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이야기 1 : 독립의 여명 1763~1770 - 혁명은 경제에서 시작된다 미국인 이야기 1
로버트 미들코프 지음, 이종인 옮김 / 사회평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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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미들코프의 미국인 이야기 1권은 독립의 여명이 부제다.

이 책은 이야기체로 서술되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역사를 접할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물에 대한 탁월한 묘사가 돋보였고 명사를 수식하는 미사여구가 재치 있게 느껴졌다.
그러나 딱딱한 문체의 역사서를 읽는 것에 익숙한 독자라면 오히려 그것이 군더더기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인상적인 사건과 인물 위주로 소감을 정리하려 한다.


18세기 중반 영국은 북아메리카와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7년 전쟁을 치뤘다.
영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했다.

윌리엄 피트는 영국 제10대 총리(1766~1768)였는데 북미 대륙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피트는 18세기의 경이적인 인물이었고, 음울한 정치가들과 몽매한 대중을 동시에 환호하게 만든 지도자였다.
특별한 호소력을 가진 그의 기질과 심성으로 강력하게 일을 완수했으며, 사회적 통념과 반대를 모두 무시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피트는 자신만의 독창성을 지닌 지도자였다.
그는 자신의 그런 성품대로 일을 완수했으며, 평범하고 뻔한 것을 경멸하면서 화려한 웅변으로 자신의 입장을 멋지게 설명했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면서 영감까지 불어넣는 그의 웅변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 P24

그는 상대를 사로잡는 법을 알고 있었고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전쟁의 주력군을 캐나다와 서부 지역에 투입시켰던 것이 성공하면서 7년 전쟁 성공의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피트는 전쟁을 스페인까지 확대하기를 원했고 새로 즉위한 조지3세는 이를 불편하게 여겨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 무렵 아메리카 식민지는 인구가 증가하고 상업의 발달, 무역의 활발한 전개로 경제가 성장하고 도시로의 인구 이동과 계층의 분화가 생겨났다.
도시에서는 빈민층이 생기고 농촌에서는 대지주가 등장했다.


종교의 분화도 있었다. 일명 대각성 운동이다.

식민지에서는 교회를 설립하는 데 평신도가 처음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목사들이 바다를 건너와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을 훈련시키기는 했지만 평신도는 교회의 주도권을 그들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이런 평신도의 주도적 역할과, 여러 방식이 식민지 사회의 종교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중부 식민지나 남부 식민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율권을 누린 뉴잉글랜드의 회중교회에서도, 교회 주변 사회가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 P104

대각성 운동은 사회 유동성, 경제성장, 인구 증가 등과 함께 회중교회 민주주의를 부양한 원천이었다.
종교의 부흥에 적극적인 목사들이 신자들에게 매달리면서 공동체 내에서 그들의 권위는 필연적으로 줄어들었다.
권위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 P106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는 기성 교회 제도의 권위를 무너트렸다.
개인적 성령 체험과 새로운 탄생이 진정한 종교를 의미한다는 대각성 운동을 통해 당대 사람들은 청교도주의 프로테스탄티즘을 떠올리게 된다.
도덕과 올바른 행동, 공동체 권리를 강조하는 사회 윤리와 개인주의의 가치관이 그들을 자연스레 이끌었다.


영국 내각은 조지 그렌빌이 총리에 오르며 인지세법 등 식민지 과세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조지 그렌빌은 영국의 제8대 총리(1763~1765)로 뷰트 총리에 이어 내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다른 정치가들보다 더 날카롭고 야망이 컸지만, 전통적인 영국 정치가였다.
그는 정치적 연줄이 풍부했는데 형인 템플 백작 리처드는 수년 동안 영국 정계의 거물이었다.
두 형제는 번창하는 영국 정치 가문에서도 독보적인 대표 주자였고, 이 가문의 힘은 30년 사이에 몇 개의 카운티에서 의회 전체로까지 확대됐다. - P118

1763년 영국의 부채 규모는 1억 2260만 3336파운드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원금에 대한 이자만 매년 440만 9797파운드나 되었다. 부채에 대한 이자 처리는 내각을 힘들게 했다.
게다가 그렌빌이 취임했을 때 영국 무역마저 위축되어 있어 영국인에게 세수를 더 높이 거두는 것은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렌빌 내각은 13개 아메리카 식민지에 당밀세를 적용하려고 시도한다.

