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주권의 이상은 일단 개념이 적립되자마자 곧바로 모든 정치체제가 어떻게든 지켜야 할 표준이 되었다. 이것은 19세기의 진정한 신생 사물이었으며, 정치적 기대의 혁명이자 정치적 공포의 혁명이었다. 정치제도를 둘러싼 투쟁은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통치자의 ‘정당성‘과 그가 속한 신분집단의 오래된 권리를 어떻게 지켜낼지는 더 이상 정치의 핵심문제가 아니었다. 이제는 공동선에 관한 의사결정에 누가 참여할 수 있으며 참여해야 하는지가 정치의 핵심문제가 되었다. - P1624

영국의 법치개념은 제국이란 통로를 통해 모든 대륙으로 전파되었다. 비유럽인의 시각에서는 영국의 법치제도는 식민주의의 색채가 강하기는 했지만 현지인 통치자가 통치하는 이웃나라의 법치 상황보다 못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유권자의 범위는 단계적으로 확대되어왔다. 유권자범위의 확대는 부분적으로는 혁명투쟁의 전리품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위로부터의 타협의 결과물이었다. - P1635

‘잭슨 민주주의‘와 함께 미국은 1776년 이후로 다시 한번 세계 역사상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길로 들어섰다. 19세기의 마지막 1/3시기 이전에 유럽 어디에서도 이처럼 경쟁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일만큼 자유로운 논조가 가득한 ‘대중민주주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여 여러 차례 정권교체를 경험했고 보편적 남성 투표권이 실현된 후에도각 주의 지사가 지니고 있던 권력이 아직 약화되지 않은 프랑스에도이런 형식의 민주주의는 없었다. - P1639

정치운동과 시민조직은 신분에 대한 고려에 얽매이지 않는 내부기능을 통해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가 되었다. 이것은 미국과 영국만의 상황은 아니었다. 평등에 대한 요구는 흔히 사람들이 평등하게 모이는 소집단, 단체, 조직을 통해 표출되며 상호 제약 없는 소통을 통해 실현된다. 더 큰 규모의, 충돌이 빈번한 정치무대에서 평등에 대한 요구는 남김없이 표현된다. 이것이 사회주의와 그것과 연관된 풀뿌리 운동의 핵심이다. 예컨대, 많은 증거가 증명하고 있듯이초기의 독일 사회민주당은 오늘날의 정당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연합된 운동이었다. - P1642

19세기의 마지막 1/3시기 이후로 민간경제 부분에서 점차로 국가관료제도를 대규모로 복제하기 시작했다. 관료제도는 프로이센과나폴레옹시대 프랑스의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 유럽의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유럽 이외에 중국, 오스만제국, 일본에도 관료제도의전통이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며 이들의 관료제도는 ‘전근대적‘ 이라거나 ‘세습적‘ 이었다고 서둘러 평가절하해서도 안 된다.
19세기에 이들의 전통은 서방의 영향과 충돌하면서 다양한 결과를낳았다. - P1649

영국의 (인도) 식민지 관료제도는 국가기없는 정치지평에서 어느 날 갑자기 솟아오르지 않았다. 무굴제국과그것을 계승한 역대 정부의 핵심은 중국과 베트남 같은 관료조직이아니었다. 그들은 문관의 다양한 위계와 성숙한 문서제도를 갖추고있었지만 엄격하고 세밀한 공무원 관리체계를 갖지 못했다. 인도문관제도(ICS)는 그러므로 당시에 존재하던 기반 위에서 제한적으로수립될 수밖에 없었다. 인도문관제도는 동인도회사의 관리체계를직접 이어받았다. 동인도회사는 18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조직구조 가운데 하나였지만 여러 면에서 현대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었다. 직위의 분배는 객관적인 업적평가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후견제도(Patronage)를 지키고 있었다. - P1651

중국(또한 베트남)의 관료제도는 완전히 ‘전현대적‘ 이지는 않았다. 중국의 관료제도는 두 가지 측면을 결합한 것이었다. 하나의 측면은 가족관계 또는 후견관계를 초월한 비인격적 원칙을 지킴으로써 고도의능력위주 인재선발방식을 실현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경우는 더 나아가 이런 원칙과 세습귀족의 지속적인 고위 행정직 점거 현상이 상호 용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P1655

