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나의 집
금희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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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이'와 '저'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회색지대들, 그 지대마다 완전히 그 지대에 속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완전수 사이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무수한 소수들처럼. (P.21)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제목에서 늬앙스를 짐작할 수 있듯 집을 구하는 이야기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전세사기, 결국 부동산의 문제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결코 남일 같지 않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소재였다.
강사들의 처우 문제도 나온다. 이것도 우리의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은 문제다. 강사들은 불평등한 대우를 당하지만 행여 잘릴까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어 자기 발언이 쉽지 않다.
또 마라탕에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예전에 상해에 갔을 때 마라탕(백탕, 홍탕 나눠서)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마라 하면 충칭이라고 하는데 충칭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 충칭에서는 맵기 강도가 보통이라도 무척 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넌, 니 집이 있잖아.
아줌마가 쟁반에 우리의 마라탕을 내왔다. 사천 촉국의 독특하고 자극적인 향신료 냄새가 나와 닝 사이에서 만연히 부유했다. 닝은 나무젓가락을 들고 딱! 소리 나게 갈라뜨리고는 자기 국그릇 붉은 국물 속에 잠복해 있는 당면 사리와 야채들을 노려보았다.
-너도 이제 생겼잖아, 니 집.
나는 나의 붉은 국물을 들여다보았다. 닝의 것 같은 투명한 당면 대신 나는 언제나 쫄깃한 밀냉면 사리를 주문하곤 했다.
-내 집이랑 니 집이 같니? 니 건, 완-전 니 거잖어.
(P.12)

<봉인된 노래>는 사회에 부적응한 사람이 등장한다. 외국 연수도 못하게 되고 좋은 혼처 자리를 찾는 것도 실패했고 들어가는 회사마다 적응하지 못한 채 사직을 하고 나오는 사람. 그러다 결국 도박에 빠져 집안에 그늘을 지게 하는 사람이다.
집안 분위기를 보면 마치 옛날 TV드라마 아들과 딸처럼 아들에게는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이 있고 딸은 순종적이고 모범적이고 절대적 선의 가치를 지녀야 하는 그런 환경이 보인다. 그래서 답답함이 밀려오기는 했는데 다른 배경이 있다면 그가 모택동이 죽었을 때 태어났다는 것, 그래서 이름도 李念 이라는 것이다.

강하고 오래된 독선의 남용과 습관적이며 자발적인 무정체성의 순종, 그것은 어린 내가 본능적으로 깨달은 어떤 아이러니, 말하자면 일종의 부조리였다. (P.48)

<월광무>와 <돌도끼>는 중국의 성장 과정을 느끼게 한다. 계획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의 이행. 도시도, 농촌도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농촌의 빈 집은 늘어가고 도시로 하나 둘 떠난다. 남은 사람들의 갈증은 커져간다.
한국의 70, 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만한 것들이 남아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파트가 하나 둘 생기고 이웃 간의 유대는 끊어졌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캐치 프레이즈는 각자 도생으로 가게 했고 개인주의를 횡행하게 만들었다.

개발업자의 포클레인이 으르릉거리며 동네의 집과 창고들을 허물 때 끝까지 남아 동네를 지킨 사람은 마씨네 형제들이었다. 사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부터, 그러니까 시장이 자유로워지며 국경 또한 느슨해질 때부터 동네 사람들의 새로운 이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멀리 산을 넘고 물을 건너오던 당시처럼 또다시 더 살기 좋다는 곳으로 떠나가는 것이었다. 청도, 북경, 천진, 상해 그리고 한국, 일본 혹은 캐나다나 미국으로. (P.118)

나는 그 매끌매끌하게 갈린 차가운 돌도끼를 손안에 넣고 감싸 쥐어보았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겪었을 당시 사람들의 절박함과 함께 예상외의 부드러운 촉감도 전해졌다. 문뜩, 그 사람들의 피곤 속에 사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것들이 더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 사람들은 우리가 누리지 못한 다른 풍성한 것들로 인해, 우리가 추측하는 험한 상황을 느끼지 못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과자 없이 즐겁던 내 어린 시절과, '법' 없이 모이던 우리 동네의 시초를 생각하면 말이다.

<쓰레기 통의 쥐>는 '계급'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어떤 배경의 환경에서 태어난다. 그 때부터 가도는 달라진다. 학교를 갈 나이가 되면 학교 안에서도 차별이 행해진다. 부모는 행여나 학교에서 전화가 올 까봐 불안해한다(대부분 좋은 것으로 전화 올리가 없으니까). 사람을 가려 가면서 대하는 태도는 좌절감을 안긴다. 문명화(!)된 도시에서 쓰레기통은 더럽고 냄새나는 취급을 받는 것처럼 마치 내가 그런 취급을 받는 듯한 상황.

