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마리 개미
장영권 옮김, 주잉춘 그림, 저우쭝웨이 글 / 펜타그램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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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 마리 개미》를 보고 나서 우리에게 남는 인상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인 여백일 것이다. 이 책의 여백들이 가볍지 않고 깊이 있게 살아나는 것은 사진적 이미지가 주는 사실성과의 대조를 통하여 얻어진 것임은 물론이다. 이 여백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고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이 여백들이 배경을 지우고 나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흰 여백으로 표현되기 이전 배경들은, 사실은 우리 인간들의 세계다. 개미가 본다면 한없이 크고 넓기만 한 인간의 세상이다. 총 천연색의 세속적인 인간 세상. 그런데 그것은 표백되어 여백으로 책에 등장한다. 이 책의 여백의 의미는 이 표백 작용을 통하여 발생하고 우리에게 전해진다. 우리가 《나는 한 마리 개미》에서 느끼는 명상적 의미는 이 책의 표백된 여백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명상적 의미는 작은 것을 통하여 큰 의미를 깨달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이리라. _북디자이너 정병규  
   

놀러온 모 출판사 편집자 님께서 책더미에 쌓인 책을 이리저리 훑어 보더니 불쑥 묻는다. "이 책 읽어봤어요?" 그 더미에 있다면 당연히 안 읽어본 책이다. 내 관심 밖이라는 소리. 근데 좋은 책인 것 같다며 건네주신다. 사실 슬쩍 보긴 했다. 제목처럼 개미 한 마리를 설정으로 사진을 찍어 짧은 글을 실은 책. 우리나라에도 그런 종류의 책은 많았으니까, 아마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것이다. 근데 이렇게 한번 보라며 다시 건네주니 호기심이 동했다. 그것도 책을 아는 분이 추천을 해주시니. 

표지에 제목이 없다. 세네카(책꽃이에 책을 꼽았을때 보이는 부분:책등)에만 제목이 적혀 있고 위에 보다시피 하얗다. 그 하얀 곳에 보이는 검은 점 몇 개, 그게 개미다. 실물엔 노란색 띠지를 둘러 그럭저럭 봐줄 만 한데 저렇게 띠지도 없이 올려놓으니 도대체 뭔 책인지 알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디자인을 한 걸까? 

바로 북디자이너 정병규 님이 말하는 것처럼 '여백'의 미다. 

추석 연휴에 박대성 화가에 관한 프로그램을 봤다. 수묵화를 그리는 그가 그린 설경은 독특하다. 칠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냥 둔 것이다. 그게 바로 '여백'이다. 그림이라면 칠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지만 그는 하지 않았단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마 수묵화라는 특성상 가능했을 것 같다. 

이 책의 여백과 박대성 화가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 텅 빈 공간이 주는 울림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란색 띠지에 이런 글이 '개미만한' 크기로 적혀있다. 

"여기 이 개미들을 먼지 취급하듯이 아무렇게나 훅 불어 버리지는 마세요. 그들과 우리는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랍니다. 그들에게 호기심이 생긴다면 이 책을 열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이 책은 '2007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 되었다.
2008년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특별상(유네스코)'을 받았다. 

작고 보잘것없는 한 마리 개미의 좌충우돌 분투기. 인간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원제가 "개미의 잠꼬대"라고 하는데, 어쩜 그 제목이 딱 맞는 것 같다. "눈부신 햇살 아래 덩그러니 놓인 한 마리 개미는 외롭고 위태롭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막막하다. 시행착오를 반복한다."는. 개미나 인간이나... '개미족'이란 말이 여기서 나온 걸까? 짧은 문장에서 공감가는 글들이 많았다. 아쉬운 것은 그 글이 너무 구석에 있고 글자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다는 점...그래서 놓쳤다는 핑계아닌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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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나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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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지극히 평범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전부였으니까. 성적과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을 제외하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 어른이 되어 누구나처럼 결혼하고 아이 낳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사는, 동화 속 같은 삶이 지속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처럼 평탄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대학에 실패하는 순간까지였지만 그럼에도 지방 작은 도시에서의 삶은 그랬다. 주변의 친구들도 다 그만그만했으므로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아이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존재한다고 믿을 만큼 순진했었다. 그래서 아마도,   

꽃의 나라》(연재 명: 남쪽 역으로 가다) 연재가 시작되었을 때, 한창훈 작가의 시작 말에서 ‘시민사회 구성원의 덕목’이니 ‘미움의 힘’이니 하였어도 그저 단순하게 자신의 삶이 조금 투영된, 고교 시절의 이야기를 하려나보다, 했다. 고등학생의 생활이라는 게,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음직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성장소설이란 늘 그랬으니까.  

