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 시인집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김창술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린책들에서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이 나왔을 때 사 두기만 하고 한 권 읽고 방치 상태였다가 얼마 전 임화 시를 읽고 싶어져서 찾아보니 이것이 있었다.

'카프(KAPF)'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단체의 약칭이다. 1925년 결성되어 1935년 해체, 약 10여년의 세월을 활동하였다.

카프의 결성 및 활동과 해체 이 모든 것에는 당시 사회적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20년 초 무렵 전세계적인 사회주의, 공산주의 열풍으로 무산자 계급은 해방을 외치며 일어선다. 자본주의는 부와 자본에 따른 빈부 격차로 계급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산업의 발전으로 공장 등이 만들어지며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갈등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전 세계가 불황의 늪에 빠지며 노동자의 피해는 더 막심해졌고 이는 갈등을 폭발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카프 시인으로 분류되는 이들 중 기억나는 이름이라고는 임화와 안막 정도였던 것 같다(이들도 이름만 알 뿐 아는 것은 별로 없다). 그 중 임화는 그나마 이름이 있는 편이었지만 시집에 등장하는 김창술, 권환, 박세영은 생소했다.

김창술은 카프 조직에서 선배 격 시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나마 문학적인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기존의 시들과 적당히 버무려진다는 느낌이었다. 반면 뒤에 나오는 권환, 안막 등은 투쟁이 강조되어 시가 으스스한 느낌마저 든다.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투쟁은 지금 내게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당연하듯 현재의 상황과 나의 기준과 잣대로 그들의 사상과 시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여 읽었다.
그래도 나는 과거를 짐작할 수밖에 없으므로 카프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룸펜'이었다. 하지만 카프의 성격과는 맞지 않으므로 그것은 잘못된 연결이겠다. '룸펜(룸펜 프롤레타리아)'는 마르크스가 사용한 용어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하층 노동자로 일하는 이들을 지칭하며 멸시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카프 시인들이 당시의 노동자들의 실상을 절절히 깨닫고 이런 시들을 써 냈을까?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회의적이다.) 내가 왜 회의적인지 생각해봤는데 당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지식인 계급들은 실상 노동자들이 아니였고 펜대를 굴리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노동자들도 있었지만). 그렇기에 노동자 사건의 발생을 통해서나 주변에서 얻은 정보들을 간접적으로 얻은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직접 몸으로 싸워서 얻은 것일까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를 알려면 결국 이들 개인의 역사와 카프의 역사 등을 더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겠다.

시집을 읽으면서 현재 읽고 있는『토지』가 여러 모로 떠올려졌다. 하필 1930년대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트에 임화 시집도 포함되어 있어서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읽을 예정이다.

[ 오월의 훈기(薰氣) ] (by 김창술)


...


사랑하는 친구여!

용감한 우리의 젊은 사나이야!

이 봄이 가기 전 아마 이월 스무날 저녁이었었다.

우리들이 머리를 마주 대고 씩씩하고도 기쁜 기분 속에서 갈리던 때다


그러나 바로 그 뒤 그대와 모든 근로하는 청년이 삼월의 독수에 붙잡혀 가고


그 봄이 그대들과 나와 말 못 하는 그 속에서 가버렸었다


한데 오월이 왔다

꽃동산이 무너지고 울창한 녹음이 깊어 가며 오월이 왔다


...


[ 제비 ] (by 임화)


...


마루청을 밟는 간수의 구두 소리

절그럭대는 칼 소리로 유월이 되리로구나


하지만 동무들아 너희들은 눈 오는 겨울에도

<노동자의 봄>을 물고 나라를 찾아드는 젊은 제비라


총에도 칼에도 꼼짝도 않는 불사조

죽음으로써 <노동자의 봄>을 짓고 있으니


제비는 삼월에 남쪽에서 북으로 날아오건만

우리는 겨울에도 x을 들고 공장에서 싸워야 한다


[ 누나 ] (by 박세영)


...


누나!

그러게 내가 무어라고 그랬수

가난한 사람은 다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내 몸은 가난의 그물에 걸렸으면서도

생각은 가장 이상경(理想境), 문화 주택을 생각하고

재산을 생각하지만 어디 되는 줄 아우!

