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담그는게 얼마나 고되고 힘드는지 정말 제대로 체험하고 돌아왔다. 작년엔 아버님이 미리 배추를 뽑아서 절여 놓으셨기에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속 준비한 걸로 속 채워넣고 물론 그때도 무지 힘들어했었다. 그런데 이번 김장은 정말 너무 힘들어서 나중엔 팔이 너무 아파서 꼼짝도 못할 지경이었다.
작년엔 100포기정도를 헹구고 그중 50포기정도는 친정에 가져다 주었었다. 그러면 친정에선 속만 준비하고 속을 채워 김장을 끝냈다. 아버님이 농약 한번 뿌리지 않고 새벽마다 달팽이 잡으러 다니며 키우신 배추라 엄청 달고 맛있었기에 친정에선 올해도 또 부탁을 하셨다. 물론 사례도 하셨다. 그런데 올해 아가씨네도 절인 배추를 가져가겠다고 나섰다. 거의 180포기정도의 배추를 뽑고 절였다. 배추밭에는 남편과 아버님이 가셔서 배추를 가져오셨고 형님한분이 오셔서 배추 절이는데 도와주셨다. 남편이 배추를 쪼개서 다듬어주면 나는 그걸 날라다 아버님께서 드렸다. 그러면 아버님이 미지근한 물에 소금을 풀어 배추를 적셔주고 형님은 배추에 골고루 소금을 뿌렸다. 그럼 나는 그걸 큰 함지에 차곡차곡 쌓고 그 위에 살짝 소금을 덧 뿌렸다. 무거운 것을 들고 나르고 몸을 숙였다 폈다 했더니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여하튼 배추를 절이는데 아가씨네는 오지 않았다. 9시가 다 되어서 와서는 저녁 먹고 술이나 한잔하자고 하다가 남편이랑 고모부는 술도 꽤 늦게까지 마셨고 우리도 덩달아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문제는 다음날 6시에 일어나 배추를 헹구고 아가씨네는 9시엔 출발해야 한다는 거였다.
새벽에 못 일어날까봐 걱정을 하며 잠을 잤더니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어머님 아버님 얘기하시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더니 6시30분. 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고, 아버님은 눈 맞지 않게 마당에 비닐 천막을 만들었다. 그러고나서 아가씨도 꾸역꾸역 나왔고 배추를 씻는 일은 나와 아버님 그리고 아가씨 셋이서 했다. 8시쯤되어서야 배추를 다 헹구고 물이 튀어 바지가 젖고 신발도 약간 젖어 발이 시려어서 혼났다.
어머님이 아침을 준비하셨고 얼른 아침을 먹고 아가씨는 물이 빠진 배추를 챙겨서 9시전에 길을 나섰다. 어제 저녁에 미리 무채 썰어놓고 쪽파, 대파, 갓도 썰어놓아서 모든게 순조로웠다. 큰 함지박 속에 재료들을 넣고 속을 버무리는데 정말 팔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속을 버무려놓고는 배추에 속을 넣는데 하도 힘이 들어 배추속 하나 채우는데 정말 천천히 해나갔다. 우리도 12시전엔 출발을 하자고 그래야 친정도 김장을 담그니까, 열심히 남편도 일어나서 거들었지만 나중엔 운전하려면 좀 쉬어야겠다고 김치통하나 채워주고는 일어섰다. 내가 김치통 두개를 거의 채웠고 남편이 하다만 김치통까지 3개를 더 채웠다. 11시가 조금 넘어 속을 다 넣었고, 시부모님들 얼른 채비해서 올라가라고 뒷정리는 당신들이 하시겠다고...그나마 너무 고마웠다. 뒷정리까지 감당하기엔 내 체력이 이미 바닥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아이들 대충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나도 좀 씻고 옷을 갈아입고는 친정으로 갔다. 남편은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속이 불편하다며 친정에 배추만 내려주고 얼른 집에 가자고 했지만 나는 엄마네 집에 가서 엄마가 해준 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우리 집에선 김장때면 굴도 넉넉히 사시고 고기도 좀 사서 삶아 배추랑 쌈을 싸서 먹었는데 갑자기 그게 너무 먹고 싶었다. 시댁에 사간 고기는 삶아 놓았지만 너무 힘이 들어 먹히지가 않았었다.
무엇보다 갑자기 굴보쌈이 너무 먹고 싶었다. 남편도 내 얘기에 동조하며 그때는 자기도 먹고 싶다며 엄마네서 점심은 먹고 가자고 했다. 일찍 출발한 덕에 2시쯤 도착해서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밥을 먹으니 모든게 스르르 좋아졌다. 엄마네 김장은 손도 대지 않아도 되게 새언니랑, 작은 언니가 다 해주었고 큰언니는 아이들을 챙겨주었다. 작은방에 들어가 드러누워 텔레비전을 조금 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는데 그때 어느정도 피로가 풀렸다. 그리고 남편이 어느새 집에 가야하지 않겠냐고 했는데 엄마는 갑자기 추워졌다며 얼큰한 동태탕을 끓여놓으셨다. 그 덕에 저녁까지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네 집에서 밥 얻어먹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재미있게 놀다와서 집에서는 시골에서 가져온 것들 정리하고 아이들 깨끗하게 목욕 시키는 건 남편이 거의 다 했다. 그 덕에 어제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잠을 잤다. 아이들도 피곤했는지 아침 8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현준이네 유치원에 기어이 신종플루 확진자가 나왔고 그래서 월, 화 휴교를 한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그래서 천천히 아침 먹이고 세탁기에 빨래 돌려놓고 한가하게 쇼파에 앉아 <그저 좋은 사람>을 보았다. 아이들은 엄마 피곤한 기색을 아는지 자기들끼리 놀아 주었고 간간히 먹을 것만 챙겨주면 되었다. 현준이가 정리도 돕고 해서 오늘 하루는 집 밖에 한발도 나서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저녁을 일찍 먹고 남편은 아이들을 씻겨주고 나는 뒷정리를 하고 남편이랑 가볍게 텔레비전을 좀 보고 아이들을 재웠다. 그리고 나 혼자 선덕여왕을 보고 <그저 좋은 사람>을 끝까지 읽었다.
주말은 너무 힘들었지만 한여름까지 먹을 김치들을 생각하면 그쯤이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동안 엄마 혼자 김장에 얼마나 많이 고생하셨을지 생각을 하며 잠깐 눈물도 찔끔거렸다. 뭐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걸 다시 또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