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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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온라인 서점에서 하두 곰스크, 곰스크하기에 책이 보이자마자 읽어봤다. 그동안 책소개도 읽지 않았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은 것. 오래된 소설이라는데, 읽다 보니 그래, 어디선가 읽은 듯도 하고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아니,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다면 여자든 남자든 많은 생각을 주는 소설이었다. 
삶을 살면서 안정, 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은 아마 세상에서 제일 이겨내기 힘든 유혹적인 단어일 것이다. 꿈이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그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안정적인 삶이 주는 혜택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굴복하고 말 테니까.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삶을 되돌아보면 그동안 살아온 삶에서 나름 곰스크로 향하기 위해 무던 애를 썼던 것 같기도 하다. 좌절했던가? 난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원한다면 나는 하고 말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항상 잘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원하는대로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그것에 대한 미련으로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난 그동안 잘 살아온 것? 한데 사실은 잘 모르겠다. 현재 만족하지 않은 상황에선 항상 그때 이 길이 아니고 저 길로 갔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니까. 그게 삶이든 사랑이든 가보지 않은, 행하지 않은 것엔 누구나 미련을 두게 마련이니까. 언젠가 내 삶에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 얘길 들었다. 생각해보니 결혼이라는 걸 하지 않았으니 내겐 집을 떠나고 십여 년 해오던 일을 그만둔 것이 두 번의 기회였다. 그렇다면 한 번의 기회가 남은 것인가? 하긴 지난해부터 자꾸만 발동이 걸리고 있다. 현재의 내 삶이 안정적이지 못한 탓이다. 

이 책에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보다 두 번째 단편 「배는 북서쪽으로」를 읽으며 더 공감이 갔는데 그 이윤 나도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도대체 난 어디로 가기 위해 지금 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항상 지금, 바로 이 순간, 만을 위해 사는 삶이야말로 제일 행복하다고 믿었는데 불쑥,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지고 말았다.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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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마을산책 - 당신이 몰랐던 유럽의 숨은 보석들
권기왕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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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도시에서 자란 터라 어릴 때 꼭 가고 싶은 곳을 말하라 하면 늘 대도시였다. 도시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두 시간 남짓, 그 시간마저도 몇 발자국 가지 못해 만나게 되는 얼굴들과 인사 나누며 걸리는 시간을 포함할 만큼 작은 도시. 아마 그래서 다 자라 큰 도시로 나갈 때까지도 내 로망은 대도시 뉴욕으로의 여행이었던 것. 하지만 역시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변화무쌍. 나이 탓인지 언젠가부터 고즈넉하고 조용하고 뭔가 운치 있어 보이는 곳들이 점점 좋아졌다. 그건 아마도 내가, 지금, 대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나의 로망이었던 뉴욕에 갈 기회가 없어 가보지 못한 탓에 지금도 뉴욕이 마음 한 구석엔 자리잡고 있지만 그래, 언젠가부터 기회가 된다면 유럽 여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후다닥 다녀오는 그런 여행 말고 천천히 둘러보며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하려다보니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유럽 마을 산책』, 부제가 '당신이 몰랐던 유럽의 숨은 보석들'이다. 이 책을 처음 보는 순간, 앗! 그래 바로 이거야! 혼자 외쳤다. 왜? 첫째는 제목이었다. 유럽의 '마을', 유럽의 '도시'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것. 그리고 펼쳤을 때 보이던 사진 속의 유럽, 마을의 풍경이 내 눈을 반짝거리게 했다. 익숙한 듯 생소한 듯한 지명들이 호기심도 불러일으켰다. 안 그래도 스위스에 가겠다고, 가고야말 것이라고 매일매일 사진 들여다보고 있는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 그 풍경들과 그다지 다르진 않지만 어쩐지 고풍스러워보이는 사진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라고 괜히 중얼거리기도 했다. 

원래 여행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하두 다양하게 많이 나오는 여행책들이 많아서 무작정 읽어대던 것에서 벗어나 나름 골라가며 읽고 있는 편이다. 어떤 여행책은 저자의 에세이가 맘에 들었고 또 다른 여행책은 사진이 맘에 들기도 했고 여행지의 정보나 주제가 맘에 들어 읽기도 했다. 한데 이 책은 세 가지가 다 맘에 들었다.  

