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리뷰로 100자평을 쓰기는 했지만 책의 내용 중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을 나누어야겠다 싶어서 더 늦기 전에 글을 쓴다. 나는 이론을 갖다 대거나 다른 책을 대기에는 공부가 부족하여 체험과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디지털 미디어의 사례로 든 ASMR, 인스타그램, 유튜브, 웹툰 등등은 모두 내게 낯선 것들이었다. 그나마 게임 개발자의 챕터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게이머들의 비율은 남성이 많은 편이고 게임 개발자도 압도적으로 남성 개발자들이 많다. 여성 개발자들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그 비율은 차이가 크다. 또 온라인 공간의 게임에서 여성 게이머들이 얼마나 많이 폭력에 노출될까. 한 회사에서 여성 개발자들이 얼마나 일할까 싶은데 그 안에서도 여성 개발자들간의 커뮤니티는 활발하지 못하다.

"MMORPG 게임은 거의 남성 중심의 게임이고, 기획, 개발자도 대부분 남성이었고, 조직 문화에서도 여성이 뭔가를 주도해서 하기는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조직 내에서 발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남성이었어요. 그래도 저는 여성 동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 P295

IT 업계가 3D 직종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하는데 게임업계는 특히 그렇다.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이 있는데 그분은 개발자는 아니고 DBA다. 그분을 통해서 게임업계가 돌아가는 세계를 간접적으로 듣곤 했다.

요즘은 그나마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게임이 오픈할때쯤이면 게임 개발자들은 비상이라 밤샘 근무는 허다하고 주말에도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밤에 갑자기 불려나가는 경우도 있다.
게임 오픈 후에는 더하다. 책에서도 개발자들의 체험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최소 6개월 정도는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팬더곰이 되기 십상이다.

책의 체험기들이 너무 생생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기혼인 여성 개발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커리어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얼마나 절절하던지. 그나마 대기업은 휴가 제도, 육아를 위한 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다지만 중소기업은 그런 제도들이 갖춰 있을리가 만무하다. 제도가 갖춰져 있다고 해도 여성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그 제도를 고스란히 잘 사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저는 일을 하면서 봤던 분 중에 유일하게 한 분이 결혼과 임신 이후에 게임 개발자 일을 계속했어요. 그 분은 팀장이었는데요. 예전에는 "저렇게까지 독하게 일을 해야 할까"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사람도 "회사의 구성원이 되려고, 인정받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을 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P294

게임 업계는 아니지만 나는 IT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모든 직업인들이 겪는 고충이겠지만 개발자는 일명 버그(bug), 오류와의 싸움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오류는 단시간에 고쳐야 하고 오류는 가능하면 만들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제품이든 오류가 없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이 때문에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게임 업계는 게임이 오픈되면 수많은 게이머들로부터 폭탄 세례를 받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빨리는 일이다. 나도 어떤 제품을 만들어 팔지만 소수의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유로울수는 없겠지만 게임 개발자들의 고충을 보니 내 고충은 고충도 아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오프라인에서 소비자들을 만나는 것처럼 온라인에서 직접 소비자들을 항시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은 자리 잡기 어려워요. 게임 출시 준비를 하는 1년 정도가 체력적으로 소모가 엄청 심한 시기에요. 이 시기를 잘 버티지 못하면, 게임 준비에 들인 노력이 모두 사라져요." - P289

"대박난 게임이 없으면 개발하다가 그 팀이 없어지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게임 테스트 과정에서 평가가 좋지 않으면 하루 아침에 그 팀이 없어지는 거죠. 게임이 드랍되면 개발자는 실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거고, 그럼 회사에서 나가야 해요. " - P292

또 하나 든 생각은 오래 업계에서 일한 여성 개발자일수록 잘못 쓴 계약서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것은 비단 여성 개발자라서 생기는 일이라기 보다는 보편적인 이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노동자의 생계와 직결되는 이슈다. 보통 회사와 계약을 하는 노동자들은 계약서의 세세한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신입 때는 그 내용을 잘 모르기도 하고 눈여겨 보기도 힘들다. 입사해서 들어왔는데 막상 자신이 상상하며 그리던 환경이 아닐 때가 너무나 많다. 1차 계약인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하도급으로 2차, 3차 계약인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수수료가 이중으로 떼이는 경우도 발생한다. 지금은 초봉이 좀 올랐겠지만 내가 처음 입사해서 받은 연봉은 말도 안되는 낮은 금액이었다. 그 때 그런 금액을 받고 일했고 심지어 불합리한 조건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퇴직금, 추가 노동에 대한 부분 등 수도 없다.

