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망트라는 이름이 내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쳤는지는, 지금의 나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나의 첫 유년 시절은 이미 내 안이 아닌 내 밖에 있으며, 태어나기 전의 일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내 안에서 지속되는 이름이 연이어 일고여덟 가지 서로 다른 모습을 띠는 것을 발견한다. 첫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즉내꿈은 점차 현실 때문에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수없어 포기해야 했고, 그래서 조금 더 뒤쪽에서 새로이 방어진지를 구축하다가 끝내는 더 뒤쪽으로 물러가야 했다. - P21

내가 생각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피기그의 오아시스에서 낮잠을 자기만 해도 이미 아프리카에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우리의 상상력과 믿음만이 몇몇 물건이나 존재를 다르게 하고 특별한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포부르생제르맹의 이 그림 같은 풍경이나 자연스러운 사건들, 지방색 짙은 진기한 물건과 예술 작품 사이로 결코 발을들여놓지 못하리라. 그리하여 공해상에서(영영 상륙할 희망도없이) 돌출된 회교 사원 첨탑이나 첫 번째 야자수, 또는 이국적 산업과 식물 재배의 시작을 알리는 표시를 바라보듯이 그 해안에 놓인 낡은 신발 깔개를 바라보며 몸을 떠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 P52

말이 한두 번 쥐피앵 가게의 진열창을 망가뜨렸고, 이에 쥐피앵이 변상을 요구하자공작은 몹시 화를 냈다. "공작 부인이 이 집이나 이 교구에 베푸는 숱한 은혜는 생각하지도 않고, 아무개가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하다니 기가 막히군." 하고 게르망트 씨가 말했다. 그러나 쥐피앵은 공작 부인이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꿋꿋이 버텼다. 물론 게르망트 부인은 은혜를 베풀긴 했지만 모든 사람에게 베풀 수는 없었으므로 어느 한 사람에게 베푼 기억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는 그 은혜를 베풀지 않았는데, 이는 그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불만이 되었다. 자선을 베푸는 관점을 떠나 다른 관점에서 보아도, 이 동네가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ㅡ 공작에게는 자기 집 안마당의 연장선이나 그의 말이 달리는 보다 넓은 주행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 P53

우리는 한 인간의 몸속에 그 인간이 지닌 온갖 삶의가능성을, 그가 아는 이들이나 방금 헤어지고 다시 만나러 가는 이들의 추억을 담는 탓에, 만약 프랑수아즈를 통해 게르망트 부인이 걸어서 파름대공부인 댁으로 점심을 들러 간다는말을 들은 후, 그녀가 정오 무렵 살구빛 새틴 드레스를 입고석양의 구름과도 흡사한 미묘한 빛깔 얼굴로 집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 순간 나는 내 앞에 조개껍질의 반짝이는 분홍빛 진주모 사이로 포부르생제르맹의 온갖 쾌락이 그작은 부피 안에 담겨 있는 모습을 보는 듯했으리라. - P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