소설은 열일곱 살의 소년이 고향인 항구를 떠나 큰 도시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도시로의 진학은 가정폭력의 주범인 아버지 곁을 떠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늘 화난 얼굴로 눈치를 보게 만든 아버지, 그 아버지 곁을 떠나 큰 도시로 온 첫날, 소년은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다며 좋아한다.  

“아버지와도 그랬다. 
얻어맞을 각오를 했지만, 처음으로 내 주장을 드러낸 게 이 도시의 고등학교로 가겠다고 말한 거였다. 아버지는 가족을 보이는 곳에 두고 싶어했기에 나를 항구의 고등학교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것이 그의 통제방법이었다.
앞에만 서면 입이 얼어붙곤 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그 말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자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말이 연이어 나왔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뭐 그런 식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멀리 가야 했기에 뒤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항구의 고등학교에 관련해서 들려오는 몇몇 미덥지 못한 소문과 이 도시가 이른바 교육의 도시로 이름나 있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다. 그는 마지못해 허락을 했고 나는 보는 눈만 없다면 백 미터쯤 허공에 떠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의 해방감 이면엔 또 다른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맞은 이유라면 ‘단 하나, 멀고 낯선 곳이기 때문이다. 군대처럼’. 추첨이었지만 폭력의 횟수와 강도가 전국 3순위 안에 든다는 고등학교, 다른 곳에서 제적당한 아이들까지 모두 받아주었기에 학교에는 바보 아니면 깡패인 아이들로 바글거린다는 곳. 그 학교에서의 생활은 이미 예정된 폭력이었을 거다. 매를 들어야만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란다고 생각하는 교사에겐 어떤 이유에서든 매가 날아왔고, 학교 내 폭력조직은 그나마 대응할 수 있는 조직으로 들어가면 맞지는 않았다.  

가정폭력, 이어지는 학교와 사회폭력까지, 언뜻 느끼기엔 무거운 주제이지만 고통스러움 속에서도 유머는 늘 존재하듯이 소설 속 한창훈 작가의 위트는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칠순이 넘은 할머니의 넋두리에 낄낄거리고, 동네 건달 진구와 벙어리 여자의 묘한 관계에 호기심이 동하며, 고향 친구인 영기와 진숙의 순수한 사랑을 부러워하는 인호와 소년의 행동에 웃음이 나온다. 또 건들거리는(!) 박정화와 키스를 해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찬 소년의 엉뚱한 행동에서 열일곱 살, 소년의 생활도 여느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래, 열일곱 살 소년의 삶에 폭력의 물이 들었다고 해도 누구나 다 똑같아, 라고 생각할 무렵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참혹한 폭력이 다가왔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군인들은 뛰어내리자마자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다가오는지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먼저 회사원과 중년 남자들이 얻어맞고 나자빠졌다. 중국집 배달부는 배달통과 함께 넘어졌다. 자전거 바퀴가 허공에서 돌고 우동 국물이 쏟아졌으며 뒤이어 머리통이 깨졌고 군화에 짓밟혀 다리가 부러졌다. (…) 언니의 손을 잡고 가던 소녀가 넘어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소녀를 일으켜세우는 언니의 어깻죽지를 군인이 곤봉으로 때렸다. 언니는 소녀 위로 넘어졌고 다른 군인이 자매를 밟고 넘어갔다. (…) 한 군인이 개머리판으로 그의 뒤통수를 쳤다.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얼굴을 감싼 손에서 붉은 피가 떨어져내렸고, 그 속에 동그란 눈알이 들어 있었다.“ 

자국의 군인이 아무 죄도 없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이라면 자국의 군복을 입은 저들이 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가르쳐주는 이도 없이 시민들은 맞고 죽어야 했다. 소년은 꿈속에 들어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꿈을 드디어 꾸고 있다고.  