게임 개발의 성공에만 집중하는 회사의 조직 문화로 인해 게임 개발자들은 계약 과정에서의 문제를 인지하거나 개선을 요구하는 발언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개발자는 인센티브만을 바라보고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 일을 그만두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에 성과를 내는 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 P292

모든 노동 업계의 문제겠지만 여성 게임 개발자들의 처우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소망이 크다.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노동자를 사망 또는 사상에 이르게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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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8 21: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게임이나 IT업계에서 여성이 버티기가 더 힘들다는 느낌이 확 와닿네요. 저런 일은 진짜 육아나 가사노동을 병행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걸 여성들이 대신해주면서 남성 IT업계의 노동자들이 뼈를 갈아넣는 현실을 유지하는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성들은 그런 서포트를 못받으니 도태되고..... 이게 정상은 아니잖아요. 저렇게 뼈를 갈라넣은 남자들도 나중에 보면 가족은 모두 떠나 있고 자신은 가정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는 지경이 될테고....
우리나라의 노동조건이 가장 첨단 산업에서 오히려 전근대에서 헤매고 있는 상황 자체를 문제삼아야 하는거 맞죠?
화가님도 IT업계에서 일하시느라 고생많으시겟어요. 에휴 토닥토닥 위로를 전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9-29 09:26   좋아요 3 | URL
네. 게임 업계는 특히나 여성개발자로 일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미혼도 힘들텐데 기혼은? 애까지 있다면? 어휴 생각만 해도 갑갑해집니다. 뼈를 갈아넣는다는 말씀이 맞아요. 저도 거의 대리급 정도까지는 밤샘 근무는 여사였어요. 사정을 봐주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게다가 젠더 인지 감수성도 굉장히 부족한 업계입니다. 성희롱과 성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_-; 저는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게임 캐릭터들이 대부분이 소녀 캐릭터가 많은데 그런걸 보는 여성 개발자의 마음은 어떨까~ 저는 동공지진일어날 것 같더라구요. 게임이 좋고 게임 개발자가 하고 싶어서 들어간 여성 개발자들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2-09-29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부분 읽으면서 화가님은 괜찮으신가? 걱정되었습니다. IT업계에 일 하신다던데...직접 묻기도 그랬었는데 이렇게 리뷰를 읽으니 책에 나오는 게임 개발자들만큼은 아니라고 하셔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업무의 고충이 크실 듯 합니다.
예전에 90년도 후반쯤에도 남편의 중학 동창을 함께 만나 얘기를 했었는데 IT쪽 게임 개발업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때도 밤샘 근무를 밥 먹듯 하고 있어 늘 피곤해 하더니 결국 몇 년 못버티고 이직을 했다더라는 이야기도 생각났어요.
남자도 버티기 힘든 강도의 업무를 여성이 특히 기혼 여성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가히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특히나 게임 온라인상에서 여혐이 그렇게나 심각하다니...책을 읽으면서 충격이었어요.

거리의화가 2022-09-29 09:32   좋아요 3 | URL
아이고~ 나무님^^ 제 걱정을 다해주시고 감사합니다^^ 오류와의 싸움이죠. 사실 제품을 항시 만드는 것보다는 제품을 만들고 유지보수하는 기간이 더 길거든요. 그래서 욕을 항시 먹는 그런 직업입니다ㅠㅠ
기혼이고 육아까지 하는 여성 개발자들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나마 애가 없지만 만약 제가 애가 있었다면 다닐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온라인 게임 대부분이 채팅 기능이 있거든요. 저는 게임을 하지 않지만 옆지기가 게임 마니아라 옆에서 보다 보면 할말하않. 채팅 기능으로 얼마나 여성 게이머들이 폭력에 많이 노출될까 싶어요. 캐릭터의 문제도 있구요.

