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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간들 - 이보영의 마이 힐링 북
이보영 지음 / 예담 / 2015년 6월
평점 :
어떤 책을 읽는다. 제목이나 표지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끌림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로 내게 온 책을 읽는다. 밑줄을 긋기도 하고 메모장에 옮겨 적기도 한다. 나만 알고 싶다는 소망과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문장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떨림을 잊고 만다. 책장을 정리하다, 누군가의 짧은 글을 통해 다시 그 책을 떠올린다. 내가 사랑했던 그 책, 내가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던 그 책 말이다.
이보영의 『사랑의 시간들』이 그 책을 데리고 왔다. 다른 이유로 선택한 책이었고 다른 감정으로 마주했던 책이지만 그 책이라는 이유로 뭔가 통한 게 아닐까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책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배우 이보영이 아닌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덧글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온라인 동호회의 회원처럼 말이다. 거기다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이런 문장들까지.
‘사랑하고 사랑받고, 인정하고 인정받고, 감사하게 즐기고,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현재에 충실하면 행복은 이미 다가와 있으리라. 모두 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렇기에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해질 수 있는 일들이 꽤 많다.’ (22쪽)
어쩌면 우리는 책을 통해 차마 말하지 못한 아픔과 사소한 상처를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보영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속 ‘제제’를 보며 드라마 주인공 ‘서영이’를 떠올렸던 것처럼 말이다. 예고 없이 날아든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분노를 키우며 힘들던 시절에 대해 털어놓고 싶었던 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책 속의 인물에 빠져들어 동화되면서 잠시 고통을 내려놓기도 하니까.
‘부디 지친 자신에게 소중하게 다가갈 수 있기를.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기를. 평생 나를 속여왔구나, 정직하게 슬픔을 마주보지도 고통을 표현하지도 못했구나, 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주기를. 나의 슬픔, 나의 슬픔을 알아봐주고 말을 건넬 때 고인 물이 흐르듯 인생 또한 흘러간다.’ (50쪽)
책이 주는 즐거움과 위안을 아는 그녀가 선택한 23권의 책 가운데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어린 왕자』, 내면 깊은 속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고독한 예술가의 삶을 아름답게 전한 빈센트 반 고흐의『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정말 반가웠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휘둘리며 보냈던 시절에 어렵게만 읽었던 김형경의 소설은 나에게『사람 풍경』으로 이어졌고 삶을 직시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보영도 『사람 풍경』을 읽었을까?
‘내가 온전한 사람이어야 온전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내가 상대에게 기대하는 만큼 나에게도 기대하게 마련이고, 얻는 게 있다면 또한 잃어버리는 게 있다.’ (94쪽)
책을 읽고 책에 대해 말하고 책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보영의 글에서 그런 행복이 엿보인다. 좋은 책을 같이 읽고 싶은 수줍은 마음, 과하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조심스럽게 진심으로 써 내려간 글은 읽는 이에게도 행복이 된다. 당신과 내가 함께 좋아하고 사랑한 그것이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충만해진 사랑의 시간들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