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 프랑스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드니 디드로 외 지음, 이규현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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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단편 소설 14편이 수록되어 있고 각기 다른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묘한 단편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익히 알고 있는 작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처음 작품을 접해본 작가들이 많아서인지 조금은 낯설기도 했고 프랑스 고전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었다. 하지만 현대문학과는 또 다른 색다른 단편 읽기의 묘미와 프랑스 단편 특유의 상상력을 맘껏 만날 수 있어 도전해볼 만하다. 

14편 모두 독창적이고 놀라운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몇 편은 더 시선을 끌어 소개해본다. 발자끄의 '붉은 여인숙'은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로 살인자가 참석한 만찬에서 이야기는 독일인 헤르만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로시작된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되었고, 믿었던 친구의 배신과 실종으로 사건은 급 마무리되었음을 하소연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이 아니고 시작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살인자를 알고 있는 화자는 순간순간 살인자로 지목된 자의 낯빛을 확인하며 조여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화자는 심한 갈등에 빠지게 된다. 살인자의 딸을 사랑하게 된 화자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스스로를 납득하고 합리화시키기에 몰두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맞게 된다. 친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음을 맞게 될 것을 알면서도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살인을 저질러야 했던 살인자와 끝까지 친구를 믿으려하며 죽어간 초급 군의관의 모습과 살인자를 알고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싶어 하면서도 그의 딸을 사랑하는 이유로 갈등하게 되는 화자의 모습 속에서 현실에 처한 인간들의 각기 다른 행동 유형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고띠에의 '죽은 여인의 사랑'은 꿈과 현실을 오가며 환상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순진한 시골사제 로뮈알드가 신비로운 미모의 여성 끌라리몽드의 유혹에 반하게 되면서 죽음을 넘나드는 치명적인 사랑은 시작된다. 생시 같은 꿈과 비현실적인 현실 사이에서 사제 로뮈알드는 깊은 고통과 갈등을 겪게 되고 치명적인 그녀와 사제의 본분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을 맞게 되는 이야기이다. 예전부터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존재 흡혈귀와의 사랑을 작가는 그녀의 모습과 방을 표현하면서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를 최대한 보여주며 사제가 마음을 빼앗기는 심리를 보여준다. 또한 그녀와의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깊고 깊은 숲을 달려 나오는 장면에서는 시각과 청각을 열리는 느낌을 들며 여전히 가슴 속에서 최고조의 갈등을 하는 사제의 심리를 섬세함과 역동적인 모습으로 보여주어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었다. 

쥘리앙 그라끄의 '코프튀아 왕'은 깊은 친분을 가진 관계는 아니지만 가끔 만나 친분을 유지하던 친구의 초대로 외딴 저택에 도착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낯선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낯설음과 호기심은 화자를 이끌게 되고 저택에서 안주인 같은 하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녀 자체가 흐릿한 그림자 속에 잠겨 있고 화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며 저택의 침묵 속으로 그녀의 침묵으로 가라앉게 된다. 하룻밤 동안 화자가 겪게 되는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 의식의 흐름을 통해 깊은 침묵과 함께 초의 불꽃의 이미지로 남게 된다. 어둠과 극렬하게 대비되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화자는 밖의 세상과는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듯 느낌을 받으며 현실과 대비된다. 화자는 시종일관 안주인 같은 하녀에게 이끌리며 현실과 동떨어져 있게 된다. 하지만 선명하다 못해 거울 같은 현실의 아침은 오게 되고 화자는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녀를, 저택을, 하룻밤의 허구의 세계를 떠나 밝은 세상으로 걸어나오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결코 쉬운 작품은 아니지만 묘하게 마음을 끄는 작품이기도 했고 읽고나서도 잔상이 오래 남는다. 빛과 그림자로 선명하게 대비되는 오래된 저택에서 발걸음 소리가 묻히는 카펫, 늙은 왕과 어린 거지 소녀의 그림인 '코프튀아 왕'의 그림, 오지 않는 친구,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 같은 하녀가 주가 되는 이야기는 특별한 갈등도 사건도 없다. 그저 현실과는 괴리되어 있는 저택에서의 하룻밤이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큰 결정을 내리고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은 기분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다음에 다시 꼭 읽어보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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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학의 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자학의 시 1 세미콜론 코믹스
고다 요시이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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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컷의 만화에 담긴 짧은 이야기는 고단한 인생사를 읊어 주는 것 같아 귀를 막고 싶기도 하고 또 때론 넋을 놓고 들어야만 할 것 같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야쿠자 출신의 백수 건달 이사오와 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작은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는 거리의 여자였던 유키에의 사랑과 일상을 담고 있는 만화는 현실의 모습을 실감나게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처음엔 별일 아닌 일에도 밥상을 엎는 백수건달 이사오의 행동은 아무리 만화라고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고 심지어 불쾌감까지 생겼다. 거기다 그런 남자를 그저 사랑으로 모든 행위를 받아들이는 유키오가 더 이해할 수 없기도 했다.  

