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삶을 꿈꾼 적이 있다. 도시인으로 산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멋지다고 여겼던 시절이다. 시골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이 존재한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어렸고 무지했다. 생활인으로 도시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많은 감정을 소비해야 하는 일인지 몰랐다. 몸소 경험했기에 도시가 아닌 읍에서의 생활에 만족한다.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움직인 삶의 경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도시를 향한 그리움이 사라졌다고 자신할 수 없다.

 

 좋아하는 장소와 꿈꾸는 장소는 다르다. 좋아하는 장소엔 어떤 즐거움과 함께 추억이 있기 마련이고 꿈꾸는 장소엔 비밀처럼 은밀한 무언가가 있다. 어떤 분위기라고 하면 맞을까. 그러니 좋아하는 장소와 꿈꾸는 장소가 같다면 그것은 특별한 무엇이 된다. 그런 곳에서 삶을 이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박상미의 그런 삶을 영위하는 듯하다. 뉴욕은 그런 곳이었다. 뉴욕이란 도시에 부여된 갖가지 이미지가 아닌 오직 박상미만의 감정으로 그려낸 도시.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가득한 도시에서 그들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없지만 부러운 삶이기도 하다. 당신의 도시를 그리워하는 이가 있다는 걸 그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처음부터 나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중요했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87~88쪽)

 

 누군가는 그녀가 소개하는 뉴욕 설명서를 이 책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나는 뉴욕은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가 아닌 박상미에게 스며드는 뉴욕이다. 그러니까 박상미가 바라보는 시선, 그곳에 담긴 뉴욕은 특별하다. 제목 그대로 사적인 도시다. 그러므로 아주 개인적인 감정의 기록으로 남은 뉴욕은 과장된 포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뉴욕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사적인 뉴욕은 우리에게 공적인 도시로 다가온다. 그곳이 예술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을 듣는다는 건 일상적인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지나온 절망과 고독을 보여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뉴욕 곳곳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죽은 예술가와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은 제법 근사한 이미지로 연결된다. 지난 2005년부터 2010년간 블로그를 통해 기록된 이야기엔 뉴욕이란 도시와 더불어 어떤 다짐과 고독을 읽을 수 있다. 호퍼의 그림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풍경이라는 슬픔을 만질 수 있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내게 유일한 에드워드 호퍼의 포트폴리오를 가만히 펼쳐본다.

 

 ‘호퍼의 그림은 구상화이지만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마저도 내러티브가 절제되어 있다. ​결국 그는 풍경화가가 아니었을까. 코로나 컨스터블과는 다른,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 위에 지어진 집들을 그린. 가끔 그 안팎의 사람들을 그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저 벽에 햇빛을 드리운 집이 서 있는 풍경.’ (137쪽)

 

 책에 수록된 박상미가 보고 읽고 만난 예술 작품은 대부분 생소해서 어색하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끌리기도 한다. 남은 인생을 살면서 뉴욕을 갈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뉴욕과 그곳을 산책하는 상상을 할 수 있어 즐겁다.

 

 ‘어떤 행동을 하건, 어떤 말을 하건, 나의 마음만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내 키만한 초록색 덤불로 빙 둘러진, 넘볼 수 없는 정원이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순간, 혐오로 치를 떠는 순간조차 나의 마음은 나만의 것이다.’ (254쪽)

 

 [걸어본다] 시리는 아주 괜찮은 기획이다. 보통의 공간을 아주 특별하게 만든다. 나의 공간을 사랑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인지도 모른다. 서울의 용산, 경주, 뉴욕까지 도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내면과 내면을 이어준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 했던 이야기와 맞닿으면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삶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되는 시간. 잊고 있었던 공간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단순한 걷기와 산책의 의미 이상으로 자신의 공간을 통해 삶을 통찰하게 만든다고 할까. 나만의 도시, 나만의 공간이 사랑스러운 이유를 찾게 한다. 떠나는 이에게도 머무는 이에게도 그 도시를 꿈꾸게 한다. 마음은 이미 터미널, 기차역, 공항으로 향했지만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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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5-2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리즈 좋아해요!

