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위로할 것 - 180 Days in Snow Lands
김동영 지음 / 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자 여행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혼자서 여행을 가지 못한 내가 젤 부러우면서도 겁나는 것은 바로 혼자 하는 여행이다. 가까운 사찰 정도야 혼자서 잘 다니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말 한마디 편하게 나눌 수 없는 곳에 혼자 간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다. 혼자 있는 것 좋아하고, 혼자 식당에 가서 밥도 잘 사먹고, 혼자 쇼핑도 잘하고, 혼자 산책도 즐기며 혼자서 하는 모든 일은 정말이지 못하는 게 없는데, 단 하나 여행 하는 것을 혼자서는 죽어도 못하니 혼자 떠나는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생선 김동영이 혼자 미국 동서를 횡단한 후 낸 책을 읽으면서도 대단하다 대단하다 했는데 이번엔 세상의 끝, 얼음나라 아이슬란드를 혼자서, 장장 180여일 동안이나 다녀왔단다.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 부럽기는 또 왜 그리 부러운지.  

그동안 수많은 여행 책이 봇물 쏟아지듯 나왔으나 아이슬란드에 관한 여행책은 드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여행책도 기껏 작년에 화보 촬영하듯 다녀와 책을 펴낸 최강희 책이 유일하다. 그 책에서 봤던 아이슬란드의 첫 인상은 황량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그런 곳이었다. 살짝 맛만 보여주듯 아이슬란드를 보여준 그녀의 책은 좋았으나 그래서 많이 아쉬웠는데 그 아쉬움을 생선 작가가 달래준 셈이다.   

내가 아는 아이슬란드는 어린 시절 지도책을 펼치고 동생들이랑 세계에 있는 나라들을 찾는 놀이에서 저 북쪽, 사람이 살 것 같지도 않은 하얀색의 섬이었을 뿐이다. 그곳은 남극이나 북극만큼 내겐 먼 나라였고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는 상상도 못하던 때라, 늘 그런 줄 알았다. 알래스카를 누군가 다녀왔다고 했을 때도 그런 곳에 사람이 산단 말인가, 생각했을 정도이니 아이슬란드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화성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얘기만큼 놀라운 일인 셈이다. 그런 곳이었다. 내게, 아이슬란드는. 한데 생선 작가가 그곳을 다녀와 그곳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하얀색의 섬에도 우리와 똑같이 생기고 우리와 다름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우연도, 인연도, 사람사는 곳이라면 있을 법한 모든 경험들을 하면서 살고 있었던 것.   

인포메이션에서 일하는 사라, 매일 찾아와 귀찮게(!) 하는 생선에게 마침내 짜증을 내다가 친해져 생선의 첫 번째 아이슬란드 친구가 되었고, 사람들이 볼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조합으로 도대체 어떻게 만난 사이인지를 물어보게 했던 '덩치 크고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자란 체코인과 키가 크고 말총머리를 하고 떠버리 같은 인상을 주는 이탈리아인' 에디, 트로스카는 생선에게 피쉬라 부르며 새로운 아이슬란드 용 이름을 같이 지어 부른 친구들이었다. 또 다시 찾은 아이슬란드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마린 박물관의 도저히 발음할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소녀, 자신이 2대에 걸쳐 만든 화산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아이슬란드의 영화관에서 만난 할아버지, 두 달동안 거의 매일 찾아가 죽치고 있어도 아무 말도 않았던 카페 바바루의 글렌과 데이빗 그리고 안나, 먹어야 하는 약이 떨어져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화산 폭발로 겨우 도착한 약을 찾지 못해 거의 죽어가다시피 할 때, 100% 편법으로 그를 도와준 도로와 그의 엄마 등등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여행자인 생선에겐 평범함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혼자서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아는 이 한 사람 없는 그곳에서 적응하며 친구를 사귀고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누구나 할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누구는 도저히 견뎌내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 생선 작가는 아이슬란드 사람들 이야기 외에 생선,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넣었다. 몽유병인 그가 자다가 일어나 과자나 음식을 먹고 다시 잠든다거나, 검은 물(!)을 좋아하는 100살 넘은 할머니에 얽힌 사연, 지금 많이 아프신 엄마(부디 쾌차하시길!) 이야기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절들의 이야기 등등 처음, 미국 동서를 횡단할 때는 눈물도 많아 울기도 많이 했지만 이젠 절대로 울지는 않는다며 스스로 자랐다고 생각하는 생선. 그러고 보면 그에겐 아이슬란드 여행이 불안한 마음의 치유 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는 나만 위로할 것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만 위로할 것, 맞아! 세상에 많은 위로 중에 제일 많이 위로해야 할 일은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일테니까.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아이슬란드의 이야기가 아니라 핀란드 여행에서의 이야기였다. 비수기의 핀란드 여행에서 마리라는 프랑스 부인이 깨닫게 해 준 여행의 의미와 엄마 치맛자락처럼 휘날리는 오로라를 볼 수 있었던 일, 가수 오지은의 소개로 찾아간 침묵의 호스텔, 비사투파에서 보낸 날들, 수억 개의 반짝이는 별들의 풍경을 보느라 뒷목이 저릴 때까지 올려다 보며 보낸 10여일, 언젠가 자신의 아들과 함께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하는 부분에선 정말, 그곳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곳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꼭 하루라도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요즘 이러저런 일들이 많아 나 스스로에게 힘을 많이 주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은 나, 하나 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그런 찰나에, 나만 위로할 수 있는 생선의 책을 만났다. 어찌나 반가웠는지!!! 이기적이거나 말거나, 일단은 내가 힘드니 나만 위로하자. 내 마음의 모든 불안이 사라지고 나서야 어쩌면 너의 마음도,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위로할 수 있을 테니까.   

나만 위로할 것,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언젠가는 꼭, 그것도 혼자서 그곳에 갈 것이다. 그땐 어쩌면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해져 있을 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카페 바바루에 가서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생선의 미국 횡단 책을 꺼내 읽을 지도 모르고, 레이캬비크에 있는 음반 가게 12 Tonar에서 서비스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시간을 자근자근 죽일 지도 모르고, 올라스빅 어업 박물관에 가서 엉터리 발음으로 또 다른 소녀의 이름을 부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행복한 여행이 될 것이라는 것. 그곳에서 나도 생선처럼 어른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결코 꺼지지 않는 불씨가 여기 있나니!!!) 더 더 더 많은 걸 쓰고 찍어도 언제나 부족할 생선, 한 마리 봄날의 나비로 다시 날아다니는 걸 언제나 늘, 지켜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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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10-10-15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멋진 리뷰예요^^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감정이, 리뷰를 읽는 동안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느낌!!
아~~ 정말 떠나고 싶습니다!!

readersu 2010-10-15 17:32   좋아요 0 | URL
움, 과한 칭찬을;;;
어째 누군지 알 것 같은 -.-;;
어쨌든 감사^^

웃는식 2017-09-2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울만한 엄청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