하지만 2편으로 들어서면서 1편에서 잠시 보여주었던 유키오의 탈 많고 한 많았던 굴곡진 인생을 읽다보면 그녀가 왜 그렇게 이사오의 무뚝뚝하고 막무가내인 사랑을 이해하고 고마워하는지 알게 된다.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오가 자신을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해져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생은 누구에나 조금씩은 다 힘들고 고달프다. 그저 상대적으로 행복해 보이는 것이고, 불행해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은 사람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각자의 인생의 불행이 있고, 불행하기만 할 것 같은 초라한 인생에도 한 줄기 봄바람 같은 행복이 깃들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사오와 유키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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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이상하기도 하다. 별다른 고민도 없고 힘들었던 재작년보다는 훨씬 일도 안정적이고 읽고 싶은 책들 실컷 읽으면서 보내는 중이다. 그런데...그런데도 왠지 뭔가 자꾸 빈 듯함을 느낀다. 또 내 마음이 변덕을 부리는 중일까? 일상의 변화가 없기 때문일까?  

그 '변화'라는 게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얼마나 멋진 단어로 마음에 와 닿는지, 얼마나 유혹적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더 어려움을 느낀다. 생각만으로는 일상의 변화를 주기 쉽지만 실천편으로 가면 자꾸 망설이게 되고 주저하게 된다. 일상의 변화...뭐가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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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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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최근 작이다 라는 정보만 가진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작가 오에 겐자부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이다. 왠지 노벨문학상 받은 작가들의 글들은 어렵고 난해할 거라는 생각에 더 나중에, 더 나중에 읽어볼래 했었던 것 같다.  

우선 이 책은 제목부터 마음을 끈다. 포의 아름다웠던 여인 하지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아내를 그리워하면 쓴 시의 제목이기도 했고 포와 그녀의 삶의 전체적인 비극적인 요소가 제목에서 감지되어 궁금증을 더했다. 이야기는 화자 자신으로 등장하는 노년의 작가가 30년 만에 나타난 대학 시절 친구이자 영화 제작자인 고모리가 찾아와 30년 전에 무산되어버린 영화제작과 그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작가를 30년 전으로 이끈다.  

30년 전 은사의 죽음으로 글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던 작가에게 고모리는 왕년의 아역 스타 사쿠라와 함께 찾아와 전 세계적으로 추진 중인 영화의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작가는 사쿠라를 본 순간 자신의 사춘기 시절에 보았던 영화 '애너벨 리'를 떠올리게 되고 하얀 관의를 입고 누워있던 그녀를 기억해냈다. 영화제작과정에 적극적이던 사쿠라를 알게 되면 될수록 그녀가 억눌린 과거의 기억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와 사쿠라는 그 고통의 원인을 근대 이후 일본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고통과 한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작품을 통해 치유의 길을 걷게 된다.

'아름다운 애너벨리 싸늘하게 죽다'에서 녹녹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했던 여배우 사쿠라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가 없다. 사쿠라의 과거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기억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하고 그녀가 받을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분노의 마음에 읽는 동안에도 속이 상했었다. 하지만 그녀 사쿠라는 나약하지 않았다. 30년 전에 꿈꾸었던 작가의 시나리오를 통해, 그녀가 겪어야 했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날들의 진실의 고통을 그 시절 또한 자신의 삶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연극 '메이스케 어머니'로 강하고 당당하게 '환생'한다.  

사쿠라, 그녀의 치유의 과정은 길고 모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시간과 기억에서 벗어난 그녀를 통해 고통의 애너벨 리는 싸늘하게 죽었었지만 또 다른 애너벨 리는 새롭게 강하게 태어났음을 느끼게 해준다. 오에 겐자부로의 담담한 어조로 듣게 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그리 쉽게 다가온 글은 아니었다.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애너벨 리를 통해 바라 본 사쿠라와 일본 전후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고 노작가 자신을 통해 문학의 길을 통해 보여 준 주제가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후에 시간이 더 지나 다시 읽어보고 그 함축된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게 되는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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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시선>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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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존재를 특별히 의식하지도 않았고 그 결핍을 느끼지 못한 채, 스물 아홉의 된 주인공은 갑자기 아니, 서서히 그의 마음 속에 '아버지'의 존재는 커져가기 시작했고 그의 부재와 단절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역할을 철저히 해낸 어머니 보호아래 별다른 갈등없이 자라 온 한명재는 생각지도 못했던 결핵에 걸리게 되어 요양차 서울근교저택에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은퇴한 심리학 노교수에 의해 자신이 가진 결핍의 감정과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그후 그는 무작정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인구 3만의 도시에 아버지를 찾으러 가게 된다. 아버지를 만나면 어쩌겠다는 어떠한 계획도 없이 떠나게 되고 그 곳에서 만난 아버지는 아들인 '그'를 거부한다. 아버지의 '거부'는 예상했던 거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들 한명재는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했고 항상 철저한 부재일 때조차 그를 억압했던 아버지 존재에서 벗어나 독립된 존재로 나아가는 글쓰기 행위로 나타나게 되고 객혈로 확인받게 된다. 

작가 이승우의 글은 처음 읽게 되었는데, 받은 첫 느낌은 날 선 서늘한 느낌이라고 할까...길지 않은 글 속에 담긴 무거운 주제는 잘 읽히는 글 읽기에 비해 묵직함을 주면서도 서늘한 바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다 중반부부터는 열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서서히 체온이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말이다. 결국 난 '한 낮의 시선'에서 냉기와 열기를 동시에 느낀 셈인데, 사실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나 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그냥 내가 느낀 만큼의 작가 이승우를 만난 것으로 우선은 만족하고 싶다. 주인공인 아들이 아버지의 거부의 시선에서 느꼈을 그 뜨거운 한 낮의 시선을 칼 날처럼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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