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부터 시작된 3일간의 연휴는 잘 보냈다. 어디 놀러갈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비가 연휴 내내 오기도 해서(어제 오후쯤이 되서어야 그쳤다) 읽고 있던 책들을 읽고 또 새로운 책을 읽기도 했다.


간단하게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소감을 정리해본다.


토지 15권을 읽으면서 중일전쟁의 흐름을 다시 정리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미 갖고 있던 책이 두 권 있음을 발견했는데 한 권은 시간이 없어 다 읽지를 못하고 부분적으로 읽었고 나머지 한 권은 한 번도 펼쳐보지 못했음을 인지했다. 두 권 다 읽을 수는 없고 결국 분량 문제로 선택된 것이 이 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일전쟁으로 생각하는 사건은 '난징학살'만이 아닐까. 중일전쟁이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서사를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에 많이 흩어져 있었고 중국의 전황에 따라 이들의 활동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초반은 신경(지금의 장춘)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홍이와 가족의 이야기(결국 임이네는 그 집에 눌러앉았네)가 등장한다. 홍이는 아내와도, 자식들과 큰 문제 없이 지내는 듯 보이지만 아내와 자식들은 그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그리고 아버지와 갈등 끝에 헤어졌던 영광이가 재등장했다. 일본에서도 계속 방황을 했었던 그였고 길상이의 지원도 거부한 채 갑작스레 딴따라(어른들의 시선에서)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대체 뭐가 불만이었을까 싶었는데 어머니에 대한 배신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신분, 계급, 이 빌어먹을 것.) 신경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호열자가 발생해서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전쟁으로 젊은이들은 언제 끌려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고 물자는 부족해졌다. 친일파는 날개 돋친 듯 활개를 쳤으며 창씨개명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서재 친구분이 남긴 소감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소설을 겁없이 덜커덩 사는 타입이 아니여서 일단 도서관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내가 가는 도서관에는 없었지만 다행히 다른 구역의 도서관에는 있었고 '상호대차'라는 편리한 시스템을 이용하여 빌릴 수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마치 습기를 머금은 듯한 눅눅한 책 냄새가 소설을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리뷰는 이미 올렸지만 많은 조선족이 국내에 들어와 있음에도 우리는 그들을 가깝게 느끼는가 물으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호'보다는 '불호'에 더 가까운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아예 무신경하거나. 조선족 뿐만 아니라 국내에는 많은 이주자들과 이민자들이 들어오지만 이들을 끌어안는 시스템은 아닌 듯하다. 점점 더 내부적 상황이 팍팍해지는 것도 소수자들에 대해 외면하기 좋은 환경이 되는 건 아닌지.



서양이 바라보는 동양에 대한 시각을 인식할 수 있는 기본서다. 그 전까지 나는 서양이 바라보는 동양을 제국주의나 침략주의 만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서양이 바라보는 동양을 약자로, 침략하기 좋은 매개체로 인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바라보는 것은 단편적임을 이해해가고 있는 중이다. 진작 읽었어야 할 책을 이제서야 읽는다니, 어쨌든 이제라도 읽고 있어서 다행이다. 서양인이 생각하는 동양의 이미지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서양인들의 체험기는 텍스트화되었고 박물관화되어서 박제화되었다.



반 넘게 읽었다. 중반 이전까지는 내가 집중을 덜했는지 몰라도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잘 정리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중구난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논지가 흩어져있다는 생각도 했다. 분명 내가 논픽션을 읽고 있는데 픽션을 읽고 있나?하는 생각도 했다. 확인해보니 저자가 쓴 첫 논픽션이라고 한다. 소설은 여러 권 쓰신 것으로 나온다. 8장을 읽고 나서야(예술계 인사들의 미국으로의 입성기?) 그나마 좀 뒷부분이 궁금해졌다고나 할까. 아직까지는 별 3이다. 마저 읽으면 평가가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3-05-08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데어라 혼의 첫 논픽션이란 말씀에 검색해보니 번역된 소설은 한 권도 없네요? 저는 소설도 한 권쯤 읽어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정희진 쌤이 극찬하신 책이라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곧 읽어볼게요!!