오스만제국에서 (유럽이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수백 년 동안 통용되었던 후견관습이 하루아침에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따르는 인사정책으로 대체되지 않았다. 두 가지 조류와 관념은 충돌하면서 동시에 서로 영향을 주었다. 1839년 이후의 탄지마트(Tanzimat) 개혁은 새로운 관료계층을 제국의 핵심적인 엘리트계층으로 만들어 놓았다.
1890년, 이 직업 공무원 집단의 숫자는 최소 3만 5,000명이었다. 백
년 전에 수천 명의 필사원은 모두 수도 이스탄불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1890년이 되자 이스탄불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소수의 신식 고급관원뿐이었다. 오스만 관료체제의 지방화는 19세기 후반에야 중국이 수백 년 전에 걸어간 길을 따라갔다. - P1656

일본은 독특한 관료제도의 현대적 형식을 찾아냈다. 그러나그것은 절반의 현대성이었다. 메이지시대의 정치질서에서 개인의자유와 인민주권은 낮선 사상이었다. 일본에서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계약관계라는 유럽적 관념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이리하여 군주가부장제는 합리적 관료체제의 시대에도 지속될 수 있었다. 일본의1889년 헌법은 천황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이며 ‘신성불가침‘의 존재로서 통치권을 독점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유럽 모형을 이탈했다. - P1658

19세기와 20세기에 각양각색의 경찰제도가 전파되면서 세계적인 범위에서 경찰력이 확대되었다. 경찰제도는 종주국의 수도에서 식민지로, 때로는 샴과 일본 같은 국가의 도입에 의해, 나아가 각 제국 내부에서도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 P1672

역설적이게도 (파가론 연구에서 이론화가 부족했던) 권력의 집적이 다른 영역 —— 민족주의 강령 —— 에서는 긍정적으로 수용되었다. 아무리 반동적인 군주라도 이제는 ‘짐이 곧 국가‘라고 말 할 수는 없었지만 국가가 곧 민족이란 관념은 널리 퍼졌다. 국가에 유익한 것이라면 민족에게도 유용했다. 이렇게 국가권력 합법성의 기반 개념이 바뀌었다. 민족국가는자기 고유의 존재이유를 갖게 되었다. 그 존재이유는 역사에 깊이 뿌리내린 왕조의 합법성이나 정치적 실체로서의 유기적 조화가 아니라 ‘민족이익‘ 이었다. 누가 민족의 이익을 정의할 것이며 나아가 그것을 정치로 전환시킬 것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 P1691

달리 말하자면 국가의 강성은 결코 인류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세계적 재배치의 불균형한 결과였다. 다른 국가 보다 약하거나 낙후한국가는 쉽게 공격을 받았다. 약한 국가는 잠식당하거나 정복당할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근대 초기 유럽인의 상상 속에서 ‘동방‘국가는 모두 백성을 지푸라기로 아는 ‘폭정‘의 국가였다. 물론 사실은 전혀 달랐다. 방대한 관료기구를 가진 중국도 그렇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19세기에 아시아의 통치자들은 유럽 민족국가가 강력한 관료기구와중앙집권제를 건설한 방식을 빌려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 했다. - P1692

제도 설계의 기본 의도는 정치 메커니즘의 단순화였다. 영국의 계몽사상가이자 공리주의 (功利主義) 학설의 창시자 제레미 벤덤(JeremyBentham)은 민주주의 이념에 관해 말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책임통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간권력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가장 명쾌하면서 모든 민주정치의 강령이되는 기본 사상이다. 인민과 통치자는 가능한 한 중간 고리를 줄이고 직접 대면해야 한다. 그들을 연결시키는 것은 대의제도라야 한다. 대의제도는 선거와 대표 파견의 과정일 수도 있고, ‘신비한 연합‘ (unio mystica) — 군주 또는 독재자가 국가를 대표한다고 주장할 때 ‘인민‘이 박수를 치든지아니면 ‘사실상의‘ 의사표시를 통해 지지를 보내는 방식을 통해구현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민족국가의 정치제도는 민족적 동질성과 헌법구조의 단순성을 기반으로 한다. - P1694

최소한의 기대치는 있었다. 모범시민은 개인이익의 추구와 민족 전체를 위한 희생 사이에서 훌륭한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이어야 했다.
세기가 바뀔 무렵 많은 국가의 공적영역에서 사람들이 생각한 문제는 시대와 함께 나아가는 문제였다. - P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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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타이가의 시간여행,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다 - 모스크바에서 바이칼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여행자 K 지음 / 시대의창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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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중 여행에세이를 좋아한다.