자목련 2015-05-29 11:27   좋아요 1 | URL
<아내를 닮은 도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대하고 있어요^^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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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면 손편지를 가장 많이 썼던 시절은 십 대였다. 좋아했던 남학생과 주고받은 편지엔 뭔가 잘 보이고 싶은 글들로 가득했다. 지금처럼 쉽게 목소리를 들을 수 없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편지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흔히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하는 고교시절엔 수업 시간에 쪽지를 많이 건넸다.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지 수없이 많은 쪽지와 손편지를 썼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 시절 친구가 있었기에 행복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손편지를 받는 즐거움을 잊은지 오래다. 빠르고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세상에 이오덕과 권정생이 30년 동안 서로에게 쓴 편지를 엮은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은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사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친구가 되었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자주 만날 수 없는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것은 나만의 편견이었다. 1973년 1월 18일 이오덕은 권정생을 찾아가 만났다. 서른일곱 권정생과 마흔아홉의 이오덕의 12살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은 웅숭깊은 것이었다. 이런 우정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아동 문학이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에게 문학적 동지가 된 두 분의 편지를 읽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부분이 많다. 항상 아픈 몸으로 혼자 지내는 권정생의 생활을 세세히 살피는 이오덕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권정생에게 이오덕은 스승이자 피를 나눈 형제 그 이상이었다. 권정생을 만난 후 그의 문학을 많은 이가 읽을 수 있도록 신문사와 출판사와 연락을 취하고 출판과 인세를 비롯한 모든 일을 도맡는다. 혹시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약을 먹지 못할까 걱정하고 책에 대한 열정으로 건강을 해칠까 몹시 염려한다.

 

 ‘도시에 가 봐야 무엇 볼 것이 있습니까. 저가 여기 있는 동안이라도 같이 와서 살았으면 합니다. 방은 마을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습니다. 잘 생각해 봐 주세요. (…) 저에게 부담이 될 것을 염려해서 이곳 오실 것을 주저하시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생활이 얼마나 들겠습니까. 저도 역시 그런 생활입니다. 단지 교회가 없어 안 된다면 어찌할 수 없겠습니다. 그리고 연탄이 아니고 나무를 때고, 하지만 전기가 있으니 편리한 점도 있지요.’ (1976년 3월 15일 이오덕의 편지 중에서, 130쪽)

 

 ‘약을 계속해서 잡수셔야 할 터인데 걱정입니다. 어디 돈을 빌려서라도 약을 잡수시면 제가 가서 갚겠습니다. 그렇게 쇠약하신데도 책을 읽고 싶어 하시니,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반성됩니다. 일본서 절판되었다는 책은 선집이 저한테 있으니 다음 갈 때 가져가겠습니다. 독서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979년 11월 19일 이오덕의 편지 중에서, 198쪽)

 

 나보다 더 나를 생각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나의 모든 걸 맡기고 의논하면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삶이자 성공한 삶이다. 이오덕과 권정생의 편지를 읽다 보면 사랑받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다. 과중한 업무로 항상 바빠 찾아가지 못해 미안해하는 이오덕의 편지에 권정생의 답장은 마치 연인의 고백과도 같다. 한 번의 만남을 위해 약속을 정하고 변경된 일정을 알리는 일도 모두 편지로 가능했던 시절이기에 이오덕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권정생의 배려가 담겼다.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은 오고 마니까 사람들은 바보입니다. 하루도 기다리지 않고는 못 배기니까요. 선생님은 찾아오지 않아도 항상 제 곁에 계신답니다.’ (1974년 8월 23일 권정생의 편지 중에서, 76쪽)

 

 이오덕과 권정생은 새로운 원고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보여줄 수 있는 존재였다. 기탄없이 서로의 글을 평할 수 있는 상대로 서로의 문학과 한국 아동문학에 대한 의견이 오가는 편지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문학을 업으로 삼고 산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과 전쟁, 그리고 스무 살에 결핵이 걸려 오랜 시간 외롭게 고통받으며 살아온 권정생의 삶이 있었기에 『강아지똥』과 『몽실 언니』를 비롯한 보석 같은 동화가 존재할 수 있었다. 가장 진실된 글이야말로 최고의 글이 아닐까 싶다. 새삼 고맙고 감사하다.

