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본미술 순례 1 - 일본 근대미술의 이단자들 나의 일본미술 순례 1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연립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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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으나 역시 재미 있었다. 원래 여행기를 읽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에 하나의 주제를 기반으로 정리한 책을 좋아하는 탓이다. 또 서경식 선생님의 디아스포라적 위치, 자기 재인식의 사유를 담은 문장들이 있으니까.

얼마 전 펀딩을 한 2권을 읽기 전 이 책을 먼저 읽기 위해 집어 들었다. 


저자는 일본 근대 미술을 언제고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미술가들은 다양한 범위를 아우르고 있으나 보편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는,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이단자’들이 표현한 미술이다. 또 자신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조선보다 일본에 아무래도 더 친숙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책을 쓸 당시 코로나로 전 세계가 시름하고 있을 때였던데다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도 악화된 상태였기에 개인적인 안타까움도 덧붙여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일본 미술을 미화하자는 것도, 비난하자는 것도 아닌 일본을 비판하기 위한 하나의 거울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총 일곱 명의 미술가를 다루는데 이중 아이미쓰와 마스모토 슌스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카무라 쓰네의 <두개골을 든 자화상>은 두개골을 들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하다. 두개골은 서양화에서도 익숙한 그림의 등장 소재다. 두개골은 죽음에 대한 상징적 묘사로 17세기부터 ‘바니타스’라는 형식으로 북유럽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에서 시작되었는데 전통적으로 정물과 해골을 함께 배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화상 속 인물은 두 뺨이 붉게 물든 것을 통해서도 어딘가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표정은 두려움 같은 감정을 초월한 모습이다. 저자도 그 점이 신기해서 이 그림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나카무라 쓰네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시인이자 언어학자, 동화작가인 바실리 에로센코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 초상화는 근대 일본 서양화의 대표작으로 남았다고 한다(에로센코는 루쉰과 교류하고 염상섭, 박헌영과 만남을 갖기도 했다고 한다. 사망 직전 한국의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에스페란토어로 남겼다니 놀라웠다). 


사에키 유조는 ‘요절, 파리, 화가’라는 세 가지 요소를 지녀 일본 근대 미술의 신화로 남았다. 도쿄미술학교 졸업작품으로 그린 자화상은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나카무라 쓰네의 바실리 에로센코의 자화상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러다 1924년 파리로 건너가 만난 야수파 화가 모리스 블라맹크에 의해 비난을 받고 충격을 받은 뒤 그린 자화상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그렸다. 그는 일본 근대미술의 정통 아카데미즘적 화풍에서 길을 벗어나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냈다. 사에키의 주변에는 조선과 관련 있는 인물들이 많았다고 한다. 후지시마 다케지는 그가 미술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스승으로 짧게나마 조선에 체류하며 작품을 남기고 조선미술전람회 심사를 맡기도 했다(그는 조선 화가 오지호의 스승이기도 하다). 미술학교 선배인 이시이 하쿠테이, 친구인 야마다 신이치도 조선미술전람회 심사를 여러 번 맡았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강화된 이후 서양화를 그리던 대부분의 일본 화가들은 전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후지타 쓰구하루는 그 흐름에 앞장선 대표적인 화가다. 그런데 그는 전쟁이 끝나도 이에 대한 반성은 커녕 오히려 이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고 심지어 유럽으로 가 이름을 바꾸고 남은 삶을 살아갔다고 한다. 

이 흐름에 예외라 할 수 있는 부류가 아이미쓰와 슌스케다. 


아이미쓰의 <눈이 있는 풍경>은 서양의 초현실주의 대표 미술가인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과 비슷한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적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붉은 기운에 휩싸여 있다. 저자는 2020년 예술학 강의에서 ‘전쟁과 미술’을 테마로 삼았을 때 이 그림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라 학생들의 감정도 남달랐다고. 이 그림은 1938년 그려졌다. 1938년은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일본이 군국주의의 기치를 내건 이후다. 그림 속 묘사는 당장의 현실은 아니지만 미래를 예견한 듯한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다. 아이미쓰는 전쟁화를 그리지 않았다. 조각가 이데 노리오의 회상에 따르면 어느 날 모임에서 화가 후루사와 이와미가 “요즘은 군부에 협력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해.”라고 말했을 때, 아이미쓰는 히로시마 사투리로 “아무리 그리 말해도 나는 전쟁화는 못 그려, 어쩌면 좋지?”라고 울먹였다고 한다(P113). 그는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시류에 편승하는 화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미쓰의 <눈이 있는 풍경>은 현대미술가 야나기 유키노리에 의해 <고질라 프로젝트-눈이 있는 풍경>으로 재탄생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일본 정치, 우익 단체에 의해 전시 설치를 지속적으로 방해받는 등 우여곡절이 많다. 과거의 망령은 여전히 떨쳐지지 못했다. 


마쓰모토 슌스케의 그림은 대체로 어둡고 음울한 색채와 분위기를 지녔다. 슌스케는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열 살부터는 모리오카시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갑작스런 고열 이후 얻은 청각장애로 원래 꿈이었던 엔지니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다행히 형 덕분에 붓을 잡으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신념’이란 말이 번번히 입에 오른다. 하지만 오히려 현대의 지식인이나 젊은이에게 신념이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아직 반성하는 양심이 있다는 증거다. 신념의 부족보다도 몽매한 신념이 얼마나 크나큰 재앙이 되는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 잡기장, 1937년 4월호 (P208)

그는 아내와 함께 발행한 잡지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충성과 신념을 강요당하던 시대 몽매한 신념을 부르짖는 일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음을 느끼게 한다. 그는 스즈키 구라조가 기고한 미술가가 국가를 위해 붓을 휘둘러야 한다는 글에 대해 예술의 휴머니티로 논박한다. 물론 그의 휴머니티에 대해서는 곱씹을 필요가 있다. 슌스케는 전쟁에 협력하지 않고 저항한 예술가의 전형으로 추켜세워진 면이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가치이자 인도주의인 휴머니티의 구체적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그가 일본의 군국주의이자 대동아주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런 시대 속에서 그가 예술가로서 최선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한다. 


7명의 화가 중 4명의 화가를 언급했을 뿐이지만 나머지 인물들도 흥미롭다. 책은 각 화가의 작품과 삶의 궤적, 그와 관련된 인물들과 역사를 언급하고 있기에 근대 시기 예술과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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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12-30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엄청 궁금한데 참고 있던 책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뒤로 뒤로 미뤄두고 있는데,,, 모른척 할 수가 엄ㅅ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