겁이 많고 소심한 내가 대리만족할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

헌데 생각보다 책에 대한 평이 너무 없어 놀랐다.

그리고 그마저도 평이 별로다.

음. 너무 기대가 커서였을까.


하지만 나는 읽어보니 이 분의 성정이 느껴졌고 잘 읽혔다.

내 스타일이었나보다.

두고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여행기는 어차피 그 당시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이야기이고

언제나 최신으로 갈아치워지므로 별 문제는 없다 생각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여행을 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 내 꿈이었다.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가기가 그렇지만

갈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옆지기를 설득하는 일이 우선일 것 같다.

몇 차례나 꼬드겨봤지만 꿈쩍을 하지 않았다.

혼자 간다고 하니 위험해서 안된다고 하고.(어쩌라는 거냐)


참! 여행기 중 러시아 혁명기를 거쳐간 조선인들의 이름이 종종 나오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운 것은 문장이 좀 뻔하다는 것~?^^;

그래도 여행의 설레임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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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30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베리아횡단열차 타보고싶어요. 부산에서 북한 찍고 시베리아 넘어 유럽까지 가는 날이 오길 ㅎㅎ 저희 옆지기도 집나가면 고생이란 주의랍니다 ~

거리의화가 2022-01-31 21:12   좋아요 1 | URL
너무 타보고 싶습니다ㅜㅜ 언제나 타볼지. 죽기 전에 북한은 가볼 수 있겠죠.
옆지기가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큰일이에요. 점점 더 안 움직이려고 하니...ㅋㅋ
 
알라딘 블렌드 다이어리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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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내 취향의 원두다. 바디감이 무겁지 않으면서 개운하고 깔끔하다. 종종 이용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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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일상적이고 삶에 묶이는 일을 요구당하는 존재로 취급받던 여성들이었다.
남성됨의 정치는 삶이 평범하다고 보았고 이를 넘어선 차원에서 번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디 브라운은 이 카리스마적 영웅은 시대착오적이며 오늘날의 정치는 이익의 정치만이 남아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진정한 정치도 진정한 남성됨도 죽어 있다는 소리다.

그동안 여성들은 인류와 정치에 속할 자격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여성들은 남성됨을 쫓기 위해 남성과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를 대체로 수용하는 입장에 있었다.

이제 우리는 남성이 배제하고 거부하고 탄압하고 부정한 것을 가져와 통합해야 한다.
남성성은 문제가 없다. 제도화된 남성됨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 소외된 남성의 정치가 문제라는 것이다.
육체와 이성이 분리되어 있는 현재와 제도화된 정치는 반쪽 짜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추구할 정치 형태는 남성적 가치를 여성적 가치로 교체하는 방식은 결코 아니다.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는 방식의 이분법은 너무나 단순하고 조야하다.
현재 잘못 깔린 판 위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반목과 전쟁을 피하고 새롭게 판을 깔고 형성된 정치 조직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판을 바꾼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용기를 내야 한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권력이 생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여성이 권력 위에 있었던 적은 없지 않나.
우리의 목소리는 무시되기 일쑤였고 제도권 안에서 박탈되고 격리된 채 살아왔다.
여성은 이제부터라도 정치권력의 경험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웬디 브라운이 주장하는 것은 결국 제도권의 정치는 여성의 목소리가 철저히 무시되고 배제된 형태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베버를 통해서 그들의 정치 이상의 한계를 엿보았다.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편가르지 말고 단순한 통합도 아닌 새로운 정치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대목이 인상깊었다.

현실의 정치는 썩어 있고 대립과 반목의 극한으로 피로하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정치판에서 그저 싸움의 도구로 취급되고 있다.
이러니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 커져야 하고 정치적 용기를 내야 한다.


피에쓰) 관련 도서들이다. 