악취가 심하게 나는 쓰레기통은 깔끔하고 문명스러운 도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더럽다. 뚜껑이 부서져 온갖 쓰레기가 배를 갈려 드러난 짐승의 내장처럼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상한 것은, 다 부서져 간들간들 겨우 한조각 붙어 있는 그 뚜껑 위에 자그마한 쥐 한마리가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었다. 발레라도 추듯이 뒷발 하나를 추켜든 채 장난감처럼 꼼짝 않고 있었지만, 뱃가죽이 불었다 줄었다 하며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진짜 살아 있는 쥐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정류장을 지나쳐가고 쓰레기통 곁을 지나가면서도 아무도 그 이상한 쥐는 보지 않았다. (P.172)

<노마드>는 표제작을 제외하고서는 다음으로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지금 창춘의 모습을 알 수 있다고나 할까. 주인공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또 다시 중국으로 온 사람이다. 고향을 떠나서 한 몫 잡겠다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서는 조선족이라는 편견에 시달렸고 4년만에 고향에 오니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에 혼란스러워한다. 친구들 중에서는 고깃배를 타고 나갔다 온 사람도 있고 일본 등지로 떠난 이도 있다.
이 글을 읽으며 한국에서 일하는 많은 조선족 사람들의 대우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나부터 그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것인지 사실은 정리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노마드'라는 단어처럼 정착하고 싶어도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들이다.

그 텁텁하고 씁쓰레한 것 같으면서도 약간 누린 것 같기도 한 중국 냄새, 정확히 어떤 냄새였는지 기억할 수는 없었으나 분명 박철이는 어둑한 저녁녘에 우리를 찾아 들어가는 닭이나 양처럼 지금 그 냄새가 그리워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거무튀튀해서 밝지는 않지만 부담이 가지 않는 중국 사람들의 색깔, 언어도 다르고 교양 있는 말투도 아니지만 약간 부잡스럽고 무식한 듯하면서도 아직 순진함이 남아 있는 표정과 억양이 박철이 자신과 닮아 있어서 중국 사람들은 대하기가 한결 편했다. (P.203)
그의 온몸 각 기관들은 무의식중에 이미 전국민 모두 '절대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에 깊숙이 물들었는바, 머리는 죽은 것 같은데 입이 살아 있어서, 입을 겨우 죽였는데 눈이 살아 있어서, 눈까지 죽였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는 주제넘게 손가락이 불쑥 살아날 때도 있어 박철이는 봉급도 챙기지 못하고 자주 잘려나가곤 했다. (P.204)

어느 누구의 용기가 가상하지 않았으랴! 수미와 자신은 생계를 위하여, 이 여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선아는 생존을 위하여 떠나가고 또 떠나오는 것이다.
"허, 참 사람 사는 거 보면... 그러네요. 우리는 좀더 잘살아보자고 그쪽 나라로 떠나가고, 그쪽은 더 잘살아보자고 이쪽 나라로 떠나오고..."
"그래요. 그렇게 따지고 보니까 결국 우리는 다 같은 노마드일 뿐이네요." (P.259)


작가님의 나이를 보니 나와 비슷해서 마음이 갔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읽은 책에 나오는 조선족, 탈북민 이야기들을 읽어서인지 이입이 쉬웠던 것 같다. 게다가 주제들이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우리와 가까운 주제들이기 때문에 읽는데 거부감이 드는 것도 거의 없다. 

중국어 문장들을 보며 따라하고 있는 나를 볼 때 미소가 지어졌다. "덩-후이루(잠깐만요)!" 또, 창춘의 계림로라는 곳이 있다는데 한국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언젠가 그곳에 가보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무심한 듯, 슬며시 마음을 파고드는 그런 따뜻함을 안기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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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07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문학같은 중국문학이군요. 신기해서 책 소개를 찾아봤습니다 ㅋ 중국이나 우리나 사람 사는건 별반 차이가 없는거 같아요~!!
역시 중국어 천재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3-05-08 09:2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소개글 찾아보셨군요^^ 사실 의도한 바도 있었어요ㅎㅎㅎ 사람 사는 것은 똑같은데도 이주자, 이민자들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새파랑님 감사해요^^*

희선 2023-05-08 0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 보고 김금희 작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진짜 이름은 김금희였군요 김금희 작가가 있어서 금희라 했나 하는 생각을...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으로 한국 사람은 다른 나라고 가기도 하겠네요 지금은 예전보다 적을지, 아니 여전할지도 모르겠네요 갔다가 돌아온 사람도 있을 듯합니다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할지도...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08 09:25   좋아요 1 | URL
저 김금희 작가님 좋아해요. 아마 김연수 작가님 말고 유일하게 제가 관심을 갖는 분일겁니다. 다만 작품은 많이 못 읽어봤어요ㅠㅠ
조선족 하면 갖는 편견들이 많잖아요.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많은 분들이 건너오는데 차별에 고통받다가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많은 듯합니다. 우리 안의 편견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할것 같아요. 희선님 감사합니다.
 
