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수요일, 

새벽에 나갔던 남편이 아침에 집으로 왔다. 그동안 하던 일을 사정이 생겨 그만 둔다고, 5월부터 다른 곳에서 일하기로 하고 4월말까지는 그곳에서 일을 한다더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조금 쉬고 싶었단다. 

아이들 보내놓고 극장으로 달려 갔다. 

남편은 로맨틱한 영화를 보자고 했지만 개봉 영화 중 로맨틱한 영화를 찾지 못하고, 평소 보려고 마음 먹었던 <작은 연못>을 보았다. 아침부터 눈물 깨나 흘렸다.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노근리. 

3박 4일의 피난여정, 미군의 무차별 폭격.  

시아버지의 고향은 충북 영동군 모산, 1945년생인 시아버지도 피난의 기억을 가지고 계신다. 운이 좋게 살아 남으셨단 생각에 또 울컥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 부모님 세대를 생각했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자막이 올라오는 그 순간까지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세상 사람 모두가 기억해야만 하는 그날이었는데 우린 너무 잊고 살았던게 아니었나 싶었다.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다시한번 고개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영화를 보고 벚꽃이 지기 전에 벚꽃 구경 시켜주겠다며 고속도로를 타고 서종 IC에서 내려 청평댐 쪽으로 달렸다. 길가의 벚꽃이 즐비했다. 다음날 비가오면 모두 질거라고 길가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달렸다. 그래도 내겐 목련꽃이 단연 아름다웠다. 

드라이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닭갈비집에 들러 닭한마리 칼국수를 먹었다. 유명 연예인들도 많이 왔던 곳인가본데 어째 그리 지저분하던지, 그래도 먹을만 하기에 참았다. 

아이들 보내놓고 남편과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처녀 총각때처럼 설레이고 재미있었다. 

오후에는 옆동에 사는 언니네서 맥주 한잔 가볍게 마시자고 했는데 늦은 시간까지 그곳에서 이런 저런 얘기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4월 22일 목요일 

아이들 유치원, 어린이집을 보내놓고 남편과 나는 전날의 음주와 수면부족으로 뒹굴거렸다. 오후엔 시골에 가자고 금요일 하루 빠져도 괜찮다고 일정을 잡았다. 

시부모님이 계신 곳, 충북 영동, 매번 시댁으로 바로 갔어서 이날은 옥천에 들러 정지용 문학관과 생가를 보고 가자고 했다. 아이들 끝나는대로 데려와 옷 갈아입히고 도시락 설거지해놓고 출발했다. 

정지용 생가 찾다가 좀 더 올라가 육영수 생가도 보았는데 으리으리하더라. 



정지용 생가의 사립문은 열려 있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툇마루에서 다리쉼을 했고 남편과 나는 방안에 걸려 있는 시들을 읽었다. 







언어적 감수성이 뛰어난 정지용 시인의 시는 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따뜻하게 하며 마음을 즐겁해 한다. 



문학관 안은 평일 오후라 한산했다. 아이들은 좀 지루해했지만 나는 즐겁게 안을 둘러 보았다.  



벚꽃 길을 달려 시댁으로 갔다. 오랜만에 만나 담소도 나누고 남편과 시아버님은 술도 한잔씩 마시며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이 차를 팔고 아는 분 사무실에서 일을 했는데 그곳에서 아버님 발을 다치게 만든 가해자를 만나게 되었다.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 그분이 늘 남편을 못마땅해해서 심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했었다. 여차저차 그곳을 그만두고 일당을 받는 일자리로 옮겼고 그곳 사장은 남편을 썩 마음에 들어 했었지만 남편은 정식 일자리를 구해야겠다고 했고 예전에 차를 고치러 다니던 카센터 사장님이 당신 차를 탔으면 한다고 몇번이나 부탁을 하셨다. 그래서 5월부터 그 차를 타겠다고 했는데 일당으로 받으며 일하던 곳 사장은 4월말까지만 한다는 남편의 말에 바로 다른 기사로 대체하고 남편은 바로 실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마음 편하게 나랑 여기저기 놀러 다녔는데 시댁가려고 채비하는 동안에 일을 부탁하신 분이 일을 당겨서 시작해주길 부탁하셨다. 그래서 다음주 월요일부터 일하겠다고 했단다. 그렇게해서 우리에게 5일간의 휴가가 생긴 것이다. 