2022-09-28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9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9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9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09-29 09: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지만 딱히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부분이었거든요. 저도 노동자이기는 하지만 게임 개발을 전후로 그렇게나 미친듯이 일을 해야 한다니.. 그런데 거리의화가 님이 그 부분의 글을 써주셨네요. 같이읽기가 왜 좋은지 거리의화가 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습니다. 우린 한 권의 책을 같이 읽는데 읽는 사람마다 말하고 싶어지는 지점, 말할 수 있는 지점이 다르잖아요. 너무 좋네요, 화가 님. 잘 읽었습니다. 너무 좋아요! 거리의화가 님, 앞으로도 계속 함께 읽어주세요!

거리의화가 2022-09-29 09:43   좋아요 2 | URL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으며 좋은 지점이 그것인 것 같아요. 제가 나눌 수 있는 부분은 경험이나 소감 나눔 정도지만 서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참 많은 도움이 되는 듯 싶어요.
다락방님이 리딩도 잘해주셔서 더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다음달 책 포르노랜드 읽으면서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을까 걱정은 됩니다만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mini74 2022-09-29 12: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린세스메이커란 게임 생각나요. 예전에 유행했던 게임인데 정말 싫었거든요. 키우는것도 결말도 ㅠㅠ 조카들 셋이 그쪽에서 일하는데 ㅠㅠ 여자조카 이야기 들어보면 ㅠㅠ 그렇습니다. 화가님도 고충이 많으시겠어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9-29 13:09   좋아요 2 | URL
여자조카 이야기. 안봐도 그려지는 듯합니다ㅠㅠ 게임들은 왜 다 캐릭터가 다 일률적이고 스토리도 그럴까요? 여성에 대한 비하나 차별이 보여서 너무 불편합니다.
고충은... 이제 제가 몇 년이나 이 업계에 있을지 모르겠어요. 남은 날까지 잘 버텨야지 그런 생각만 합니다^^;;;

독서괭 2022-09-30 18: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리뷰 쓰면서 이 꼭지에 관해서는 게임개발자 두명의 인터뷰만 있어서 아쉽고 연구가 더 진행되면 좋겠다고 썼는데, 화가님 글 보니 두명의 인터뷰어라도 여러 가지 내용을 풍부하게 담아냈구나 싶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여성개발자가 회사에서/회사밖에서 당하는 차별이라든지 젠더폭력에 관해 좀더 깊이 써줬으면.. 했어요. 너무 중요한 부분인데요. 하긴 짧은 글들에 <레이디 크레딧> 같은 내용을 기대해서는 안 되지만요^^;; 갑자기 제 욕심이 과했다는 생각이. .횡설수설..
아무튼 화가님도 IT업계에서 일하시며 많이 고생을 하셨고/하고 계실 듯 합니다. 몸을 잘 챙기시길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9-30 18:22   좋아요 3 | URL
괭님 인터뷰어 숫자보다는 저도 젠더 차별과 폭력에 대해 깊이있게 다루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때문에 저도 제 체험 이야기를 두루뭉술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쉽습니다. 향후 이런 연구서가 나온다면 이 부분을 보강해주면 좋겠어요.

공쟝쟝 2022-10-04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IT, 온라인 노동은 정말인지 상시 노동이라는 게 가장 큰 힘듦인 것 같아요. 플랫폼 노동도 그렇고. 저도 할말 많은 프리랜서라서 할말이 진짜 많은데... 온라인 노동에는 퇴근이 없다..(출근도 없지만ㅋㅋㅋ)..... 진짜 그토록 한세기 넘게 빡세게 노동운동 하면서 얻어낸 노동법 다 쓰레기로 만드는 메타버스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다 새로운 기회 새로운 시장 돈벌자~ 와랄라랄라랄라라~이러고 있는 거 너무 슬프고...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돈벌어야 하는 내 신세 나도 슬프고...
암튼 이렇게 화가님의 입장에서 쓰인 글을 읽으니까 또 좋군요! 읽느라 일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10월에도 화이팅! ^^

거리의화가 2022-10-04 17:54   좋아요 1 | URL
온라인 노동... 생각만 해도 힘드네요^^; 퇴근이 없는 일이라니ㅠㅠ 쟝쟝님도 고생이 많으세요~ 먹고 사는 것은 왜 이리 고달픈가 싶네요~!
제가 볼 땐 있는 노동법 잘만 지켜도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기업에서는 법을 피하고 악용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니 화가 납니다. 이 달에 읽을 책이 저는 걱정되네요~ㅠㅠ 쟝쟝님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