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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 시인집 ㅣ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김창술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2년 3월
평점 :
열린책들에서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이 나왔을 때 사 두기만 하고 한 권 읽고 방치 상태였다가 얼마 전 임화 시를 읽고 싶어져서 찾아보니 이것이 있었다.
'카프(KAPF)'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단체의 약칭이다. 1925년 결성되어 1935년 해체, 약 10여년의 세월을 활동하였다.
카프의 결성 및 활동과 해체 이 모든 것에는 당시 사회적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20년 초 무렵 전세계적인 사회주의, 공산주의 열풍으로 무산자 계급은 해방을 외치며 일어선다. 자본주의는 부와 자본에 따른 빈부 격차로 계급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산업의 발전으로 공장 등이 만들어지며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갈등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전 세계가 불황의 늪에 빠지며 노동자의 피해는 더 막심해졌고 이는 갈등을 폭발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카프 시인으로 분류되는 이들 중 기억나는 이름이라고는 임화와 안막 정도였던 것 같다(이들도 이름만 알 뿐 아는 것은 별로 없다). 그 중 임화는 그나마 이름이 있는 편이었지만 시집에 등장하는 김창술, 권환, 박세영은 생소했다.
김창술은 카프 조직에서 선배 격 시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나마 문학적인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기존의 시들과 적당히 버무려진다는 느낌이었다. 반면 뒤에 나오는 권환, 안막 등은 투쟁이 강조되어 시가 으스스한 느낌마저 든다.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투쟁은 지금 내게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당연하듯 현재의 상황과 나의 기준과 잣대로 그들의 사상과 시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여 읽었다.
그래도 나는 과거를 짐작할 수밖에 없으므로 카프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룸펜'이었다. 하지만 카프의 성격과는 맞지 않으므로 그것은 잘못된 연결이겠다. '룸펜(룸펜 프롤레타리아)'는 마르크스가 사용한 용어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하층 노동자로 일하는 이들을 지칭하며 멸시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카프 시인들이 당시의 노동자들의 실상을 절절히 깨닫고 이런 시들을 써 냈을까?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회의적이다.) 내가 왜 회의적인지 생각해봤는데 당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지식인 계급들은 실상 노동자들이 아니였고 펜대를 굴리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노동자들도 있었지만). 그렇기에 노동자 사건의 발생을 통해서나 주변에서 얻은 정보들을 간접적으로 얻은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직접 몸으로 싸워서 얻은 것일까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를 알려면 결국 이들 개인의 역사와 카프의 역사 등을 더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겠다.
시집을 읽으면서 현재 읽고 있는『토지』가 여러 모로 떠올려졌다. 하필 1930년대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트에 임화 시집도 포함되어 있어서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읽을 예정이다.
[ 오월의 훈기(薰氣) ] (by 김창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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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구여!
용감한 우리의 젊은 사나이야!
이 봄이 가기 전 아마 이월 스무날 저녁이었었다.
우리들이 머리를 마주 대고 씩씩하고도 기쁜 기분 속에서 갈리던 때다
그러나 바로 그 뒤 그대와 모든 근로하는 청년이 삼월의 독수에 붙잡혀 가고
그 봄이 그대들과 나와 말 못 하는 그 속에서 가버렸었다
한데 오월이 왔다
꽃동산이 무너지고 울창한 녹음이 깊어 가며 오월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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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 ] (by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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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청을 밟는 간수의 구두 소리
절그럭대는 칼 소리로 유월이 되리로구나
하지만 동무들아 너희들은 눈 오는 겨울에도
<노동자의 봄>을 물고 나라를 찾아드는 젊은 제비라
총에도 칼에도 꼼짝도 않는 불사조
죽음으로써 <노동자의 봄>을 짓고 있으니
제비는 삼월에 남쪽에서 북으로 날아오건만
우리는 겨울에도 x을 들고 공장에서 싸워야 한다
[ 누나 ] (by 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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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그러게 내가 무어라고 그랬수
가난한 사람은 다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내 몸은 가난의 그물에 걸렸으면서도
생각은 가장 이상경(理想境), 문화 주택을 생각하고
재산을 생각하지만 어디 되는 줄 아우!
가난한 사람이 누구라 안 부지런하우만은
돈을 모을 수가 있습디까 그것도 봉건 시대의 말이유
부지런이란 무엇 말라빠진 것이란 말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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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만 중의 동지 ] (by 안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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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오늘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동지 우리 가장 미덥던 형제가
xxxx에 제이 제삼의 <칼>이 되어 와다마사가 되어 xx문을 나오는구나-
동지야 그래서 그처럼 우울한 얼굴을 하느냐
그러나 동지야
우리들의 신문은 놈들의 눈을 속이어 또 나오지 않느냐
<노동자 농민 제군! xxx을 xx라!>라는 xxx가 공장 속에 또다시 흩어지지 않느냐
이렇게 우리들의 헐리었던 조직은 오오 보다 더 강대하게
대중 속에 뿌리를 박고 있지 않느냐
동지야!
너는 대중 속에 있다 너는 노동자 농민 속에 있다 수억만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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