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고 나면 더위가 한풀 꺾길 거라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낮의 뜨거운 열기는 밤에도 쉬이 식지 않는다. 그래도 밤에 잠들 때 침대를 내려오는 일은 없다. 대신 잠드는 시간이 늦어진다. 이미 다 본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 3~4년에 방영된 드라마, 여름에 걸맞은 스릴러 쪽인데 분명 봤는데 줄거리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아 처음 본처럼 집중해서 보느라 새벽까지 시청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넷플릭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다른 채널을 구독하지 않은 걸 나름 다행이라 생각한다.
알림은 받지 않기, 이게 중요하다. 배달 앱도 자꾸 쿠폰을 준다는 알림에 그 쿠폰이 아까워서 자꾸 뭔가 배달시킨 음식을 찾게 된다. 이러려고 앱을 설치한 게 아닌데. 지금도 어느 앱에서 알림이 왔다. 이 기회에 알람 설정 정리를 해야겠다. 알림을 받아야 할 것과 받지 말아야 할 것을 정리하기. 언제나 좋아하는 것들에서 주저한다. 온라인 서점의 알림이다. 알림을 받지 않으니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도 놓치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모두 구매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책이 나왔는지 알아야 그 책에 대해서 살펴보고 내가 읽고 싶은지, 아닌지 판단한다.
알림과 상관없이 그냥 산 책들은 이렇다. 정은 작가의 에세이 『커피와 담배』는 중고로 샀다. 중고 알림을 설정한 덕분에 구매한 것이므로 알림 받기를 유지해야 하는 쪽으로 기운다. 아, 이런. 알림을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아, 이런 생각은 멈춰야 한다. M 과의 통화에 생각난 박시하의 시집은 무려 제목이 『8월의 빛』이다. 표제와 같은 제목의 시는 아버지의 기일에 관한 것으로 공교롭게 오늘은 큰언니의 기일이다.
마지막 그냥 산 책은 김화진의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경로』다. 신춘문예 등단작이었던 「나주에 대하여」가 좋았다. 편집자로 소설을 쓰는 작가, 등단 이후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책을 구매한 결정적인 계기는 이 문장 때문이다. “사람은 주머니 같다. 나는 그 안이 궁금해.” 아직 소설을 읽기 전이라 어떤 문장인지 알 수 없다. 편집자, 마케팅 담당자, 누군가 이 문장을 선택했고 그 문장에 나 같은 독자는 소설을 선택했다.
그냥 책을 사고 그냥 살고 있다. 그냥 사는 게 이상한가. 그냥 사는 게 좋다. 요즘은 그런 날들이다. 그냥 사는 날들, 이 여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면서도 여름이 지나면 더 이상 더위를 핑계 삼을 수 없으 조금 더 이어졌으면 하는 이상한 마음이다. 그냥 산 책을 그냥 읽어야 하고 그냥 사는 날도 이렇게 쓰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