가난한 사람이 누구라 안 부지런하우만은

돈을 모을 수가 있습디까 그것도 봉건 시대의 말이유

부지런이란 무엇 말라빠진 것이란 말이유


...


[ 백만 중의 동지 ] (by 안막)


...


오오 오늘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동지 우리 가장 미덥던 형제가

xxxx에 제이 제삼의 <칼>이 되어 와다마사가 되어 xx문을 나오는구나-

동지야 그래서 그처럼 우울한 얼굴을 하느냐

그러나 동지야

우리들의 신문은 놈들의 눈을 속이어 또 나오지 않느냐

<노동자 농민 제군! xxx을 xx라!>라는 xxx가 공장 속에 또다시 흩어지지 않느냐

이렇게 우리들의 헐리었던 조직은 오오 보다 더 강대하게

대중 속에 뿌리를 박고 있지 않느냐

동지야!

너는 대중 속에 있다 너는 노동자 농민 속에 있다 수억만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속에 있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3-04-13 15: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진쌤은 출판계를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으셨으나.....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4-13 16:0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아마 오디오매거진 듣는 분들 대부분이 관련 도서들 이미 사들이고 계시는듯하네요^^;
저는 그나마 이미 사둔 것이라 그냥 읽었을 뿐입니다ㅎㅎㅎ
 
학문의 권장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70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남상영 옮김 / 소화 / 200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문의 권장』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대표 저작 3권(서양사정, 학문의 권장, 문명론의 개략) 중 하나이다. 3부작은 서양사정이 1866년으로 처음 저술되었고 학문의 권장이 1872년, 문명론의 개략이 1875년출간되었다. 때문에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적 흐름을 확인함으로써 일본의 개화 시기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서양사정은 서양의 근대 이론을 소개하면서 해당 용어를 일본식으로 번역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학문의 권장은 고향인 나카쓰에 나카쓰시학교가 설립되는 시기에 맞추어 학생들에게 학문을 권면하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처음에는 고향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었는데 원고를 읽은 누군가가 이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출판을 종용하여 냈다고 한다.

이 책은 서양사정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서양사정은 말 그대로 서양의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학술적 느낌이 든다. 반면 이 책은 학생들에게 학문을 왜 배워야 하는지 권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설득이나 연설조의 글이라 읽기에는 더 수월하다. 마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던지는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다고나 할까.
내용은 일본에 특수한 예시들을 제외하고는 당시 기준으로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저자가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일본의 사상가이기 때문에 자국중심주의적 사고가 엿보이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학문'은 이치와 이상을 파고 드는(예를 들면 성리학의 주리론처럼) 그런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었다. 이른바 '실학'이다. 조선에서도 실학의 대표 주자들이 활동할 시기가 있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고 난 후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한 결과 이른바 서양에서 잘 배워서 일본의 근대를 발전하자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일본의 근대 지식인에게서 조선의 개화파 지식인들(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

총 17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출판 연도가 다 다르다는 것에 눈길이 간다.
메이지 4년 12월 집필, 5년 2월 초편의 출판을 시작으로 17편이 메이지 9년 11월 출판되었으니 모든 편이 출판되기까지 총 4년 정도의 기간이 있는 셈이다. 때문에 각 편의 내용은 당시의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즉 일본 국내 사정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실제로 각 편의 내용의 주제가 다르고 어조도 조금씩 다르다.

이 책을 집필할 때 저자의 나이가 39~43세였다고 하니 한참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다. 내용은 구성에 따라 총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초편은 이 책의 시작이자 끝, 핵심을 담고 있는 장으로 총론의 성격을 지닌다. 2편부터 7편은 '실학'으로서의 학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8편부터 17편까지는 인간 사회를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자세와 방법론을 다루므로 굉장히 광범위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총론은 인간의 권리인 보편으로서의 평등을 이야기한다. 이 때 배우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개인이 배움으로 인해서(서당에서의 학문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학문) 독립해야 하고 일국도 독립해야 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는, 인정에 따라 우선 각자의 행동을 바르게 하고 학문에 정진하며 사물에 대해 폭넓게 알고 각자 자기 신분에 맞는 지혜와 덕성을 갖추며, 정부는 정치를 알기 쉽게 베풀고 모든 인민이 정부의 지배를 받아 고통받지 않도록 하여, 서로가 소임을 다하고 전국의 태평을 지키려는 것일 뿐, 지금 내가 권장하려는 학문도 오직 그것을 위해서이며 그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 P33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이것을 서양 말로는 reciprocity 또는 equality라고 한다. - P43

