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기억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9
윤이형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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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새롭게 편집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영원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아서 시간에 지남에 따라 점점 옅어진다. 모든 걸 기억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만약 기억을 잃어버리는 삶과 모든 걸 기억하는 삶은 존재한다면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언제나 매혹적인 상상의 세계를 소설로 담은 윤이형은 <개인적 기억>에서도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배경으로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남자의 삶을 통해 개인적 기억의 가치를 묻는다. 소설은 2058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돌아온 주인공 마흔일곱 살 지율이 보르헤스의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리며 시작한다. 자신에게 그 소설을 읽어주던 목소리를 기억하며 필사를 시작한다. 지율은 모든 걸 기억할 수 있었다.

 

 지율은 2022년 열한 살에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어떤 사물을 마주했을 때,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이 살아나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런 아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엄마는 집을 떠나고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던 지율도 독립한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의대를 선택했지만 지율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난독증에 걸리고 스물다섯 살엔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손님인 은유를 만나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은유는 지율의 능력을 특별하게 여기고 기자나 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난독증에 걸린 지율에게 보르헤스의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읽어준다. 은유는 지율과 반대로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는 여자였다. 자신을 사랑하면서 지난 모든 사랑을 함께 떠올리는 남자와 어떤 것도 기억하지 않는 여자의 사랑은 때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어떤 삶도 한 줄로 요약될 수 없다고 믿는 지율에게 은유의 삶은 너무도 단순하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가족에 대해서도 그래. 뉴스 사회면에 자투리로 요약되는 삶이야. 팍팍하고, 가족의 생존 외에는 생각하는 게 별로 없는 삶이야.’ (98쪽)

 

 은유를 사랑하면서 지율은 ‘과잉기억증후군’ 을 이겨내고 싶었다.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치료 과정에 복용한 약 때문이었을까,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기억을 버리려 노력했지만 은유는 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아니,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하는 것이다. 잠재의식 속에 남은 책과 목소리를 통해서 말이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의 애틋함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늙은 나무가 잘려나가거나, 추억의 장소들이 문을 닫았을 때 슬퍼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면 했다. 내게 그런 슬픔은 ‘인간’의 표지처럼 느껴졌다. 나는 머릿속에 내가 가본 모든 장소를 언제까지나 담아둘 수 있었기에 그곳들을 그렇듯 소중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119쪽)

 

 단 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잊지 않으려고 계속 그의 이름을 되뇌고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자리를 비워두는 것일까? 망각의 바다를 유영하는 게 우리 삶일지라도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려는 본능이 우리를 지켜줄 거라 믿고 싶다.

 

 *보르헤스의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읽었더라면 이 소설이 어떻게 다가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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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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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김이설의 두 번째 소설집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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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7-2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저도 기다립니다^^
시원한 여름을 잊게 해주는 이설님 소설!

자목련 2015-07-27 20:31   좋아요 0 | URL
덕분에 목이 긴 기린이 되고 있어요, ㅎ
가을에는 단편집이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
 
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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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눅눅한 날씨 같은 일상을 견디는 삶을 생각한다. 그 여자, 윤영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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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끝났을 때 비로소 사랑은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것이 얼마나 빛났는지, 얼마나 조악했는지 말이다. 7년 동안 연인으로 지냈던 루이자와 패트릭의 사랑은 전혀 빛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의 이별은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윌과 루이자의 이별은 달랐다. 윌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던 루이자에게 사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분명 로맨스 소설로 읽힌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지마비 환자 윌과 그를 간병하는 루이자의 사랑 이야기다. 6개월이라는 시한부 사랑이니 얼마나 진부하고 식상하겠는가. 하지만 소설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다. 유쾌해서 많이 웃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워 황홀했고, 절절하게 애틋해서 아팠다.  

 

 모든 게 완벽했던 젊고 부유한 사업가 윌은 불의의 사고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생을 이어간다. 최고의 의료진과 간병인을 두었지만 윌의 삶엔 의욕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족함이 없던 과거였기에 현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 때문에 스스로 삶을 끝내려는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자식의 그런 선택을 받아들 수 있겠는가. 간병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루이자가 면접을 보자마자 취직이 된 이유는 그녀의 활기차고 밝은 성격이 윌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으리라 믿어서다.

