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주말 부산에 갔던 건 수술 후 퇴원한 여동생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동생은 1989년인가 90년에 결혼하여 중 1, 초등 6학년의 남매를 두고 있다.

수술 후 몸이 많이 쇠약해져 동생은 다니던 학교에 1년 휴직을 신청했다. 내 편한 대로 별일 아닐거야, 라고 생각하며 부산에 가는 걸 계속 미루었는데 사실을 말하면 마음 한구석에 거대한 돌덩이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동생은 다행히 경과가 좋아서 1년 치료 받으며 푹 쉬면 문제가 없단다.

동생 부부와 아이들 해서 여섯 명이 들이닥치니 온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돼지 앞다리를 삶았다나? 이상하게 내 여동생은 요리, 그러니까 본격적인 요리를 잘한다. 오향장육이니 양장피 같은 것. 나는 쪼잔하고 허름한  요리랄 것 없는 음식을 잘하는 편이고. 동생이 직접 삶은 '도ㅐ지고기 요리'는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내가 먹어본 것 중 제일 부드럽고 고소하고 맛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술을 한잔 하다가 제부가 맛있는 동동주집이 있다고 하여 모두 그리로 몰려갔다. 아이들을 재워야 하니 여동생과 우리 올케는 남고. 남아서 여자들끼리 요런조런 얘기라도 나누는 것이 좋았겠으나 난 동동주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남자들 편에 붙었다. 아파트 단지 진입로에 해당하는 오르막길에 '초막'이라는 등을 단 전통주점이 있었다.

운좋게 막 나가는 손님들이 있어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는데 동네 단골들로 복작복작했다. 이상한 건 시금털털한 막걸리 냄새가 조금도 안 나는 것. 전을 부치는 고소한 냄새만 맡아지는 것이 아늑해서 너무 좋았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고 동동주를 한잔 따르며 나는 제부에게 늦은 인사를 차렸다. 우리 제부, 싱글벙글이다. "저는 고생한 거 하나도 없습니더. 그리고 정말로 100퍼센트 만족합니더."

1년을 휴직하고 앞으로도 신경써서 치료를 받아야 되고 하는 상황을 너무나 고맙게 받아들인다는 우리 제부. (그는 교회에도 절에도 나가지 않는다.  참고로 그는 정신과 의사다.) 수술을 앞두고 병원 계단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제부. 그리고 자신이 기도한 대로의 결과여서 아무런 불만이 없고 행복하다는......

우리는 그집 동동주 단지를 동을 낼 기세로 기분좋게 마셨다. 집에 전화해 봤더니 큰아이들이 안 자고 내가 가지고 간 만화에 푹 빠져 있어서 아이들 좀 보라 하고 동생과 올케보고 나오라고 했다.

'초막'이란 술집에서 나는 오랜만에 행복을 맛보았다. 행복은 별것 아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웃으며 떠들며 맛있는 동동주와 도토리묵을 먹는 순간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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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03-3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 경과 좋다니 다행입니다. 곧 일어나시겠지요.

로드무비 2005-03-3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고마워요. 그럴 겁니다.^^

물만두 2005-03-3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쾌차하실 겁니다.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반딧불,, 2005-03-3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지요.
그리고 그 돌덩이라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로드무비 2005-03-3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나이가 이 정도 되고보니 인생이 고해라는 말이
왜 이리 와닿는지 모르겠어요.
물만두님, 정말 고마워요.^^

숨은아이 2005-03-3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자리 축하합니다. 얼른 완쾌하시기를...

2005-03-30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3-30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야단맞을까봐 최대한 드라이하게 썼답니다. 아시죠?
전화할게요.ㅎㅎ
숨은아이님, 고맙습니다.^^

울보 2005-03-3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분이 수술도 잘되고 휴식만 취하면 좋아진다니 참 다행입니다,
빨리 나아서 님과 수다를떨고 웃고 이야기 할수 있는 시간이 올겁니다,

마태우스 2005-03-3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 휴직해야 한다면 좀 큰병인가봐요? 어찌되었건 수술 잘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님 글 읽고나니 동동주가 당겨요....

아영엄마 2005-03-3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술보다 맛있게 요리한 고기가..(요즘 영양부족이라서..^^;;) 동생분의 수술경과가 좋아서 다행이옵고 1년 잘 쉬시고 건강하게 일선에 복귀하실 기원할께요~

로드무비 2005-03-3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삼겹살이라도 좀 구워 드세요.
인사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마태우스님, 다행히 얼굴을 보니 말짱하더라고요.
그집 동동주 진짜 맛있던데...안주도...^^
울보님, 요즘 그러잖아도 전화로 자주 수다떨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starrysky 2005-03-30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동생분께서 수술 받으시던 날 아침에 로드무비님께서 올리셨던 굉장히 짠한 페이퍼가 기억나는데,
수술 후 경과가 좋으시다니 너무 다행입니다. ^^
동생 남편분의 긍정적인 모습도 정말 보기 좋고요..
빨리 쾌차하셔서 예전의 건강하신 모습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 (동동주에 부침개. 꼴깍..)

로드무비 2005-03-30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정한 스타리스카이님.
그땐 정말 그냥 가벼운 수술로 알았어요.
아무튼 지금은 많이 좋아졌으니 다행이죠.
인사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여동생도 보고 고맙게 생각할 거예요.
(오늘 이 페이퍼 보고 댓글 남겼더군요.^^)

하얀마녀 2005-04-14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편한대로 별 일 아닐거야에서 참 마음이 많이 뜨끔했습니다만 뒤로 갈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맛있는 동동주의 유혹, 그거 뿌리치기 참 어렵죠. 그런데 요리에 대한 표현이 참...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