그렌빌은 재무부 관리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당밀에 과세하면 세수를 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렌빌은 당밀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전 세관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또 다른 조치를 취했다.
1763년 7월 관세청의 조언을 받아서 관세 징수관들에게 모두 현지에 부임하여 징수 업무를 수행하든지 아니면 사임하라고 지시했다. - P133

설탕법은 외국 당밀에 대한 관세를 갤런당 3펜스로 낮춘 것 이상의 일을 했다.
이 법은 무역을 규제하고 세수를 올리기 위해 다른 관세들도 부과했다.
또한 오로지 영국으로만 선적할 수 있는 물품들을 지정했는데, 특히 그중 목재는 식민지 무역에서 가장 귀중한 품목들 중 하나였다. - P134

1760년 후반부터 경제 불황이 시작되어 경기가 체감되자 아메리카인들은 불황의 원인을 설탕법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식민지로 보내진 세금 징수관들은 무역 관세를 징수하겠다 압박했으니 이는 아메리카인들을 분노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는 아메리카 영국 세관 곳곳에서 충돌을 일어나게 만들고 반대 운동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그렌빌 내각은 멈추거나 후퇴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간다. 인지세 요청이다.

1765년 2월 영국 의회가 소집되기 직전, 절망적 상태에 빠진 식민지의 대리인들은 동료 네 명을 보내 마지막으로 그렌빌을 만나게 했다.
전기 실험으로 명성을 얻었고 세상사에 밝으며 약간 냉소적인 벤저민 프랭클린, 아메리카에서 금방 건너온 강인하면서도 철저하게 보수적인 자레드 잉거솔,
영국 의회 의원이면서 코네티컷 매사추세츠 펜실베이니아의 대리인인 리처드 잭슨, 역시 의회 의원이고 사우스캐롤라이나 대리인이며 예리하고 총명한 찰스 가스 등이었다.
그랜빌은 회담 초반부에 아메리카인에게 불안감을 안겨준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이 국방비의 일부를 지불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며 의회를 통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말했다. - P156

아메리카인(자유의 아들들)은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폭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한다.

소수의 사람들은 매사추세츠 인지 분배관으로 임명된 앤드루 올리버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을 로열 나인이라 불렀는데, 나중에 자유의 아들들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들은 장인과 가게 주인 등으로 구성되었고, 존 길과 함께 《보스턴 가제트》를 발간했던 인쇄공 벤저민 이데스도 일원이었다.
로열 나인은 하노버 광장에 있는 체이스와 스피크먼 증류소에서 자주 만났고, 거기에서 8월 14일의 폭동을 계획한 듯했다. - P181

이들은 '영국의 어리석음'이 '미국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구호를 내걸고 세관 관리의 집들을 파괴하며 인지세법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보스턴 이외에도 각지에서 인지세법에 대한 반대 논쟁이 벌어지고 폭력 저항이 일어난다. 결국 영국 의회는 1766년 3월 18일 법안을 철회한다.


인지세법은 폐지되었으나 영국인들은 여전히 아메리카에 과세하려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윌리엄 피트가 또 등장한다. 그는 정부 수반이 되자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하여 채텀 백작 호칭을 수여받는다.

채텀이 구성한 내각은 능력은 훌륭하지만 기질이나 야망이 서로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 P285

채텀 내각에 참여한 인물 중 찰스 톤젠드가 있다.

톤젠드는 괴팍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아메리카의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의 소신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아메리카에 나가 있는 영국 관리는 그곳 인민의 통제를 받아서는 안 되고 독자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P287

톤젠드는 토지세를 낮춘 대신에 다른 곳에서 추가로 세수를 확보해야 했는데 이를 아메리카에서 거두어들이기로 한다.
이에 따라 아메리카 관세법, 세입법, 정지법을 추진한다.

첫째, 숙영법을 준수하기로 동의할 때까지 뉴욕 식민지 의회의 기능을 정지시켜야 한다.
둘째, 납, 유리, 종이, 화가의 물감, 차 등의 품목이 식민지에 수입될 때는 관세를 납부해야 한다.
셋째, 각 식민지에 본부를 둔 아메리카 관세 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

이 제안은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 P293

이 세 가지 법은 식민지에 대한 영국 의회의 묵은 태도를 보여준다.
아메리카인은 영국 의회에 철저히 종속적이어서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톤젠드가 추진한 법에 식민지인들은 자유 침해를 주장하며 들고 일어났고 시작은 보스턴이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새뮤얼 애덤스다.
애덤스는 시청 하급직 자리에서 일하다 세금 징수관으로 일했다고 한다.
정치 단체인 코커스 클럽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장인, 상인, 직인, 변호사, 의사 등으로 구성된 이 곳은 시청회의에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결성된 곳이었다.
이곳에 새뮤얼 애덤스가 속해 있었다. 코커스 클럽은 인지세법 위기 때 자유의 아들들로 활동했고, 톤젠드 법으로 저항 운동에 앞장서게 된다.

