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다가 점점 심해지더니 주말 내내 감기로 골골 댔다. 그렇지만 일요일 오전 불현듯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하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얼마 전 그레이스님께서 알려주신 전시를 보러 가기 위해서다. 사실 몸을 생각하면 나중에 가도 되었지만 그 놈의 반값 할인 때문에 가게 된 이유도 있었다-_-; 전시를 위해 도서관에서 관련 책 두 권을 빌렸고 토요일에 부랴부랴 한 권만 완독한 상태로 갔다.
전시의 제목은 <다시 보다 : 한국근현대미술전> 이다.
2018년, 2019년 공교롭게도 한국 근현대 전시전을 연달아 다녀왔었다. 2018년은 <신여성 한국에 도착하다>, 2019년은 <근대서화> 였다. 한국 근대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관련 전시 등이 있으면 찾곤 한다. 장르는 주로 그림, 서예 쪽이었다. 또 한동안 TV쇼 진품명품에 꽂혀서 열심히 보았는데 이것도 한국 예술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구나 싶다. 여기에 꽤 자주 등장하는 '오세창' 선생님이나 '변관식' 선생님 등의 이름이 어느새 익숙해졌으니 말이다. 어느 회였나 '김진우' 선생님이 나오신 적도 있었는데 이런 멋진 예술가분이 계셨구나 하는 생각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전시는 총 5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다.
1번째는 '우리땅, 민족의 노래'로 한국 근대 시기에 활동한 작가들 중 우리의 땅과 사람을 그린 이들을 다루었다.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이인성, 구본웅, 박생광. 대부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들이다. 이중섭 하면 '황소' 그림을 떠올리지만 나는 그의 가족 그림이 그려진 드로잉이 따뜻해서 좋았다. 그리고 박수근의 그림은 대부분 농촌을 배경으로 머릿수건을 두른 여인과 아이들, 노인, 초가집들이 있는 마을 등을 배경으로 한다(토속적이다). 장욱진은 사실 지난 번 전시에도 봤었을텐데 기억을 놓치고 있다가 이번에 관련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되새겼다. 박수근과 비슷한 결을 보이는데 한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그리되 사물을 심플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구본웅은 이상 자화상 그림이 워낙 강렬했었는데 이번에는 1940년대 중앙청을 배경으로 한 서울 그림을 비롯한 풍경화가 놓여 있길래 색달랐다.
2번째 '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 섹션에서는 월남작가와 월북작가를 다룬다. 우리는 식민지 시기에 제국주의와 친일 관련해서, 해방 이후에는 좌우 대립, 6.25 전쟁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나는 바람에 이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소개된 이들은 배운성, 이쾌대, 변월룡, 황용엽이다. 네 분의 작품이 모두 나름의 개성이 있어 놀라웠지만 특히 황용엽과 이쾌대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이쾌대의 작품은 이전 전시에도 한 번 본적이 있어 대강의 느낌을 알고 있었는데 황용엽은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도 강렬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가 표현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 '인간이 별 거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가 표현한 것은 '일그러진 인간'이다. 태어나 보니 북한이었고 자라면서 전쟁과 기아, 독재에 많은 고뇌와 혼란을 겪었음을 느끼게 한다. 이쾌대는 이제는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다. '군상'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이며 전투에서 다양한 인간들의 표정, 저마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 by 황용엽, 1982)
(군상1_해방고지 by 이쾌대, 1948)
3번째 섹션은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 로 한국 근현대사에 활약한 여성 예술가들을 다룬다. 나혜석, 박래현, 이성자, 방혜자, 최욱경, 천경자중 나혜석, 박래현, 천경자는 익숙했는데 나머지 세 분은 사실 잘 모르고 있었다. 나혜석은 알다시피 최초의 서양화가이다. 당시 서양화를 그린 남성 작가들도 습득한 서양화를 이후에 작업을 계속 하지 않고 동양화로 유턴하는 등(한국이 서양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사정 등 때문) 우여곡절이 많았는데도 나혜석은 끝까지 서양화를 고집하고 놓지 않았다(작품 수가 적다는 게 한탄스러울 뿐). 박래현은 김기창의 아내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그의 그림은 독보적이다. 천경자는 말해 뭐해 그의 그림은 볼 때마다 감탄과 놀라움을 자아낸다. 방혜자는 '빛'이라는 키워드로 기억되었고, 이성자는 파리에서 시작부터 공부를 한 최초의 여성 화가라고 한다.