프린키피아 (양장, 한정판)
아이작 뉴턴 지음, 박병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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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뉴턴 하면 만유인력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언젠가는 완독하겠지만 과연 이해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움직이는 물체의 회전운동에 대하여, 뉴턴이 구조 정의한 태양계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것만 습득해도 이 책에서 반 이상은 얻어가는 것이 있을 듯. 책 커버 정말 잘 뽑았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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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5 - 4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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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천하무적의 군비, 일본의 심장은 그것으로 뛰고 있는 것이다. (P92)

1931년 9월 18일, 선양(당시에는 펑톈) 부근의 철로에서 폭탄이 터졌다. 만주에 체류 중이던 국민정부의 미국인 고문 로버트 루이스는 중국 외교부에 전보를 보냈다.
9월 18일 금요일 밤 군용 열차 7량에 가득 탄 일본군이 조선에서 단둥을 경유하여 만주로 들어왔다. 9월 19일 토요일 밤에 4량의 열차에 탑승한 일본군이 증원되었다. (...) (일본인들은) 학교 관리자를 체포하고 쑨원의 삼민주의 교육을 금지시켰다. (...) 병사들과 생도들은 체포되어 무장 해제되었다. 일본인들은 신형 소총과, 기관총, 군용차량 등 중국군 병기고의 무기와 탄약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중일전쟁 - 레너 미터, P61)

토지 15권은 시기의 범위가 가장 넓지 않나 싶은데 1931년 만주 사변 이야기를 하다가 중후반이 되면 훌쩍 시간을 넘어 1938~1939년이 되어 있다. 때문에 그 시간만큼 인물들은 나이가 들고 있던 공간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도 있어 이거야말로 시공간을 뛰어 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15권 인물들 중 가장 놀라운 변신을 한 인물은 유인실일 것이다. 14권에서 유인실의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힘들게 읽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반전 케이스가 된 것인지 놀라웠다. 반전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가. 마지막에 또 16권을 기다리게 하는 그 어떤 사건이 터져서 또 나를 궁금하게 한다. 어떻게 흘러가고 풀릴지 말이다(꼬이지는 말아주길).

15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면 역시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꼽을 수밖에 없다. 중국 국내의 사정, 그리고 일본 국내외 사정은 국민을 전쟁으로 몰고 가는 현실, 조선이 중국과 일찌감치 함께 합세하여 일본에 대항했다면 그에 대응할 수 있었겠느냐 생각해보면 솔직히 회의적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중국 땅 내부까지 그 여파가 미쳤고 이는 중국 북부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과 독립군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후 중국인들의 시선도 조선인들에게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아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일본 군벌이나 헌병에 고발하는 사례 등이 증가).

장학량이가 작년에 공산당하고 결탁해서 장개석이를 납치한 서안사건(西安事件), 그게 멸망의 징조였던 게야. 서안사건은 노구교사건(蘆溝橋事件)의 원인이지. 일본을 상대해서 중국은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이제는 만주가 문제 아니야. 멀잖아 일본은 중국을 손아귀에 넣을 거다. 이런 판국에 조선이 독립을 해?"
"중국을 손아귀에 넣는다구……… 그게 쉬울까요? 소련이 있고 미국, 다른 나라들이 보고만 있겠습니까?"
"만주를 보아라. 군말 몇마디 듣고 끝나지 않았나. 그나마 그 귀찮은 소리 안 듣겠다고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를 했거든 아무튼 일본은 지금 욱일승천이야. 기세가 하늘을 찔러. 장개석이 군대가 허약하기도 하지만 공산당을 경계해서 힘을 다 쓰지 않는 것도 일본의 전과가 오르는 이유의 하나고, 공산당이 아주 숨이 끊어져서 장개석이 강화되어도 안 될 거고 물론 공산당이 국민당을 아주 내몰아도 일본은 난감할 거고 말하자면 시기를 잡는 데 일본은 묘수(妙手)를 쓴 셈이지. 만주사변하고 꼭 같은 길을 가는 게야. 참말로 세상은 눈부시게 변하고 있어. 만주만 하더라도 기가 막히게 변했지. 내가 만주땅에 온 것이 삼십 년 꽉 차고 넘었는데 변해온 꼴을 보니 마치 처음에는엉금엉금 얼음판을 기듯, 다음에는 간신히 걷고 그리고 뛰는데 지금은 날고 있어. 허허벌판, 신경의 저 대동광장은 몇 해 전만 해도 허허벌판 아니었나? 그런데 지금은 어때? 사오 층의 어마어마한 건물이 가득 들어서 장관이지. 오랑캐의 땅이 그리 번창할 줄은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P322)