 

 ‘생활에서 도피한다는 것, 저는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생활이 없이 어떻게 글을 씁니까? 제 동화가 무척 어둡다고들 직접 말해 오는 분이 있습니다만, 저는 결코, 제가 겪어 보지 못한 꿈 같은 얘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습니다.’ (1977년 7월 5일 권정생의 편지 중에서, 159쪽)

 

 편지를 쓰는 동안 정신은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다. 함께 길을 걷다 때로 멈추고 넘어지면서 한 곳을 바라보던 이오덕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권정생이 쓴 편지가 마지막이 되었지만 아마도 그곳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30년이란 시간 동안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를 어떻게 수치로 말할 수 있을까. 감히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다.

 

 ‘선생님 가신 곳은 어떤 곳인지, 거기서도 산길을 걷고 냇물 돌다리를 건너고, 포플러나무가 서 있는 먼지 나는 신작로 길을 걸어 걸어 씩씩하게 살아 주셨으면 합니다.’ (2003년 8월 25일 권정생의 편지 중에서,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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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탑 2015-05-2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책을 사게 됐어요. 자목련님의 글을 다시 읽으니 읽던 책도 놔두고 어서 빨리 읽고 싶네요

자목련 2015-05-30 09:38   좋아요 0 | URL
한 권의 책을 함께 나누는 기쁨, 책이 주는 즐거움이지요. 치료탑 님, 즐겁게 만나세요^^
 
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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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대한 질투가 있다. 그러니까 나를 제외한 가족사진이나 나만 모르는 가족 간의 추억 같은 것들 말이다. 타임머신을 타고도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묘한 질투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니 내가 모르는 그들의 삶이 더욱 궁금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한 번만이라도 그 시간을 살고 싶다.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잃어버린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손에 이끌려 그것과 억지로 분리된 것이라면 말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우리가 고아였을 때』크리스토퍼처럼 운명과 대적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소설은 기억에 관한 것이다. 아니 존재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열 살 때 상하이를 떠나 런던의 이모집으로 왔다. 누구도 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실종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사실상 존재의 근원인 부모님의 부재는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을 안겨주고 그로 인해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열 살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크리스토퍼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상하이의 풍경과 그 안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불투명한 이미지다. 그럼에도 친구 아키라와 함께 했던 어떤 날의 기억은 사진처럼 선명하다.

 

 부모님을 찾아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었을까. 영국에서 크리스토퍼의 삶은 탐정과 닿아 있었다. 누구와도 내밀한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 채 그의 모든 신경은 상하이로 이어졌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흠모하는 사교계에서도 유독 세라에게 마음이 쓰였던 건 그녀에게서 결핍을 보았기 때문이다. 탐정으로 성공한 후 보호막이 사라진 고아 소녀 제니퍼를 입양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하이를 지울 순 없었다. 전쟁으로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지만 부모님을 찾아야만 했다. 이미 부모님의 실종에 관련된 많은 정보와 증인이 있었다. 부모님의 소식을 접한 순간 크리스토퍼는 남편과 함께 상하이에 도착한 세라에게 떠나자는 제안을 받는다.

 

 “이제는 다른 어떤 것, 따뜻하고 나를 보호해 주는 것,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상관없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 것과 무관하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원해요. 내일의 하늘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어떤 것을요. 지금 내가 원하는 건 그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것도 그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조만간 너무 늦게 될 거예요. 너무 고정되어서 변하지 못할 거예요.” (299쪽)

 

 어떤 면에서 세라의 제안은 옳았다. 영국인은 상하이 사람들에게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과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상하이는 불안한 곳이었다. 크리스토퍼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부모님의 신변을 확인하고 세라에게 가면 된다고 믿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놀라운 자신감은 어디서 왔을까? 그 자신감 덕분에 아키라와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일까. 손에 닿는 죽음을 마주하는 극박한 상황이기에 크리스토퍼와 아키라의 추억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은 애절하고 애절하다.