2편부터 7편까지는 사람들 간의 권리의 평등과 국가 간의 평등, 국민과 정부 간의 관계에서의 권리, 법에 의한 통치의 중요성, 유무형의 학문의 차이와 그것의 상호 관련성, 실제적 현상과 그것의 이치와 원리의 탐구를 찾는 중요성, 독서의 목적, 문자나 언어의 문제, 국어를 연구해야 하는 중요성 등 비단 개인의 권리 뿐 아니라 개인과 국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필요한 여러 주제들을 논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정부가 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는 것은 인민이지만, 그것은 단지 편의상 서로의 역할을 분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 전체의 명예와 관계되어 있을 때는 국가를 정부에만 맡기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인민의 본분에서 도리가 아니다. - P51

정부는 법을 만들 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법은 반드시 엄격하게 실시하여야 한다. 한편 인민은 정부가 만든 법을 지키는 데 불편한 점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그것을 정부에 호소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법이 시행된 것은 사적으로 그 법의 시비를 논하지 말고 지켜야 마땅하다. - P91

요즘 정순신 장관의 자녀 문제로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었는데 사실 이는 그동안도 고질적인 병폐였다.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애매한 처벌로 가해자는 뉘우치기는 커녕 아무 죄의식이 없고 처벌이 주어진다고 해도 집행유예 등으로 이도 저도 아닌 처벌이 되어 버린다. 피해자만 억울한 상황에서 이 사회는 폭력의 해방으로부터 나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개 유럽이나 미국의 나라들은 부유하므로 강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나라들은 가난하여 약하다. 그러나 이러한 빈부강약은 그 나라의 지금의 상황이며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자기 나라의 부강한 힘만믿고 빈약한 나라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마치 씨름 선수가 완력으로 병약한 사람의 팔을 비틀어 꺾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국가의 권의라는 점에서 볼 때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우리 일본도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는 서양 나라들의 부강함에 미치지 못하지만 국가의 권의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도리에 벗어난 부당한 행위를 당했을 때에는 세계가 다 적이 될지언정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일본이 자행한 뒤의 오류들이 국가론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당시의 약육강식의 논리와 맞물려 일본의 부강함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짓밟히는 나라에 대한 생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문제적이다.

8편부터 17편까지는 인간 사회를 이롭게 할 방법론을 담고 있다. 굉장히 넓은 주제인데다가 지금도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여성론이나 효행론은 여전히 지금도 가부장제의 공고화로 제대로 인식조차 못한 상태에서 자행되는 문제들에 일침을 놓을 만한 것들이어서 놀랐다.

그 뜻은 아무리 음란한 남편이라도 남편인 이상 어떠한 치욕을 당해도 따를 수밖에 없고 오직 마음에도 없는 웃는 얼굴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의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인의 의견에 따르고 안 따르는 것은 오직 방탕한 남편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므로 남편의 마음이 곧 천명(天命)이라고 생각할 뿐 별다른 방법이 없다. 또한 불교 서적에는 여자는 죄 많은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큰 죄를 지은 죄인이란 말인가. 그 밖에도 일방적으로 여자들을 질책하는 말들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면 『대학』에 부인의 칠거(七去)라는 말이 있는데, 여자가 음란하면 이혼을 당해도 당연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것은 남자를 위해서는 아주 편리한 내용이다. 너무나 일방적인 얘기가 아닌가. 결국 남자는 강하고 부인은 약하다는 힘의 논리에 의해 남녀를 상하로 나누는 명분을 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 P113

애도시대 중엽의 교훈서인 ‘여대학’에 대한 비판이다. 조선도 삼종지도를 강조하던 모습에서 비슷하고 이는 현재도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하다는 생각이다.