남경 함락 후 전선의 확대가 불가피해진 일본은 내심 당황하고 혼란에 빠진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띄운 것이 화평이라는 기구이며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 중재해줄 것을 은근히 요망했다. (...) 갖은 지랄을 다한 일본의 모든 행동이 도로(徒勞)로 끝나는 그 조건이나마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의 사정, 그러나 그들이 첫째 봉착한 것은 정부나 군부 이상으로 전쟁에 들떠 있는 국민에게 뭐라 할 것인가, 총동원하여 전쟁의 열기로 몰아붙여 놓은 국민들을 납득시킬 방법이 있는가. 남경 함락후 전승에 취한 국민들은 날이면 날마다 일장기 행렬, 등불 행렬로 법석을 떨고 있었으니, 그러는 동안 각 파의 반목과 대립은 오기를 자극하고 고조시키면서 화평 조건은 차츰 강경한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제국정부 성명을 발표하면서 그들 스스로 내놓은 화평안을 그들 자신이 막았고 일본은 비극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데 그 후안무치한 제국정부 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국정부는 남경공략 후 계속 중국 국민정부의 반성에 최후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민정부는 제국의 진의를 모르고 함부로 항쟁을 책동했으며 안으로는 도탄에 빠진인민의 괴로움을 무시하고 밖으로는 동아전국(東亞全局)의 화평을 원치 않았다. 하여 제국정부는 이후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며 제국과 진실로 제휴하기에 족한 신흥 지나정권의 성립발전을 기대하며 이들과 양국 국교를 조정하여 갱생 신지나설에 협력하기로 한다. 물론 제국은 지나의 영토와 주권을 위시하여 재지 열국의 권익을 존중하는 방침에는 추호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동아 화평에 대한 제국의 책임은 보다 무겁다. 정부는 국민이 이 중대한 임무 수행을 위해 한층 더 분발해줄것을 기망(望)하여 마지않는다. (P448~449)

1936년 2월 26일 육군의 '황도파' 청년장교들이 일으킨 이른바 '니니로쿠' 쿠데타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들은 '국가개조를 막는 통제파를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부대를 이끌고 수상관저 등 국가 주요 기관을 습격, 당시 내무대신 사이토 마코토, 오쿠라대신 다카하시 고래키요(1854~1936) 등 정부 요인을 살해했다. 사건은 이들을 3일 만에 진압함으로써 마무리됐으나 군부는 숙군을 핑계로 정계 요로에 군부세력을 크게 강화했다. 이같은 진통을 겪은 군부는 대중 매체나 교과서, 나아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해 국민에게 '대일본 정의'를 믿도록 선전했다. (도쿠토미 소호, P256~257)
황도파는 1932년 무렵 아라키 사다오(1877~1966), 마자키 진자부로(1876~1956) 두 대장이 위관급 청년장교들을 규합하여 형성한 육군내의 한 파벌로 텐노 천황의 권위를 이용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텐노 중심의 국체 지상 주의를 신봉하였다. 통제파는 일본 육군성 중앙막료 등 영관급 장교를 주체로 형성된 군부 파벌로 재벌과 관료들과 결탁하여 군부세력을 신장시키고 전시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군부 내 통제를 주장하였다. 만주 사변 이전에 군부와 내각이 갈등을 겪었다면 이후에는 군부 내 파벌들이 나뉘며 갈등이 심화되었다. 문제는 이것을 국민들에까지 전시, 강요, 확대했다는 데 있다.

홍구사건 이후 조선 혁명당이 중국 요녕 구국회와 합작하여 항일전선을 구성함으로써 양 민족 간의 공동보조는 구체화되었고 조선 독립군과 중국 의용군이 합세하여 쌍성현(雙城縣)의 점령을 위시하여 사도하자(四道河子)에서 일만연합군(滿聯合軍)을 격파했고 동경성(京城)을 점령, 동만(東滿)의 대전자령에서 일본의 나남(南) 72연대를 대파하는 등 행동으로 나타났다. (P387)