어렵지 않은 입문 또는 개론서들을 골랐고 막스 베버는 언젠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근대 역사를 보다 보면 종종 그의 이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렌트도 마찬가지!!!




 





남성됨은 삶, 단순한 생존, 필멸성, 일상, 리듬, 자연과 필요의 개입 등을 초월함으로써 실현된다. 또한 끈질긴 불멸 추구를 통해, 특히 삶과 비교되거나 대조되는 이상과 제도의 건설을 통해 손에 넣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육체 욕구 필멸성을 초월하기 위해 분투하고 이런 것들 너머의 행동 범위에서, 즉 이런 것들이 사라지는 영역에서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때로는 소란스럽고 때로는 미묘한 이 노력의 잔향은 자신을 위해 고안한 기획과 그 자신이 거부하고 억압하고 탄압한 ‘삶’, 이 모두에 들어 있다. 이 ‘삶’이 저열함만으로 환원되는 사이, 이 기획은 ‘삶의 저열함’에서 멀어진다.

서구의 정치적 인간은 육체에 덫, 무기, 도구, 기반, 정신에 대한 저주 등 다양한 이미지를 덧씌운 뒤 그것을 인식해 왔다. 그리고 육체에 대한 이 가치 평가를 자신이 건설하는 정치로 가져다가 제도화한다. 인간의 개별 육체, 육체의 관리 영역, 정체 등은 모두 잘 해 봐야 도구나 기반일 뿐이며, 보통 인간과 인간의 정치 기획에 짐이 되는 것, 자극물, 위협으로 여겨졌다.

인간은 형상 부여자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상정하고, 형상 부여를 통해 정치를 구축하고, 정치를 인간의 목적이라고 부르며,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형상을 부여할 권리를 타고났다고 상상한다. 형상을 부여하면서 점점 더 큰 삶의 공간을 통제하고 지휘하고 정복하는 힘이 인간의 존재 이유이며 남성됨 정치의 국가적 이유다.

정치는 (조직적 약탈, 노략질, 강간 등) ‘무의미한 폭력’, 즉 육체와 육체노동의 열매를 전유하고 철저히 파괴하려는 남성적 유대에서 나온다. 이런 의미 없는 폭력은 자신을 인간 존재의 목적으로 해석하길 멈추고, 내적 지배와 외적 공격의 제도로 발전해 나아간다.

마키아벨리와 그리스인에게 정치의 ‘특별한’ 본성은 비르투와 아레테로 상징되는 정치 영웅의 특성으로 구현된다. 베버도 진정한 정치가를 영웅이라고 부르지만, 베버식 정치의 특별한 차원은 그가 진정한 정치가와 카리스마적 지도자 사이에 구축한 정체성에서 좀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카리스마는 ‘평범함을 넘어선’ 차원에서만 번성하고, 일상적이고 삶에 묶이는 일이 요구될 때는 빠르게 썩어 문드러지기 때문이다.

베버의 카리스마적 영웅은 시대착오적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거대 정치는 사라졌으며, 이익의 정치와 육체적 사회적 존재의 정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의 정치는 시시하고 하찮고 썩었다.

자유주의 국가의 형식상 정치권력은 ‘국익’, 즉 시민의 특정 이익 및 일반적 안녕과 병치는 ‘명분’을 주장할 때 표현된다.

역사는 인간 존재와 행위를 거의 모든 차원에서 남녀로 나눠 왔기에 여성을 더욱 ‘충실하게 인간적인’ 젠더라고 볼 순 없다. 남녀의 구축 과정 모두 편파적이며, 편파적인 내부에서 인간의 경험은 모두 젠더화된다. 오직 남녀의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진정한 자유, 즉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우리 존재를 위한 지속적이고 다양한 발명을 가능케 하는 자유는 우리라는 존재, 우리가 생존을 위해 해야만 하는 것, 필요의 길에서 우리가 대면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정복하기를 그칠 때 비로소 얻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집단적이고 탈중심화된 생산의 소유권과 통제라는 기본적 민주사회주의 계율과 재생산 노동의 집단 책임이라는 기본적 급진 페미니즘의 계율이 실현될 것이다. 이와 함께 훨씬 많은 것들이 뒤따를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쾌락적이고 시적인 움직임은 물론이고 고통, 폭력, 질병까지 한데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자연과 육체에 투항하자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부적절하다.

