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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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44개의 편지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이 저자의 다른 책 <액체근대>와 비교했을 때 좀 수월하게 읽히면서 재미도 있다. 현 사회에 주는 시사점이 많기 때문이랄까.

이 사회학자가 현대사회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건 일상 탐구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p20 “처음부터 그 사물들이 지닌 소위 일상성이라는 의심스러운 장벽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그 친숙한 사물들이 숨기고 있는 풍부하고도 심원한 미스터리를 탐구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다.”

p21 “만약 우리가 그 일상적 사물들과 정말 친숙해지기를 바란다면, 외관상 친숙하게 여겨지는 사물들을 우선 낯설게 만들 필요가 있다.”

바우만의 책은 인용할 구절이 참 많은 것 같다. 가령 패션 혹은 스타일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다음 구절이지 않을까 싶은데, <옷장 속 인문학>이라는 책에서도 이런 비슷한 문구를 본 것 같다.

p97-98 “재빨리 얻고, 또 빠르게 버려지고 없어지는 소지품들의 물결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마음속으로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소유물로 돋보이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더구나 설령 그처럼 소중한 소유물로 여겨진다고 하더라도 오려 재속되지는 않는다. 쉴 새 없이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특정한 활동을 위해 요구되는 그 용품paraphernalia이 아니라 바로 그 스타일style이다. 게다가 그러한 스타일에 맞춰 요구되는 부대용품이 언제나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점차 가속화되는 속도만큼 더 필요하게 되기 마련이다.”

요즘 뜨는 인기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must-have-item은 필요 없는 물건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라고 했을 때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싶었는데, 이 책이 그런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p106 예를 들어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없다면 당신은 기껏해야 2-3분도 제대로 버티기 힘들다. 그럼에도 당신이 인생의 필수품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무엇인지 한번 목록을 작성해보라고 요청받는다면, 그때 공기는 아마 목록 안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그 목록 안에 들어 있다하더라도 아마 거의 마지막 순위가 되지 않을까. 아마도 당신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그저 공기는 언제나 그 어디에나 있기에 우리 폐가 원하는 만큼 많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따로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가정할 것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페이스북 같은 것들로 결코 혼자 있을 수 없는 인간이면서 소비하는 인간이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말해주고, 내가 입는 옷이 나를 말해주는.

p122 “오늘날 그 어디나 상점으로 이어져 있다. 또 적어도 우리는 날마다 그 어떤 경우에든 그렇다는 것을 익히 듣고 있다. .... <중략> ... 또 다른 광고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가장 잘 말해 주는 것이 바로 당신의 시계입니다.”라고 떠벌리면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든 바라봐주고 자신들이 그들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든 소비되길원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방법을 찾으려 열광적으로 몰두하는 우리 모두에게 말을 건넨다. 새로운 자동차 디자인에 관한 광고는 다음과 같이 직설적으로 말하면서 이와 같은 모든 제안과 약속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당신은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의 일부분을 구입하는 겁니다.” 물론 여기에서 넌지시 암시되는 그 일부분이라는 것은 당신 자신의 가볍고 사소하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어떤 일부분의 조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공식적인 얼굴, 곧 당신이 이 세상과 접속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눈에 비춰진 당신의 이미지를 말하는 셈이다.”

학기 중에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문화자본으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래서 상류사회일수록 클래식을 듣고 노동자 계급은 대중가요를 듣고 뭐 그런 식의 예시를 봤는데, 여기선 재미있는 글이 있다. 이제는 잡식성이라고.

p155 “프랑스의 위대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30년 전 대단히 영향력 있는 저서 <구별짓기>에서 문화 엘리트는 정작 그들이 보여주는 극도로 선별적인 예술적 취향과 엄격하게 정한 기준들을 통해서 우리 같은 나머지 사람들과 자신들을 구별할 뿐이라고 말했다.”