우선 마을 하나에 대한 짧은 단상과도 같은 이야기들. 살짝 허술해보이기도 뭔가 짜맞춘 듯해보이기도 하지만 그 길이가 길지 않아 이해하고 넘어가기 좋았다. 또 고르고 골라 찾은 마을이겠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그 아름다운 풍광들이라니!! 유럽은 역시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마을들이 너무 많다(저자에 의하면 그게 도시 계획을 세울 때 구도시와 신도시를 나눠 계획했기 때문이란다. 구도시에 세워졌던 오래된 건물을 훼손시키지 않는 방법이기에. 우선 부수고 다시 만드는 일에만 급급한 우리나라의 건축 계획과는 아주 판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자가 들려주는 그 마을의 산책길이나 가는 길에 대한 짧은 정보는 남발하여 머릿속을 복잡하게도 하지 않았고, 딱 좋았다. 그 중 내 마음에 들어온 프랑스의 마을 한 곳,  

<코르드 쉬르 시엘>이라는 곳이다. 지중해와 가까워 기후도 좋고 옛모습도 많이 간직한 곳이란다. "고르드 쉬르 시엘'은 그 독특한 모습으로 먼저 나를 감동시켰다. 넓은 평야에 자리 잡은 마을에는 조그만 원추형 산이 홀로 솟아 있고, 그곳에는 오래된 집들이 언덕을 타고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마치 연두색 풀밭에 소복이 쌓아 올린 봉긋한 조약돌 더미와 같다고나 할까."   

프랑스어를 잘 모르지만 그 언어가 주는 아름다움이랄까, 콧소리가 섞인 듯한 말은 듣다 보면 굉장히 아름답게 들린다. 그걸 뒤늦게 깨달아 프랑스어 공부할 시기를 놓쳤지만(지금 해보려고 했으나 시간이 없다.ㅋ) 아무튼 프랑스어를 듣는 것은 내용도 모르면서 팝송을 흥얼거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저자가 말했듯이 '코르드 쉬르 시엘'이라고 말로 내뱉고 보니 꽤나 낭만적으로 들렸는데 그 뜻을 알고 나니 더욱 그랬다. '쉬르 시엘', 하늘 위에 라는 뜻을 가진, 그만큼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코르드>에 주민들이 '쉬르 시엘'이라는 말을 붙여 지금의 <코르드 쉬르 시엘>이 된 것이라 한다. 한데 더욱 맘에 든 것은 20세기 이후 이곳으로 여행왔던 예술가와 문인들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아예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더 예쁘게 단장되었다는 거다. 그 문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카뮈다. 

얼마 전에 프로방스에 관한 책을 읽은 터라 카뮈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혹,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았다면 카뮈가 <코르드 쉬르 시엘>을 방문하고는 세상에서 동떨어진 외딴 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 말이라는 "코르드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슬픔마저도……."라는 문장 때문일지도.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곳은 많다. 우리나라의 마을마을도 찾아다니다 보면 '이런 곳이 있었단 말야?' 하고 놀라게 되는데, 이 세상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 많을 것인가. 비록 그곳을 직접 가보진 못하고 이렇게 다녀온 사람의 글과 사진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지만 그런들 어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그게 나만의 여행법인 거지.  

『유럽 마을 산책』덕분에 난 유럽의 마을 몇 군데를 또 내 여행 로망의 장소로 찜해두었다. 과연 이렇게 매번 찜만 하고 가기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 닫혀 있는 문을 열어 한발자국 내밀기만 하면 갈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그러므로 가야할 곳은 언제나 찜찜찜할 것.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떤 곳을 원하는지 모르고 인생의 여행을 한다. 욕망과 후회 속에서 얽히고 방황하면서…….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동안 끊임없이 찾던 곳에 도착하였음을 깨닫게 된다. 여름날, 코르드의 어느 창가에서 여행자는 더 이상 길을 떠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코르드의 아름다움에 잠긴 여행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과 외로움에서 자유로워진다.  _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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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마이 로마이 1 테르마이 로마이 1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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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 시공간을 초월하여 초자연적으로 여행하고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거나 미래를 여행하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미래의 물건을 과거로 가지고 와서 겪게 되는 헤프닝이나 과거의 사람이 미래로 가서 겪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을 은근 좋아하는데 이 책『테르마이 로마이』가 그렇다. 타임슬립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루시우스가 로마와 일본을 오간다. 어떻게? 