새뮤얼 애덤스는 '데테르미나투스'라는 필명으로 1768년 여름 많은 글을 썼다.
그는 사람들이 분노를 느끼는 이유를 이렇게 요약했다.
나는 맹세하거니와 총독 각하와 마찬가지로 '폭동, 소요, 불법 집회'의 친구가 아니다.
그러나 인민이 억압당하고 그들의 권리가 침해되며 그들의 재산이 침탈되고 그들의 머리 위에 감독자가 배치될 때, 해군력이 눈앞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를 때,
그리고 그들이 날마다 군부대의 주둔으로 위협을 당하고 의회가 해산될 때,
그리하여 남아 있는 정부라는 것이 밀실 회의처럼 은밀하고 고위 공부원과 하급자들이 주위에서 우글거리고 연금 수령자들이 무례하게 등장할 때,
이럴 때 인민은 불만족을 느끼는데, 결코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 P329

애덤스는 대중의 불안과 우려를 한 편의 글로 잘 표현했다.
대중의 열망을 진작시키기 위해 언론에는 이와 같은 지속적인 규탄의 글이 올라왔다.

보스턴에 영국군이 파견되었고 이는 아메리카인의 불만을 더 키우게 되었다.
군대 주둔을 위한 숙영 장소 등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힐즈버러 식민지 장관의 태도는 아메리카인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는 영국 상품의 수입을 거부하자는 운동으로 확산된다.

수입 거부 운동의 전략들은 다양한 집단이 협조해서 가능했다.
여성들은 옷감을 직접 짜거나 가내 생산에 몰두했고, 학생들은 수입 와인이나 차를 마시지 않았다.
온갖 종류의 장인들과 직인들은 헌법적 원칙을 옹호하는 한편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려 했고, 상인들은 자신들이 납부하는 세금에 대해 발언권을 얻기를 바랐다. - P362

톤젠드 법은 인지세 법보다 더 후폭풍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 폭퐁 기간이 더 길었고 의견 불일치로 논쟁이 많았으며 많은 이들이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극대화된 사건이 보스턴 학살이었다.
보스턴 부두 노동자들과 영국 주둔군 사이 유혈 사태로 번진 사건이다.

전투 대형의 끝에 서 있던 사병 휴 몽고메리에게 얼음덩어리가 날아와 얼굴을 때리자 그는 그 타격으로 쓰러졌거나 혹은 뒤로 움찔 물러나다가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졌다.
그런데 그가 다시 일어서더니 그만 그대로 총을 발사해 버렸다. 이 최초의 총성 직후 짧은 정적이 흘렀고, 곧 나머지 병사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이 불규칙한 총격은 열한 명을 맞추었다.
세 명이 즉사했고 한 명은 몇 시간 뒤에 사망했으며 다섯 번째 사람은 며칠 뒤에 사망했다. 여섯 명의 부상자는 목숨을 건졌다.
그 뒤 24시간 동안 공공질서는 완전히 무너진 것 같았다.
적어도 1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군중이 총격 직후에 사방으로 달아났다.
분노한 군중은 프레스턴, 초병 소대, 영국군에게 복수를 하려 했다.
허친슨은 부대에게 도시에서 철수하라고 명령하고 싶지 않았으나 몇 시간 더 관찰하고 다음 날 도시의 여론을 살펴본 뒤 철수를 명령했다. - P393


학살은 영국의 권력이 아메리카에서 무슨 일을 행하는지 의문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영국과 아메리카의 권력의 기울기가 명징하게 드러난 사건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영국과 아메리카의 갈등은 경제적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고 사람을 폭발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2권에서는 영국군과 아메리카 연합군 간의 전쟁의 서막이 시작된다.


읽어보니 이 책은 이야기체라 한 번에 몰아서 읽는 것이 더 좋겠다 판단된다.
끊어 읽으면 흐름이 중단되어 재미가 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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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3-21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드디어 1권 완독! 추카!추카!ㅎㅎ 2권은 본격적으로 전쟁이 터져서 넓혀지는 전선에 정신이 ㅎㅎ없지만 3권은 폭풍 완독하고 재독하면서 밑줄 왕창 치게 됩니다. 4권 5권 6권 어서 빨리 나와야 하는뎅 ^ㅅ^

거리의화가 2022-03-21 08:32   좋아요 1 | URL
2권 읽으면서 어질어질 왜 이리 얽힌 인물과 전투가 많은지. 완독은 했는데 주중에 리뷰 적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3권 더 재밌을 것 같아 기대중입니다!ㅎㅎ 다 읽고 스콧님 리뷰 읽으면 책 내용 정리될 것 같습니다^^*
 

영국에 대한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아메리카 정치의 당파주의는 더욱 심각해졌다. 실제로 여러 식민지들에서는 인지세법을 철회시킨 것이 오히려 현지 궈력 구도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때때로 주요 관직이나 의회의 장악 세력이 바뀌면서, 사람들에게 어디에서나 어느 편인지를 분명하게 밝히도록 강요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제 각 지역의 정치에서 식민지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사안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즉, 영국의 지배에 대한 적개심 말이다. - P276