p166 이미 오래 전인 1992년도에 밴더빌트대학교의 리처드 피터슨은 그 당시 문화 지도자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거나 아니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취향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잡식성omnivorousness”이라는 비유를 사용했다 (리처드 피터슨 외, <<어떻게 음악적 취향이 직업상 비슷한 지위를 갖는 집단들을 구별해주는가>>, <<차이들을 함양하기-상징적 경계들과 불평등의 형성>>,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오페라와 함께 팝송도 즐기며, ‘순수예술과 함께 한창 유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즐기는 식의 취향, 이를테면 여기서 아주 조금, 또 거기에서 아주 약간을 가져오고, 어떨 때에는 이것을 하고 또 어떨 때는 저것을 하는 식의 잡식적인 취향 말이다. 최근 피터슨은 자신이 최초에 발견했던 내용들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우리는 지금 엘리트 집단의 정치적 견해들이 다음과 같이 변모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고상한 체하며 모든 천한 것들(저속하거나 대량으로 공급되는 대중문화 등)을 업신여겼던 식자층들의 모습이, 이제는 고상한 예술 형태뿐 아니라 아주 다양한 대중적인 예술형태들까지도 잡식하듯이 닥치는 대로 두루 소비하는 모습으로 변모되고 있는 것이다.(피터슨, <변화하는 미술 관람객들-잡식성에 기반한 자본화 전략>, presented at a workshop in 14 Oct. 2005. 웹사이트 culturalpolicy.uchicago.edu.)”

 

편지 19 ‘질병을 권하는 사회에서는 나오는 속쓰림과 수줍음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위식도 역류사회불안장애로 나타났는지 말하는대, 사실 과학이 발전하니까 이런 단어로 세분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다. 나쁘게만 볼 건 아니고.

p169 “아주 흔하게 경험되던 그 수줍음이라는 일상적인 불쾌감을 요즘의 의료 업계에서는 사회불안장애라는 한층 더 심각하게 들리는 병명으로 규정한다. 사실 1980년에만 해도 이 사회불안장애는 권위 있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도 거의 드물게만, 그것도 지금은 이미 잘 쓰지 않는 사회공포증이라는 용어에 속하는 질병으로 기술했다. 그러나 1994년에 그 사회불안장애가 비로소 극히 아주 흔한 질병으로 재분류되었다. 또한 1999년쯤에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라는 거대 제약회사가 자신들이 만든 팍실이라는 우울증 치료제를 판매할 시장을 창조하기 위해서 수백만 달러를 들여 불안-홍보 캠페인을 춤범시키면서, 그 팍실이라는 우울증 치료제가 사회불안장애라는 심각한 의학적 상태를 완화시켜주거나 완전히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사회학자이니만큼 불평등의 개념이 빠질 수 없다.

p186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들의 불행으로부터 우리 스스로 거리를 두는 동안에는 결코 행복추구라는 목적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없다. ‘사회적 질병에 대항해 맞서 싸우는 우리들의 투쟁은 오로지 함께 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들은 그 투쟁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194 “우리는 반드시 우리 아이들이 정말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야말로 참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게 키워야만 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우리가 더럽힌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사람들보다 무려 열 배나 많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정작 우리가 두드려대는 그 키보드를 만드는 제3세계 사람들보다 무려 백배나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아이들이 바로 먼저 산업화된 나라들이 아직 산업화되지 않은 나라의 사람들보다 백배나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걱정하게끔 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반드시 일찍부터 자신들이 누리는 그 행운과 다른 아이들이 누리는 행운 사이에는 많은 불평등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배우게 해야만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바로 그러한 불평등들이 신의 의지도 아니고 경제적인 효율성을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가 아니라 오히려 분명 피할 수 있는 비극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가능한 빨리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게끔 해야만 합니다. 그 어떤 누구라도 한편에서 다른 사람들이 과식하는 동안 굶주리게 되는 일은 결코 없게 하기 위해서는 과연 이 세계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리처드 로티 Philosophy and Social Hope, Penguin, 1999, pp203-4.)”