거리의화가 2023-05-08 14:07   좋아요 0 | URL
소설은 4~5권 쓰신 것 같던데 번역된 것은 없었군요. 음... 조만간 나오지 않을까요? 아무튼 저도 마저 집중해서 읽어보려구요^^

건수하 2023-05-08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리엔탈리즘, 언젠가 읽어보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은 유대인 아직 시작 안했는데 논지가 흩어져있다니... 그런거 괴롭지만 ㅠㅠ 그래도 읽어보렵니다. 화가님의 평을 기다릴게요!

거리의화가 2023-05-08 17:35   좋아요 1 | URL
제가 집중력이 부족해서일수도 있어요^^; 문장 스타일이 미사여구가 많은 느낌? 그런 문장을 제가 좀 안 좋아해서... 암튼 좀 더 집중해서 마저 읽어볼게요^^

독서괭 2023-05-08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토지 15권 읽고 중일전쟁 딱 펴시는 화가님👍죽은 유대인~ 나머지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5-09 09:40   좋아요 0 | URL
중일전쟁 사두기만 하고 제대로 안 읽었는데 마침 잘되었죠. 책은 이렇게 읽게 되나 봅니다ㅎㅎㅎ 음. 죽은 유대인은 생각이 복잡해요. 제가 제대로 몰라서일수도 있고(사전 정보 부족?)...ㅎㅎ 암튼 어떻게든 정리해보겠습니다^^

단발머리 2023-05-08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계획대로 착착착 (특히 토지 진행하는 모습이 넘 멋져요) 책읽고 정리하는 모습이 정말 부럽습니다.
두껍고 어렵다는 오리엔탈리즘도 곧 완독하실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듭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3-05-09 09:40   좋아요 0 | URL
토지랑 잃시찾은 어쩌다보니 올해 계획 리스트에 포함되어버려서... 둘 시리즈는 길기도 길어서 따로 진행했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이미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는 거구요ㅎㅎ
요즘은 저도 정리 시간은 부족해서 사진찍고 밑줄긋는 것으로 거의 대체중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중간에 생각이 얼추 들 때 올리는 소감이 나중에 리뷰 쓸 때도 도움이 되더라구요^^
오리엔탈리즘은 생각 이상으로 재미나요. 아마도 금주 내에 완독할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3-05-09 0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토지 16권이군요. 대단하십니다~!!
게다가 연계독서에다가 폭풍독서까지~!!
나름 즐거운 연휴셨을거같아요 ^^

거리의화가 2023-05-09 09:39   좋아요 1 | URL
네.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저는 공부하면서 지적 희열을 느낄 때가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라서요ㅎㅎ 토지는 고지가 보입니다. 아마도 괭님이 먼저 완독하실 것 같고요!^^ 응원 감사합니다.
 

게르망트라는 이름이 내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쳤는지는, 지금의 나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나의 첫 유년 시절은 이미 내 안이 아닌 내 밖에 있으며, 태어나기 전의 일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내 안에서 지속되는 이름이 연이어 일고여덟 가지 서로 다른 모습을 띠는 것을 발견한다. 첫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즉내꿈은 점차 현실 때문에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수없어 포기해야 했고, 그래서 조금 더 뒤쪽에서 새로이 방어진지를 구축하다가 끝내는 더 뒤쪽으로 물러가야 했다. - P21

내가 생각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피기그의 오아시스에서 낮잠을 자기만 해도 이미 아프리카에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우리의 상상력과 믿음만이 몇몇 물건이나 존재를 다르게 하고 특별한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포부르생제르맹의 이 그림 같은 풍경이나 자연스러운 사건들, 지방색 짙은 진기한 물건과 예술 작품 사이로 결코 발을들여놓지 못하리라. 그리하여 공해상에서(영영 상륙할 희망도없이) 돌출된 회교 사원 첨탑이나 첫 번째 야자수, 또는 이국적 산업과 식물 재배의 시작을 알리는 표시를 바라보듯이 그 해안에 놓인 낡은 신발 깔개를 바라보며 몸을 떠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 P52