4월 23일 금요일, 

원래는 하루 더 자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역시나 하룻밤 자고 시댁을 떴다. 올라가는 길에 절구경하고 싶다고, 얼마전 공주 마곡사와 갑사에 대한 글과 사진을 보고 너무 가고 싶어했는데 두군데 모두 시댁에서도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여서 시댁 근처의 갈만한 절을 알아보고 들러서 집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천태산 영국사, 














 

천년 고찰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분명 사진을 찍었는데 사라졌다. 아무래도 현수가 만지면서 지워진 듯 싶다. 아담하고 소박해보이는 삼층 석탑과 부도, 비석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역시 평일 낮이라 한적했다. 

올라오는 길에 오랜만에 작은형부를 모셔놓은 곳에도 들렀다 왔다. 



 

시댁에서 잔뜩 싸온 것들을 가지고 오랜만에 친정도 들렀다. 쌀 40kg 내려 드리고, 무로 깍두기를 담고 말린 무와 고춧잎으로 무말랭이 장아찌를 만들었다.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밥에 구수한 된장찌개를 먹으니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역시 엄마 품이 좋다. 그래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곳은 우리집,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아이들도 피곤에 지쳐 차에서부터 곯아떨어졌다.

4월 24일 토요일, 

오전내내 집에만 있었다. 점심을 먹고나서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 자전거 좀 타자고 조른다. 남편과 아이들이 먼저 나갔는데 새로 일할 곳 사장님이 전화를 하셔서 가봐야 한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남편이 면담중일때 우린 차 근처에서 놀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아이들 낮잠을 재우고 오후에는 남편 친구들 모임에 다녀왔다. 술도 적당히 마시고 노래방에서 한시간정도 놀다가 돌아와서는 아이들을 재우고 책을 읽겠다고 달려들었는데 너무 졸려서 읽지를 못했다. 

4월 25일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남편은 내일부터 타게 될 차 세차를 하겠다고 나갔고, 그 일을 마치면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에 다녀오자고 했다. 남편이 세차를 하고 다시 집으로 와서 우리를 태우고 큰차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박스에 여러 물건을 담아 나왔는데 그걸 차 지붕에 올려놓고는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나는 얼른 남편을 내려주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는데 우리집 가까운 곳 횡단보도 앞 보도블럭 앞에 상자가 놓여 있었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달려가보았는데 상자가 너무 헐거웠다. 상자 속에 달력, 썬글래스, 장갑, 계산기, 수첩 등이 들어 있었다는데 달력과 썬글래스만 남아 있었다. 사실 썬글래스를 잃어버렸다면 정말 많이 속상했을 것이다. 내가 20대때 좋은 썬글래스를 샀었는데 나보다 남편에게 더 잘 어울려 5주년 결혼 기념일에 렌즈 바꾸어서 선물한 것이라 의미가 있었다. 남편은 얼마전 산 계산기 잃어버린게 좀 속상하긴 한 것 같은데 그거야 얼마 안하고 다시 하나 장만해도 되는게 아닌가 말이다. 여하튼 썬글래스를 찾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우여곡절끝에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을 다녀왔다. 















박물관 곳곳을 구경했다. 공룡에 관심이 많은 현준이는 공룡 뼈대를 보고 공룡 이름을 척척 잘도 말하고 엄마는 그게 기특하고 신기해서 자꾸 물어보았다. 현수도 볼거리가 많으니 좋아라하고 시청각실에서 무료 영화도 보았다. 큰언니네 식구는 나중에 도착했고 우리가 보고 휴게실에서 쉬는 동안 보고 내려왔다. 아이들 셋은 가상체험실에서 가상체험도 했는데 놀이기구 타는 것처럼 재미있었단다.  

일요일 오후, 날도 정말 좋았고, 엄마 아빠 손잡고 나들이 온 가족들이 많았다.   

