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
임영주 지음 / 앤페이지 / 2021년 4월
평점 :
육아책을 꽤 많이 읽은 편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맘에 육아서를 전공책 읽듯 모조리, 샅샅이 보고 있는 중이다. 내 아이 잘 키우자고 읽는 육아서인데, 사실 나는 읽으면서 불쑥불쑥 화가 났다.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우리 엄마가 나를 대한 그 모습이 생각나서. 그리고 시어머니가 본인이 아들 딸들을 이렇게 이렇게 키웠노라 이야기를 했던 것들이 생각나서. 지금의 육아서대로라면 터무니없게 잘못된 육아였기 때문에, 그렇게도 화가 났던 거다. 원망과 서운한 감정이 섞여서. 이 책의 말미에 나온 글을 읽으며 내 그 동안의 감정이 딱 정리가 되었다.
p231 선배 엄마로서, 인생을 좀 더 살아 본 사람으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고 원망하느라 소모했다면 이제 지나간 내 시간을 애도하고, 자신은 어린 아이가 아니라 또 다른 한 생명을 책임지는 어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고.
지금 자신을 힘들에 하는 건 '어른인 나'가 아니라 '상처받은 어린 나'다. 상처받은 기억과 사랑받은 기억이 공존하면서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유년 시절의 감정이 화를 내고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쿵 하고 마음에 와닿는 글을 읽곤 이 책에 대한 만족감이 더 커졌다.
읽는 내내 쉽고 편하게 읽혀서 좋았던 책이었는데, 마지막 장에서 깨닫음을 얻어다고 할까.
p23 훈육은 아이에게 대안을 제시하지만 화풀이는 아이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훈육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설명하고 부모가 대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흘러간다. 일방적인 명령이 아닌 합리적 설명을 기반으로 아이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규칙과 규범'을 가르친다.
p32 그런데 요즘 가정과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다. 싫은 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위험에 빠지면 112에 신고하고, 낯선 사람에게 길을 안내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주변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가르친다. 아이라고 해서 무조건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부당한 상황에 대처하라고 교육한다.
p36 아이를 주도적으로 키우려면 "밖에서는 주도적으로 살아. 하지만 엄마한테는 그러면 안 돼."라는 이중 잣대를 버려야 한다. 특히 이런 말을 자주 하는 부모는 수동적인 삶의 태도에 익숙해져 있어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아이를 벅차게 느낀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가 논리적으로 밀리거나 자신이 질 것 같으면 "이게 어디서 말대꾸야, 엄마한테!"라는 말로 상황을 종료해 버린다.
p44 인간에게는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돌봄과 보호를 받고 싶다는 의존 욕구가 존재한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강한 어른이라도 요람처럼 자신을 받아주는 누군가의 존재를 갈구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마치 고해성사처럼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주는 정서적 쉼터를 필요로 한다.
p61 양육의 최종 목적은 미성숙한 아이를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시켜 독립시키는 것이다. 통과의례처럼 지나야 하는 좋은 성적, 명문대 진학은 자립과 독립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이를 통해 부모가 바라는 성과를 내려고 하지 마라. 아이는 환승역처럼 나를 거쳐 갈 뿐 부모와 다른 종착역을 찾아갈 것이다.
p66 한 가지 예로 어린 시절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초록색 양말이나 예쁜 팬티 하나를 가져 보지 못했다. 그녀의 엄마에게는 딸이 가지고 싶어 하는 초록색 양말보다 가성비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단 100원이라도 저렴한 양말선택이 먼저였던 것이다. 결국 영희 씨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경험 자본, 취향 자본, 문화 자본이 빈약한 상태로 성장했다.
p69 사회학자 에바 일주즈는 <<감정 자본주의>>를 통해 사회계층에 따라 감정 표현 방식에 차이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교육적 관계적 문화적 물질적으로 다양한 지원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표출할 줄 알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안다고 한다.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을 경우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는 덤이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 성공한 롤 모델이 많기 때문에 아이의 꿈도 계속 확장된다.