‘육체’라는 딱지가 붙은 여성은 서구 문명에서 필요와 섹슈얼리티 양쪽 항목을 주로 담당했다. 그 결과, 서구 문명 속 여성은 자기 일에서는 비하되고 고립되고 억압당했고, 성적으로는 대상화되고 침해받았다.

사실 필요와 욕망은 모두 창의적 가능성의 장일 수 있으며, 그 어느 쪽도 태생적으로 우리를 결정짓거나 노예화하지 않는다.

인간의 열정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미지의 영역이며, 주요 영역은 미개척 상태로 남아 있다. 게다가 인간의 열정은 소위 말하는 ‘생각’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은 존재를 통해 구체화되고 미뤄지면서도 튼튼해지고 사고의 반대편에 놓이게 된다.

어떤 삶의 형태를 만들어 내며 책임을 지기보다 통제된 조건하에서 살아가는 편이 쉽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 권력을 취하거나 강해지기보다 권력 밑에서 살아가기가 더 쉬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안락함과 편안함은 자유가 약속하는 보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저 살아가는 것 이상을 원한다. 단순히 오래 살기보다 세상과 창의적 적극적으로 마주하며 살기를, 심지어 세계가 움직이는 항로 가운데 어떤 것을 결정지으며 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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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30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의 이 글을 읽으니 제가 읽은 책의 내용이 정리되는 것 같아요. 저는 책을 읽을 때 전체적 윤곽을 잡지 못하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정리해둔 걸 보니 참 좋습니다.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1-30 20:07   좋아요 0 | URL
도움을 받으셨다니 기쁩니다^^ 다락방님도 철학자들 이론 읽어내느라 고생하셨어요. 다음 달 책은 아직 사지를 못했네요. 지금 주문해봤자 설 지나서 올 것 같아서 다음주에 주문하려구요. 다음달 책은 이것보단 쉬울거라 믿으며…ㅎㅎ
 



‘일상의 거친 투쟁‘에서 생겨난 주정주의, 즉각성이 정치를 감염할 것이라는 베버의 두려움은 인구의 다수에게서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식화와 공명한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한편에 있는 욕구, 감정과 다른 한편에 있는 자유, 합리성의 대립 관계를 다시금 보여 준다. 정치에 적절하게 접근하려면 정치를 오염하는 생존 행위에서의 여유와 충분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경제적 이해관계를 오염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강력한 권력 본능이라는 긍정적 자질을 갖춘 정치적 지배층을 불러내면서 베버는 권력, 명망, 나라의 영광, 영웅적 리더십 같은 정치적 미학을 찾아 분투한다. 이 미학은 윤리, 사회, 문화, 경제 등 그 어떤 것이든 ‘공공선‘을 지도 목적으로 삼을 법한 정치적 실천의 반대편에 존재한다.

베버는 정치란 오직 정치적 연합과 지배에 활용되는 수단으로만 제한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정치 연합이 특히 연합 행동이 모든 가치를 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통제 수단의 과감성 때문"이다.

베버에게 적법성은 충성, 준수, 복종 따위를 얻는 것과 관련된다. 그것이 지배 구조를 ‘올바르게‘ 보이도록 만들지만, 실제로 지배 구조가 그런지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적법성은 힘 있는 이들에게 도구로 필요하고, 힘없는 이들에게만 가치의 차원에서 소중히 여겨진다.

국가를 독특하면서 자율적이게 만드는 것은 그 국가의 권력에 대한 전면적 개입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의 점유다. 힘 있는 이들의 관점에서 볼 때 민족은 그 밖의 모든 것, 즉 기껏해야 권력에 간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행동과 사람을 포괄한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는 상호의존적이다. 국가는 민족문화의 ‘명망‘을 보호하고 증진하며, 민족은 국가의 위업을 위한 근본적 토대가 된다.

도구적 합리성은 어떤 목표든 그리로 가는 가장 명확한 길을 보여 주고, 그 목표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대상의 활용이나 지배를 수반하며, 자연 습관 종교 전통 등에서 풀려나게 하는 최고의 해방자다. 따라서 도구 합리적 행동의 자유는 특정 목표를 이루기 위한 권력의 외적 제약에서의 자유다.