식민지 의회의 눈으로 볼 때, 숙영법은 식민지에 세금을 매기려는 영국 의회의 또 다른 시도였다. 원칙과 재산의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고, 식민지 의회는 그 두 문제에서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고 결단했다.
뉴욕시에 병영을 짓는 예산으로 기존 자금에서 3200파운드를 지원했으나, 숙영법이 요구하는 음료, 소금, 식초 등의 공급은 거부했다. 의회는 이런 제한적인 지원을 하면서도 그것이 숙영법의 요구를 따르는 것이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뉴욕 식민지 의회는 1762년부터 이월된 예산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지원이 숙영법의 준수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 P284

어쩌다 보니 톤젠드는 정부가 아메리카에서 돈을 거두어들여야 한다고 장담을 했지만, 곧 세입을 늘여야 할 필요가 생겨버렸다. 왜냐하면 2월에 로킹엄 휘그들이 야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파운드당4실링이던 토지세를 3실링으로 낮추었기 때문이었다. 이 삭감 때문에정부는 다른 곳에서 추가로 50만 파운드를 찾아내야 했다. - P292

아메리카 관세 위원회 설립법, 세입법, 정지법suspending Act은 식민지에 대한 영국 의회의 오래된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것은 아메리카인은 영국 의회에 예속된 존재이므로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톤젠드 법은 그 이상을 해냈다. 이 법은 영국 정부의
분노와 좌절을 표출한 것이었는데, 그 감정 상태는 반항하는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톤젠드 법의 내적 역사에도 근거는 있었다. 영국이 큰 빚을 지고 있으니, 식민지는 가벼운 세금을 납구함으로써 그 부담의 일부를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입품에 대한 과세가 얼마나 합리적인가 하는 의문이 당연히 생겨났다. - P295

과거에 발생한 대부분의 위기 상황과 비교할 때, 혁명은 불가피한 일처럼 보이고 심지어 자연스런 사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혁명은 자그마하게 시작돼 정치기구와 인민 사이의 대규모 대결로 번져나간다. 폭동은 반란이 되고 반란은 전쟁이 된다. 그리고 혁명의 절정에서는 어떤 통치자 또는 계급이 제거되고 국가의 모습이 변모하면서 권력이 이동하거나 적어도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서 현상은 실재와 공통점이 있다. 일반 대중은 옛 권위 기관에 대한 불만이 증가하고, 대중 정서와 새로운 충성심의 성장,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실제 권력의 성장을 체험한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 기존의 권위는 자신에 대한 반란을 진압한 뒤에 타격을 입지 않고 오히려 전보다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공적인’ 혁명으로 가는 과정은 실패, 대중적 지지의 상실, 피로감, 줄어드는 믿음, 혼란 등에서 자유롭지 않다. - P301

회람 편지에는 아메리카에서 퍼지고 있던 사상이 담겨 있었다. 즉, 영국 의회가 제국내의 최고 입법기관이기는 하지만, 그 권위는 헌법이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은 기본적으로 모든 신민은 오로지 그들이 동의한 세금에 대해서만 납부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금 수입으로 영국 관리의 봉급을 지불하는 데에 반대하는 입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항이었다. 헌법은 신민의 평등, 안전, 행복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세 위원회에 대해서는, 하급자와 직위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이 기관의 권위가 식민지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 P314

대의에 대한 대중의 열광을 진작하기 위해 오티스와 애덤스는 언론을 이용해 군대 주둔을 계속 규탄했고, 올리버폭동의 기념일인 8월 15일에는 대포 발사, ‘아메리카의 자유의 노래‘를 포함한 음악, 대행진, 열네 번의 건배 그리고 ‘영광스러운 아흔둘’에 대한 건배로 끝나는 화려한 축하 행사를 펼쳤다. - P330

도시회의는 범죄 단체도 불법 단체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국왕의권위에 도전하는 운동의 외연을 넓혔다.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 중에는 영국군과 싸우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티스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애덤스는 좀 더 말을 많이 했지만 무력 사용을 요구하지는않았다. 쿠싱도 버나드와 허친슨을 식민지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무력 저항에는 반대했다. 그러나 보스턴은 매사추세츠가 아니었고, 주둔군이 정치적 자유를 위협하는 현상에 대한 증오, 긴장, 인식 등이 다른 중소 도시와 내륙의 농촌 마을들보다는 치열했다. - P334

힐즈버러의 어리석음, 그에 대한 매사추세츠 의회의 노골적인 경멸,
영국군의 보스턴 주둔, 리버티호 폭동과 세관 위원들의 강압적인 조치 등이 겹쳐져서, 오히려 회람 편지를 지지하고 톤젠드 법에 항의하는 각 의회의 선언문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사건과 환경 이상으로, 각식민지의 정치상황은 저항운동의 형태와 본질, 시기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쳤다. - P341