1937년 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유럽에서는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에 이은 두 번째 세계 전쟁이 시작되었다. (...) 일본의 전쟁 준비에는 일본으로의 소규모 엘리트 이주와 대규모 수사법이 수반되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군사고문관을 초빙하고, 전쟁 준비를 범아시아적 이익, 다시 말해 유럽 제국주의에 맞선 일본의 팽창으로 합리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수사법이었을 뿐 일본의 진정한 속셈은 중국의 원자재와 사람을 비롯한 자원 그리고 (전후의) 시장을 장악하려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1937년을 시작으로 일본은 상하이를 장악하고 중국의 많은 지역을 점령했다.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뒤에는 일본군이 학살, 강간, 약탈도 자행했다. 그때 죽은 사람이 30만 명이었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1870~1945, P650)

만주사변 후 만주국이 세워지고 1937년까지 6년간의 기간이 있다. 하지만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루거우차오 사건이 있기 전까지 중국 내에서 끊임없는 중일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중국 내 공산당과 국민당 간의 사정과 맞물렸고 일본은 이것을 이용하려고 했던 측면이 있다.
만약 중국 내의 그 복잡한 사정이 아니었다면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세운다는 것이 조금은 어렵지 않았을까.

"아무튼 얼마나 시체를 묻었는지 자동차가 가는데 땅이 흐물흐물 떠가는 듯 하더라는 게야." (P432)

당시 난징에 대한 상황 묘사인데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 묘사가 있지만 도저히 옮기기가 어려워서 이걸로 대신해야할 것 같다. 일본이 중국에 저지른 가장 잔악무도한 사건들 중 하나이다. 일본군은 민간인을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 이유 불문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 국민, 일본 정신, 일본 문화는 대체 무엇이냐는 가장 나를 괴롭혔던 주제였다. 쉽지도 않고 지금 당장 답안을 내놓을 수도 없는 문제라서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결국 황도주의를 생각했고, 황도주의 하면 대표되는 인물, 도쿠토미 소호를 떠올렸다.

일본 국민의 제일 의무는 일본국을 아는 일이다. 일본국체가 세계에 탁월한 까닭을 아는 일이다. 일본은 세계에 비교할 수 없는 국체를 갖고 있다. 만세일계의 황실을 원수로 받들고 있는 일이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 찾아도 우리와 같은 체제는 없고 버금가는 모양조차 아직 볼 수 없다. 그리고 만세일계의 황실은 우리 야마토 민족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체제이다. 황실은 야마토 민족의 중심이자 근본이며 주축이다. 동시에 야마토 민족이라는 대가족의 본가(本家) 본원(本元)이다. 황실은 이른바 군부(君父)라는 두 자로 대체할 수 있다. 임금이면서 아버지인 것이다. 이 군민 일가족이라는 생각은 일본제국의 자랑이다. (...) 일본의 원수와 인민은 머리와 몸통 관계이다.(...) 황실이 야마토 민족의 근간이고 인민은 그 곁가지이다. (...) 우리 제국은 나라가 곧 가정이고, 가정이 즉 국가이다. (도쿠토미 소호, P195~197)
일본제국헌법은 황실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국민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동시에 묶는 존재로 신격화하고 있다. 도쿠토미는 이 '일본제국헌법'을 구체화한 이론으로 '황실중심주의'를 만들어냈다. 그가 이것을 일본 국민에게 호소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일본의 국체(國體)를 재확인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혼란, 한탕 주의 또는 패배 주의로 흐르는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희박해지는 충군애국 정신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오가타는 일본과 만주국이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일본군과 일본인을 욕하지만 자신도 일본인이니까(자신을 탓하기도) 마치 끝없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그는 코스모폴리탄을 지향했으나 그러기엔 자신의 출신, 상황은 한계로 몰고 간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도 패배주의 또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이것이 아니라면 국가가 선전하는 군국주의를 택해야 할 수밖에 없는가)

일본 아이들이 중국인은 모두 모두 죽여라! 하더라는 찬하의 말을 들었을 때 오가타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며 전쟁놀이를 하는 것을 그 자신이 목격한 적이 있었다. 만주사변이 군의 몇몇 미친놈들의 독주였었다는 것을 일본인인 오가타는 심정적으로 변명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심약한 그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한테 그럴 필요 없어요. 관동군의 단독 행위건 정부는 무관했건 나한테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어디 조선인이오? 일본이 뼛속까지 젖어들어 나는 이 동경에 있질 않소. 하하핫…………" (P251)

