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나의 집
금희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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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이'와 '저'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회색지대들, 그 지대마다 완전히 그 지대에 속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완전수 사이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무수한 소수들처럼. (P.21)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제목에서 늬앙스를 짐작할 수 있듯 집을 구하는 이야기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전세사기, 결국 부동산의 문제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결코 남일 같지 않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소재였다.
강사들의 처우 문제도 나온다. 이것도 우리의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은 문제다. 강사들은 불평등한 대우를 당하지만 행여 잘릴까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어 자기 발언이 쉽지 않다.
또 마라탕에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예전에 상해에 갔을 때 마라탕(백탕, 홍탕 나눠서)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마라 하면 충칭이라고 하는데 충칭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 충칭에서는 맵기 강도가 보통이라도 무척 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넌, 니 집이 있잖아.
아줌마가 쟁반에 우리의 마라탕을 내왔다. 사천 촉국의 독특하고 자극적인 향신료 냄새가 나와 닝 사이에서 만연히 부유했다. 닝은 나무젓가락을 들고 딱! 소리 나게 갈라뜨리고는 자기 국그릇 붉은 국물 속에 잠복해 있는 당면 사리와 야채들을 노려보았다.
-너도 이제 생겼잖아, 니 집.
나는 나의 붉은 국물을 들여다보았다. 닝의 것 같은 투명한 당면 대신 나는 언제나 쫄깃한 밀냉면 사리를 주문하곤 했다.
-내 집이랑 니 집이 같니? 니 건, 완-전 니 거잖어.
(P.12)

<봉인된 노래>는 사회에 부적응한 사람이 등장한다. 외국 연수도 못하게 되고 좋은 혼처 자리를 찾는 것도 실패했고 들어가는 회사마다 적응하지 못한 채 사직을 하고 나오는 사람. 그러다 결국 도박에 빠져 집안에 그늘을 지게 하는 사람이다.
집안 분위기를 보면 마치 옛날 TV드라마 아들과 딸처럼 아들에게는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이 있고 딸은 순종적이고 모범적이고 절대적 선의 가치를 지녀야 하는 그런 환경이 보인다. 그래서 답답함이 밀려오기는 했는데 다른 배경이 있다면 그가 모택동이 죽었을 때 태어났다는 것, 그래서 이름도 李念 이라는 것이다.

강하고 오래된 독선의 남용과 습관적이며 자발적인 무정체성의 순종, 그것은 어린 내가 본능적으로 깨달은 어떤 아이러니, 말하자면 일종의 부조리였다. (P.48)

<월광무>와 <돌도끼>는 중국의 성장 과정을 느끼게 한다. 계획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의 이행. 도시도, 농촌도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농촌의 빈 집은 늘어가고 도시로 하나 둘 떠난다. 남은 사람들의 갈증은 커져간다.
한국의 70, 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만한 것들이 남아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파트가 하나 둘 생기고 이웃 간의 유대는 끊어졌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캐치 프레이즈는 각자 도생으로 가게 했고 개인주의를 횡행하게 만들었다.

개발업자의 포클레인이 으르릉거리며 동네의 집과 창고들을 허물 때 끝까지 남아 동네를 지킨 사람은 마씨네 형제들이었다. 사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부터, 그러니까 시장이 자유로워지며 국경 또한 느슨해질 때부터 동네 사람들의 새로운 이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멀리 산을 넘고 물을 건너오던 당시처럼 또다시 더 살기 좋다는 곳으로 떠나가는 것이었다. 청도, 북경, 천진, 상해 그리고 한국, 일본 혹은 캐나다나 미국으로. (P.118)

나는 그 매끌매끌하게 갈린 차가운 돌도끼를 손안에 넣고 감싸 쥐어보았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겪었을 당시 사람들의 절박함과 함께 예상외의 부드러운 촉감도 전해졌다. 문뜩, 그 사람들의 피곤 속에 사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것들이 더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 사람들은 우리가 누리지 못한 다른 풍성한 것들로 인해, 우리가 추측하는 험한 상황을 느끼지 못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과자 없이 즐겁던 내 어린 시절과, '법' 없이 모이던 우리 동네의 시초를 생각하면 말이다.

<쓰레기 통의 쥐>는 '계급'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어떤 배경의 환경에서 태어난다. 그 때부터 가도는 달라진다. 학교를 갈 나이가 되면 학교 안에서도 차별이 행해진다. 부모는 행여나 학교에서 전화가 올 까봐 불안해한다(대부분 좋은 것으로 전화 올리가 없으니까). 사람을 가려 가면서 대하는 태도는 좌절감을 안긴다. 문명화(!)된 도시에서 쓰레기통은 더럽고 냄새나는 취급을 받는 것처럼 마치 내가 그런 취급을 받는 듯한 상황.