 

 “중요한 일이야. 아주 중요해. 그리워한다는 것 말이야. 그리워하면 기억하게 되거든. 우리가 어른이 되면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걸 말이야. 우리는 그 기억을 가지고 좋은 세상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거지. 아주 중요하지.” (370~371쪽)

 

 크리스토퍼와는 다른 의미겠지만 우리의 생은 고아로 집결되는지도 모른다. 저마다 시기만 다를 뿐 결국 혼자 남는 것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혼자와 혼자가 만나 우리를 만들고 함께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불완전한 기억이 아닌 완전한 기억을 채울 수 있다고. 소설 속 크리스토퍼와 제니퍼처럼 말이다. 어쩌면 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자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정신적 고아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외롭고 고단한 마음이 잠시라도 편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 같은 사람들의 운명은, 사라진 부모의 그림자를 오랜 세월 뒤쫓으면서 고아로서 세상과 대면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그 임무를 수행하려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그러기 전까지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4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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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미 - 우리는 왜 기적이어야 했을까, 영화 트윈스터즈 원작
아나이스 보르디에.사만다 푸터먼 지음, 정영수 옮김 / 책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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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첫 조카는 쌍둥이다. 쌍둥이라서 갓난 아이였을 때 무척 작았다. 내가 맨 처음 조카들을 보고 한 말도 왜 이렇게 작으냐는 말이었다. 쌍둥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들다. 잠을 설치는 건 고사하고 두 명이 울 때는 어찌할 봐를 모를 정도다. 물론 기쁨은 그 이상이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말로 표현할 수없다. 고모인 나도 그러한데 부모의 사랑은 얼마나 크겠는가. 일란성으로 조카들이 어렸을 때는 볼 때마다 누구니 하고 물어봐야만 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만났을 때에는 미안해할 일이 생겼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특징을 알아볼 수 있었다.

 

 쌍둥이를 잉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올케언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기쁨보다는 놀라움이 컸을 것이다. 지금이야 쌍둥이가 대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쌍둥이를 입양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가늠할 수 없다. 나중에 생모를 찾아 그 상황에 대해 물었을 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던 마음도 함께 말이다.

 

 『Another Me』 속 1987년 부산에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두 명의 아이는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파리와 뉴욕으로 입양되었다. 각자의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때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며 꿈을 향해 살아왔다. 파리의 아나이스는 외동딸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패션 디자이너로 뉴욕의 사만다는 두 명의 오빠를 두었고 배우가 되었다. 25년 동안 그들의 삶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연처럼 아나이스의 친구가 보낸 한 장의 사진이 기적의 시작이었다. 페이스북, 트위터의 사진 속 동양인(사만다)은 배우로 놀랍게도 자신과 닮아 있었다. 친구들의 말처럼 쌍둥이가 분명했다. 그러나 사만다와의 연락은 쉽지 않았다. 아나이스가 보낸 쪽지를 본 사만다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속 아나이스는 또 다른 자신이었다. 흥분과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쌍둥이라는 기록은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아나이스와 사만다는 서로의 과거 사진을 공유하고 일상을 나누며 유전자 검사를 통해 쌍둥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처음으로 아나이스의 얼굴을 보니 무척 놀라웠다. 내가 저렇게 생겼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아니었지만 마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였다. 그 사람은 마치 내가 아는, 꿈속에 나왔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예를 들면 엄마처럼, 온 인생에서 내가 지켜봐온 어떤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만다의 글, 200쪽)

 

 그저 닮은 정도가 아니라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을 마주한 순간의 떨림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대화를 나누고 만남을 갖고 서로의 가족과 교류를 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가족이 태어난 것이다. 25년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둘은 같았지만 달랐다. 문화, 관습의 차이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건 당연하다.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과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입양아로 겪었던 지난 삶아 어떤 슬픔의 시간을 공유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은 커진다. 

 

 ‘우리는 정말로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갈라져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런다고 해도 우리의 유대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매일 샘과 함께 지내는 일상은 따분해지는 게 아니라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점점 평범한 일이 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고 이제 우리의 삶이 서로 얽혀 있음을 인식했다. 우리는 점점 늙어갈 것이고 기억을 공유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만의 이야기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아나이스의 글, 226쪽)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기적이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SNS가 아니었다면 둘은 영원히 서로를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세상이 다른 기적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어디선가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누군가에게도 기적이 닿기를 바란다. 아나이스와 사만다의 지극히 사적인 기록은 입양으로 헤어진 쌍둥이 자매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 감동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입양 제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뿌리 찾기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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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포트폴리오) 마로니에북스 Taschen 포트폴리오 10
마로니에북스 편집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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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박상미의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다가 펼쳐 본 호퍼의 그림. 그림 속에 담긴 호퍼의 손길을 느낀다. 문득, 그는 어떤 목소리를 지녔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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