탄원서, 연설문, 항의서, 회람 편지 등을 보낸 공공기관들의 조치는표면적으로는 일반 대중의 열정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대중의 불만이 잠재되어 있었고, 그 감정은 곧분노로 변모될 터였다. 새로운 영국 정책에 대한 이름 없는 서민의 우려가 공공기관으로 하여금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촉진제가 되었다. - P347

수입 거부 운동이 점차 확대되면서, 개인들과 일상적인 모임들도영국 제품을 소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거의 모든 식민지 가정에서적어도 영국에서 수입해 온 차만큼은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다른 이들은 영국과 아메리카에서 유행하던 비단과 새틴 재질의 화려한 옷을 포기했다. 남녀를 막론하고 온갖 종류의 사치품이 경원시됐다. 대학생들은 외국산 와인을 마시지 않았고, 문상객들은 외국에서만들어진 상복이 아니라 그 지방에서 생산된 수수한 상복을 입었다.
1765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입 거부 운동은 식민지의 자체적인제조업을 장려했다. - P357

광대한 지리, 집중되지 않은 상업, 세관의 인원 부족 등 여러 요소가결합해 무역 규정을 위반할 기회를 만들어주었는데, 그 규정이라는것도 아메리카인의 눈에는 그리 현명하고 현실적이지 않았다. 어느정도 규모로 탈세와 밀수가 이루어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토리파 역사가들과 세관 관리들은 밀무역의 규모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고, 반면에 휘그파 역사가들과 18세기 아메리카인은 규모를 축소하려고 했다. 당밀법과 이 법을 계승한 1764년의 설탕법을 계획적으로위반하는 행위는 관세가 갤런당 1페니로 인하되고 외국령 서인도제도뿐만 아니라 영국령 서인도제도의 당밀에도 공정하게 부과되자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다른 제품의 밀수는 여전히 성행했다. - P366

시민들은 과거에 거리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고 오로지 민간 당국의 통제만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 경계병과 초병이 병영 창고, 장교 숙소, 공공건물 앞에 떡 버티고 서서 자유로운 왕래를 방해했다. 시민은 본능적으로 보초병의 검문에 응답하지 않았고, 때때로 그런 불응 때문에 보초병들에게 체포됐으며, 저항하면 머스킷 소총의 개머리판이나 총검으로 위협을 당했다. 점령 기간이 꽤 길어졌어도 양측은 서로 양보하지 않았고,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계속 발생했다. 군대가 철수할 때까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불안한 대치였다. - P377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보스턴의 자유와 목숨을 파괴했다. 피해자들은 엄청난 분노를 느꼈고, 영국과 아메리카의 관계를 정의하는 정치 이론을 냉정하게 검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그 뒤 몇 년 동안 아메리카인은 영국의 정치체제에 대해 계속 생각했고 이에 따라 그들은 자신의 정치체제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몇 년 전 식민지에서 널리 존경받은 윌리엄 피트는 영국 의회에 나가서 아메리카인은 "영국의 자식이지 사생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경험은많은 아메리카인으로 하여금 과연 피트의 말이 사실인지 의문을 품게만들었다. 보스턴 학살로 이어진 최근의 역사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들은 영국의 서자일지 모르나, 그래도 아메리카의 적자라는 점이었다.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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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던의 페니

의회는 곧 재산 소유자들의 대행 기관이었다. 그리고 18세기에 현대적 모습으로 식민지 의회의 본보기가되었다. - P239

아메리카인들이 제도적 보호장치로 빈번히내놓은 두 사례로는 오티스의 행정사법부와 관습법이 있었다. 관습법은 신민이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다. 비록 그것이 항구적인 보호를 해준다고 하지만, 법원과 의회는 그것을 수정할 수 있었다. 국왕이 식민지에 발급한 칙허장은 좀 더 견고한 바탕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표에 의한 과세권 등을 포함해 근본적 권리를 인정한다는 칙허장의 명백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국왕이 과거에 칙허를 취소한 적이있고 또다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불안이 존재했다. - P244

대영제국은 잉글랜드라는 중심과 식민지들이라는 기타 구성 요소들로 이루어졌는데, 제국을 단합시키고 상업을 감독하며 공통 관심사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일은 반드시 필요했고 영국의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유일한 기관이었다.
이런 추상적인 국가제도론과 정치 이론에서는 방부제 냄새가 난다. 즉 그 자체로는 무미건조하고 아무런 맛도 없으며 인간의 감정이나 열정이 전혀 깃들지 않은 듯하다. 우리는 권리, 주권, 대표 같은 어휘를 읽으면서 이것이 인간사와 관련된 단어들이며 특히 18세기의 투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지세법과관련한 일련의 현실을 볼 때, 이런 어휘들은 결코 사람들의 감정과 동떨어지거나 분리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어휘들은 엄청난 공포와 불안을 안겨주는 조건에서 생겨났다. - P249