사람의 수만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잠들거나 깨어 있을 밤은 서산에 태양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다가올 것이다. 해가 차츰차츰 가라앉고 있다. 동굴 깊은 곳의 눈 먼 귀뚜라미처럼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온다. 전쟁은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눈 먼 귀뚜라미처럼 도시라는 크나큰 동굴 속을 끊임없이 오고 간다.
‘내가 가는 곳은 무엇이냐. 히토미를 그리고 진실을 찾아 헤매는 길인가. 도피와 망각의 길인가. 무라카미 선배는 삶의 목표가 없어졌다 하고 말했다. 나는 뭐라 말했나? 목표가 없기론 다 마찬가지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그래왔을 거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해서 옛날의 사람들은 그렇게들 돌을 많이 쌓았는가. 엄살이지 엄살, 나도 엄살이긴 매일반이다.
눈 먼 귀뚜라미는 생존을 위해 오고 간다. 호두(虎頭)의 그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죽어갔다. 생존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끌려간 그들의 생존을 말살한 채찍과 총구는 무엇이냐! 운명도 아니요 신도 아니다. 채찍을 휘두를 때 총구에서 불을 뿜을 때 그들, 또 다른 눈 먼 귀뚜라미의 무리는 생존을 구가하고 미래를 약속한다. 인간이여! 그대들은 초인을 기다리는가? 인간의 최고 목표는 과연 무엇이냐? 초인을 만나는 것이냐, 초인이 되는 것이냐.‘ (P484~485)


문화에 대한 키워드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건과 관련된 역사의 책을 읽어야겠다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책들이다. (문화와 해석, 중일전쟁 관련사들)
토지를 읽으면 마치 무한 확장되는 사물처럼 내 머리가 다양한 생각들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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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5-02 0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다음 권을 읽고 싶게 만드는 일이 나와서 다음으로 바로 넘어 가겠습니다 이 책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좋은 거겠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02 09:06   좋아요 0 | URL
네. 제게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주지만 공부가 되는 책이기도 해요. 읽고 싶은 책이 많아졌습니다^^ 희선님 감사합니다.
 
사기열전 2 - 개정2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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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 2권은 1권보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하다.


초반에는 한나라 초기 공신들이나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이 나온다. 물론 왕에게 아첨했거나 전투에서 공은 세우는데애만 목적이 있어 비판을 받을 만한 인물들도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주창이나 역생, 육가, 유경은 호(好) 쪽에 가깝다면 부관, 근흡, 주설은 한나라 고조 곁에서 신하로 봉호를 받았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숙손통은 초한 전투 때 항우를 따랐다가 유방에게 투항한 사람이고 계포도 그 싸움에서 유방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장수였는데 나중에 유방에게 투항했다.

이 중 긍정적 평가를 받는 인물들은 직언과 간언을 한 아래와 같은 이들이었다.

역이기(역생)은 출신이 가난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낮추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유방을 처음 만났을 때 예의가 없다고 한 방 먹였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 때 패공은 침상에 걸터 앉은 채 발을 씻고 있는 상태였다. "진실로 사람들을 모으고 의병들을 합쳐서 무도한 진나라를 쳐 없애고자 하신다면 걸터앉은 자세로 나이든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패공은 바로 발 씻던 것을 그만두고 의관을 정제하고 상석에서 그를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역생은 관직에 등용되었고 사신으로 제나라 왕과 재상을 상대로 협상해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꿇리지 않고 지략과 담대함을 보여 설득해서 이익을 얻어내었다.

