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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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작가, 그녀를 모른다면 한국 소설을 모른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동안 나온 소설집을 모두 읽었고 최근에 젊은작가상을 받은 단편도 읽었다. 한데 내 맘에 들어오진 않았다. 김애란의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난 좀 우울했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소설 속에 내보이는 쓸쓸함에 공감을 했을테고 왜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아무리 희망와 이상을 은근슬쩍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왜, 우리나라 이십대들은 다들 이렇게 비루하고 우울한 거야. 세상 다 산 사람들 같잖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그러니 관심은 있으나 관심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 내게 김애란은 이번에 제대로 뒤통수를 쳐주면서 이제 좀 관심을 가져보시지? 했다.  

책도 나오기 전에 가제본을 받았다. 작가의 첫 장편이라고 하니 궁금하기도 했거니와(단편만 쓰던 작가들의 첫 장편은 누구든 궁금하기 마련), 제목에서 뭔가 두근거림이 있었다고나 할까, 책소개를 봐서는 어쩐지 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난 눈물나게 하는 내용들 싫어 한다. 그러면서도 읽어대는 내가 더 싫지만) 내용이 담겼을 것 같았는데 그냥 끌렸다. 읽어봐야할 것 같았다. 그냥 그랬다. 가제본을 받은 날, 배가 고파 퇴근을 하자마자 가장 빨리 되는 저녁으로 라면을 먹을려고 물을 올려두고 프롤로그를 읽고(그것만으로도 콕콕)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근데 어랏,  

"바람이 불면, 내 속 낱말카드가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들이다. 어릴 적 처음으로 발음한 사물의 이름을 그려본다이것은 눈(雪), 저것은 밤(夜), 저쪽엔 나무, 발밑엔 땅, 당신은 당신…… 소리로 먼저 익히고 철자로 자꾸 베껴쓴 내 주위의 모든 것. 지금도 가끔, 내가 그런 것들의 이름을 안다는 게 놀랍다. "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문장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때부터였다. 저녁을 먹을려고 올려놓은 물을 내려놓았고, 사다 둔 떡을 입에 문 채 정신 없이 읽기 시작했다.  

아이의 독백과도 같은 이야기. 아이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제 부모가 어찌하여 자신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팔삭둥이로 태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마치 그 아이가 옆에서 조곤조곤 말하듯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뭐랄까, 마치 두번 다시 말하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하지만 그런 아이의 독백과는 다르게 은근 유쾌하기까지 한 스토리를 읽으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 쿵, 쿵. 이것, 너무 두근거리잖아. 왜 이래. 하는 생각?!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소설들은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거야. 아마도 내 맘 한구석을 콕콕 쑤실 그런 것.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있잖아, 자꾸 슬픈 노래가 좋아진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는 술 먹고 듣는 노래야. 그러니까 너도 어른이 되면 발라드는 무조건 술 마시고 들어라, 알았지?" 
"네, 아빠."
나는 얼마 안 남은 이를 드러내며 상긋 웃었다.
"아빠."
"엉?"
"지금 슬퍼요?"
"응."
"나 때문에 그래요?"
"응."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뭔가 고민하다 차분하게 답했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아빠?"
"응?"
"전 이미 아이인걸요."
"그래, 그렇지……"   

젠장, 이럴 줄 알았다. 시작부터 왠지 가슴이 아려온다, 했다. 하나도 슬프지 않은 척 위장하고 있었지만 읽는 문장마다 촉촉함이 배어있다. 결국 눈물 뚝뚝 흘려주었는데 이 씩씩한 소년, 오히려 날 위로해준다. 이 만한 일로 무슨 눈물을. 그리고 찾아온 소년의 사랑.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게 뭔지 잘 모르지만, 뭔가 시작되려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도망치려 했던 '시작'이 다시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설렘과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지켜야겠다는 마음도 강하게 들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하느님께서 갑자기 이렇게 잘해주시는 이유는 내게서 뭔가 빼앗아 가실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선물인지 시험인지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내 쪽에서 한전 더 신호를 보내야 했다. 며칠 뒤, 나는 결국 그애에게 두번째 답신을 보냈다. 편지 한 통쯤 더 쓴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을 뿐더러, 나 역시도 끄덕하지 않으리란 자신을 갖고서였다.  