세금, 행정, 안보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아메리카인의 우려와 의혹은 합리적인반응이었고, 그들이 느끼는 불만 또한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인 것이었다.
결국 이처럼 합리적인 불만은 영국의 공공정책, 특히 인지세법에대한 분노로 표출됐다. 물론 동시에 또 다른 종류의 불만도 겉으로 나타났다. - P254

우선 영국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은 사회 내에서 대부분 지도자들의 지원을 얻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 지도자들의 재능과 자원도 동원했다. 반면에 인지세법의 주도적 지지자들은 자신들끼리도 분열되었다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의혹과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가령 매사추세츠의 토머스 허친슨과 로드아일랜드의 토리 준토가 좋은 사례다. - P255

폭도들, 그리고 민중의 지도자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자신들이 철저한 악과 대면하고 있다는 믿음 속에 행동에 나섰다. 개신교의 관심사와 심리상태는 사람들이 도덕과 영생을 과장하도록 만들었고, 보이지 않는 사악한 힘에 대한 공포를 더욱 무시무시한 것으로 증폭시켰다. 이러한 성향이 식민지 사회 내에 널리 확산되어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정서를 지배했다. 사람들의 도덕적·심리적 가치를 강화해주는 개신교가 그런 사고방식과 정서를 권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적 행동의 이유가 정치적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또한 이것은 그들이 믿어온 오래되고 편안하며 선량한 도덕적 규율과도 일치했다. 왜냐하면 폭군의 사악한 의도에 영합하는 게으르고 방탕한 공무원들에 대한 증오는 곧 적법한정부를 신봉하는 정직하고 근면한 자유인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공포와 망상이 식민지 전역에 책임 있는 공공질서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물론 아이러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아이러니는 인지세법으로 시작된 기나긴 위기 상황 속에서 생겨난것이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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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날씨도 꾸물꾸물하고 해서 퇴근 후 문어 숙회에 막걸리를 먹어주었다.

나는 날씨에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편이고 술도 먹어주었으니 무거운 책은 집어던지고 어제는 소설을 읽었다.


오전에 옆지기와 카톡을 주고 받다가 다운되었던 기분이 스르르 풀렸다.

2년 넘게 이동하지 못한 것이 알게 모르게 내 기분을 갉아먹은 이유였던 것 같다.

완전한 해소는 되지 못하겠지만 숨통은 틔울 수 있을 것 같다.



아래는 < 이 주에 눈여겨본 책들 > 이다.



약탈자들

2015년 구판에 대한 개정판이다. 

개발도상국의 빈곤에 대한 문제를 파헤쳐보니 그 이면에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여전히 세계는 부국과 빈국으로 나뉘고 부유한 이들은 점점 부유해지고 가난한 이들은 가난이 대물림되어 끝없이 이어진다.

국가 시스템의 문제와 이득에 혈안이 된 지배-권력층, 만연한 부패, 식민지 역사의 그늘.

결코 현대 한국의 시작과도 무관하지 않은 문제이기에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숨을 참다

팬데믹 3년차. 여전히 우리 사회는 팬데믹과 악전고투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팬데믹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불안정한 자리에서 노동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담고 있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더라도 이들의 삶은 팍팍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온 이후 이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불안정해졌다. 그 근본원인을 따라가보아야 우리 사회 노동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태평양 전쟁 발발 후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을 위해 희생되어야 했다. 

최영우도 그 중 하나인데 남방의 포로감시원으로 5년 간을 보냈다. 그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기록을 담아서 책으로 펴냈다. 

전쟁으로 인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비극에 내몰린 청년.

가해자로, 피해자로 이분법으로 볼 수 없는 이 처참함은 누구도 보상해주기 어렵다.

5년의 시간이 그에겐 커다란 자리로 남았으리라 생각한다.



일제 식민사학 비판총서 시리즈 1~4

이 시리즈를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총서로 출간되는 책인데 읽어봐야 비판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넣어둔다.

총 8권으로 5~8권은 내달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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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3-18 14: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2년간 꼼짝 못하고지내면서 비로소 ‘아 그동안 여행을 다녔던 것이 내 삶을 계속 부드럽게 돌아가게 해줬던거구나‘ 알게 되더라고요. 거리의화가 님, 우리 조심 또 조심하면서 잘 지내봅시다. 곧 끝나겠지요, 곧..