 

교육에 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요즘 기업 강의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멘토 강의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p202 “미국의 사상가 랠프 왈도 에머슨이 말했던 것처럼, 당신이 살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을 때 그 위험으로부터 당신을 구할 길은 결국 속도에 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배움의 세계에서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 또한 어떤 특정한 위치에만 머물러 과도한 테스트를 견뎌내야 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p211 “유동하는 근대 세계를 살아가는 그들 모두는 반드시 오직 한 가지 길만을, 한 가지 유일한길이기 때문에 이미 너무나 붐비는 그러한 길을 따라가라고 가르치는 선생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담전문가를 원한다. 유동하는 근대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상담전문가는 바로 개개인의 성격과 개성을 깊이 파고들어가 그 속에 발굴을 기다리는 귀중한 과석이 묻혀 있는 풍부한 매장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이들은 금액이 얼마가 되었든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상담전문가에게 기꺼이 상담받을 것이다. 그런데 상담전문가들은 정작 의뢰인들의 무지함이 아니라 태만하거나 게으른 점을 비난할 것이다. 다시 말해 상담전문가들은 전통적인 교육자들이 자기 제자들에게 전하길 원했고 또 전수하기 용이했던 앎을 터득해자는지식savoir보다는 오히려 실용적인 지식savoire etre이나 처세savoir vivre 같은 지식들을 터득하는 방법을 조언할 것이다.”

p212 “요즘처럼 평생교육을 지나치게 추종하는 모습도 결국 어느 정도는 전문적인 정보를 최첨단의 상태로 업데이트할 필요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평생교육은 바로 다음과 같은 확신 때문에 인기를 얻은 것이기도 하다. 개성이라는 그 광산이 결코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더불어, 다른 안내자들은 도달할 수 없었거나 아니면 가증스럽게도 그냥 못 본 척 지나쳐버렸기에 아직 개발되지 않았거나, 심지어는 아직 발견조차도 되지 않은 매장층에 도달하는 방법을 아는 정신적인 스승들이 여전히 더 있을 것이다. 또한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기만 하면 언제든 그러한 스승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평생교육이 인기를 얻었다. 물론 정신적인 스승이 제공하는 서비스들에 대한 대가로 그들이 팔다리를 움직이게 될 만큼의 비용은 항상 충분하게 지불해야 하지만 말이다.”

pp218-219 과거에도 교육은 여러 가지 형태로 구체화되었고, 변화하는 화경에 스스로 적응하면서 새로운 목표들을 설정하고 새로운 전략들을 고안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입증했다. 그러나 내가 한번 더 되풀이하고 싶은 이야기는, 현재의 변화가 과거의 변화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인간 역사의 그 어떤 전화기에서도 지금 교육자들이 마주한 분수령에 비견될 만큼 중요하고 많은 변화를 초래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던 적은 없었다. 지금처럼 정보 과잉의 세계에서 살아 갈 수 있는 방식은 결국 계속해서 배우는 일뿐이다. 더구나 그런 정보 과잉 세계에서 인간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삶에 대비할 수 있게 해주는 믿기 어려울 만큼 놀랍고 어려운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

 

편지 32 ‘해고되는 사람들에는 산업 구조의 변화와 그로인해 불가피해진 해고, 그리고 그 이후의 일상 모습들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사실 내 관심을 끌어들인 대목은 메간 바샴의 책 <<모든 성공한 남성의 곁에서Beside Every Successful Man>>에서 남편이 돈을 벌고 아내가 주부로 있을 때 남편이 더 돈을 잘 벌더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 물론 저자는 이 책은 여성 공동체를 잘못된 길로 이끌려는 악의적인 시도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인간 존중해야 한다는 인문학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 개개인을 상품으로 놓고 보고 있다는 것. 보통 이력서를 쓰거나 면접을 볼 때 자신의 selling point가 뭔지 찾아보라고 하는데, 그 말도 이제는 좀 가려해야 겠다.

pp325-326 “소비자들로 이루어진 사회, 즉 소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마저도 소비시장에 팔 수 있는 상품으로 제공해야만 하는 사회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반드시 흠잡을 데 없이 계산된 사업상의 제안처럼 보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p352 “문화는 탄생과 더불어 오랜 역사를 거치는 동안 내내 이와 동일한 유형을 따라왔다. 문화는 지각하고 평가해야 하는 대상들이다. 그뿐 아니라 문화는 이러한 대상들에 대해 반응할 때 좀 더 선호되고 권장되며, 강요되는 반응 양식들의 대상들을 구분하고 구별해서, 차별화하고, 이에 따라 분류하고 분할하는 기표들(시니피앙)을 찾아내거나 뚜렷한 목적으로 이러한 기표들을 구성해내곤 했다. 문화는 시작된 이래 쉴 새 없이 계속해서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한결같이 무작정 진행되며 변덕스러웠을 것을 차별화하고, 구조화하고 규칙화하는 과정에서 성립되어 존재해왔다. 문화는 인간의 여러 선택들을 관리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다루어온 것이다.”