아빠가 아빠가 되었던 그 나이가 된 소년은 열일곱, 사랑이 찾아올 만했다. 두근거리며 시작된 사랑. 내 마음도 덩달아 두근거렸다. 주고받는 메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진심이 통하는 '소통'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겼을 것을, 말 그대로 내가 뭔가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도 손이나 발이 아니라 '마음'을 사용해서 한 일…… 그게 또 '마음'이라, 처방할 약으로는 상대의 '마음'만한 것이 없는……" 그런 사랑.  

어느새 밤이 깊어버렸다. 다 읽지 않고서는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았지만 깜빡 졸다가 새벽에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새벽부터 눈물 뚝뚝 흘리고, 출근길 버스 안에서 고인 눈물 어찌하지 못하여 차창만 바라보고. 우씨,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욕을 해대며 읽었다. 결국, 끝까지.  

왜 이렇게 이 책에 홀릭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취향이거나 내 감정이 이 책과 잘 맞았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어리지만 가장 늙은 자식이 된 씩씩한 소년(아프면 어른스러워진다더니 마치, 그런 것처럼)과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바로 늙어버린(!) 가장 어린 부모, 엄마와 아빠, 나이가 들었으나 아이 같은 장씨 할아버지와 어쩌면 소년에게 행복을 주었을지도 모를 빌어먹을(!) 소녀까지 날 웃기고 울렸기 때문. 그리고 마지막 부록으로 실린 <두근두근 그 여름>을 읽으면서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맘 먹었다.  

열일곱, 한창 들뜨고 행복할 나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을 상처 혹은 사랑이 찾아올 나이, 세상 모든 것에 '두근두근'거릴 그 아름다운 나이의 소년을 만난 것은, 내게도 두근거릴 하나의 추억이었다.《두근두근 내 인생》, 멋지다!   

약하고 희미했지만 분명 거기 있는 소리였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파동 안에 머물렀다. 그 자장 끝, 맨 나중에 그려지는 동심원이 토성 주위의 고리처럼 우릴 오목하게 감싸주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말한 방법이란 누군가를 힘껏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였다. 순간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아버지를 두 팔로 감싸안았다.
"누구하고라도요?"
"그럼, 누구라고라도."
그런 뒤 마치 아픈 아이를 다독이듯 아버지의 등을 두드리며, 아버지의 말을 똑같이 따라했다.
"이렇게, 이렇게."
그러자 아버지는, 누군가의 메아리를 들려주기 위해 처음부터 거기에 있던 산(山)인 양, 내 앞을 커다랗게 가로막은 채, 내 앞을 든든하게 둘러싼 채, 조금 전, 당신이 하고, 내가 한 말을, 나지막이 중얼댔다.
"이렇게." 

그리하여 한 번 더, 그리하여 여전히, 먼 곳에서 ----
바람이 불어왔다. 나무에게로. 아버지에게로. 어머니에게로. 나는 그 바람이 좋아, 얼굴 위에 주름을 한껏 드러낸 채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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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포로 아크파크 세트 - 전5권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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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자주 꾼다. 아니, 거의 매일 꿈을 꾼다. 심지어는 꿈속에서도 꿈을 꾸는 지경이다. 그래서 가끔은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보는 게 '꿈'이기도 하다. 하룻밤에 꾸는 대부분의 꿈은 일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끔은 뚜렷하게 남아 있기도 해서 과연, 내가 꿈을 꾼 것인지 진짜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꿈의 포로'라니, 도대체 아크파크라는 남자가 어떤 꿈의 세계에 빠져 있기에 포로씩이나 되었단 말인가. 혹시 나도 꿈의 포로는 아닐까? 이토록 꿈을 꾸어대니 포로인 셈이나 마찬가지?!  