부모가 자식의 재산을 탐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며 자식 부부를 시시콜콜 간섭하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생각을 옳다고 하며 자식의 의견은 입 밖에도 낼 수 없게 한다. 며느리는 마치 지옥 같은 생활을 하며 자고 먹고 사는 것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시부모 마음에 거스르면 불효자라고 하며 세상 사람들도 시부모가 지나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자기 일이 아니므로 시부모의 편을 들어 불효하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혹은 어떤 사람은 이(理)와 비리를 가리지 말고 부모에게 적당하게 거짓말을 하라며 거짓 행동을 권하기도 한다. 이것을 어찌 가정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미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시어머니의 됨됨이는 며느리 적에 이미 알 수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시집살이 시킬 때에는 옛날 자신의 시집살이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P117~118

우리나라에서 사족이상의 사람들은 수천 년의 구습에 젖어 의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모르며, 부유함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고 거만하게 무위도식하면서 그것이 자기들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은 주색에 빠져 앞뒤 분별을 못하는 자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 자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 것인가. - P135

오늘날 부유한 권력자들을 보면 소름 끼치게 똑같지 않나.

학문을 하는 목적은 독서를 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활동에 있다. 그 활동을 통하여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의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observation은 사물을 관찰하거나 현장에 직접 가서 시찰하는 것을 말하며, reasoning은 사물의 이치를 추구하여 자신의 논리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 학문의 연구를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외에 많은 책을 읽고 책을 저술해야 하며, 다른 사람과 담화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학문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곧 시찰이나 추구 또는 독서는 지식과 식견을 넓혀 그것을 교환하는 것이고, 저술이나 연설은 지식과 식견을 넓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 중에는 혼자의 힘으로 가능한 것도 있지만 담화나 연설은 상대가 필요하다. 연설회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 P149~150

독서를 하고 나서 끝이 아니라 이를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독서 모임이나 강연회 등을 통해서 책에 대한 다양한 사람의 생각을 듣고 의견 교환을 하는 활동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 취사선택을 정확히 해야 한다. 학문은 그러한 판단력을 키우는 것에 있다. - P183

이로써 후쿠자와 유키치의 3부작 중 2권을 읽었다. 아까워서라도 남은 저작을 읽어야겠다 생각한다.
이 내용은 당시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도 유용한 교훈이 많아서 도움이 되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3-04-13 0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나온 책이기는 하지만, 지금 보고 배울 것도 있겠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한국도 비슷하군요 지금은 좀 달라졌을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13 09:11   좋아요 1 | URL
주제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지금도 생각할 수 있는 조언들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설 내용이기 때문에 더 그런 취지를 살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고부 간의 갈등은 지금도... 쉽지 않은 듯합니다^^;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김성경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한사회는 북조선 사람들에 대해 무지하다. '북조선'이라는 국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이들의 행위주체성의 다면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분단을 가로질러 이주하면서 탈분단적 정체성을 구축하기도 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코즈모폴리턴적 주체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남북이 공유하고 있는 가부장적 체제에서 '어머니' 역할에 골몰하는 이들도 있고 도다른 이들은 좀더 자유롭고 독립된 주체성을 체현하기도 한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구조를 무력화하는 일상적 실천에 나서는 이들도 상당하다. 수많은 얼굴로 존재하는 그들에게 좀더 다가가는 것은 남한사회와 사람들의 정체성에 깊게 내재해 있는 분단을 반추할 기회이기도 하다. - P10~11

북한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분단이 되고 한국 전쟁이 끝난지도 70여년이 지났다.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는 커졌고 냉전 종식 이후에는 북한이 핵 개발에 들어가면서 안보적 이슈까지 더해져 통일이라는 단어는 이제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북한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념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국가론적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래서 북한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무지하거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을 둘러싼 이분법적 사고 체계에 문제점을 먼저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연구자가 쓴 글은 대체로 학술적이어서 딱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는 북한대학원 교수로 사회과학적 글쓰기에 익숙하다고 고백한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작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산문 형식으로 글을 써 내는 실험을 감행했다. 쉽지는 않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보인다.

