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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땐 외롭다고 말해 - 마음의 어두움을 다스리는 지혜, 마음을 여는 성장동화 2
범경화 지음, 오승민 그림 / 작은박물관 / 2005년 9월
평점 :
'외로울 땐 외롭다고 말해'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제목이 참 좋습니다.
사실은 살면서 그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아서이겠지요.
이 책을 읽으며 몇십 년 전 내 속의 나였던 민주와 하승이와 진우와 안나를 만났습니다.
아아, 아무래도 민주는 빼야 되겠네요.
전 민주처럼 똑똑하고 야무진 소녀가 결코 아니었거든요.
전 어떤 편이었냐 하면 학교에서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고 어쩌다 혼자서 집을 보게 되는 걸
큰 선물 받은 것처럼 기뻐하는 아이였습니다.
어느 휴일 비오는 날, 가족은 모두 외출하고 혼자 집을 지키는 날이 있었는데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듣는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외로워서가 아니라 행복해서요.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의 일이니 제가 너무 조숙했나요?
그 경험 뒤로는 무슨 집안행사로 가족이 전부 외출을 할 때도 집에 혼자 남으려고 발버둥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 갑작스런 엄마의 출장으로 방과 후 혼자 집을 지켜야 하게 되었다고
속상해 하는 민주가 잘 이해되지 않았죠.
아무리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어른이어도 자기 자신의 경험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나 봅니다.
아참, 혼자 쓸쓸히 생일을 맞이해 우울한 거라면 저도 민주를 이해할 수 있겠네요.
대학 1학년 내 생일에 국제시장 골목의 황금다방에서 친한 친구 앞에서 울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절친한 친구 하나가 선물을 챙겨주고 함께해 주었는데도 뭐가 그렇게 서럽고 외로웠는지......
형과 동생의 중간에 끼여 찬밥 신세라고 투덜거리는 하승이는 어느 날 참다못해 짐을 쌉니다.
전 그 장면에서 박수를 쳤답니다.
어릴 때 저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짐을 쌌다가 풀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하승이의 엄마아빠가 하루저녁 다만 몇 시간만이라도 집 나간 하승이 때문에
걱정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답니다.
저도 곧 하승이 나이가 되는 딸아이의 엄마이면서 주책이지 뭡니까!
하승이의 눈에는 민주가 너무 예쁘고 똑똑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생일을 혼자 보내야 하는 민주의 고민을 알 리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어쩌다보니 준비한 생일선물도 못 전해주고 맙니다.
진우는 또 어떻습니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진우 눈에는 씩씩하고 인기 많은 하승이가 너무 잘나고
멋져 보입니다.
이 책을 쓴 작가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귀신같이 잘 알고 계시는 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아니 사람들은 자신의 사정과 외로움은 꽁꽁 숨기고 자신이 갖지 못한 걸 가진 듯한
다른 사람을 부러워만 합니다.
하승이의 생일선물을 민주가 전해 받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네 주인공의 고민은 모두 일단 해결되고 해피엔딩이지만 저는 이상하게 전해지지 않은 하승이의
선물이 아쉽기만 합니다.
이 책 리뷰에 별 네 개를 준 건 순전히 그것 때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