얼마 전에야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었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나기도 하는데 아마 중간에 읽다 말았던 것 같다. 아무튼 그랬기 때문에 이 책《꿈의 포로 아크파크》를 읽으면서 어, 이것 시작이 《1984》 같아. 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던 것. 책소개를 보니 그렇댄다. 《1984》의 흐름을 색다르게 표현한 작품이란다.  또 '아크파크'라는 이름은 카프카를 패러디한 이름이란다. 카프카의 소설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듯한 만화 속 주인공. 그만큼 만화의 내용은 철학적이다. 뭘 의미하겠는지는 알겠는데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조금은 어렵고 그래서 만화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런 작품.

만화 속 배경은 《1984》처럼 근미래의 어느 나라다. 1권 〈기원〉에서는 《1984》에서 봤듯이 부조리한 권력과 억압적인 상황들이 비슷하게 패러디되어 보여준다. 유머부에 근무한다는 아크파크가 웃기는 유머를 승인하기 위해 회의에 들어가 그들이 논의하는 회의는 웃.긴.다. 기각된 유머

"연세 지긋한 영감이 한 아이를 만나서 물었다. "쥐방울만 한 녀석, 어딜 가냐?" 그러자 아이가 이렇게 대꾸했다. "할아버지는 소방울이에요?"

푸핫-.-;; 그들에게 왜 유머부가 필요한지 깨닫게 되는 문장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공간이다. 이 나라의 가장 문제점은 공간이 없다는 거다. 사람이 걸어다닐 만큼의 공간도 없을 만큼 사람들로 꽉 차있다. 만화를 보는 것만으로 사실은 갑갑함이 밀려온다. 이런 미래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만화가의 상상력이란 정말! 하고 있는데 뒷통수를 치는 장면, 바로 엘리베이터 속 공간이다. 엘리베이터가 지나다닐 때마다 마루판을 걷어내고 피해야 한다. 하루에도 5~60번을. 그럼에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라도 공간 확보를 해야하니까. 이건 정말이지 만화가의 머릿속이 어떻게 생겼기에 이런 상상이 가능한지 들어가보고 싶어진다. 

2권에선 꿈을 꾸다가 깬 아크파크에게 들이닥친 생활공간 검사인들. 이 나라는 한치의 공간도 틈을 내서는 안 된다. 정해진 치수에 정확해야 하는데 아크파크는 서랍을 열어두고 말았다. 서랍을 열어두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 그는 체포된다. 뭔 이런 일이 있냐고? 만화니깐^^ 

사실 다음 권으로 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나를 힘들게 했다. 가위 눌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꿈 공장이 나타나고 잃어버린 꿈을 찾아 다니고 만화가가 그린 만화 속으로 들어가더니 꿈활동을 검사하기까지 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세상이 모두 평면으로 변해버려 하부세계로 잃어버린 두께을 찾으러 떠나기도 한다. 이제 그만 깨어나고 싶은데 이놈의 가위가 자꾸만 눌러버린다. 뭐야, 이거 꿈이야 현실이야. 정신이 없다. 달려도 달려도 그 자리. 헥헥.. 그래서? 

꾸어서는 안 될 꿈, 거지 같은 악몽이지.  