이 책의 중심에는 북한 여성이 있다. 작가는 여러 명의 북한 여성들을 인터뷰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냄으로써 북한의 현실과 여성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전체적으로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북한의 현대사에서 북한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북한에서 선전을 목적으로 소개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북한의 역사를 빠르게 훑어내려가면서 2000년대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버무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2부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의 북한 여성과 조선족, 자이니치와 북조선 여성들을 작가가 인터뷰 대상으로 만난 이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만남을 통해 느낀 작가의 소감이나 소회도 함께 실었다. 3부는 북한 연구자로 북한 여성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깨닫고 그것에 북한 여성들과의 만남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재인식하게 되었는지 정리하였다.

그동안 북한 역사서를 몇 권 읽어보았지만 대부분 학술적으로 정리해놓은 것들이었다. 최근 업데이트된 북한 역사서에는 1990년대 초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각자도생을 위해 시장인 장마당이 허용되었고 그 중 장사 수완이 있는 이들은 돈주로 성장했고 김정은 정권까지의 역사가 짧게나마 소개되어 있다. 다만 교과서적인 텍스트이기 때문에 멀찍이 떨어진 느낌이다. 북한 사람들의 생활은 실제로 어떠한지 속속들이 알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우리가 평소 북한에 대해 보고 듣는 정보는 언론, 통일부 등을 통해서 접하는 제한적인 것들이다보니 사실인지 홍보인지 왜곡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더군다나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북한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는 딱히 접할 수 있는 경로가 없다. 이런 연구자들의 작업을 통해서 비로소 접하게 되는 것인데 이 책은 딱딱하게 쓰여지지 않아서 대중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는데다가 북한 현대사도 덤으로 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보여진다.

북한 여성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용감했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으며, 삶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넘쳤다. 여성들은 아무래도 '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삼시 세끼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분투해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남한 여성이나 북한 여성이나 같았다.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난 그녀들이 이주 과정을 회고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음식 이야기는 때로는 너무 사소해서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사선을 넘어온 북조선 여성들의 증언에서 김치, 국수, 고추장과 된장, 삶은 감자, 두부밥 이야기를 좀처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체제, 폭력, 굶주림, 죽음과 생존 등과 같이 북조선을 가리키는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면 더더욱 그녀들의 '밥'에 대한 깊은 애착을 흘려들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녀들의 '밥'이야기를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그것이 그녀들의 전쟁과도 같은 삶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라면 먹지 않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으니 '밥'을 마련하기 위한 그녀들의 분투기는 인간이자 어머니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눈물겨운 투쟁 기록에 다름 아니다. - P242

그녀들의 위치가 그녀들을 제약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들의 눈물겨운 행위주체성은 전복성과 해방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동안 열등감에 휩싸여 중심만을 지향하며 살아온 내가 그들을 만남으로써 조금씩 변화했다. (...) 나는 그녀들의 고통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봤으며, 그녀들의 기쁨과 행복이 나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신기한 일이다. 그녀들이 내 안으로 불쑥불쑥 들어온다. - P239

북한 연구자로서 북조선 여성들을 직접 만나면서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 vs 사람'이 아니라 분단 국가에서 사는 남한의 북한 연구자와 북한 여성들의 만남에는 개인적인 감정으로만 정리되기 어려운, 이념과 거리감이 어쩔 수 없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분단은 식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가로막는 현실적인 제약과 장벽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를 깨부수지 않으면 이 체제는 공고히 이어질 수 밖에 없음을 동시에 인식하게 된다.

이 책은 분단된 나라에서 사는 우리가 북한을 국가론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사람들의 수준에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지금까지 북한학의 기존 연구는 국가와 민족의 분단을 다루는 까닭에 국가 중심성이 상당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입장이론과 탈식민주의 문화연구로부터 시작된 나의 문제의식은 다양한 집단의 다층적인 경험을 밝혀냄으로써 억압적 사회구조의 작동 메커니즘의 면면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확신이 뒷받침된 것이었다. - P234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3-04-09 2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연구는 진짜 쉽지 않을듯한데 아주 귀한 책이 나왔네요. 화가님의 이 리뷰 아니었으면 몰랐을 책이네요. 냉큼 담아갑니다.