목욕탕(테르마이) 설계기사 루시우스는 이미 백 년 전에 유행했던 테르마이 설계나 하는 고루한 설계기사라는 평을 받으며 직장에서 쫓겨난다. 낙심하여 길을 가던 그에게 친구가 로마에는 넘쳐나는 게 건축사무소라며 목욕이나 가자고 권한다. 그렇게 찾아간 로마의 목욕탕(만화로 보니 현재의 목욕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로마인들은 목욕을 하기 전에 열심히 운동을 해서 땀을 낸다.), 탕 속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 탕 밑의 흡인력 강한 배수구에 빨려들어 간다. 그리고 그가 다시 본 세상은 현재의 일본 어느 목욕탕. 이런! 

타임슬립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지금부터이다. 시간의 차이가 워낙 많이 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생소하다. 신기하고 놀랍다. 루시우스 역시 그랬다. 목욕탕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른다. 기껏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로마시대이고, 그 시대엔 계급이 있었으니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고 노예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니 당연히 노예들이 사용하는 목욕탕엔 올 일이 없었고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들을 볼 일도 없었으나... 이상했다. 노예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이 너무 신기했기 때문이다. 노예들은(평안족이라 생각함) 그들만의 문화가 있었는데 루시우스가 보기엔 너무나 발달된 문명의 것이었다. 이 사실을 얼른 친구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알몸으로 나가다가 본 바깥 세상은 오 마이 갓! 

정신이 아찔해진 루시우스에게 착한 평안족 사람들은 정신이 들거라며 소젖에 과일즙이 들어간 차갑고 맛있는, 천국의 맛과 같은 음료수를 권한다. 그걸 마신 후 달콤하고 꿈처럼 아늑한 기분에 젖은 루시우스, 눈을 떠보니 이곳은 다시 로마의 테르마이! 그럼 그건 꿈이었나? 

자, 로마로 다시 돌아온 목욕탕 설계기사 루시우스의 활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평안족의 디자인을 훔쳤든 어쨌든 로마인들은 모르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먼저 만들어내는 사람이 장땡?! 루시우스는 그가 경험한, 아니 꿈에서 본 것들이라고 하고픈 신기한 것들을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낸다. 당연히 대박! 

만화를 보는 내내 참 기발하다 싶었다. 2010년 만화대상과 제14회 데즈카오사무문화상 단편상, 두 상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 만화가의 상상력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싶었다(알고 보니 이 만화가는 여자!). 또한 상상력 못지않게 작가가 던져주는 메시지(나만 받은 걸까? 너무 깊이 들어간 것 같긴 하지만^^;;)가 와 닿았는데, 고대 로마에서든 현재 일본에서든 참신한 아이디어, 새로운 디자인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경쟁 사회라는 사실이다. '누구든' 이 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든' 새로운 뭔가를 내놔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배수구로 빨려들어 가는 일이 생길 지라도! 

간만에 재미있게 본 만화. 다음 작품 완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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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 문학동네 시집 71
김용택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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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 우연히 너를 만났다.
네가 들고 있던 두 권의 책 사이로 너덜너덜해진 시집이 한 권 눈에 들어왔다.
어떤 시가 들어 있을까, 궁금해 펼쳤다.
<매화>라는 시가 보였다.
때는 봄, 따뜻한 햇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맘이 간절하던 시간.

매화꽃이 피면/그대 오신다고 하기에/매화더러 피지 마라고 했어요/그냥, 지금처럼/피우려고만 하라구요

핫, 이런!
페이지를 넘겼다.

내 안/어느 곳에/그토록 뜨겁고 찬란한 불덩이가 숨어 있었던가요/한 생을 피우지 못하고 캄캄하던 내 꽃봉오리/꽃잎 한 장까지 화알짝 다 피워졌답니다/그 밤/그곳/그대/앞에서 <만화방창>

봄이 시집 속에 들어 있었다.
대뜸 너에게 말했다. 이 시집 나 줘라.
네가 말했지. 어디 시를 한번 읽어 봐!
못할까봐? 읽어주었다. 그리고 시집은 내 것이 되었다.
앞 장엔 "드림"이라는 오래된 도장이 박혀 있었다.

