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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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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은 모르지. 이 남자의 곁에 누우며, 그의 손을, 팔을 어깨에 느끼며 올리브는 생각했다. 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되는 것을 모른다. (4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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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 젊다는 것, 어리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자주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청춘인 것 같고, 아직 해야할 일도 많은 것 같고,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내 인생은 어딘가에 저당잡혀 있는 것처럼 느껴질때가 더 많았다.
내 인생을 저당잡은 시점은 대체 언제일까? 거슬러 생각하면 아이를 낳았던 시점이다. 아이를 낳은 것은 순간의 황홀감, 엄마가 되었다는 축복, 새 생명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충만함, 이런 것들로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뜻과 상관없는 일들이 반복되고, 누군가를 계속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은 늘 부담스럽고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는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 모든 것이 내가 원하던 삶이었는데도 어딘가 어긋난 것 같은, 다시는 세상으로 들어서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이런 것이 분노가 되어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기는 어리석은 엄마가 바로 나다.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엄마의 이런 생각은 결코 용서되지 않을 것도 같다. 세상에 내보냈으면 그만큼의 책임을 줘야하는게 부모가 아닌가 말이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는 올리브의 말이 생각난다.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밀려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비유로 충분하다. 어떤 때는 조용히 밀려왔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큰 파도가 되어 밀려와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끊임없이 불평 불만으로 가득해도 어느 순간 파도에 던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일테니 말이다.
헨리와 올리브를 둘러싼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의 이야기는 단편처럼 취급되어 전개되는 독특한 구조와 형식을 갖는다. 올리브와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지 않는 누군가의 이야기조차도 인생에서 흘려버릴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헨리가 데니즈에게 마음을 빼앗겼지만 그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며, 올리브가 짐을 선택하며 헨리를 버리려던 찰나, 그 모든 순간 순간이 너무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가 가장 가슴 아프게 읽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크리스의 마음의 응어리로 남은 엄마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올리브의 변덕스러운 성격이, 아이를 다르치는 성격이 아마도 나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크리스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린시절의 상처에 힘겨워하는 부분은 정말이지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헨리를 떠나보내고 아들도 먼 곳에 살고 있으니 홀로 살아야 하는 올리브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산책길에서 만났던 잭과 그런 관계가 이루어진다. 잭은 잭대로 아내를 보내고 지옥같은 생활을 하고, 올리브는 올리브대로 외로운 생활을 이어갔으니 그들에게 외로움을 달래줄 상대가 있다는 것이 행복일 것이다.
나이가 들기 전에는 나이가 든 사람들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남편과 싸워보기 전에는 다투며 사는 가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는 게 마냥 행복하고 사는 게 늘 즐거울 거라는 생각은 이제는 절대 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인생은 파도와 같은 것이다.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오는 파도 말이다. 내 마음도 이리 흘러 갔다가도 어느새 다시 싹 거두어 가니 말이다.
아름다운 문장들도 많았고, 생각지 못했던 생각들을 만나기도 했다. 내가 어른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덜 자란 어른일 뿐이고, 이 소설을 통해 나는 한뼘 더 자라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아직 모르는 40대, 50대 그리고 더 많은 나이대의 인생을 살짝 훔쳐 보았을 뿐이다. 인생은 살아봐야 아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