연재를 하는 동안 조금씩 폭력에 물들여가는 소년을 보면서도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몰랐다. 그저 학교 폭력과 연관된 이야기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2부로 넘어가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오래 전의 일이고, 그동안도 몰랐던 일은 아니었지만 인호 아버지의 말처럼 내가 경험하지 않았고 ‘죽지 않았’으니 ‘레크리에이션’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그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지. 마치 내가 살았던 시대가 아닌, 오래 전 역사를 공부 하듯 그렇게 넘기고 말았던 일이었다. 한데 이토록 생생하게 내 눈앞에 그때의 상황이 재연되면서부터 나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부터 들었다. 그리고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아니, 난 그동안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구나. 

한창훈 작가는 매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주인공처럼 우리는 가정과 사회의 폭력은 피하기도 하고 합의도 하면서 적응해나가지만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을 만나면 철저하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연합뉴스) 

꽃의 나라》는 그런 소설이다. 그때의 일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겐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전해 위로를 주고, 그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와 같은 사람에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고는, 있으라고, 말해준다.  

책을 다 읽은 후 소년이 그곳에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아니, 어차피 일어난 일이었으니 친구가 죽고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직접 보면서 받았을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살아왔을까,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국가의 폭력을 볼 때마다 소년은, 그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또 어떤 심정일까? 

오월은 꽃이 피는 계절이다. 유난히 흰 꽃들이 많이 핀다고 한다. 이제 그 꽃들을 보면 그 아름다운 봄에 피지도 못하고 쓰러져간 소년과 소녀들이 생각날 것 같다.  

"사람만이 먹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같은 종족에게 이런 상처를 남긴다. (...) "하지만 그것을 사람의 특징으로 삼는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니? 그러니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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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8-26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녔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아주 소문난 깡패학교였습니다.
선배나 동급생들의 폭력도 심했지만, 선생님들의 폭력도 장난아니었죠.
학교에서는 비교적 조용하고 모범생이었던(밖에서는 안그랬단 얘기죠! ^^)
저도 걸핏하면, 아무런 이유없이 맞곤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니,
전경들이 두들겨 패고,
군대를 가니 고참들이 두들겨패고,
사회인이 되고나니 용역깡패들이 두들겨 패고!

댓글 달면서 생각해보니 참 많이 맞고 살았네요.

readersu 2011-08-29 10:45   좋아요 0 | URL
어이구, 만만찮은 감은빛 님!
꼭 읽어보세욤!!
 
꽃의 나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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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었다. 여전히 미안한 마음. 그래, 미워할 것은 미워하며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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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8-23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창훈의 신작, 별 다섯이군요. 일단 담아갑니다.^^

readersu 2011-08-23 10:45   좋아요 0 | URL
별점을 떠나서, 다른 나라의 역사에 마음 아파하기에 앞서, 우리나라의 잊히고 있는 과거의 아픔에 대해 다들 기억해주는 것이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 아이들이나, 그 상처를 안고 살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아 책을 읽고 나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진짜, 술을 찾게 되더군요).

행운바다 2011-08-24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가슴아픈 얘기는 피해왔는데 억울하게 떨어져버린 수많은 청춘의 꽃들께 사과하는 마음으로 마주해볼까 합니다

readersu 2011-08-29 10:46   좋아요 0 | URL
네,가슴아프지만 꼭 읽어봐야 할 책이에요!
 
워킹데드 Walking Dead 1~5 세트
로버트 커크먼 지음, 장성주 옮김, 찰리 아들라드 외 그림 / 황금가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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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아포칼립스 소재의 그래픽노블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책이란다. 그래픽노블도 좋아하고 스릴과 약간의 공포도 싫어하진 않지만 좀비는, 그래 좀비는 좀 별로였다. 죽었으면 죽은 거지, 귀신의 모습도 아니고 냄새나고 살 뜯기고 내장 튀어나온 모습으로 다시 살아난 것들이 미친듯이 달려드는 이야기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으니까. 그래서 읽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마니아 층들이 꽤 있어서 호기심이 일었다. 그들이 왜 이런 이야길 좋아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나. 