그대랑 나랑 단풍 물든 고운 단풍나무 아래 앉아 놀다가 한줄기 바람에 날려 흐르는 물에 떨어져 멀리멀리 흘러가버리든가 그대랑 나랑 단풍 물든 고운 단풍나무 아래 오래오래 앉아 놀다가 산에 잎 다 지고 나면 늦가을 햇살 받아 바삭바삭 바스라지든가/그도 저도 아니면/우리 둘이 똑같이 물들어/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버리든가  <환장>

퇴근길,
봄이 왔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괜히 속상한 맘.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는데… 그럼에도 서러움이 울컥.
허나 그것도 잠시, 시집을 펼치니 모든 게 잊힌다.

잎이 필 때 사랑했네/바람 불 때 사랑했네/물들 때 사랑했네/빈 가지, 언 손으로/사랑을 찾아/추운 허공을 헤맸네/내가 죽을 때까지/강가에 나무, 그래서 당신 <그래서 당신>

잊히긴 하는데… 짧은 시들이 자꾸만 내 맘을 콕콕 찔렀다.
내가, 지금, 왜, 갑자기, 이 시들에게 맘을 찔리고 있는 거지?
의문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콕콕.
마치 아프라고 일부러 그러는 듯이 콕콕.

바람이 불면/내 가슴속에서는 풀피리 소리가 납니다  <그리움>

그리움 때문?! 그렇다면,
속절없이 찔릴 수밖에.

그래, 알았어/그래, 그럴게/나도...... 응/그래  <달>

결국 눈앞이 흐릿흐릿,
에잇, 뭐 이딴 시가 다 있어 하면서도 시집을 덮을 수가 없었다.
버스는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과거를 달리고 있었다.

봄비 오는 날 뭐 한다요/책을 보다 밖을 보면 비가 오고/비에 마음을 빼앗겨/넋을 놓고/비를 보다/비 따라가던/마음이 문득 돌아오면 다시 책을 봅니다/그러다가 내 마음 나도 모르게 움직여 도로 그리 간답니다/시방 뭐 하시는지요/나는 오늘 혼자 놉니다/비를 보며, 때로 바람 다라 심란하게 흩날리는 비를 보며/혼자 놉니다/선암사 홍매가 피어나는지/선암사 홍매가 피는지/선암사 홍매가 피어버렸는지/자꾸 선암사 홍매가 궁금합니다/이끼 낀 가지 끝에 붉은 이슬처럼 맺힌/홍매를 생각하며/빗방울을 따라가다보면 빗방울들이 땅에/툭툭 떨어져 부서지며 튀어오릅니다/산이 적막하고/나도 적막하고/물이 고요하고/나도 고요합니다/고요한 마음에 피는 선암사 홍맷빛이 내 마음에 물결처럼/일어납니다/일었답니다/내 마음이 자꾸 그리 갑니다/가는 마음 붙잡아 되돌려 앉혀놓아도/마음은 자꾸 그리 달아납니다/그립고 보고 싶습니다/선암사 홍매는 한 잎 두 잎 꺼져도/내 마음에 일어난 그리운 꽃빛은 언제나 꺼질지/나는 모른답니다/나도 모른답니다 <편지>

모든 지나가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혼자 기억하고 돌아본다고 해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다시 한 번 깨닫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 그러니
서러워할 필요도, 눈물 흘릴 이유도, 가슴 아플 까닭은 더더욱 없.다.

봄은
그렇게
지나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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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조짐 패러독스 7
보이지 않는 위원회 지음, 성귀수 옮김 / 여름언덕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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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느라(-.-) 정치니 사회니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내가 띠지 문구에서부터 '반란의 조짐'이 보이는 책을 한 권 읽었다. 그 띠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책은 테러리즘의 매뉴얼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위험하다면 위험한 문구를 이렇게 적은 걸까, 싶은 맘이 들었고 책을 가지고 있던 분이 어찌나 리얼하게 설명을 해주시는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첫 장을 넘기면 이 책에 대하여 프랑스 르몽드 지가 논평한 문구가 나온다. "권력이 이토록 두려워하는 책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권력이 두려워하는 책이라니. 이 말은 2008년 11월 11일 프랑스 중부 타르낙의 산골 마을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논평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그 마을 주민 20여명을 연행하고 그중 9명을 '테러 계획과 연관된 범죄조직'이자 최근 철도 사보타주의 범인으로 지목했는데 그들의 대부분이 파리의 중산층 출신으로 부족함 없이 성장하고 대학원 이상의 교육을 받은 27~34세의 젊은이였다고 한다. 프랑스 내무장관은 이 9명이 '극좌 아나키스트 자치 조직'이자 '반란의 조짐'의 저자인 '보이지 않는 위원회'라고 발표했고, '반란의 조짐'은 '테러리즘의 매뉴얼'이라고 주장했단다. 그러나 2009년 3월에 핵심의 우두머리로 지목당한 쥘리안 쿠파를 마지막으로 테러리스트로 단죄할 증거가 없어 모두 풀려났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이 모든 수사와 조사는 결국 '반란의 조짐'이라는 문건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난다. 그 '반란의 조짐'이라는 문건이 바로 이 책인 거다. 