우리 가족 휴가 마지막날을 박물관 구경하고 큰언니네 집에 들러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만나서 정답게 놀이를 하고 어른들도 시원한 맥주 한잔씩 마시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큰형부는 늘 혼자인 작은언니가 안쓰러운지 내게 작은언니의 재혼을 재촉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또 생각이 다르다. 그런 건 주변 사람이 재촉해서 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언니가 재혼할 생각이 들면 그땐 나도 충분히 거들 의양이 있다는 의사표현만 했다. 이날 작은 언니는 조카와 창경궁에 다녀와서 저녁만 함께 먹었다. 

5일간의 긴듯 짧았던 휴가를 마친다. 남편은 또 내일부터 열심히 일을 시작할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성실한 사람이기에 피곤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할 걸 알기에 5일간의 휴식이 남편에게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삶의 에너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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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4-25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연못이 이런내용 이었군요.
아 휴일의 여유로움을 만끽하시네요.
전 아이들 시험이 코앞이라 집에서 방콕해야 합니다. 이 좋은 봄날에...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도 좋다고 합니다.

꿈꾸는섬 2010-04-25 22:48   좋아요 0 | URL
아이들 시험에 엄마가 힘드시군요.
오늘 정말 날이 좋았지요.

마녀고양이 2010-04-25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건 봐야겠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어요. 아무리 가슴 아파도 봐야할거 같아요.
저도 무고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꿈꾸는섬 2010-04-25 22:49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 의무감으로 보긴 했는데 정말 잘 보았다 생각해요. 미처 몰랐던 부분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요.

프레이야 2010-04-2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기다리고 있어요.
데이트 잘 하셨네요.^^

꿈꾸는섬 2010-04-25 22:50   좋아요 0 | URL
ㅎㅎ요 며칠 같이 놀러 다니느라 엄청 바빴어요.ㅎㅎ

순오기 2010-04-26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연못은 내일 보러 가기로 했고요, 정지용 문학관은 재작년 가을에 다녀왔어요.
저런 형상은 안 만들었으면 좋으련만...내가 갔을 때는 없었거든요.
모처럼의 휴가를 두루두루 잘 보내셨군요.^^

꿈꾸는섬 2010-04-26 01:4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오랜만이에요.^^
작은연못 보고 하도 울어서 그날 내내 눈이 아팠다지요.ㅠ.ㅠ
정지용 문학관은 가자가자하면서 이제사 갔네요. 그래도 앉아서 쉬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럴 수 있으니 또 나쁘지만은 않더라구요.
모처럼의 휴가를 만끽해야 했어요. 언제 또 놀러다닐 수 있을까 싶어요.

후애(厚愛) 2010-04-26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용 문학관에 가보고 싶네요.
저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ㅋㅋ
현준이와 현수가 낀 안경이 아주 잘 어울려요. 너무 귀엽당~

꿈꾸는섬 2010-04-26 11:39   좋아요 0 | URL
정지용 문학관 둘러보고 생가에서 다리쉼하며 시도 읽고 하면 좋겠더라구요.^^
3D입체 영상관에서 쓰는 안경이에요.ㅎㅎ 귀엽죠.ㅋㅋ
후애님 산책길을 저도 부러워했답니다.^^

水巖 2010-04-2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휴가를 보내셨군요. 정지용 문학관행은 저도 탐나네요.
현준이 현수가 좀 고단하겠네요.

꿈꾸는섬 2010-04-26 11:40   좋아요 0 | URL
군에서 운영하는거라 입장료도 무료였답니다. 문학관과 생가가 붙어 있어서 천천히 둘러보고 꽃도 구경하고 시도 읽고 그러면 참 좋겠더라구요. 전 아이들이 하도 보채서 서둘러 보느라 여유로움은 없었어요. 그래도 좋았지만요.ㅎㅎ

소나무집 2010-04-26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이 많았군요. 드디어 서대문자연사 박물관에도 다녀오고 ...
아이들이 좋아하지요?

꿈꾸는섬 2010-04-28 16:28   좋아요 0 | URL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정말 좋더라구요. 다음에 또 가려구요.^^

같은하늘 2010-04-27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휴가를 보내셨군요. 저도 저 영화는 꼭 보려구요.^^

꿈꾸는섬 2010-04-28 16:29   좋아요 0 | URL
네, 꼭 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