말이 한두 번 쥐피앵 가게의 진열창을 망가뜨렸고, 이에 쥐피앵이 변상을 요구하자공작은 몹시 화를 냈다. "공작 부인이 이 집이나 이 교구에 베푸는 숱한 은혜는 생각하지도 않고, 아무개가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하다니 기가 막히군." 하고 게르망트 씨가 말했다. 그러나 쥐피앵은 공작 부인이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꿋꿋이 버텼다. 물론 게르망트 부인은 은혜를 베풀긴 했지만 모든 사람에게 베풀 수는 없었으므로 어느 한 사람에게 베푼 기억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는 그 은혜를 베풀지 않았는데, 이는 그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불만이 되었다. 자선을 베푸는 관점을 떠나 다른 관점에서 보아도, 이 동네가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ㅡ 공작에게는 자기 집 안마당의 연장선이나 그의 말이 달리는 보다 넓은 주행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 P53

우리는 한 인간의 몸속에 그 인간이 지닌 온갖 삶의가능성을, 그가 아는 이들이나 방금 헤어지고 다시 만나러 가는 이들의 추억을 담는 탓에, 만약 프랑수아즈를 통해 게르망트 부인이 걸어서 파름대공부인 댁으로 점심을 들러 간다는말을 들은 후, 그녀가 정오 무렵 살구빛 새틴 드레스를 입고석양의 구름과도 흡사한 미묘한 빛깔 얼굴로 집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 순간 나는 내 앞에 조개껍질의 반짝이는 분홍빛 진주모 사이로 포부르생제르맹의 온갖 쾌락이 그작은 부피 안에 담겨 있는 모습을 보는 듯했으리라. - P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2부 오리엔탈리즘의 구성과 재구성

제4장 순례자와 순례, 영국인과 프랑스인

지식은 지극히 완만한 과정을 통하여 발달한다. 지식의 발달이란, 지식이 단순히 양적으로 부가되고 누적되는 과정이 아니라, 연구상의 합의라고 불려 온 것의 내부에서 지식의 선택적인 누적, 배척, 말소, 재배치, 강조가 행해지는 과정이다. - P3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신 B.C.1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 없는 나의 집
금희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이'와 '저'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회색지대들, 그 지대마다 완전히 그 지대에 속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완전수 사이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무수한 소수들처럼. (P.21)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제목에서 늬앙스를 짐작할 수 있듯 집을 구하는 이야기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전세사기, 결국 부동산의 문제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결코 남일 같지 않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소재였다.
강사들의 처우 문제도 나온다. 이것도 우리의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은 문제다. 강사들은 불평등한 대우를 당하지만 행여 잘릴까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어 자기 발언이 쉽지 않다.
또 마라탕에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예전에 상해에 갔을 때 마라탕(백탕, 홍탕 나눠서)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마라 하면 충칭이라고 하는데 충칭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 충칭에서는 맵기 강도가 보통이라도 무척 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넌, 니 집이 있잖아.
아줌마가 쟁반에 우리의 마라탕을 내왔다. 사천 촉국의 독특하고 자극적인 향신료 냄새가 나와 닝 사이에서 만연히 부유했다. 닝은 나무젓가락을 들고 딱! 소리 나게 갈라뜨리고는 자기 국그릇 붉은 국물 속에 잠복해 있는 당면 사리와 야채들을 노려보았다.
-너도 이제 생겼잖아, 니 집.
나는 나의 붉은 국물을 들여다보았다. 닝의 것 같은 투명한 당면 대신 나는 언제나 쫄깃한 밀냉면 사리를 주문하곤 했다.
-내 집이랑 니 집이 같니? 니 건, 완-전 니 거잖어.
(P.12)

<봉인된 노래>는 사회에 부적응한 사람이 등장한다. 외국 연수도 못하게 되고 좋은 혼처 자리를 찾는 것도 실패했고 들어가는 회사마다 적응하지 못한 채 사직을 하고 나오는 사람. 그러다 결국 도박에 빠져 집안에 그늘을 지게 하는 사람이다.
집안 분위기를 보면 마치 옛날 TV드라마 아들과 딸처럼 아들에게는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이 있고 딸은 순종적이고 모범적이고 절대적 선의 가치를 지녀야 하는 그런 환경이 보인다. 그래서 답답함이 밀려오기는 했는데 다른 배경이 있다면 그가 모택동이 죽었을 때 태어났다는 것, 그래서 이름도 李念 이라는 것이다.