거리의화가 2022-03-18 15:06   좋아요 3 | URL
하... 다락방님 제 삶의 하나의 큰 부분이 여행이라는 걸 요즘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ㅜㅜ 랜선여행도 한계가 있고 참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나봐요. 어쨌든 봄도 되고 했으니 조만간 바람 좀 쐬고 오려고 합니다. 역병과의 싸움은 계속되기야 하겠지만 이제 다들 그러려니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젠간 끝나겠죠-_- 여행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수이 2022-03-18 16: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올해까지 참으면 그래도 내년부터는 이동 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제발 되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와는 정말 거리가 있는 리딩을 하는데 거리의화가님 공간 오면 아 역사서 좀 읽어야 하는데 하면서 반성합니다. 저는 내일 술 마십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3-18 16:59   좋아요 2 | URL
진짜 내년부터는 여행다운 여행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비타님은 다양한 독서를 하시잖아요. 저는 아주 가끔 에세이 및 소설을 읽는 것을 제외하곤 역사 및 사회 분야의 책만 읽습니다^^; 시간이 널널하면 다양하게 읽겠지만 저는 역사 분야의 책만 읽어도 저 죽을 때까지 다 읽고 죽을 수 없을 것 같아서 파는 중입니다ㅠㅠ
ㅋㅋㅋㅋ 주말은 술과 함께. 옆지기가 보드카 사놨던데 따자고 졸라야겠어요ㅎㅎ

라로 2022-03-18 17: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첫 문장에 꽂혔어요!!!^^;;; 문어 숙회에 막걸리 바로 이 부분요!!!
문어 숙회는 뭘까? 계속 생각합니다.^^;;;
반갑습니다 거리의화가님!

거리의화가 2022-03-18 17:08   좋아요 4 | URL
문어숙회 아... 사진을 찍어둘걸 그랬네요.
요즘은 사진을 거의 잘 안 찍어서. 어디 나다니질 않으니.
문어숙회는 문어를 살짝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날회는 아니구요. 저는 날회는 못먹어서 이렇게 익힌 거를 먹습니다.
숙은 한자로 익을 숙(熟)이에요.

그리고 전 왜 라로님 친구로 추가해놓았다고 생각했을까요. 이미 추가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친구가 아니여서 이제야 신청했습니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라로 2022-03-18 17:52   좋아요 4 | URL
아 그렇군요!! 저 부모님 덕분에 문어를 많이 먹어봤어요. 문어 숙회는 제사 지내고 나서 많이 먹고요.^^;;
문어를 통째로 삶아서 올려 놓으시곤 나중에 끝나고 썰어서 맛있게 먹었던,,,

친구 신청 감사합니다. 저는 어지간하면 친구 신청 잘 안하고 잘 안 받고,,, 그렇게 되었어요.
시간이 지날 수록 친구에 대한 뭐랄까 좀 어려운 마음이 들어서요. 그런데 이렇게 먼저 제 서재에 방문해 주시고 신청도 선뜻 해주셔서 감사해요.^^

mini74 2022-03-19 2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술도 늘고 살도 늘고. 괜찮을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 같아요. 소소하고 당연했던 일들이 화가님 말씀처럼 숨통 틔우는 삶의 활력소였나 봐요. 저도 여행가고 싶습니다 ㅎㅎ 조선인 최영우 저도 눈여겨 본 책이네요 ~~

거리의화가 2022-03-19 23:13   좋아요 1 | URL
삶의 활력소가 큰 것이 하나 사라지니 많이 힘들었나봐요^^; 조만간 짧게 여행다녀오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영우 책은 스리슬쩍 다음달에 끼여서 읽을 것 같아요ㅎㅎ
 
[eBook]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1 - 미조의 시대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서수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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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참 많은 문학상이 있다.
몇년전부터 꾸준히 나오는 젊은작가상 을 포함해
대작가의 타이틀을 단 문학상도 다수 존재한다.
젊은작가상 수상작의 경우 매년 단행본으로 나올 때 읽어본 적이 몇 번 있다.
작년은 건너뛰었던 것 같고^^;
그래도 이런 단행본의 장점은 대부분 단편이라 부담이 없고
이야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몰아서 읽거나 나눠서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내겐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처음이다.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
이렇게 새로운 작가를 알게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2014년 등단하여 6년 정도 공백기를 거쳐 첫 소설집을 냈다고 한다.
오늘 신문을 보니 얼마 전에 또 하나의 소설집이 나왔다.
작가의 글을 보니 소설이 아닌 현실을 잘 담고 있어서 쓴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시선이 차갑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5천만원으로 전셋집을 찾아다니는 모녀. 우울증을 겪는 엄마. 집을 나간 뒤 알바를 전전하는 오빠. 잦은 이직과 퇴사로 취업문을 자주 두드려야 하는 나.
성인 웹툰 보조로 원형탈모증까지 겪게 된 수영.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오빠라곤 있지만 집을 나가버려서
사실상 가장은 나(미조) 이다.
미조는 경영 악화 등으로 회사를 이직해야 해서 본의 아니게 취업문을 여러 번 두드리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면접관의 싸늘한 질문 뿐이다.