 

 루이자는 나고 자란 고향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은 단순한 삶을 사는 여자다.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행복했다. 주인이 문을 닫지 않았더라면 간병이라는 직업을 몰랐을 것이다. 미혼모인 여동생과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실직 위험에 놓인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니 사지마비 환자 윌의 곁에서 상태를 지켜보고 여유 시간에 청소를 하며 고액의 급료를 받는 일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엔 고약하기만 했던 윌과 점차 가까워진다. 윌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세계에 대해 알아간다. 단순한 간병이 아니라 진심으로 윌을 좋아한다.

 

 그러다 루이자는 윌의 선택에 대해 알게 된다. 왜 그녀가 6개월만 고용되었는지 말이다. 윌이 부모님에게 6개월의 시간을 제시한 것이다. 루이자는 분노한다. 그러나 곧 윌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공교롭게도 남자친구 패트릭과 이별한다. 윌과 잦은 외출을 감행한다.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연주회를 가고, 가족을 소개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루이자가 혼자만 간직한 고민에 대해 털어놓으면 윌은 항상 멋진 답을 제시한다. 루이자는 윌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해외여행을 떠난다. 영국을 떠나 도착한 휴양지, 루이자는 스스로 대견하고 윌은 루이자의 모습에 행복하다.

 

‘우리를 에워싼 세상이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은 폭풍우 소리, 자줏빛 도는 흑청색 바다, 그리고 부드럽게 일렁이는 거즈 커튼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밤바람에 흔들리는 연꽃 냄새를 맡고 멀리서 짤랑거리며 부딪는 유리잔과 황급하게 의지를 미는 소리를 들었으며, 어딘가 먼 축하 파티장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정없이 날뛰는 자연의 포화를 느꼈다. 팔을 뻗어 윌의 손을 내 손 안에 꼭 쥐었다. 한순간, 나는 지금 이 순간처럼 세상에 또 다른 인간에게 이토록 강렬하게 연결된 느낌을 다시는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462쪽)

 

 자신이 마음을 전한 루이자는 윌이 스위스행을 포기할 것이라 믿었다.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윌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랬다. 뻔한 결말이 아니었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윌과 루이자의 행복한 결말을 짐작했다. 아니, 제발 윌이 루이자와 예쁜 사랑을 하기를 기대했다. 루이자를 찾는 윌을 향해 스위스에서 둘의 아름다운 언약식이 그려지길 간절하게 바랐다.

 

 윌은 떠났고 루이자는 남았다. 윌은 루이자에게 많은 유산을 남겼다. 루이자가 몰랐던 루이자의 재능과 꿈을 찾기에 충분했다. 작은 마을을 떠나 더 넓은 세계에서 루이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가 남긴 편지. 그 어떤 고백보다 뜨겁고 감미롭다.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감상에 빠져 질질 짜는 건 생각하기 싫어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534쪽)

 

 아마도 루이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때로 사무치게 그립고 때로 미치도록 보고 싶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도 알잖아요, 내가 얼마나 씩씩한 여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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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탄생 - 창조, 발명, 발견 뒤에 숨겨진 이야기
케빈 애슈턴 지음, 이은경 옮김 / 북라이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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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가는 창조와 발명, 끊임없는 인내와 노동에서 태어나는 놀라운 노력과 알려지지 않은 멋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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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7-27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책 정말 많이 읽으신다!! 매일 최소한 1~2권은 읽으시는 거죠?? 대단하세요!!^^

자목련 2015-07-27 17:52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ㅠ.ㅠ
이 책은 이벤트가 있어 참여했어요.
하루에 1~2권 읽던 시절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건 아주 아주 오래전에 일이에요. ㅎ

책읽는나무 2015-07-27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다양하게 읽으시는거죠??^^

음~이책도 궁금하네요?
알라딘에 책 후기문을 올리면 내가 좋아하는분야 혹은 혹~해서 읽고싶게끔 자극주시는 분들 몇 분 계신데 자목련님이 읽으시는 책들은 대부분이 읽고싶더라구요?
나와 코드가 맞나?내가 자목련님 넘 좋아 따라쟁이인가?뭐 그런생각을^^
무더워 줄곧 늘어져 있네요~월요일은 도서관 휴관일이라 올라가보지도 못하고 덥네~~그러고 있어요ㅜ
더운데 건강 잘챙기세요^^

자목련 2015-07-27 17:51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입니다. ㅎ
궁금한 내용이고 읽고 싶은 책이고 이벤트(기대평)도 있어서 참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