같이 읽은 친구가 말했다. 만화랄까, 삽화를 그리는 그 친구는 《꿈의 포로 아크파크》가 완전 멋지지 않냐고 했다. 동의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되었다. 만화를 볼 줄 모르는 나니깐, 만화를 볼 줄 아는 그 친구가 멋지다고 하는 그걸 찾고 싶었기 때문. 그래서 찾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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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레드북 - 100명의 솔직한 초경 이야기 '여자는 누구나 그날을 기억한다'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 엮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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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초경을 다룬 이야기다. 여자에게 초경은 황당한 일이거나, 기다렸던 일이거나 혹은 끔찍한 일이다. 요즘이야 성 교육이 나름대로 되어 있으니 다들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 더구나 외동딸로 선머슴처럼 자란 터라 초경이 나왔을 때 책 속 대부분의 무지한(!) 소녀들처럼 이제 난 죽는구나! 라는 생각보다 너무나 무심하게 이건 뭐야? 하고 지나쳐버렸는데(다시 생각해도 참 나다웠다는 생각;) 나중에 던져놓은 속옷을 본 엄마의 반응도 쿨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고 그냥 생리대만 던져주었던 것. 역시 책에 나오는 여느 소녀처럼 당연히 소변처럼 나오고 마는 구나, 생각하고 학교 갔다가 이번엔 진짜로 당황했던. 아, 정말 오래된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남자 아이들과 허구한날 동네 구석구석이나 뒷산으로 싸돌아다니길 좋아하던 건강했던 소녀였기에 이 빌어먹을 것은 정말 짜증이 날만큼 싫었다. 오죽하면 난 다시 태어나면 남자애로 태어날 것이라는 둥, 이런 것이나 할 것 같으면 군대를 가겠다는 둥 말도 안 되는 헛소리만 해댔었다지. 그런다고 한 번 시작한 것이 멈출 리는 없고. 그렇게 매달, 그것이 찾아올 때마다 저주를 퍼부었더랬다(결혼을 안 했고 아기를 가지는 신비로운 경험도 못한 탓에 나는 아직도 이 빌어먹을 것이 싫다-.-;). 

마이 리틀 레드북』을 읽어보니, 세상의 모든 소녀들은 정말 비슷한 것 같다. 하긴 우린 인간이니까 당연하겠지만도. 그 중에서도 특별한 경험을 하는 소녀들도 있었는데 대부분이 나처럼 이게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였다. 

응급 맹장 수술을 하러 들어갔다가 카테타를 꽂는다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찰나 시작하게된 헬마, 뭔가 아래에서 줄줄 새는 듯한 느낌이 드니 간호사가 자길 죽이는구나! 했단다. 바클리 레이첼은 추수감사절날 크린베리 소스를 만드는 일이 집안 전통이었단다. 열심히 크린베리 소스를 만들다가 화장실에 갔더니 어랏, 왜 소스가 여기 묻어 있지? 하핫; 또 생리가 나오는 내내 속옷을 태워버리다 결국 엄마에게 들켜서 고백을 하고 만 수잔, 그녀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엄마에게 말했단다. 이런 미신도 있다. 초경을 시작하자 델마의 아빠가 말했단다. 식물에게 물을 주지 마라고, 왜? 생리 중인 여성이 식물을 죽이는 '메노톡신'인가 뭔가를 분비한대나 어쩐대나. 황당한 일이지만 여러 문화권에서 존재했던 이야기란다. 결론은 틀린 주장. 더 황당한 것은 행운을 몰고 온다고 엉덩이를 철썩 때리는 일도 있다 한다. 

이렇게 백 명에 가까운 다양한 여성들의 초경담은 놀랍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어이 없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니 가까운 친구들이랑 모여서 초경이야길 한번씩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어쩐지 배꼽 잡고 웃을 것 같은 예감이. 물론 나도 여기 다 못한 황당하고 웃긴 이야기가 있다. 암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글을 쓰는 걸 보니 이제 소녀는 아닌가 보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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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나의 세컨드는 - 김경미 시집
김경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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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러니까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으뜸이라는, 사랑이란 단어를 참 오래 전부터 '사랑'했었다. 고등학교 때 만든 시화집의 이름조차 'LOVE'였고, 존 레논의 'LOVE'는 애창곡이었으며 한동안 신문의 구석탱이를 장식했던 귀여운 일러스트와 'love is~'라는 사랑의 의미를 슬쩍 전달해주는 코너는 스크랩을 해서 코팅까지 해 놓을 정도였으니까(도대체 그때 코팅한 책받침 love is~는 어디 갔을까? 생각해보니 선물 받은 것도 같고, 내가 만들었던 것도 같고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랑'에 목숨을 걸만한 인물은 안 되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주~욱 '사랑'은 좋았다. 그래서 아마도 그래서!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사람을 만나도 사랑과 관련해서는 무조건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아, 서두가 너무 길었네;). 

