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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 아르헤리치 - 삶과 사랑, 그리고 피아노
올리비에 벨라미 지음, 이세진 옮김 / 현암사 / 2018년 2월
평점 :
클래식을 잘 모른다. 그러니 연주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럼에도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평전을 읽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한 사람의 생을 알아간다는 건, 그것이 주는 매력 때문이다. 강렬한 표지와 삶과 사랑 그리고 피아노라는 부제까지 끌림은 당연했다. 어쩌면 이 책은 나 같은 독자가 아닌 다른 독자에게 더 적합한 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주 즐겁게 책을 읽었고 그녀를 더욱 알고 싶어졌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순간순간을 즐기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녀가 놀라웠다. 예술가의 삶이란 정녕 이런 게 아닐까 싶었으니까.
천재적 재능을 타고났을지도 모를 마르타 아르헤리치. 그녀가 피아노를 시작한 계기부터 남다르다. 어린 마르타에게 “넌 피아노 못 치지!” 하면서 무시한 남자아이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려고 피아노를 쳤고 놀랍게도 모든 음이 정확했고 리듬도 잘 탔다. 단 한 번도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아이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장면이다. 마르타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벗어날 운명이라는 걸 말이다. 당시 대통령이던 후안 페론을 만나 빈에서 프리드리히 굴다와 공부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엄마인 후아니타는 미국으로 가길 바랐지만 마르타는 스스로 자신의 스승을 결정한 것이다. 예술가는 서로의 영혼을 알아보는 것일까. 제자를 받지 않았던 프리드리히 굴다와 마르타 사이를 보면 그런 것 같다. 좋아하는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고 솔직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 그런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했고 굴다를 향한 소녀 마르타의 마음은 존경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수줍으면서도 당찬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얼마나 씩씩하고 예뻤을까.
마르타는 한술 더 떠, 쇼팽이라는 사람은 알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쇼팽은 너무 감정 기복이 심하고 너무 파란만장해서 내가 못 살 것 같아요.” 마르타가 만나보고 싶은 음악가는 슈만이다. “슈만은 내 눈에 눈물이 차오르게 하는 음악가지요.” (빈, 72쪽)
굴다는 마르타에게 대단한 영향력이 있었으므로 마르타는 반항하지 못했다. 굴다는 마르타를 잘 알았고 마르타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확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나는요, 굴다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어요.” (빈, 73쪽)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부소니, 제네바, 쇼팽 콩쿠르에서 어떤 곡을 연주해 우승을 하고 그녀의 공연 행진과 음반 녹음에 대한 나열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평전과 다르게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생을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들려주는 게 아니라 공간의 이동을 통해 그녀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당연한 듯하다. 피아노를 사랑했지만 마르타는 무대에 올라 음을 찍어내는 기계가 아닌 삶을 누리고 싶었다. 예술적으로도 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위해 노력하고 연주회 바로 직전에도 취소를 선언할 수 있는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언제나 두려울 것 것 없는 그녀에게도 힘든 시간은 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되고 아이를 볼 수 없고 키울 수 없는 상황, 다시 찾은 사랑과 이별, 그리고 세 딸. 마르타를 위해 헌신한 어머니 후아니타와 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르타는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아이들을 간절히 바랐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자기 삶에 아이들을 받아들였다. 어쨌든 마르타는 자식들을 자신의 연장 선상에 두고 바라보지 않고 독자적인 인격체로 사랑하고 싶어 했다. (제네바, 222쪽)
나는 예술가나 연주자의 삶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상상할 수 없다. 그녀의 “나는 선물 같은 아티스트가 아니에요. 연주 요청은 많지만 나는 답도 잘 안 주고, 계약서에 사인도 안 하고, 취소도 자주 하니까요.” “나는 연주를 듣는 게 더 좋아요”(파리, 310쪽) 말은 유머처럼 들리지만 그녀가 삼키는 고독의 크기를 생각하게 만든다. 책 곳곳에서 만나는 그녀의 말투는 재치가 넘치고 따뜻하다. 그래서 마르타 곁에는 언제나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가득했다. 동료를 위해 집을 내주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교류한 그녀. 표지처럼 흑발의 마르타가 아닌 백발 할머니 마르타를 응원한다.
음악에는 시간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음악은 순간의 덧없음을 날카롭게 의식하게 함으로써 과거, 현재, 미래를 희석시키는 또 다른 차원은 제공한다. 피아니스트는 영원한 아이로 남았기에 언제나 자유로이 발견하고 언제나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아이였기에 지나치게 감상적인 노스탤지어나 치기 어린 어영, 발목을 잡는 소유욕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자신의 위상을 다지고 후세에 남길 이름을 준비하는 여느 예술가들과 달리 마르테 아르헤리치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유일한 신조에 충실할 것이다. “살아가고, 살게 하라” (파리, 320쪽)
보통의 평전과 다르게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고 싶은 책이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 수많은 예술가와 작품이 등장하지만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부제가 말해주듯 마르타의 ‘삶과 사랑 그리고 피아노’가 중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를 알지 못해도 그녀를 아는 것처럼 그녀의 생으로 빨려 들어간 건 클래식 음악 전문 기자인 저자 올리비에 벨라미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클래식을 몰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이제는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주 조금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