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중반, 크리슈나무르티와 라즈니쉬의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속속 떠올랐다.
석지현 스님과 전위무용가 홍신자가 번역한 <마하무드라의 노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나 <자기로부터의 혁명> 등 지금 생각하면 명상서적이라기보다
자기 계발서의 성격이 짙은  크리슈나무르티의 저작들.

J. 크리슈나무르티의 무슨 책인가는 밑줄을 좍좍 그어가며 읽은 기억이 난다.

--너희들은 아는가, 너희들이 왜 집착하는가를?
너희들은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는 집에 매달리고 에 매달리고 너희들의 우상과 신,
여러 결론들과 애착물들과 슬픔들에 매달린다.
(...)너희가 강을 건너가고자 한다면 너희는 이쪽 강둑을 떠나야만 한다.

<바람처럼 물결처럼>이라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빌려준 사람은 동국대 학생인 스님이었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쯤 되는데 어느 날 성북동 자신이 기거하는 암자에 놀러오라고 해서 몇 명이 갔더니
정태춘의 '서해에서'와  '북한강에서'가 나오는 테이프를 틀어놓고, 벽장에서 한과와 떡을 꺼내 대접했다.
여느 여학생의 공부방과 다를 바 없던 아기자기하고 고소한 냄새가 폴폴 나던  방.

그런데 정작 당시 내 마음을 강타했던 책은 임정남 (그 자신 시인이며 강은교 시인의 남편이었다) 씨가 
엮은 조그만 책자  <나를 찾으시오>.
내가 기억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기계발서!(어쩌면 기초단계의 의식화 서적?)

명상을 통해 쓸데없는 집착을 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거랑,
자신의 단점을 받아들이고 장점을 적극 개발하여 한 번뿐인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것이랑
사실 뭐가 크게 다를까!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도리어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을 이루고 사는 예가 많으니
인생은 가끔 참으로 오묘하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몇 해 전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인가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을 읽는데 
오래도록 잊고 있던 크리슈나무르티의 이름이 등장했다.
헬렌 니어링의 젊어 한때 연인으로......
그런데 헬렌 니어링의 연인으로 나오는 그는 깊이 있는 철학자이기보다 한없이 유치하고 경박한,
한마디로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대, 명상은 보는 것이다.
아무런 언어도 없이, 아무런 판단도 없이, 아무런 의견도 내세우지 않고,
매일의 생활의 모든 일들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듣는 것이다
.
(-크리슈나무르티 <바람처럼 물결처럼> 중)

헬렌 니어링의 책을 읽으며 그동안 크리슈나무르티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 것처럼이나
불쾌했었는데 오늘 아침 문득 생각하니 그럴 일도 아니다 싶다.

한 철학자나 명상가가의 입이나 손끝으로 쓰여진 멋진 말이나 글은 그것으로 스스로 존재하고
살아숨쉰다.
멋진 강연을 하고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글을 쓰고 난 뒤 그 철학자가 무슨 짓을 하든
사실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강을 건너가고자 한다면 너희는 이쪽 강둑을 떠나야만 한다.

그럼, 그렇고 말고! 
새삼스런 깨달음처럼 오늘 아침 나는 이런 나의 균형감각이 무지 마음에 든다.
이것도 알고보면 그 알량한 독서의 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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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5-11-0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균형감각이라...
토,일을 쉬고 월요일날 영화를 봐야 하므로
오후 두시이후에나 출근 가능하다고 겁없이 이야기 하는
저는? ㅎㅎ

로드무비 2005-11-03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그게 바로 균형감각인 줄 아뢰오.^^

숨은아이 2005-11-03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강물에 휩쓸려갈까봐 강둑에 악착같이 매달리고 있습니다.

로드무비 2005-11-0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그것도 일종의 균형감각!^^

blowup 2005-11-0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산하세요! 너무 높이 올라가셨잖아요.

로드무비 2005-11-03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아니 산에 오른 적도 없는 사람보고......^^

날개 2005-11-03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표현은 언제봐도 재밌어요..^^
- 크리슈나무르티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 것처럼이나 불쾌했었는데
- 오늘 아침 나는 이런 나의 균형감각이 무지 마음에 든다.
흐흐~ 저도 무지 맘에 듭니다.. 님의 글이~ ^^*

릴케 현상 2005-11-03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든다'

이누아 2005-11-03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헬렌 니어링의 글 읽으면서 크리슈나무르티가 좀 유치하게 그려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미묘함은 그 둘만이 알 수 있겠지요. 헬렌의 눈으로 본 그이지만 그의 눈으로 본 헬렌은 또 어떤 모습일까요? 님의 말씀대로 그들의 몫은 그들에게 주고, 우리는 우리의 강을 건너요.^^

인터라겐 2005-11-03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의 힘이 딸리나 봅니다.. 균형감각이 없어져 버렸어요...

가시장미 2005-11-0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량한 독서의 힘이겠지? -> 알량한 독서의 힘이라도 느껴보고 싶네요.
알량한 것이 아니라.. 내공의 힘 아닌가요? ㅠ_ㅠ 아~~ 부러워요!!!
( 댓글 수랑 추천 수가 같아서.. 왠지 추천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으로 추천! ㅋㅋ)

산사춘 2005-11-04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텐진 빠모 스님도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경험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여성현실에 대한 고려는 좀 부족하시더라구요. 그럼에도 실제로나 글에서나 가슴치는 가르침을 전해주시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
진정한 내공인은 넘치면 끊어주고 더 멀리가게하는 스승의 중요성을 잊지않는데,
무비님께 그 냄시가 느껴집니다. 책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계속 스승들을 찾으시잖아요.

로드무비 2005-11-0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쓴 것 다운되어 날려먹고 간단하게 다시 씁니다.^^;;

산사춘님, 진정한 내공인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냄시가 좀 꼬숩고 콤콤하죠? 헤헤~

가시장미님, 추천 고맙고.
'알량'이라고 표현한 속에 저의 애정이 담겨 있다는 것만 알아주심...^^

인터라겐님, 모두가 인터라겐님 정도만 되라고 하세요.^^

로드무비 2005-11-0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저도 그 점을 염두에 둔 겁니다. 아시죠?
우리 함께 강을 건너자는 말이 참 정답고 좋습니다.^^

자명한 산책님, 뭐가요? 뭐가 마음에 든다는 건지 모르겠네.^^

날개님, 전 님의 댓글이 마음에 쏙 듭니다.^^

건우와 연우 2005-11-04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로드무비 2005-11-04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가보니 방이 텅 비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