지난번에 여행을 갈 때 어떤 책을 들고갈까, 고민을 하다가 과연 여행 가서 책을 읽을 시간이라도 있기나 할까, 생각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가벼운 책을 하나 넣는다는 것이 오소희의 <사랑 바보>였고, 그것도 아쉬워(가져간 책을 다 읽고 읽을 책이 없을 때의 그 난감함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책꽂이를 째려보다가 고른 것이 김경미 시인의 시집이었다. 그 중 밑줄 잔뜩 그어 놓은 <쉿, 나의 세컨드는>. 시집은 다 읽었다고 던져두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읽고 또 읽을 수 있으므로 가져간 책을 다 읽었어도 난감한 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여행을 가서 책을 읽을 시간은 당연 없었지만 시집을 읽을 시간은 많았다. 크지 않고 두껍지 않아 작은 가방에도 들어가니 어디든 들고 다니며 쉴 때마다 꺼내 읽을 수 있었다. 다시 읽은 시집은, 내가 정말 이 시집을 다 읽어보기나 했던 건가 싶을 만큼 새롭게 그은 밑줄이 많았는데, 그 점이 나도 놀라웠다. <쉿, 나의 세컨드는>이 다른 시집보다 특별히 더 맘에 들었고 내 맘을 흔들었던 것은 사실이나 어째서 지난 번엔 들어오지 않았던 시구가 이렇게도 많았는지. 김용택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정말 '시가 내게로' 올 때가 있긴 한 것 같다. 

김경미 시인의 <쉿, 나의 세컨드는> '자아의 처절한 고통'이 담긴 시집이란다. 공감이 간다. 한데 내겐 그 고통이 온통 '사랑'의 실패로 인해 오는 자기 반성, 자학, 실패, 아픔으로 읽혔다. 하긴 내가 찾아 읽는 시라는 건 모두 그렇다, 시인의 의도와는 상관 없다. 내가 그 시를 어떤 식으로 읽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실연을 당했거나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천생이 사랑이라는 감성으로 꽉 차 있는 나로서는 매일매일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직 철이 안 든 탓이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느낀 것은 예전에 내가 공감했던 그 사랑의 고통으로 인한 '자학'의 시들이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다가온 점이다. 김경미 시인이 느끼는 '고통'들이 사랑을 넘어서 나라는 개인에 대한, 이래도 저래도 어쩌지 못하고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삶의 고통에 대해 진짜 '처절하게' 혼란스러워했다는 점이다. 이런 것,  

(...)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때어버리지 말 것/ 상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 일 것/.../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 삶, 을 잘 넘길 것 

_식사법이란 시다. 전에는 맘에 들어오지 않았던 시였다. 한데 요즘 삶에 대해 '멸치똥 같은 날들'에 대해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 대해 많은 생각이 있었던 탓인지 읽는 순간 저절로 밑줄을 그어댄 것이다. 또한 _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은의 마지막 행도 그렇다. 

(...)아무래도/ 책상 밑이나 신발장 속 같은/ 좀더 깊은 데 들어가 자야겠다/ 그러한 동안 그대여 나를 버려다오 아무래도 그게/ 그나마 아름답겠으니 

경험이 전해준 고통이랄까, 어느 틈에 늘어버린 술을 마시느라 의도한 것인지 사고를 친 것인지 다음날 일어나 당황해 하고 보니 시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던 것. 맞아! 이런 젠장, 밑줄 좌~악 

또 이런 것, 

(...) 나는 좌절하는 자세가 좋다/ 바닥에 이마를 대고/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뿌리의 세계를 들여다본 것들/ 마치 하늘에 엎드려 굽어내려보는 신 같은 

마치 바닥을 봐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일까, 좌절하고 좌절한 후에야 비로소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래서 _나는 좌절하는 것들이 좋다 며 고개 끄덕거렸다. 그리고 _봄, 군인처럼은 그런 좌절 끝에 느끼는 나에 대한 감정이었다. 

