고 이와 동시적인 현상이었던 도덕적 고양은 멀리 물러나서 보면 중국 여성이 가내의 사적 영역에 엄격히 제한된 것과유사했다. 그 제한이 시대를 뛰어넘는 ‘전형적으로 중국적인‘ 현상이 결코 아 - P959

니었고 제국주의 시대 말기의 특징이었음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 P960

그러므로 ‘세계 사회‘는 당대의 기술적 조건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커뮤니케이션 범위로만 이해할 수 있다. 서로 만날 기회가 없으면서도 서로를 알고있는 인간들 사이에 사회적 유대가 형성되었으며, 새로운 통신수단과 이로써가능해진 여러 형태의 구체적인 인식 위에서 ‘세계‘의식이 출현했다. 이 세계의식은 알려진 세계의 통합을 처음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축의 시대‘ 이래로 존재한 앞선 여러 보편주의와 달랐다. 따라서 19세기의 세계 사회사는계층과 제도에 관심을 보인 종래의 사회사보다 더 많이 사회적 상상력을강조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사는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문화사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 P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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