강하고 오래된 독선의 남용과 습관적이며 자발적인 무정체성의 순종, 그것은 어린 내가 본능적으로 깨달은 어떤 아이러니, 말하자면 일종의 부조리였다. (P.48)

<월광무>와 <돌도끼>는 중국의 성장 과정을 느끼게 한다. 계획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의 이행. 도시도, 농촌도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농촌의 빈 집은 늘어가고 도시로 하나 둘 떠난다. 남은 사람들의 갈증은 커져간다.
한국의 70, 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만한 것들이 남아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파트가 하나 둘 생기고 이웃 간의 유대는 끊어졌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캐치 프레이즈는 각자 도생으로 가게 했고 개인주의를 횡행하게 만들었다.

개발업자의 포클레인이 으르릉거리며 동네의 집과 창고들을 허물 때 끝까지 남아 동네를 지킨 사람은 마씨네 형제들이었다. 사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부터, 그러니까 시장이 자유로워지며 국경 또한 느슨해질 때부터 동네 사람들의 새로운 이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멀리 산을 넘고 물을 건너오던 당시처럼 또다시 더 살기 좋다는 곳으로 떠나가는 것이었다. 청도, 북경, 천진, 상해 그리고 한국, 일본 혹은 캐나다나 미국으로. (P.118)

나는 그 매끌매끌하게 갈린 차가운 돌도끼를 손안에 넣고 감싸 쥐어보았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겪었을 당시 사람들의 절박함과 함께 예상외의 부드러운 촉감도 전해졌다. 문뜩, 그 사람들의 피곤 속에 사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것들이 더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 사람들은 우리가 누리지 못한 다른 풍성한 것들로 인해, 우리가 추측하는 험한 상황을 느끼지 못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과자 없이 즐겁던 내 어린 시절과, '법' 없이 모이던 우리 동네의 시초를 생각하면 말이다.

<쓰레기 통의 쥐>는 '계급'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어떤 배경의 환경에서 태어난다. 그 때부터 가도는 달라진다. 학교를 갈 나이가 되면 학교 안에서도 차별이 행해진다. 부모는 행여나 학교에서 전화가 올 까봐 불안해한다(대부분 좋은 것으로 전화 올리가 없으니까). 사람을 가려 가면서 대하는 태도는 좌절감을 안긴다. 문명화(!)된 도시에서 쓰레기통은 더럽고 냄새나는 취급을 받는 것처럼 마치 내가 그런 취급을 받는 듯한 상황.

악취가 심하게 나는 쓰레기통은 깔끔하고 문명스러운 도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더럽다. 뚜껑이 부서져 온갖 쓰레기가 배를 갈려 드러난 짐승의 내장처럼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상한 것은, 다 부서져 간들간들 겨우 한조각 붙어 있는 그 뚜껑 위에 자그마한 쥐 한마리가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었다. 발레라도 추듯이 뒷발 하나를 추켜든 채 장난감처럼 꼼짝 않고 있었지만, 뱃가죽이 불었다 줄었다 하며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진짜 살아 있는 쥐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정류장을 지나쳐가고 쓰레기통 곁을 지나가면서도 아무도 그 이상한 쥐는 보지 않았다. (P.172)

<노마드>는 표제작을 제외하고서는 다음으로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지금 창춘의 모습을 알 수 있다고나 할까. 주인공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또 다시 중국으로 온 사람이다. 고향을 떠나서 한 몫 잡겠다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서는 조선족이라는 편견에 시달렸고 4년만에 고향에 오니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에 혼란스러워한다. 친구들 중에서는 고깃배를 타고 나갔다 온 사람도 있고 일본 등지로 떠난 이도 있다.
이 글을 읽으며 한국에서 일하는 많은 조선족 사람들의 대우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나부터 그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것인지 사실은 정리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노마드'라는 단어처럼 정착하고 싶어도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들이다.