4번째 섹션은 국제화, 세계화 흐름에 맞추어 등장한 추상 미술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국 예술가들은 외국의 추상 미술을 그대로 수입한 것이 아니라 한국적 미와 결합시켜 자신들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환기, 유영국, 한묵, 남관, 이응노를 다루었다. 추상 미술에 워낙 약하기도 하고 잘 모르지만 김환기 이름만은 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 세계를 아는 것이 아니라서... 사실상 한국 추상 미술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이 이번인 듯하다. 산을 표현해도 김환기가 표현하는 산과 유영국이 표현하는 산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 재미있다. 한묵의 작품은 공간의 힘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대표적으로 전파가 뻗어나가는 모습을 선으로 표현하여 마치 천둥 같이 표현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응노의 작품은 보자마자 '이거 한자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맞았다. 그는 한자, 서예를 추상화한 작품을 많이 제작한 듯하다. 헌데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던 '군상'이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그 앞에 가장 오래 서 있기도 했다. 한지에 먹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ctrl+c/ctrl+v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산 by 김환기, 1955)
(유영국 by 산, 1966)
(군상 by 이응노, 1986)
5번째 섹션은 '조각, 시대를 빚고 깎고'이다. 서예 전시는 좀 봤지만 조각 전시는 거의 본 적이 없다. 특히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조각 미술가들이 누가 있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권진규, 김종영, 김정숙, 문신 작가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이번에 책을 읽다 발견한 권진규는 섹션에서도 마침 다루고 있었다. 권진규는 '말' 조각상이 일품이었는데(다양한 버전의 말) 힘찬 역동성이 느껴졌다. 김종영은 작품에 이름이 따로 없고 일련번호만 붙어 있었는데 불교의 '만'자를 재해석한 것 같기도 한 알쏭달쏭한 청동상과 여인의 흉상이 기억에 남는다. 실제로 작가의 변을 보면 불각, 나아가 동양 사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은 듯하다. 김정숙은 날개를 펼친 새 조각이 일품이었고 문신은 그야말로 알 수 없는 조각들의 향연이랄까. 그 중 '개미'를 형상화한 조각이 그나마 연상이 쉬워서 기억에 남는다.
모든 섹션 중 2번째(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와 4번째(추상, 세계화의 도전과 성취) 섹션이 좋았다.
아무튼 어떤 전시를 보러 가든 예술가의 이름과 간단한 프로필 정도만 알고 있어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경성제2고보(지금의 경복고등학교) 미술 교사이자 화가이기도 했던 사토 구니오 아래에서 많은 제자가 배출되었다. 이 중 전시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인물은 유영국(1916~2002)과 장욱진(1917~1990)이다. 유영국은 제2고보에 진학하나 2학년 때 사정상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에 있는 문화학원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는 한국 모더니즘과 추상화의 선구자로, 작품에서 선보이는 강렬한 색과 기하학적 구성은 서사적 장대함과 서정적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그가 활동한 '신사실파'와 '모던아트협회'는 한국 근현대 미술 모임의 상징이었다. '모던아트협회' 전시회에 출품된 <사람>은 인체를 소재로 한 유일한 작품으로 그의 50년대 대표작이다. 장욱진은 제2고보에 진학하여 미술반에서 사토 구니오를 만나 미술에 눈을 뜬다. 그때 수업을 통해 입체파와 피카소의 미술세계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욱진은 개인 사유로 3학년에 중퇴하고 양정고보에 편입하여 졸업한다. 그는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훗날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가 된다. (서촌편 P68)
배운성은 레젠부르그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1925년 두 번의 낙방 끝에 베를린국립종합미술학교에 입학한다. 열심히 공부하여 1930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우수한 성적 덕에 졸업 이후에도 학교 아틀리에를 이용할 수 있는 특전을 받는다. 그는 이곳에서 인물화에서 풍경화까지 다양한 대표작들을 그렸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리기도 하고, 자신을 도와 준 백씨 집안사람들을 그리기도 했다. 비록 머나먼 독일 땅에 있지만 그의 그림 소재는 늘 고국의 모습이었다. 본인의 술회에서 이러한 회화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나의 목표는 서양화와 동양인이 그리는 서양화 간에 생기는 거리를 없애고 완전한 융화 속에서 실감을 체득하는 데 있었다." (북촌편 P304)
권진규는 주로 인물이나 말, 닭 등의 동물 모습을 흙으로 구워 제작하는 테라코타 방식으로 작업했다. 물론 브론즈나 나무 조각도 있었으나 주로 테라코타와 건칠 작업에 주력했다. 그의 작품들은 작가의 정신적인 구도 자세와 사물에 대한 인식을 형상화한 것들이었다. 그의 작업은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표현 방식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면서 직감적 신경에 의존한 예민한 작업 방식이었다. 이러한 그의 다분히 동양적인 사고는 작업 대상인 사물에 대해 원초적 이미지의 본성을 파헤쳐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불필요한 형식적 장식물을 극도로 생략하면서 대상과의 정신적인 합일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북촌편 P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