원앙은 강직한 성품으로 간언을 많이 하였다. 강후 주발이 황제 앞에서도 위아래 구분을 못하고 교만함을 보이자 그가 공신이지 사직의 신하는 아니라며 따끔히 일침을 가했고 회남왕이 시무의 태자의 모반에 연루되자 그를 촉 땅으로 보냈을 때 강직한 성품에 문제가 될까 염려된다고 간언했다(결국 회남왕은 가는 길에 병을 얻어 죽었다). 이에 마음 아파하는 황제를 보며 회남왕의 세 아들을 왕으로 삼게 하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로 주변에 적이 많았다고 한다. 권세를 누렸지만 그만큼 질시를 많이 받았을 것을 짐작케 한다. 최후도 정적이 보낸 자객의 손에 의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장석지는 한나라 문제 때 법 집행을 맡고 있었던(정위) 신하다. 문제가 수레를 타고 지나가다 어떤 사람이 갑작스레 다리 아래에서 뛰어나와 놀라는 상황이 발생했다. 장석지는 그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벌금형에 내렸는데 황제는 "이놈이 내 말을 놀라게 했고. 내 말이 온순하였기에 망정이지 다른 말 같았으면 나를 떨어뜨려 다치게 하였을 것이오. 그런데 벌금형?" 그 말에 "법이란 황제와 천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법은 한쪽으로 기울면 백성은 그들의 손과 발을 어느 곳에 두겠습니까?" 라는 말로 폐하를 납득시켰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오늘날 한국의 법을 실행하고 집행하는 이들은 공정하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순리 열전'과 '혹리 열전'에서는 순리(청렴한 관리)와 혹리(포악한 관리)를 비교함으로써 관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당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관리 태도 지침서 같은 것이 아닐까?
한 무제 때 중앙 집권이 강화되면서 관리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전쟁으로 나라는 혼란한데 지나치게 엄격한 법을 적용하면서 관리들이 뒷주머니를 차고 도적이 횡행하였으며 농민 봉기가 폭증하였다. 법령과 형벌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적당한지,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인상깊게 본 주제들을 묶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먼저,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있다면 한나라 주변의 땅에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흉노 열전'은 개인적으로 사마천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편이 아닐까 생각한다. 흉노 정벌은 한 무제의 치적으로 주로 이야기되지만 사마천은 기본적으로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포함되어 있지만 무제가 관리를 잘못 기용했다는 비판도 들어가 있다(물론 이 때 활약을 한 위청, 곽거병 장군 같은 인물도 있다).
'남월 열전'은 진나라 말기에 조타가 자칭 왕이라고 나섰던 곳인데 무제 때 한나라에 편입되는 남월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동월 열전'은 남월의 동쪽이라고 해서 동월 지역인데 지금의 복건성 지방의 이야기다. 진나라 말 반란 세력이 들고 일어설 때 이 지역도 반기를 들었고 한나라가 진나라를 멸할 때 이 지역에 왕을 봉하게 되었다.
'조선 열전'은 기자 조선에 연결되는 이야기로 위만이 평양에 들어가면서 한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남이 열전'은 '서이'와 '남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의 운남성, 귀주성, 사천성 등 서남쪽인데 중원에서 먼 데다 소수 민족으로 중국 전체에서도 멸시의 대상이 되는 집단이어서 문화적으로 황무지라 여기기도 한다. 다양한 민족이 섞여 있고 부락의 개수도 많다. 한 무제 때 확장 정책을 이 곳도 피해갈 수 없었다.
'대원 열전'은 지금의 티베트 분지 지역으로 한혈마 생산지로 유명했던 곳인데 한무제가 이광리를 보내 정벌의 대상으로 삼은 곳이다. 장건의 서역 행로와 겹치기 때문에 관련하여 읽을 수 있다.
이 열전들의 특징은 이 곳 땅과 사람들의 특징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고대사를 공부할 때 중원은 사실 영역의 범위가 넓지 않은데 진/한나라를 둘러싼 다양한 지역의 땅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인 듯하다(물론 오류도 있겠지만).

의술과 점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편작 창공 열전'의 편작과 창공은 명의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특히 편작은 진나라 때 전설적인 명의였고 침을 놓는 일, 탕약을 짓는 일 모두에 뛰어났다고 한다. 창공은 편작에 영향을 받았고 그에 버금가는 명의였으나 편작의 끝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둔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 편은 이 시기 한의학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데 당시 실제 환자의 상태로 맥을 짚고 병명을 진단하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놀라웠다.

이어서 '일자 열전'과 '귀책 열전'도 흥미로웠는데 바로 점술에 관한 이야기다. 고대 역사에서 점술 기록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주제인데 아마도 고대 사람들은 하늘, 거북이 등껍질, 시초 등으로 운을 점치면서 미래에 대한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자'는 하늘의 상태를 관찰하여 길흉을 점치는 것이고 '귀책'은 거북 껍질과 시초로 점을 치는 것이다. 일자는 한나라 때 아주 성행했고 귀책은 은/주 나라에서 성행했다(갑골 문자를 생각해보셔도)

