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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전설 쿠로사와 1
후쿠모토 노부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어쩐지 내 당신의 이름과, 무지막지한 제목과, 넙적한 턱주가리의 얼굴에 끌리더라니!
<최강전설 쿠로사와>라니, 예전같으면 솔직히 거들떠보지도 않을 이름이고, 제목이고,
'상판'으로 간단히 치부되고 말 얼굴이었다.
그런데 처음 만난 날 다짜고짜 술을 마시자더니 '도라무통'이 엎어진 시장통 술집으로
나를 끌고 가서, 한 주전자의 막걸리를 목구멍으로 들이붓고 나서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날 깨달았다! 나는 청천벽력처럼 깨닫고 만 것이다. 감동이라곤 없다!
텔레비전의 축구경기를 시청하며 내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남의 이름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고동, 나의 환희, 나의 포효... 나의, 나에 의한, 나만을 위한 감동이었는데...
텔레비전의 축구경기를 시청하며 당신이 벼락처럼 깨달은 건,
남의 영광에 환호하다 인생이 저물었다는 것. 고교를 졸업한 지 어언 26년째이고, 마흔네 살.
개나 소나 다 하는 결혼도 못해보고, 다니는 건설회사에서 잘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며,
쓸쓸히, 너무나 별볼일없는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래도 되는 건가? 아니면 원래 이런 건가?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쿠로사와 씨, 안심하세요. 인생은 본래 그런 거거든요!
제 이야기도 좀 들어보실래요? 저만 해도 어제 아침 열흘째 끙끙거리며 붙들고 있던
일 하나를 '도저히 더이상 진행 못하겠습니다! ' 하는 메모딱지를 붙여 퀵으로 돌려보내야 했고요,
열흘의 노임은 날아갔고, 자존심은 저, 저, 밑바닥까지 떨어졌답니다.
열흘의 노임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죠.
진작에 돌려보냈어야 하는 일을 어찌 되겠지, 하고 그냥 붙들고 있다가, 이렇게 낭패를 본,
그 무시무시한 나태와 습관이 문제인 거죠.
세상에나, 자신이 이렇게 무능하고 한심한 인간인지 정말 몰랐어요.
안해서 그렇지, 내심 뭘 해도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혼자 마시지 말고 저도 한잔 주세요.
그런데 그건 그렇고, 건설현장 동료 인부들의 '인망'을 얻기 위해 전갱이 튀김을 한 보따리 사다가
몰래 도시락에 한 조각씩 넣어놓고, 그 선행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길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던
당신의 모습에 얼마나 배꼽을 잡았는지요.
미안해요, 웃어서!
그런데 저도 그런 적 있거든요. 비록 전갱이 튀김은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