(...) 난 아무것도 아니다/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 미물은 맹세코 아무것도 아니어서 계급이여/ 이제라도 그 과분함에 충성하겠다/ 묵묵한 모든 것들에게마다 진심으로 충성하여/.../ 

주말에 집에 내려오며 다시 이 시집을 들고 왔다. 어찌된 것인지 또 나는 다른 시에 밑줄을 그었다. 맘 같아서는 시집의 시를 통째로 베껴보고 싶다. 아직도 이 시집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 하며 나와 같은 공감을 갖을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혼자 고통스러워하긴 싫다는 이기적인 생각?! 그래서 쓰게 된 리뷰아닌 리뷰. 그리고 다시 시집을 펼쳤다. 

나는 왜 극장처럼 어두워서야/ 삶이 상영되는 느낌일까// 극장 매점의/ 팝콘처럼 하얗고 가벼운/ 나비 같은 생은 어떤 감촉일지// 가끔씩 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병아리 깃털이나 잎일 수 있는지/ 후, 불어보고 싶어진다 _방명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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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코와 마들렌 여사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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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여사는 툇마루에 누워 앞으로 쭉 뻗은 앞다리에 턱을 얹은 채 두 여자애가 다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즈가 방석을 두 개 깔자, 가노코가 쟁반에 과자 접시와 찻주전자를 얹어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저런, 아니외다. 손님은 그냥 계시구려."
일어나 거들려 하는 스즈를 가노코가 제지하고 방석과 방석 사이에 조심조심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럼 다회를 시작하겠소이다."
가노코는 스즈의 정면에 마주 앉아 자세를 갖추었다.
"여기 과자를 준비했소이다."
"생큐외다."
"덥소이까?"
"약간 덥소이다."
"그렇다면 선풍기 스위치를 켜겠소이다."
"송구하외다."
쟁반을 가지러 가기 전에 가노코는 '선생님이 읽어주신 책에서 앤이 한 것처럼 어른스러운 다회를 하자 앤 못지않게 정식으로, 어른스러운 분위기로 해보자'고 스즈와 사전회의를 했다. 보아하니 '정식으로,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비결은 좌우지간 말끝에 '-외다'를 붙이는 것인 모양이었다. 

 

이 사랑스러운 책, 『가노코와 마들렌 여사』를 읽으며 어찌나 즐거웠는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조카를 키워본 입장에서 가노코처럼 '게릴라성 호우'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고릴라 아닌 거'라고 말하는 걸 이해하고, 스즈가 콧구멍에 엄지를 찔러 넣은 채 나머지 손가락을 팔랑거리며 '코 나부나부'를 하는 거나, 찻기둥은 못 세우고 또~옹기둥을 세우며 좋아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즐거웠다. 이건 너무 아이들스럽잖아!  

더구나 저 위의 문장처럼 소꿉장난이랄까, 딴에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상황을 재연하는 설정이라 해도 아이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재미난  행동들. 조카와 이미 저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 재미가 어떤지를 알기에 읽으면서 내내 키득거렸다. 맞아맞아, 조카랑 나도 저렇게 계속 주고받았지. 킥킥, 아이들은 다 이런 놀이를 하는구나!(한데 난 아이가 아닌데 왜?) 

난 조카에게 고모가 아니고 친구다. 친구 중에서도 아주 말 잘듣는 친구. 어찌나 말을 잘 들어주는지 언젠가 조카가 이렇게 물었다. "고모는 왜 한번도 싫다는 말을 안 해?" _어이구, 내가 왜? 너한테 싫다는 말을 하겠니.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인데. 난 네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줄 거야! 이 대답에 조카는 좋아라 했을까? 뭐 그건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기양양한 것 같기는 하다. 

짧게는 일주일에 한번, 길어야 삼 주에 한번 우리가 만나는 주말은 그래서 내가 조카와 또래가 되는 행복한 날이고 그 덕분에 난 아직 철이 들지 않은 것 같다. 

뒷부분이 좀 짠해, 라고 책을 추천해준 친구가 말했지만 이 정도의 짠함은 당연한 것. 일본소설 좋아하지 않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가끔, 그래 아주 가끔 이렇게 예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읽으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책을 덮은 후에 조카에게 카톡을 날렸다. "꼭, 읽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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