거리의화가 2023-04-10 09:45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저자의 연구도 소중한데 연구서가 아닌 대중서로 내주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바람돌이님께도 유용한 책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건수하 2023-04-10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엔 밥에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군요... 출근하며 정희진의 공부를 들었는데, 정말 그 놈의 밥이 뭔지...
강경애의 <소금>을 읽으며 소금이 비싸서 간을 맞추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그 마음이 생각납니다 ㅠㅠ

북한에도 사람이 사는 건데, 그 사람 이야기들이 궁금하네요.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출판된 것들이 훨씬 많을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3-04-10 09:47   좋아요 0 | URL
네. 결국 밥입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데 밥만큼 소중한 게 없는데 말이죠.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모두 다 기아에 허덕이고 (고위층 빼고)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보다는 북한 정권 자체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경향이 더 많아서 아쉽습니다. 이런 책을 통해서 북한 사람들의 실상을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생각해요. 이런 류의 다양한 대중서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좋은 시도의 책이에요.

희선 2023-04-13 0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한에서 여성으로 사는 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잘 모르지만, 바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북한은 가까이 있지만 아주 멀기도 하네요 한국과 북한은 통일을 할지... 그런 거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던데... 전쟁보다 평화를 생각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13 09:13   좋아요 1 | URL
네. 많은 북한 여성들이 분투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여성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구요. 이념과 사상, 국가 간의 경쟁 때문에 그렇지 우리가 멀게 느낄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ㅠㅠ
이제는 통일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죠. 아예 다른 국가로 생각하고 살거나;;;
 
오정희 컬렉션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의 배경은 1980년대 무렵 즈음 어느 주택가를 떠올리게 한다. 아파트가 이제 막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서민들이 익숙하게 사는 그 곳이다. 응팔 시리즈를 단 하나도 본 적이 없지만 주변에서 들어서 저절로 알게 된 것이 많았는데 아마도 그 무렵의 동네를 생각나게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만화가 있는데 '우주소년 토토'다. 1983년에 나왔다고 하는 것을 보니 그 무렵이 시간적 배경일 것 같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만은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어른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분노가 쌓이니 뻔뻔해지고 감정적 폭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이들이 안됐다고 생각하다가도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사정도 녹록치 않은 것이 보여서 마음이 불편했다.

폭력을 보고 자라는 아이의 미래의 내면은 상처와 얼룩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가만히 있는데도 "내가 미쳐!"라는 소리를 항시로 듣고 "내 명대로 못 살고 죽을 거야"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왜...' 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집에 온 여자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중이지. 너는 지금의 내가 되기 전의 나야. 아니면 내가 되어가는 중인 너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보는 게 무서워 견딜 수 없어."
나는 이 말을 하는 여자가 안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듣는 아이들은 어쩌라는 걸까 생각했다.

아버지는 여자들을 때리고 아이들을 내팽겨쳤다. 남자는 열등감과 열패감을 분노로 포장해 여자들을 때리고 아이들을 내던졌다.

안방의 아랫목 쪽 벽 중간쯤에, 두 짝의 미닫이로 된 벽장문이 달려 있고, 그 문을 열면 다섯 개의 계단, 그 계단의 끝에 어슴푸레 떠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묵은 잡동사니들이 가득 들어찬 다락의 어둑신함과 그 안에 서린 매캐하고 몽롱한 냄새, 모든 오래된 것의 안도감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어둠과 먼지, 오래된 시간, 이제는 쓰일 일 없이 버려지고 잊힌 물건들 사이에서, 그 슬픔과 아늑함 속에서 우리는 둥지 속의 알처럼 안전했다. - P27

아이들이 그 속에서 스스로를 안전하게 생각하는 공간이란 다락방이라는 공간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곳에서 아이들은 이것 저것 열어보며 닫힌 것을 열어 제꼈다. 하늘을 날고 싶었던 동생도 그 곳에서는 잠시 자유로웠을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3-04-09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마어마한 언어폭력인데요. 가끔 아니 너무 자주 부모들은 진짜 생각없이 아이들에게 언어폭력을 휘둘러요. 그게 폭력이라는 생각도 없이 말이죠. 갈수록 주변에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지는 거 같아서 정말 안타까워요.