경찰이었던 릭, 근무 중 총격전을 벌이다 다쳐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가 깨어났을 때 병원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밖은 마치 폐허가 된 도시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던 릭은 간신히 집에 도착하고 옆집에 숨어살던 모건 부자를 통해 자신이 혼수상태였을 때 좀비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아내와 아이를 찾아 떠난다. 

사실 끔찍할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랐다. 징그러운 좀비들의 모습을 어찌 보나 싶었는데 만화 속 좀비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영상으로 보는 것과 뇌가 없는, 몸뚱이만 살아 움직이는 자들이기에 똑똑한 인간들이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물론 처음엔 당하고 죽고 힘들어하고 끔찍했다. 하지만 누구나 적응을 하기 마련이고 처음엔 헉,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끔찍한 몰골을 가지고 놀게 된다. 좀비는 그저 그림일 뿐이고 죽은 자들일 뿐이었다. 더구나 뒤로 갈수록 좀비들은 배경화면이 되고 만다. 그들은 아무 짓도 못한다. 자기들과 다른 존재가 옆에 있으면 먹어치우는 것뿐이다. 그러니 그들만 피하면 인간은 두려울 게 없는 거다. 그래서 이 만화는 좀비를 소재로 만든 것이긴 하지만 결국엔 인간의 이야기다. 살아 있는 인간. 하지만 죽은 자들보다 못한 악한 존재들. 

도대체 작가는 뭘 보여주기 위해 이런 만화를 그린 걸까? 

책 속에서 인간들은 좀비를 피해 다니면서 끊임없이 논쟁을 하고 싸우고 심지어는 죽인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은 권력을 누리며 지배하고 싶어한다. 그게 안 되면 좀비보다 더한 짓도 서슴치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좀비가 무서운 게 아니라 인간이 훨씬 더 무서운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특히 5권에 나오는 집단의 권력자(!)가 행하는 짓은 끔찍했다. 사람들은 그가 못마땅하면서도 그가 있음으로 해서 안전해지고 질서가 잡힌다는 것에 동의하고 살아간다. 나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랄까. 하지만 그의 본성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지금의 삶은 재미일 뿐이다. 모두 힘을 합쳐 좀비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솔직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6권이 아직 안 나와 내가 못 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긴장감과 공포가 적절히 섞여 몰입하게 만들었고 그다음이 궁금해지게 만든다. 

이미 미드로 공개가 된 드라마가 있고 10월엔 시즌2가 나온단다. 만화보다는 훨씬 끔찍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만화였기에 봤지. 드라마로는 절대로 못 볼 것 같다. 그리고 끝내 좀비 이야기를 왜 좋아하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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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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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조대리의 트렁크』다. 한동안 한국 문학을 읽지 않다가 그즈음 달라진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서부터였다. 생긴 것하곤 다르게(이 말은 백가흠 작가의 작품을 추천해주던 동료작가의 말 : 그때 그의 모습은 정말 참한 ‘도련님’ 같은 모습이었다.) 엽기적인 내용을 다룬 소설집이 나왔다며, 꼭 읽어보라고 소개해주었기에 ‘엽기적? 오우, 정말? 기대가 되는 걸!’ 운운하며 꼭 읽어보리라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읽고서는 너무나 놀라워서(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단 말인가!) 백가흠 작가의 정체가 뭘까? 소설가인가, 기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대단한 상상력의 소유자? 궁금해 하기도 했다. 한데 읽고 나니 그의 첫 책도 궁금해졌다.  