협객과 장사꾼 이야기도 있다. 사마천은 둘을 모두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협객 이야기는 '유협 열전'에 실려 있다. 사마천이 생각하는 협객은 내가 생각하는 협객보다 범위가 더 컸다. 통치 계층의 악행을 도와 개인의 영달을 취하는 자도 협객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정의의 편에 서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만 협객이라고 생각했었다. 협객(유협)은 춘추전국시대 혼란한 사회상을 타고 일제히 터져 나왔지만 진한 통일기가 되면 타도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존재가 되었다.
장사꾼 이야기는 '화식 열전'에 실려 있다. 돈을 버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수단으로 벌어들인 것이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이야기들에 담겨 있는 다양한 장사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마천이 상업을 나쁘게 보지 않았고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장려되던 시기에 이런 주장은 파격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중국 전역의 나라 별로 땅의 특성에 따라(습기, 바람 등) 어떤 산업이 발달했는지 기술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로써 중국 진한 시기를 마무리하고 다음의 역사로 넘어가려고 한다. 넓은 땅,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가 여전히 필독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 그리고 사기 열전이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분명히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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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5-02 0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 이야기를 담았네요 역사책 하면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 더 많기도 하잖아요 사마천 열전은 그런 사람만 있는 게 아니어서 더 재미있겠습니다 그렇게 쓰기 쉽지 않았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02 12: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있어요. 사람들 사는 것은 지금과 비슷하구나 느낄 수가 있어요. 특히 관리들의 자세를 보면서 정권의 수뇌부들이 좀 보고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울목 2023-05-05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한나라를 위해 대책을 세운 사람은 조착이었지만 누명을 씌운 사람은 원앙이었다.그리고 오초칠국의 난으로다급하니 조착의 온 집안을 몰살시킨이는 한경제였다. 한경제는 오초칠국의 난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그 아들 한무제와 아울러 잔혹한 황제였다.황제는 강후 주발과 그 아들 주아부는 한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음에도 그만한 대접을 하지 않았다.
장석지는 한문제에게 말을 놀래킨자를 그 자리에서 처형했으면 그것으로 끝났다는 말도 했기에 반은 잘하고 반은 잘못한것이다. 애당초 처형할만한 잘못이 아님에도 장석지 본인이 판결하기전에 황제가 처형했으면 그만이라는 말은 인명을 경시하는 말이 아닌가싶다.
전진왕 부견은 비수대전의 패배로 비난받지만 인명을 소중히 한 사람였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기에 그 최후는 너무 안타까왔다. 후연의 모용수도 그 신하에게 과거 부견이 대해준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라고하였으니말이다.
역사에서 나라가 혼란스러울때 그나마 나라를 나라답게지탱하는 것은 법을 판결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정의로움으로만 있는 사람인줄 알았던 좌파정권때의 사람들을 보면 공자가 말을 교활하게 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한다는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박근혜정권시절에 그 다음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서 우파를 털고 그다음엔 다시 우파가 정권을 잡아서 운동권 사기꾼 좌파를 털어서 서로 혼이 나야만 선을 넘는 짓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의 좌파를 보면 전태일 열사나 박종철, 이한열 열사를 사후에 만나면 과연 떳떳할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김유신장군과 그 부인은 패배하고 살아남은 원술을 만나지 않았는데, 뇌물을 받은 아들을 둔 김대중대통령은 5.18영령들을 바라보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여담으로 고위직의 여성분이 정권이 바뀐후에 제자들을 초대해서 지난정권의 김**님의 자식인 김~~의 교육을 어머님이 잘못시킨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한다.세월이 흘러 고위직 여성분의 아들 셋이 전부 뇌물관련하여 문제가 생기자 ,그때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지 아들들은‘하며 빈정대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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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하고 다크한 원두를 선호하는지라 사지 않으려 했다가 ‘청사과‘라는 말에 끌려서 주문했다. 헌데 사실 ‘청사과‘는 내 미각에 전달되지 않았다. 향을 말하는 걸까? 대부분 아침에 마시기 때문에 산미가 강하면 곤란한데 적당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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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4-26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사과라니 혹하지만, 저는 요즘에 원두 내려 마시기가 너무 귀찮아서요. 원두 주문 안한지 오만년 된 것 같아요. ㅎㅎ
청사과.. 사볼까..흐음...

거리의화가 2023-04-26 11:1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는 머신이 있는데도 드립은 또 다른 맛이라 아침엔 거의 드립으로 먹어요. 너무 귀찮으면 드립백으로!ㅋㅋ 청사과가 왜 안 느껴질까요ㅎㅎㅎ

잠자냥 2023-04-26 12:06   좋아요 1 | URL
부장님 청사과는커녕 냉동부사 향도 안 납니다...

다락방 2023-04-26 12:12   좋아요 1 | URL
다들 안난다고 하시는데 어째서 내가 한 번 마셔보고 싶은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4-26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랑 똑같아요. 저도 다크한 원두 사려고 하다가 ‘청사과‘에 이끌려 이걸 구매했으나,,, 청사과는 어디에? 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4-26 12:55   좋아요 0 | URL
역시 원래대로 다크한 원두를 샀어야 했나 싶었어요. 진짜 청사과를 느끼신 분이 있긴 한걸까요?ㅎㅎㅎ

수이 2023-04-26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사과맛 안 나, 알라딘아 환불해줘 해도 될까요? 사서 마셔보고 싶은 강렬한 호기심!!

거리의화가 2023-04-26 12:57   좋아요 0 | URL
장사법상 환불은 안되겠지만 어쨌든 마셔본 저는 좀 허탈했어요! 수이님 마셔보시면 그 맛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