p91 가족치료 이론을 주장한 미국의 심리학자 머레이 보웬은 가족 사이에서 이뤄지는 정서적 폭력의 대물림을 '가족 투사 과정'으로 표현했다. 가족 투사는 말 그대로 가족 구성원의 갈등을 다른 사람, 특히 구성원 가운데 최약체인 아이에게 돌리는 것을 말한다. 가족 구성원 가운데 최약체였던 민정 씨가 부모의 분노 해소용 먹잇감이 되었던 것이다.
p119 "괜찮아, 몰라서 틀린 게 아니잖아. 실수해서 틀린 거잖아. 다음에 우리 00는 잘할 수 있어." "00이가 같이 ㄱ안 놀아줘서 속상했구나. 괜찮아. 내일 같이 놀면 돼." 여기서 "괜찮아"라는 위로는 아이가 아닌 부모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속상하고 답답하고 마음이 아픈데 부모가 계속 괜찮다고 하면 아이도 어느 순간 슬픔, 분노, 서러움 등 부정적인 감정을 수면 아래에 묻어버린다. 부모가 반복적으로 거짓된 평화를 요구하니 '회피'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드는 것이다.
p165 부모가 자식이 예쁘다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유아어에 가까운 말투로 성인 자녀를 대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 세 살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불렀음직한 "아두우울"은 품 안의 자식일 때나 어울릴 법한 호칭이다. 이런 사소한 호칭 하나로도 아이의 정서적 독립은 불가능해진다.
p166 동물원에 갇힌 동물에게는 안락한 잠자리, 풍부한 먹이, 천적과 질병으로부터의 보호 등 많은 혜택이 따른다. 다만 생존을 보장받는 대신 우울증과 무기력을 얻을 뿐이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자유를 통제 받는 동물들은 먹이를 거부하고 벽에다 계속 머리를 박거나 우리 안을 빙빙 돌며 자신의 꼬리를 물어 댄다.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이상행동을 보이는데, 이를 정형행동이라고 한다.
p174 (거짓말 하는 아이) 이때 하는 아이의 거짓말은 핑계에 가깝다. 창피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다른 핑곗거리를 찾는 것이다. 이때는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아이의 수치심을 어루만지고 다독거려주는 게 먼저다.
p177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도덕적 규범이나 잣대를 가르칠 때 부모는 재판관이나 판단하는 자가 되어선 안 된다. 사람과 상황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거짓말하는 아이의 '행동'을 나무라는 것이지 '아이 자체'를 혼내는 것이 아님을 반드시 인지시켜 줄 필요가 있다.
p184 예를 들면 식물원의 그 남성이 머리 위에 새똥을 맞았을 때 깜짝 놀란 것은 1차 감정이고, 이를 "감각이 뛰어난 놈이네"라고 표현한 것은 2차 감정이다. 그는 불쾌한 감정을 재미ㅉ고 유머러스하고 즐거운 감정으로 만들어낼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감정을 부정당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읽어주는 양육자 아래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p189 태국에서는 사육사들이 새끼 코끼리의 발에 큰 사슬을 채운 뒤 나무에 몇날 며칠을 묶어 둔다고 한다. 처음 발이 묶인 코끼리는 나무를 뽑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머지않아 자신의 힘으로는 옴짝달싹 못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기력을 학습한 코끼리는 몸무게가 2톤이 넘게 자라지만 작은 말뚝에 묶어놓아도 도망치지 않는다. 아니 도망치지 못한다. 스스로를 너무 일찍 포기한 탓이다.
p196 집중력이라고 하면 흔히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 과제나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이나 역량을 떠올리는데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 자기관리 능력, 만족을 지연시키는 능력도 집중력의 한 영역이다. 아이들에게 양치하기, 방 정리하기, 과제하기, 정해진 시간에 잠자기, 시간 약속 지키기, 앞으로 일어날 일 생각하기, 계획 실행하기 등은 집중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p217 가르칠 훈과 기를 육, 즉 훈육은 아이에게 품성이나 도덕을 가르쳐 기르는 행위다. 기를 양과 기를 육, 즉 양육은 아이를 보살피고 성장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양육과 훈육은 결국 아이가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가르쳐서 바르게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이떄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감정이다. 화나거나 분노한 상태가 아닌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 다시 말해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교육하는 게 훈육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