 

편지 42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에서 아부 그라이브에서 벌어진 잔혹행위와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에서 본 악의 평범성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 평범성이라는 것이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시키는 것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경각심. 그리고 만약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p372 “어쩌면 점차 권위적인 권고의 목소리들이 나오는 장소들이 복잡하게 다양화될 뿐 아니라 권위를 유지해온 관료제적인 위계질서도 완화되거나 와해되는 특징을 보여주는 이 유동하는 근대성이라는 상황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더 그럴듯할 것 같다. 권위적인 권고의 목소리들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소리가 줄어들어 잘 들리지 않게 된 상황을 초래한 위의 두 가지 요인들(곧 권위의 다양화와 관료제적 위계질서의 와해)과 이와는 달리 좀 더 개별적이며 특유하지만 역시 개인적인 또 다른 요인들, 예를 들어 다음 편지에서 논의할 개인의 성격 같은 그런 요인들이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만일 정말로 그러한 요인들이 점차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면, 그땐 인간들의 그 인간성이란 것도 분명 틀림없이 가치가 올라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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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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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라는 회사가 어떻게 다시 재기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일화를 소개한 내용이 페이스북 페이지로 많이 떠 다녀서 눈여겨 본 책이다. 출처가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되어 있어서. 사실 책에서 정말 간단히 소개하고 있고, 이것이 핵심도 아니다. 어쨌든 쉽게 읽혀지는 철학 책이라 대중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의 요지는 누구를 따라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생각을, 삶을 살라는 것이다.

p183 철학하는 일이란 남이 이미 읽어낸 세계의 내용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을 줄 아는 힘을 갖는 일이라는 것, 이 점을 꼭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p235 생각의 높이가 시선의 높이를 결정하고, 시선의 노이가 활동의 높이를 결정하며, 활동의 높이가 삶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결국 그 사람들이 이루는 세계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직장인'과 '직업인'의 구분은 여러모로 써먹을 만한 내용이다. 

나도 다시 '직장인'을 꿈꿨는데, 사실 돈을 버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그런데 '직업인'은 물론 직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예민하게, 민감하게 업에 임하는 사람을 뜻한다. 즉 더 책임감 있게 일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직업인'이 되는 것이다. 직장인이 될 것인가? 직업인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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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김송인 옮김 / 산지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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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를 작년 가을 처음 듣고, 이런 똑똑한 여자도 있었네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여기 저기서 한나 아렌트가 많이 인용되고 있다. "악의 평범성"이란 말. 수백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아이히만이란 남자는 한나 아렌트가 보기에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는. 그저 시키는대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낸 사람.

우리는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을 교육 시키고 또 그런 교육을 받는 데, 이게 결국은 나도 "악의 평범성"에 해당되는 얘기였고, 아렌트는 여기서 사유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p125 확실성이 멈추는 곳에서 사유는 시작된다. 안다는 것은 곧 불확실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전통적인 생각이나 그 반대이 사유를 '난간'으로서 더 이상 기대지 않아야 한다. 카츠넬슨의 삶이 보여주었듯이, 그런 사유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이 쇄도하는 현실이 실상으로부터 혼란스러워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며, 다른 한편으론 현실을 진단할 용기와 사유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어떻게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현실로부터 새롭고 적절한 개념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이미 익숙하게 잘 아는 것들을 해체시키고,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들로 변환시킬 수 있을까?

 

웃음, 번역, 용서, 표현 등 4개의 파트를 나눠 아렌트의 저술과 인터뷰의 내용을 해설하고 있는 책인데, 좀 어려운 감이 있다. 아마도 아렌트의 다른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부터 봐서 그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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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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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 중독인가?