그 텁텁하고 씁쓰레한 것 같으면서도 약간 누린 것 같기도 한 중국 냄새, 정확히 어떤 냄새였는지 기억할 수는 없었으나 분명 박철이는 어둑한 저녁녘에 우리를 찾아 들어가는 닭이나 양처럼 지금 그 냄새가 그리워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거무튀튀해서 밝지는 않지만 부담이 가지 않는 중국 사람들의 색깔, 언어도 다르고 교양 있는 말투도 아니지만 약간 부잡스럽고 무식한 듯하면서도 아직 순진함이 남아 있는 표정과 억양이 박철이 자신과 닮아 있어서 중국 사람들은 대하기가 한결 편했다. (P.203)
그의 온몸 각 기관들은 무의식중에 이미 전국민 모두 '절대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에 깊숙이 물들었는바, 머리는 죽은 것 같은데 입이 살아 있어서, 입을 겨우 죽였는데 눈이 살아 있어서, 눈까지 죽였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는 주제넘게 손가락이 불쑥 살아날 때도 있어 박철이는 봉급도 챙기지 못하고 자주 잘려나가곤 했다. (P.204)

어느 누구의 용기가 가상하지 않았으랴! 수미와 자신은 생계를 위하여, 이 여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선아는 생존을 위하여 떠나가고 또 떠나오는 것이다.
"허, 참 사람 사는 거 보면... 그러네요. 우리는 좀더 잘살아보자고 그쪽 나라로 떠나가고, 그쪽은 더 잘살아보자고 이쪽 나라로 떠나오고..."
"그래요. 그렇게 따지고 보니까 결국 우리는 다 같은 노마드일 뿐이네요." (P.259)


작가님의 나이를 보니 나와 비슷해서 마음이 갔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읽은 책에 나오는 조선족, 탈북민 이야기들을 읽어서인지 이입이 쉬웠던 것 같다. 게다가 주제들이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우리와 가까운 주제들이기 때문에 읽는데 거부감이 드는 것도 거의 없다. 

중국어 문장들을 보며 따라하고 있는 나를 볼 때 미소가 지어졌다. "덩-후이루(잠깐만요)!" 또, 창춘의 계림로라는 곳이 있다는데 한국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언젠가 그곳에 가보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무심한 듯, 슬며시 마음을 파고드는 그런 따뜻함을 안기는 소설이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3-05-07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문학같은 중국문학이군요. 신기해서 책 소개를 찾아봤습니다 ㅋ 중국이나 우리나 사람 사는건 별반 차이가 없는거 같아요~!!
역시 중국어 천재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3-05-08 09:2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소개글 찾아보셨군요^^ 사실 의도한 바도 있었어요ㅎㅎㅎ 사람 사는 것은 똑같은데도 이주자, 이민자들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새파랑님 감사해요^^*

희선 2023-05-08 0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 보고 김금희 작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진짜 이름은 김금희였군요 김금희 작가가 있어서 금희라 했나 하는 생각을...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으로 한국 사람은 다른 나라고 가기도 하겠네요 지금은 예전보다 적을지, 아니 여전할지도 모르겠네요 갔다가 돌아온 사람도 있을 듯합니다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할지도...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08 09:25   좋아요 1 | URL
저 김금희 작가님 좋아해요. 아마 김연수 작가님 말고 유일하게 제가 관심을 갖는 분일겁니다. 다만 작품은 많이 못 읽어봤어요ㅠㅠ
조선족 하면 갖는 편견들이 많잖아요.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많은 분들이 건너오는데 차별에 고통받다가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많은 듯합니다. 우리 안의 편견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할것 같아요. 희선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