우울증을 겪는 엄마에게 시를 쓰라고 권했고 그런 시를 딸에게 읽어줄 때만큼은 엄마는 시인이자 연극배우가 된다.
엄마는 미조에게 버팀목이자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엄마에 대한 몰이해의 장벽에 시를 세우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첫째 딸은 나이지만 둘째 딸은 시인 것이고, 그렇게 존재하지도 않는 둘째 딸에게 내 역할의 일부를 떠넘기고 있는 건지도,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럴 줄 알았으면 딸 하나 더 낳을걸 그랬다는 후회를 시로 해결해보라고 등 떠미는 건지도. - P18

IT 회사에서 일한다고 말하는 수영은 회사 오너의 요구에 따라 성인 웹툰을 그리고 있다.
점점 더 가학적인 말도 안되는 스토리와 그림을 그리라는 요구에 원형탈모증까지 겪어가며 꾸역꾸역 일을 해나간다.
그런 수영은 시대의 요구라며 다 그런 거라며 자위하고

나는 저 여자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걸 만들고 있는 거야. 시대가 가발을 만들어야 돈을 주겠다고 하면 가발을 만드는 거고, 시대가 성인 웹툰을 만들어야 돈을 주겠다고 하면 그걸 만드는 거야. 그렇게 단순한 거야. 마찬가지인 거야. - P30
미조야 너 그거 아니? 인간을 육체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간이지만, 정신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대야. - P31

오빠는 남보다 못한 존재이다.
전셋집 문제로 전화를 했더니 전국 맛집 탐방을 하고 공장 건물을 사진 찍는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미조는 수영이 힘들게 돈을 벌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났을 것이다.

안에 들어가 본 적 있어?
없는데?
그냥 구경만 하려고 간다는 거야?
충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왜?
왜라니. 멋지니까.
이런 공단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나 좋아하라고. 그런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힘들 거 아니야.
오빠보다 훨씬 힘들게 일할 거 아니야. 멋지다니. 그냥 멋져서 구경만 하고 온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오빠는 그런 말도 못 들어봤어? 그 쇳물 쓰지 마라. - P35

5천만원으로 서울 안에서 전세 구하기는 애시당초 무리였는지 모른다.
부동산에 가서 여러 집을 구하기는 하지만 사진과는 다르게 실상은 집들은 과대포장되었다.
볕도 잘 안드는 어두컴컴한 반지하. 남의 발이 보이는 그런 집이었다.


그들의 시대는 어떻게 흘러갈까?
미조와 엄마는 집을 어떻게든 구할 것이고, 미조는 일기를 쓰고 엄마는 시를 쓰고, 수영은 산책을 할 것이다.
우리는 동시에 문장을 쓰고, 언니는 아마도 걷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멀고, 우리의 집은 더 멀고, 민들레 꽃씨가 날아와 우리 머리 위에 내려앉는 꿈은 가까운 그런 밤이었다. - P40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조금 더 그들에게 안온한 볕이 드는 세상이길 소망했다.


《미조의 시대》 뿐 아니라 최진영 작가의 《차고 뜨거운》 도 좋았다.
시대마다 각기 달라왔던 여성들의 모습을 한 가정의 모습을 통해 그려볼 수가 있다.
임신과 출산, 육아.
엄마는 엄마의 시대를 살았고 나는 나의 시대를 살고 싶은데,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은 여성을 속박하고 억압하는 것들이 많다.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쉬운 것이 아닌데 엄마는 예전 자기가 키웠던 방식을 고집하는 것처럼.
가부장제는 여전히 여성들을 곤란하게 한다.
그러니 연대라는 서사가 머릿 속에서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은희경 작가의 소설은 오랫만이었다.
중견 작가의 글을 수상작에서 보는 것도 어쩌면 생경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수상작들이 현실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전체적으로 잘 읽혔다.
장애인, 동성의 사랑 등 한 번쯤 고민해볼 일이 담긴 주제들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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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8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 읽고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님 작품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거리의화가 2022-03-18 10:07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은희경 작가 작품을 아주 오랫만에 읽었네요. 반갑기도 하고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필력은 여전하신듯요

그레이스 2022-03-18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은희경 작가 반갑기도 하고 이 리스트에서 보는게 어색하기도 하네요^^
저도 <새의선물> 좋았어요!

거리의화가 2022-03-18 13:39   좋아요 2 | URL
그쵸. 저도 수상작품에서 은작가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새의선물 좋았다고 하시니 궁금해지네요^^

페넬로페 2022-03-18 13: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에는 문학상에 관심도 많고 자주 챙겨 읽었는데 요즘은 잘 보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생소한 경우가 많아요. 관심 갖고 읽어야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3-18 13:41   좋아요 4 | URL
요즘 작가들 중 박상영, 김초엽, 천선란 등 아주 이름난 작가 아니면 사실 저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만큼 관심을 덜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저도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지만 이런 단편들을 읽으면 당시의 흐름도 알 수 있고 필진들도 얻어가는 맛도 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