그가 근대 세계 합리화의 원인이자 결과로 본 두 가지 근대 ‘체계‘는 자본주의와 관료제 국가다.

경제 사회 조직의 한 양상인 자본주의에는 상호 연관된 두 가지 차원의 합리화가 뒤따른다. 하나는 생산자를 생산수단에서 분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수단을 생산 목표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베버의 시각으로 볼 때 자본주의는 바로 이 분리 덕분에 가장 효율적인 생산양식이다.

노동자가 생산수단에서 분리되고 그들 자신이 생산수단이 되어 감에 따라 생산의 목표와 수단은 사회에서 구별되는 두 부류로 나뉜다. 기술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합리화는 생산양식의 합리화와 노동자를 그들의 생존 수단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수반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합리화는 대중을 이윤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이윤 추구가 합리화됨으로써 발생한다.대중은 그렇게 수단이 되면서, 순전히 도구 합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강제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수자==반된 다른 분리처럼 행정 수단(국가권력)에서 관료를 분리해 낸 것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안정적이고 정확하게 믿을 수 있으며, 따라서 가장 강력한 조직 형태다.

"관료주의적 행정은 근본적으로 지식을 통한 지배를 뜻한다." 관료주의는 특화된 훈련과 특권적인 정보 접근 양쪽 모두에 내재하는 권력을 키워 낸다. 그리고 이 함양의 목적은 관료주의 자체의 권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도구적 합리성을 활용하여 구현된) 특정 권력과 자유에 대한 추구는 삶 자체를 위한 투쟁에서 자율적이며, 자본주의와 관료제 국가야말로 오히려 생존경쟁을 강화해 왔다.

권력과 통제는 도구적 합리성을 통해 특히 경제와 국가의 영역에서 극대화된다. 그러나 도구적 합리성에는 목표와 수단이 잠재적으로 불일치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에서 목표 자체는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합리화 과정에 나타나는 지배 의지, 이것이 정점에 이르면 마침내 ‘여성적인 것‘이 무너져 내리는 무게가 된다. 이때 베버가 개념화한 여성적인 것을 위협하는 것이 바로 도구적 합리성의 출현이라는 기술이다. 남성성의 외적 세계를 구현하는 자유 통제 지배 권력에의 의지는 자본주의와 관료제 국가라는 총체적 지배 체제를 만들었지만 그것이 완전히 실현되려는 찰나에 남성됨 자체가 통째로 으스러져 버린다.

정치적 ‘시실주의‘와 ‘책임 윤리‘에 베버가 헌신했을지라도 그것이 국가권력에, 국제정치에서 패권을 얻기 위한 권력 행사에, 자본주의 생산성에,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무자비한 기업가 정신에 그가 전념한 것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그는 이런 제도와 실천이 사회와 개인에게 무엇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목적이 되어 버린 수단임을 통찰력 있게 인식하고도 그런 제도와 실천을 옹호하고 변호했다. 하지만 가장 깊은 역설은 베버의 방법론에 있다. 왜냐하면 베버는 이 방법론을 통해 인간 존재, 문화, 연합, 행동에 대한 연구를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베버가 고안해 낸 정치 영웅은 고전적 남성됨의 망토를 두른 채 근대 남성됨의 피조물, 즉 막강한 국민국가의 힘을 행사한다. 이 영웅은 남성의 통제와 지배 추구에서 비롯한 합리화된 정치적 경제적 삶이라는 기구를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목표에 따라 그것을 동원하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 정치가는 제도화된 남성됨의 힘, 즉 관료제 국가를 휘두르는 남성 전사다. 그는 모든 남성적 정치 가치, 즉 사적 권력, 영웅주의, 폭력, 지배, 뛰어난 것에 대한 헌신, 일상적 존재를 비롯해 이 모든 것이 한데 녹아든 도구적 합리성에 대한 반감 등을 한데 구현한다. 베버는 진정한 정치가라면 반드시 책임 윤리에 복종해야 한다고 고집하는데, 도구적 합리성만으로도 그가 좇는 수준의 정치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리고 도구적 합리성은 책임 윤리와 전혀 공존할 수 없다. 베버의 지도자 개념과 정치 자체에 대한 개념은 권력 수단에 대한 도구적 관계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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