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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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조대리의 트렁크』다. 한동안 한국 문학을 읽지 않다가 그즈음 달라진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서부터였다. 생긴 것하곤 다르게(이 말은 백가흠 작가의 작품을 추천해주던 동료작가의 말 : 그때 그의 모습은 정말 참한 ‘도련님’ 같은 모습이었다.) 엽기적인 내용을 다룬 소설집이 나왔다며, 꼭 읽어보라고 소개해주었기에 ‘엽기적? 오우, 정말? 기대가 되는 걸!’ 운운하며 꼭 읽어보리라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읽고서는 너무나 놀라워서(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단 말인가!) 백가흠 작가의 정체가 뭘까? 소설가인가, 기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대단한 상상력의 소유자? 궁금해 하기도 했다. 한데 읽고 나니 그의 첫 책도 궁금해졌다.  

불편하고 찝찝한 마음을 안고 첫 작품인 『귀뚜라미가 온다』를 읽었다(퇴근 후 저녁을 먹고 책을 읽으면서 연방 입으론 욕(!)을 해대고-.-;; 읽다가 한숨 한번 쉬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 그러고선 다 읽은 후 책을 확, 집어던졌더랬다(책이 뭐 잘못했다고;).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중얼거리며. 그니까 『조대리의 트렁크』는 이 책에 비하면 약했다, 고 생각한다. 『귀뚜라미가 온다』에 나오는 광폭한 남자들, 그들이 말하는 사랑, 정말이지 세상에 그런 사랑만 존재한다면 사랑 따윈 모르고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읽은 후엔 백가흠 작가가 더, 정말 궁금해지고 말았다. 도대체 이 작가는 어디서 이런 소재를 가져와 소설을 쓰는 걸까, 소설가는 어느 정도 자신의 경험이 들어 있는 소설을 쓴다는데 설마?=.=  

4년여 만에 나온 소설집이란다. 장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 번째 소설집이라 적이 실망을 하려고 했지만 기다리던 작가의 새 책이 나온 것만이라도 어딘가 싶어 바로 구매를 했다. 출판사의 책 소개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지레 겁을 먹었고, 전작들을 떠올리며 불쾌해질 기분과 읽고 나면 또 나는 얼마나 이 세상의 삶들에 대해 놀라워하고 무서워하며 두려워할까, 단단히 마음을 먹고 책을 펼쳤더랬다. 한데, 어랏! 뭐지? 이것 백가흠 작가의 소설 맞아?  

그랬다. 조금 변한 것 같다. 내가 두려워하던 그의 소설이 아니었다. 전작들에 비하면 아주 ‘착한’ 사람들이 나왔다. 『귀뚜라미가 온다』에서 보여주었던 광기에 사로잡힌 남성들의 폭력이나 『조대리의 트렁크』에 나오던 정상적이지 않던 사람들이 『힌트는 도련님』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번 책에서 그는 두 권의 책으로 만든 ‘백가흠 표’ 이야기에서 벗어나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고민한 흔적을 많이 보여준다. 그래서 처음엔 낯설었다. 왜 이러지? 이건 백가흠 작가의 글이 아니잖아. 갑자기 멋진 작가가 되기로 한 거야? 헷갈릴 무렵 들려준 그의 변명 아닌 진심. 힌트는 도련님이었다. 

“소설 마감을 못하겠어. 뭐 쓸 만한 얘깃거리 없나? 나 완전 똥줄이 탄다. 지금. 
만날 하던 거. 그냥 하지 그려. 너 잘하는 거 있잖여. 
뭐? 내가 잘하는 거 뭐? 
나는 다급하게 그를 재촉한다. 잊고 있었던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몇 죽여. 그냥.“ 

그렇다고 그가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소외된 삶, 기구한 인간,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사건들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 더 작가다운 면모를 보이며 인간의 삶과 죽음, 사회적 이슈에 대해 들려준다.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인 원덕 씨의 비참한 삶과 죽음, 그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통(痛 )」,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베트남 처녀를 결국 죽음으로 이끈 늙은 농촌 총각 형제의 지저분한 타협과 어이없는 결론을 보여준 충격적인 이야기 「쁘이거나 쯔이거나 (전작의 느낌을 제일 많이 가지게 했던 단편), 불우한 가정사로 인해 존재의 소멸이 되어 버린 인물들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와 「그런, 근원」이 그러하다. 

그 중에서 고엽제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통(痛 )」은 그동안 백가흠 작가가 보여주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윤리, 폭력, 생존을 모두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사라진 아버지, 그 비극적인 유전을 피해 월남전에 참전하지만 고엽제의 피해로 인해 그가 받을 정신적 고통은 가려움으로 인해 20여 년간 겪어야 했던 육체적 고통과 함께 고엽제 피해자로서 이용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폭력까지 보여준다. 또한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해 그가 겪는 환각 속에서 떠올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과거의 여러 순간은 어느 누구도 그를 고통 속의 삶으로 내 보내지 않았으나 결국은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한 개인의 비참한 인생사를 보여준다.  

벌써 등단 10년째라는 작가. 전작에서 보여준 그의 작품들이 너무나 강렬하여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작품만 써낼 수는 없을 텐데,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백가흠 작가의 변화가 사실은 놀랍다. 그래서 등단 10년치고는 적은 수의 작품이지만 초기의 치기어린 광폭한 문장들과 이야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글쓰기로 도전하는 작가의 또 다른 문체의 색깔이 반갑기도 하다. 그래서 곧 나올지도 모를 장편을 기대해본다. 그 작품에선 그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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