악취가 심하게 나는 쓰레기통은 깔끔하고 문명스러운 도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더럽다. 뚜껑이 부서져 온갖 쓰레기가 배를 갈려 드러난 짐승의 내장처럼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상한 것은, 다 부서져 간들간들 겨우 한조각 붙어 있는 그 뚜껑 위에 자그마한 쥐 한마리가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었다. 발레라도 추듯이 뒷발 하나를 추켜든 채 장난감처럼 꼼짝 않고 있었지만, 뱃가죽이 불었다 줄었다 하며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진짜 살아 있는 쥐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정류장을 지나쳐가고 쓰레기통 곁을 지나가면서도 아무도 그 이상한 쥐는 보지 않았다. (P.172)

<노마드>는 표제작을 제외하고서는 다음으로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지금 창춘의 모습을 알 수 있다고나 할까. 주인공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또 다시 중국으로 온 사람이다. 고향을 떠나서 한 몫 잡겠다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서는 조선족이라는 편견에 시달렸고 4년만에 고향에 오니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에 혼란스러워한다. 친구들 중에서는 고깃배를 타고 나갔다 온 사람도 있고 일본 등지로 떠난 이도 있다.
이 글을 읽으며 한국에서 일하는 많은 조선족 사람들의 대우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나부터 그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것인지 사실은 정리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노마드'라는 단어처럼 정착하고 싶어도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들이다.

그 텁텁하고 씁쓰레한 것 같으면서도 약간 누린 것 같기도 한 중국 냄새, 정확히 어떤 냄새였는지 기억할 수는 없었으나 분명 박철이는 어둑한 저녁녘에 우리를 찾아 들어가는 닭이나 양처럼 지금 그 냄새가 그리워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거무튀튀해서 밝지는 않지만 부담이 가지 않는 중국 사람들의 색깔, 언어도 다르고 교양 있는 말투도 아니지만 약간 부잡스럽고 무식한 듯하면서도 아직 순진함이 남아 있는 표정과 억양이 박철이 자신과 닮아 있어서 중국 사람들은 대하기가 한결 편했다. (P.203)
그의 온몸 각 기관들은 무의식중에 이미 전국민 모두 '절대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에 깊숙이 물들었는바, 머리는 죽은 것 같은데 입이 살아 있어서, 입을 겨우 죽였는데 눈이 살아 있어서, 눈까지 죽였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는 주제넘게 손가락이 불쑥 살아날 때도 있어 박철이는 봉급도 챙기지 못하고 자주 잘려나가곤 했다. (P.204)

어느 누구의 용기가 가상하지 않았으랴! 수미와 자신은 생계를 위하여, 이 여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선아는 생존을 위하여 떠나가고 또 떠나오는 것이다.
"허, 참 사람 사는 거 보면... 그러네요. 우리는 좀더 잘살아보자고 그쪽 나라로 떠나가고, 그쪽은 더 잘살아보자고 이쪽 나라로 떠나오고..."
"그래요. 그렇게 따지고 보니까 결국 우리는 다 같은 노마드일 뿐이네요." (P.259)


작가님의 나이를 보니 나와 비슷해서 마음이 갔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읽은 책에 나오는 조선족, 탈북민 이야기들을 읽어서인지 이입이 쉬웠던 것 같다. 게다가 주제들이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우리와 가까운 주제들이기 때문에 읽는데 거부감이 드는 것도 거의 없다. 

중국어 문장들을 보며 따라하고 있는 나를 볼 때 미소가 지어졌다. "덩-후이루(잠깐만요)!" 또, 창춘의 계림로라는 곳이 있다는데 한국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언젠가 그곳에 가보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무심한 듯, 슬며시 마음을 파고드는 그런 따뜻함을 안기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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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07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문학같은 중국문학이군요. 신기해서 책 소개를 찾아봤습니다 ㅋ 중국이나 우리나 사람 사는건 별반 차이가 없는거 같아요~!!
역시 중국어 천재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3-05-08 09:2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소개글 찾아보셨군요^^ 사실 의도한 바도 있었어요ㅎㅎㅎ 사람 사는 것은 똑같은데도 이주자, 이민자들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새파랑님 감사해요^^*

희선 2023-05-08 0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 보고 김금희 작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진짜 이름은 김금희였군요 김금희 작가가 있어서 금희라 했나 하는 생각을...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으로 한국 사람은 다른 나라고 가기도 하겠네요 지금은 예전보다 적을지, 아니 여전할지도 모르겠네요 갔다가 돌아온 사람도 있을 듯합니다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할지도...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08 09:25   좋아요 1 | URL
저 김금희 작가님 좋아해요. 아마 김연수 작가님 말고 유일하게 제가 관심을 갖는 분일겁니다. 다만 작품은 많이 못 읽어봤어요ㅠㅠ
조선족 하면 갖는 편견들이 많잖아요.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많은 분들이 건너오는데 차별에 고통받다가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많은 듯합니다. 우리 안의 편견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할것 같아요. 희선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