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 21>이 어느덧 창간 10주년이란다.
나는 한겨레신문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한달도 빠트리지 않고 구독한 애독자로서 어느 날 한겨레신문을 통해 <씨네21> 창간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창간을 앞두고 한겨레에서 좀 흥분했던가, 내가 보기엔 정기구독자를 끌어모으려는 것치고는 좀 비열하고 지나친 광고문안을 실었다.
<씨네21> 애독자의 조건으로 1, 2, 3, 4, 이런 식으로 자기들이 생각하는 문화인의 조건을 나열해 놓았는데 네다섯 번째 조건으로 컴퓨터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 이를 대문짝만하게 명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문안을 보는 순간 컴맹이었던 나는 열을 팍 받았다. 그때만 해도 마음이 가는 대부분의 영화를 개봉일 극장에 직접 가서 보았고, 그뿐인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홍은동 어느 비디오숍에 가서 명화들을 한꺼번에 일고여덟 편씩 빌려다 볼 때였다.
나는 당장 항의 편지를 써서 창간호 편집장으로 내정된 이에게 팩스로 보냈다. 고급잡지를 표방하는 것도 좋지만 컴퓨터 사용 여부로 애독자의 자격 유무를 논한다는 건 너무 건방진 자세 아니냐고......잡지를 읽고 말고는 우리 독자들이 판단한다고......
웃기게도 나는 '한독자'라는 이름으로 그 편지를 보냈다. 나의 항의가 먹혀든 것인지 어쩐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수상한 광고는 딱 한 번으로 그치고 말았다.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난 < 씨네21>을 정기구독하진 않았다. 당시 나는 영업을 뛰시는 한 장기수 어른의 부탁으로 <말>지를 5,6년째 정기구독하고 있었는데 나의 형편상 두 잡지를 모두 구독할 순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사실 그때 우리 사무실 사람들은 비서실 소속으로 본사에서 따로 나와 있었는데 모두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분위기였다.
98년인가 그 다음해 동생네 부부가 결혼하면서 연남동 단독연립의 우리 옆호(301,302호)에 둥지를 틀었다. 나는 나의 게으른 모습과 지저분한 살림솜씨를 올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극구 뜯어말렸는데 남의 속도 모르는신랑신부는 막무가내로 밀고들어왔다.(그때부터 지금까지 따라다니며 바로 옆에 붙어 산다. 내 팔자야!^^)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올케가 "형님, 형님!" 하고 벽 저쪽에서 불러서 건너가봤더니 광고회사에 다닌다는 매력적인 여성이 올케의 친구라고 놀러와 있었다. 털퍼덕 주저앉아 한잔 얻어마시다 보니 그녀가 <씨네21> 편집장의 시누라는 게 아닌가! 그녀의 올케(편집장)를 약간 의식하며 주거니 받거니 영화 이야기를 열나게 하다보니 나중에는 엄청 취해버렸다. 영화 이야기에 취하여 우리는 늦게 퇴근한 남동생까지 데리고 홍대 앞 클럽으로 진출했고......그때는 테크노댄스가 유행일 때였다. 내가 놀기엔 너무 서구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여서 취한 중에도 좀 머쓱했던 기억.
그건 뭔지 좀 부끄러운 기억이다. 지금 생각해도......부끄러움의 정확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림님이 몇 달 전 <씨네 21> 엄청난 분량을 방출하셨을 때 나는 덥석 집어왔다. 이 자리를 빌어 서림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