거리의화가 2023-04-10 09:36   좋아요 2 | URL
지금하고는 시대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폭력은 사라지질 않고 있어서 읽을수록 씁쓸함이...ㅠㅠ 바람돌이님은 아이들을 많이 만나니 더 많은 걸 느끼시겠네요.
저 말을 하는 어른들은 자기가 말하는 것이 언어폭력이라는 걸 인지조차 못햇을 거라고 봅니다. 그냥 자신의 한탄이자 신세 타령인데 그게 아이들에게는 내면을 갉아먹는 소리였겠죠. 이런 것들이 쌓이면 분노 조절 장애나 폭력을 가하는 아이로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악순환이네요ㅜㅜ

건수하 2023-04-10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전에 읽었던 두 단편도 화자가 여자 어린이예요.
너는 지금의 내가 되기 전의 나야.. 라니 단편에선 그렇게 직접적이진 않았는데.
장편은 아무래도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네요.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 그냥 넘기고 싶기도 하고...

거리의화가 2023-04-10 09:42   좋아요 1 | URL
단편은 좀 소프트한 표현이었나보네요^^; 아무래도 단편은 짧은 이야기로 작가의 메시지를 보여주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니까.
읽기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읽어보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에 무뎌지지는 않아야 하지만 이런 책을 통해서 어떤 것이 폭력적인 표현임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하님께 감사 인사 전해요^^

건수하 2023-04-10 09:45   좋아요 1 | URL
감사는요… 거리의화가님이 관심가지셔서 저도 기뻤어요.
단편에서는 어른들이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주로 아이의 시선으로 서술했던 것 같아요.

위에 신세한탄이라고 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하고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게 조심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애초에 상황이 그리고 성격이 긍정적이어야 될 것 같네요.. 🥲

거리의화가 2023-04-10 09:50   좋아요 1 | URL
이 책도 아이의 시선입니다. 다만 어른들의 대화들도 등장하는데 뼈아픈 말들이 좀 많았어요. 당시에는 지금보다 폭력에 더 무딘 시대였으니... 좀 더 나아지는 세상이 되면 좋겠네요^^;
 
사기세가 - 개정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기 세가는 패권을 장악한 일인자의 옆에서 도움을 준 참모나 제후들, 후비들의 이야기다.

세가는 총 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기별로는 춘추 전국시대가 18편, 한나라 시대가 12편이다.
서술 방식은 본기와 마찬가지로 인물의 행적을 기본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을 연계시키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사기의 장점이라면 역시 대화문인데 인물의 일화를 보여줄 때 그것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자치통감에서 보여주는 평서문의 서술 방식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방식이다.

세가에 어떤 인물이 포함되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사마천의 시각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유방의 핵심 참모들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유방이 세력을 이끌고 초나라와 최종적으로 승리할 때까지 큰 도움을 준 핵심 참모라면 소하, 진평, 장량, 한신이 있다. 한신은 제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세가에서 빠진 반면 나머지는 세가에 나란히 올랐다. 세 명의 인물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도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흥미로웠다.

그리고 공자와 진섭이 세가에 포함되었다.
공자를 세가에 포함시킨 것은 유가의 사상적 구심점이 된 인물이기도 하고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면서도 자신을 제대로 알아봐주지 않는 제후들에 대한 아쉬움과 한탄이 자신의 삶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 같다.
진섭은 진나라가 멸하고 한나라가 설 때까지 그 흐름을 시작한 주자라는 것을 높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사마천은 제후가 되었더라도 반역 혐의를 받아 제후 작위를 박탈당한 인물의 경우 세가에서 제외시켰다.
그는 원칙이나 질서가 중요하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에 비켜서 있으면 당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더라도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본기에서는 ‘항우 본기’가 백미였다면 세가는 한 고조의 개국 공신들의 이야기인 ’소 상국(소하) 세가‘, ’유후(장량) 세가‘, ’조 상국(조참) 세가‘가 백미였던 것 같다.
각 인물들의 서로 다른 행위를 통해서 그들이 제후의 반열에 오른 이유, 그리고 제후에 오르고 나서 한 고조에게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행하는 행동들을 보는 것에 재미가 있었다.
소하가 살림꾼이었다면 장량은 비상한 계책을 낼 줄 아는 모사꾼이었고 조참은 현실적으로 자기 이득을 잘 챙길 줄 아는 자였던 것 같다.
유방은 권력의 정점에 오른 그들과 기싸움을 벌이며 그들의 힘을 끊임없이 견제한다.