얼마 전 서점에서 "완벽한 공부법"이란 책을 보고, 이거 읽어봐야지 했다. 공부법은 나이가 들어도 궁금하다. 왜 나는 잡다한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으니까. 그런데 내가 지식을 얻는 방법은 책을 읽기도 하지만, 요즘은 유투브를 뒤진다. 말 잘 하는 강사들이 왠만한 주제의 강의는 다 올려놨다.  그런 거 보면 나도  "매끄럽게" 공부해 온 것에 아니 구경해온 것에 익숙해서 그런 것 같다. 대학원의 강의나 학술대회 발표를 볼 때 참 교수들 말 못한다는 생각이 든 적 있다. 왜냐면 요즘엔 에듀테인먼트라고 할 만큼 주어진 시간에 "show"를 보여주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다. 내용도 있고 재미도 있으면 좋겠다.

 

p59 어느 날 보니까 저와 학생들의 관계가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아니라 엔터네이닝을 하는 관계인 거예요. 웃기는 표현일 수도 있는데, 학생으로서 제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팬 분"들도 오세요.

 

p68 공부를 '하는doing'게 아니라 '구경'하는 거예요. 교재에 형광펜이 다 칠해져 있다니, 세상에 그런 공부가 어디 있어요? 교과서를 요약해서 설명해주는 것이 교재인데 그걸 또 형광펜으로 요약까지 해주고, 끝나고 나면 요약정리 또 해주고 핵심문제 또 따로 나오고 ... 그러니까 계속 구경하는 형태예요. 존듀이가 말한 대로라면 '언더고잉undergoing', 즉 겪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사라져버리는 거죠. 공부 '중독'이라고 하는데 중독될 '실재'는 없어요.

 

p117 어느 순간 모든 사회 영역이 학교가 돼버렸어요. 모든 사람이 학생 취급을 받고 있죠. 그리고 학생이니까, 배우는 중이 때문에 사회는 "아직 네 몫은 없다, 너는 아직 한몫할 능력이 없다"라고 말하고, 그러니까 "너는 더 배워야 한다"라고 하죠. 이렇다 보니까 개인 입장에서는 학생이기 때문에 아직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뭔가를 실질적으로 할 기회도 없도, 그렇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합리화해야겠고,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하는, 이런 식으로는 굉장히 분열적인 주체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p171 이를테면 나는 더 이상 제도권 안의 공부를 하지 않겠다, 주체적으로 자기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조차도 잘 짜인 커리큘럼에 유명 강사가 나와서 굉장히 잘 정리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선호한단 말이죠. 그러면서 자기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p174 "저 사람 공부 참 많이 했네"라는 말이 궁극적으로 가방끈이 긴,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라 삶의 지혜가 많은 성숙한 사람을 뜨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나는 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왜 대학원에 다니는 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왜 공부하냐?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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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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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잘 지적해서, 불편하게  읽었다.

97학번인 내가 대학을 다닐 때 한창 미국은 경영자  출신이 총장인 경우가 많은 데 우리 나라는 그렇지 않다며 우리도 어서 경영자 출신을 "모시고"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슈를 수업 시간에 한 적이 있다. 지금은 뭐 경영자 출신이든 아니든 대학이 취업사관학교가 됐고, 영어수업 늘리기에 안달이고...

대학원에 다니면서 바라본 학교는, 일단 단과 대학 건물마다 커피숍이 들어가 있다. 20년 전엔 고작 자판기가 있었는데, 이렇게 커피숍들이 들어차 있는 건 임대료겠지. 

그리고 대학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영어 수업은, 영어로 수업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이해하고 오히려 좋아한다. 우리말도 토론하고 발표하려고 해도 말이 꼬이고 논리가 안맞는데, 이걸 영어로 하자면 어쩔려고. 졸업을 위해서 영어 점수를 모두에게 요구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이상한 것  투성이다. 

"죽은 시민"을 만들어내는 대학 편에선 물론 대학 자체가 기업에 의존하고, 취업사관학교가 되는 것도 문제지만, 학생들도 문제가 있다. 자기들끼리 "군기" 잡겠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지방 대학의 경우 그 지역에서 살아남아야 하니 교수의 입김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수에서 찍히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알아서 기는" 걸로. 

읽는 내내 마음 아프고 불편한데, 대학에 문제가 있지만... 역시 나는 약자라 그래도 취업은 되야 하지 않냐 싶고, 기업의 후원이 있으면 학생들에게 좋은 거 아닌가 싶고, 영어 점수 높으면 좋겠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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