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의 관계때문에 피곤하다고 느껴질때 꺼내 읽는다.
내 마음을 다독여주는 일이 가장 필요하기때문이다.
용서만큼 인생에서 어려운 일은 없다.
우리들 '보통 사람'에게 용서를 가능케 하는 것은 세월뿐이다.
시간이란 이 얼마나 위대한가.(p.173)
가끔,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고, 그때의 나와는 또 다르게 성장해가고 있다.
성장의 눈금이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릴 때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라고 있다.
인간의 심리에는 누구나 배타적 요소가 있다. 우리는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호감을 사고, 누군가에게는 미움을 산다. 그것에 일일이 구애 받을 필요는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다지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으므로 슬며시 멀리하며,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제한다. 이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미워하는 상대에게 좋아해달라고 강요하는 게 나는 비참하고 치사해서 참 싫다.(p.119)
'누군가에게는 호감을 사고, 누군가에게는 미움을 산다.'는 이 구절이 너무 좋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 모두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 누구에게나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말을 자꾸만 확인한다.
어제 남편 친구가 술자리에서 남편의 휴대전화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술이 약간 취했고, 한동안 내가 너무 불편했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가 나를 불편해할 수밖에 없었다. 술 취하면 돌변하는 그의 거친 성격과 자식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거슬렸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에대해 미움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동안 남편의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 한참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간동안 그도 조금씩 변했고, 나도 조금은 변했으니 말이다. 그와 나 사이에 불편했던 사건들이 어느새 세월 속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호감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술에 취해 친구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별별말을 쏟아내는 그 사람이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정말로 피하고 싶은 상대가 있을 때
서로 용서하는 자가 되라는 말을 들어도, 우리들은 아무에게나 그렇게 마음을 탁 터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단지 거기에 절충안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적당한 방법을 좋아하실지 어떨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다.) 만약 정말로 피하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그 사람을 욕하지 말고,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슬며시 멀리하며,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준다. 그리고 이 다음에 언제든 그 사람에게 정말로 어려운 시련이 닥치면 도와주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p.105)
정말로 피하고 싶은 상대를 슬며시 멀리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다음 언제든 그 사람의 시련에 조력자가 될 자신은 없다. 정말로 피하고 싶은 상대는 언제든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