불편하고 찝찝한 마음을 안고 첫 작품인 『귀뚜라미가 온다』를 읽었다(퇴근 후 저녁을 먹고 책을 읽으면서 연방 입으론 욕(!)을 해대고-.-;; 읽다가 한숨 한번 쉬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 그러고선 다 읽은 후 책을 확, 집어던졌더랬다(책이 뭐 잘못했다고;).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중얼거리며. 그니까 『조대리의 트렁크』는 이 책에 비하면 약했다, 고 생각한다. 『귀뚜라미가 온다』에 나오는 광폭한 남자들, 그들이 말하는 사랑, 정말이지 세상에 그런 사랑만 존재한다면 사랑 따윈 모르고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읽은 후엔 백가흠 작가가 더, 정말 궁금해지고 말았다. 도대체 이 작가는 어디서 이런 소재를 가져와 소설을 쓰는 걸까, 소설가는 어느 정도 자신의 경험이 들어 있는 소설을 쓴다는데 설마?=.=  

4년여 만에 나온 소설집이란다. 장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 번째 소설집이라 적이 실망을 하려고 했지만 기다리던 작가의 새 책이 나온 것만이라도 어딘가 싶어 바로 구매를 했다. 출판사의 책 소개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지레 겁을 먹었고, 전작들을 떠올리며 불쾌해질 기분과 읽고 나면 또 나는 얼마나 이 세상의 삶들에 대해 놀라워하고 무서워하며 두려워할까, 단단히 마음을 먹고 책을 펼쳤더랬다. 한데, 어랏! 뭐지? 이것 백가흠 작가의 소설 맞아?  

그랬다. 조금 변한 것 같다. 내가 두려워하던 그의 소설이 아니었다. 전작들에 비하면 아주 ‘착한’ 사람들이 나왔다. 『귀뚜라미가 온다』에서 보여주었던 광기에 사로잡힌 남성들의 폭력이나 『조대리의 트렁크』에 나오던 정상적이지 않던 사람들이 『힌트는 도련님』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번 책에서 그는 두 권의 책으로 만든 ‘백가흠 표’ 이야기에서 벗어나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고민한 흔적을 많이 보여준다. 그래서 처음엔 낯설었다. 왜 이러지? 이건 백가흠 작가의 글이 아니잖아. 갑자기 멋진 작가가 되기로 한 거야? 헷갈릴 무렵 들려준 그의 변명 아닌 진심. 힌트는 도련님이었다. 

“소설 마감을 못하겠어. 뭐 쓸 만한 얘깃거리 없나? 나 완전 똥줄이 탄다. 지금. 
만날 하던 거. 그냥 하지 그려. 너 잘하는 거 있잖여. 
뭐? 내가 잘하는 거 뭐? 
나는 다급하게 그를 재촉한다. 잊고 있었던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몇 죽여. 그냥.“ 

그렇다고 그가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소외된 삶, 기구한 인간,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사건들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 더 작가다운 면모를 보이며 인간의 삶과 죽음, 사회적 이슈에 대해 들려준다.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인 원덕 씨의 비참한 삶과 죽음, 그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통(痛 )」,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베트남 처녀를 결국 죽음으로 이끈 늙은 농촌 총각 형제의 지저분한 타협과 어이없는 결론을 보여준 충격적인 이야기 「쁘이거나 쯔이거나 (전작의 느낌을 제일 많이 가지게 했던 단편), 불우한 가정사로 인해 존재의 소멸이 되어 버린 인물들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와 「그런, 근원」이 그러하다. 

그 중에서 고엽제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통(痛 )」은 그동안 백가흠 작가가 보여주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윤리, 폭력, 생존을 모두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사라진 아버지, 그 비극적인 유전을 피해 월남전에 참전하지만 고엽제의 피해로 인해 그가 받을 정신적 고통은 가려움으로 인해 20여 년간 겪어야 했던 육체적 고통과 함께 고엽제 피해자로서 이용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폭력까지 보여준다. 또한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해 그가 겪는 환각 속에서 떠올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과거의 여러 순간은 어느 누구도 그를 고통 속의 삶으로 내 보내지 않았으나 결국은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한 개인의 비참한 인생사를 보여준다.  

벌써 등단 10년째라는 작가. 전작에서 보여준 그의 작품들이 너무나 강렬하여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작품만 써낼 수는 없을 텐데,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백가흠 작가의 변화가 사실은 놀랍다. 그래서 등단 10년치고는 적은 수의 작품이지만 초기의 치기어린 광폭한 문장들과 이야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글쓰기로 도전하는 작가의 또 다른 문체의 색깔이 반갑기도 하다. 그래서 곧 나올지도 모를 장편을 기대해본다. 그 작품에선 그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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