사실 위와 같은 내용을 읽으면서부터 이미 나는 이 책에 빠져들었다. 마치 추리 소설을 읽듯이 도대체 그 문건이 무엇이기에, 만약 그들이 테러리스트라면 왜? 하는 의문과 미국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아마존에 베스트셀러로 오를 정도라고 해서 더 궁금해진 것. 과연, 서문에서부터 내 흥미를 끌었다. 이런 내용으로 시작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탈출구가 없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현재 상황은 어떻게든 희망을 품고 싶어 하는 자들이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박탈해버린다. 해결책을 보유하고 있다 주장하는 자들은 조만간 환멸에 부닥치고 만다. 모든 것이 보다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는 것은, 지극히 멀쩡한 겉모습과는 달리 원조 펑크족의 의식 수준으로까지 치달은 이 시대의 금언金言이다."  

프랑스에서 나온 책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우리의 현재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읽을수록 공감의 고개만 끄덕끄덕.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서문 말미에 책을 쓴 이들은 그저 당대에 흔히 나도는 이야기들, 술집 테이블에서 주절대는 잡담들, 침실 문 너머로 새어나가는 수근거림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며 현 상황이 혁명으로 귀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읽어보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사실!   

역자는 이 책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제1부에서 보여주는 일곱 개의 동심원 구조가 그 자체로 21세기의 지옥도를 시각화했다고 한다. 사실, 그 일곱 개의 주제는 현세를 살아가는 어느 누가 읽어도 공감을 끌어낸다. 마음으로는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이지만 입밖으로 내지 못하고, 그런 상황임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이 세상과 타협하고 사회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들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도 꿰뚫어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노동과 환경, 경제, 도시화와 문명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위원회'의 저자들이 풀어 놓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지금, 당장,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바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너무나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그만큼 그들의 논리는 꼼꼼하고 탁월했다. 그래서 처음엔 당황스럽다가 나중에 가서는 왠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하지만, 

제1부에서 그들이 보여준 상황들에 공감을 하면서 마치 지금 당장 반란의 무리에 들어갈 것처럼 흥분을 하고서도 드디어 반란을 해야하는 제2부에 들어가서는 사실 그 격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진짜, 테러리즘의 매뉴얼이었던 것. 

"모든 패거리 문화는 오로지 자신의 보잘것없는 안위를 보존하는 것만이 관심사이기에 반혁명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단체들에 아무것도 기대지 말라" "누구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모든 과격한 파업이 코뮌이다. 지극히 간명한 근거를 내세우며 무단 점거된 모든 건물이 코뮌"이라며 코뮌을 구성하라 말하다. 또 코뮌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하나 그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어야 하는 돈이 아니라 '검은 돈'이라고 말한다. 검은 돈을 가지기 위한 방법으로는 온갖  암거래, 위조 분만을 통해 탈취한 국가 보조금, 이곳저곳에서 끌어 모은 학자금 등등 탈취하고 경작하고 제조하며 훈련하고 터득하라고 가르친다.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익명성을 통해 공격 자세를 취하라고 한다. 또한 평화적 봉기는 존재하지 않으며 무기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만 그걸 사용할 필요가 없게끔 최선을 다하라고는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닌 걸 알면서도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그런 약한 마음을 위해 앞서 저자들은 그토록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배경들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역시 난 테러리스트가 되기는 힘들겠구나, 내가 그동안 이 사회에 너무 많이 길들여지고 말았구나, 싶은. 하지만 이 책은 테러리즘의 매뉴얼이든 권력이 무서워하는 책이든 간에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표적 우익 논객 가운데 한 명인 글렌 벡Glenn Beck은 <폭스 뉴스>에 출연해 “내가 읽어본 가장 사악한evil 책이다. 하지만 피하지 말고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고 대비할 수 있다.”고 거듭해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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