공신에 대한 봉읍과 작위를 나누는 자리에서 소하와 다른 공신들의 차이를 말하며 사냥개와 사냥꾼의 차이에 비유하는 일화가 있다.
“사냥에서, 들짐승과 토끼를 쫓아가 죽이는 것은 사냥개이지만, 개 줄을 풀어 짐승이 있는 곳을 알려 주는 것은 사람이오. 지금 여러분들은 한갓 들짐승에게만 달려갈 수 있는 자들뿐이니, 공로는 마치 사냥개와 같소. 소하로 말하면 개의 줄을 놓아 방향을 알려 주니, 공로는 사냥꾼과 같소.” - P800
전쟁터에서 싸우는 장수들이 공신의 최고봉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소하는 유방이 항우와의 싸움을 하는 동안 관중의 땅을 지키고 백성을 잘 보호하였으며 유방의 군대의 수가 모자라지 않게 끊임없이 채우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고조가 장량에게 제나라 삼만호를 준다 이야기하자 그는 유현에 봉해지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삼만호는 감당하지 못한다 이야기한다. 이후에도 공신들을 봉하는 일에 잡음이 끊이지 않자 이를 잠재우기 위해 장량이 고조에게 계책을 내는 장면도 있다.
“황상께서 평생 동안 미워하시는 자로 여러 신하들도 다 아는 사람 중에서 누가 가장 심합니까?” 황상이 대답했다.
“옹치는 나와 오랜 원한이 있으니, 그는 일찍이 자주 욕되게 하여 내가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의 공이 많기에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소.” 유후가 말했다. “지금 시급히 먼저 옹치를 봉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여러 신하들은 옹치가 봉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마다 자신들도 봉해지리라 굳게 믿고 의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 P842
옹치가 후가 된 것을 보고 다른 공신들은 더는 안절부절하지 않았다.

조참과 소하는 사이가 좋았으나 소하가 승상이 되고 조참이 장군이 되자 자연스레 거리가 생겼다. 하지만 소하는 죽기 전 조참을 승상으로 추천했고 조참이 조 승상이 된 이후에는 소하가 해온 일을 잘 이어받아 한나라를 안정시켰다.
조참은 제나라를 분봉받은 후 황로학설에 정통한 갑공이라는 사람을 초청한다. 그는 국가를 다스리는 이치를 그에게 물었는데 “귀한 것은 맑고 고요한 것이니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스스로 안정되며, …” 조참은 이 황로학설을 받아들이고 제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정책으로 삼은 뒤 나라가 안정되었다고 한다.

한나라 공신들의 세가 말고도 개인적으로 제나라가 강씨에서 전씨로 바뀌는 과정이 나오는 전경중완 세가, 한 문제와 무제의 아들들에 대한 세가들도 재미났는데 업적으로는 공이 있다고는 해도 인품이나 사생활 등에서는 일반 사가의 자제들만 못한 점이 엿보인다. 이들도 욕망에 휩쓸리기 쉬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로써 사기 본기와 세가를 모두 읽게 되었는데 본기를 읽으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간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열전까지 읽으면 사기의 흐름이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3-04-03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마천이 쓴 글을 보면 그때 사람뿐 아니라 사마천도 조금 알게 되겠네요 이건 어느 역사가나 다르지 않겠습니다 사실을 쓴다 해도 자기 생각을 쓰기도 할 테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03 08:47   좋아요 1 | URL
네. 사기를 읽다 보니 사마천이 어떤 시각으로 이 책을 썼는지 느껴지더라구요. 비단 역사가 뿐 아니라 작가들도 자신이 쓴 저작에는 주관적인 관점이 들어가는 것이겠구나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