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쿠스틱 라이프 2 어쿠스틱 라이프 2
난다 글 그림 / 애니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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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사용에 능숙한 결혼 4년차' 난다 여사의 두 번째 책. 모태솔로들에게 염장성 강한 만화를 그렸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더 인기가 좋은 만화. 1권에 이어 2권도 읽으면서 노처자인 나는 왜 그케 키득거렸는지 몰라. 공감가는 몇 가지 중 하나, 지하철 차창으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슬퍼하던 난다 여사! 그런 경험이 있었다. 나도.  

 

이십대 무렵, 긴 생머리를 유지하고 있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이십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어찌나 초라하게 보이던지. 그 길로 놀라서 미용실에 가 숏컷을 치고 말았다는. 지금 생각하면 아뉘, 뽀송뽀송 이십대가 초라해보이면 얼마나 초라해보인다고 그 난리였을까, 싶었는데... 난다 여사 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앞으로는 차창에 비친 모습에 속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사실 지금도 가끔 보는데, 이십대나 지금이나 그 얼굴이 그 얼굴. 거울이 아니니 주름도 안 보이고.

 

1권에서 영수증에 그림 사인하는 걸 즐겨해서 나로 하여금 한번 시도하고 싶겠끔 만들었던 한군, 2권에서는 티비 광고 보며 토다는 행동, 완전 귀엽다. 난다 여사의 말처럼 남자들은 귀엽다는 말을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귀여운 걸 이기는 건 세상에 없다." 나도 혼자 티비 볼 때 한번 써먹어봐야겠어(좀 서글플까? 누군가 들어줘야 재미있는 걸까? 암튼).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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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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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그동안 못 잔 잠을 다 자기라도 하듯 늦게까지 쿨쿨 잤다. 정오가 넘어서야 부스스 일어나고도 한참을 이불 속에서 전날밤에 읽다 만 책을 읽었다. 최진영 작가의 신간이다. <끝나지 않는 노래>

 

그녀의 첫 장편이었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얼마나 흥분하며 읽었는지, 세상에 이런 독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구나, 했었다. 그런 까닭에 최진영이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책장부터 펼쳤더랬다. 역시 이번에도 그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몹시 꿀꿀해졌다. 크리스마스엔 좀 행복하고 즐거운 책을 읽어야 했는데, 이 책은 그렇질 못했다. 오히려 눈물이 났다. 뭐 이래. 이 작가는 왜 이런 소설을 쓴 거야. 그리고 왜 하필이면 해피 크리스마스라는 이런 날에 내가, 슬픈 여인들의 이야기를, 읽게 만든 거야. 괜히 툴툴거렸다.

 

<끝나지 않는 노래>는 이전 시대와 지금, 여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 어머니, 딸과 며느리. 그녀들의 이야기다. 그녀들이 행복한 삶을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살을 에는 듯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그렇지도 않다. 동하의 말처럼, 오히려 '더 좆같아졌지.' '씨발, 세상 좋아지긴 개뿔'

 

두자, 딸이었다가 어머니였다가 할머니가 된 여인. 태어나자마자 여자란 이유로 일만 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따라 혼례도 올리지 못하고 시집살이를 했다. 여자의 적은 여자,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며 또 죽어라 일만 했다. 잠시 남편과의 사랑도 있었지만 찰나였다.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여자란 존재는 무엇이기에 남자들의 그늘에서 그토록 모질게 당하면서도 당하는 줄 모르고 살았을까. 또 그렇게 어머니에게, 시어머니에게 당했으면서도 제 딸에게, 며느리에게 되물림 해야만 했을까. 그게 그들만의 사랑이었을까.


"다 내 업보라.

콩 껍질을 손가락으로 툭 누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옛적엔 다들 그렇게 살았지. 세상 좋아진 요즘에야 자기 자식 귀하다고 무엇이든 최고로 해주겠다고 난리들이지만...... 두 년한테 역정만 내고 일만 냅다 시키고, 수고했다, 미안하다 말 한만디 안 하고 살았어도 그게 어디 내 탓이겠나. 그땐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는데. 지들이 사랑도 못 받고 자랐다고 생각하는 것 모양 내도 그래 살았는데..... 자식이 어디 사랑으로 크는가. 밥으로, 돈으로, 세월로 크지.

그랬구나, 할머니.

그래, 그래 살다 보이......

텅 빈 방에 앉아, 두자는 버릇처럼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늦게 먹은 시루떡 때문이지, 쓴물이 목구멍을 타고 자꾸 올라왔다."


'자식이 어디 사랑으로 크는가, 밥으로, 돈으로, 세월로 크지.' 라는 두자의 말은 틀렸다. 자식이 아니라 여자다. 여자가 한 사람의 객체로 인정받기보다는 마당의 나무만큼의 관심도 받지 못하던 그때. 아무리 그땐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 나은 줄 알았지만 한 세대가 흘러도 그때의 여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봉선과 수선. 얌전히, 그 이전 세대와 다르지 않은, 여자다운 수선은 그렇다치고 반항을 하고 자유롭게 살겠노라 발버둥을 치고서도 결국은 똑같은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봉선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살면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는가. 자유롭게 살겠다고 뛰쳐나갔으면 최소한 수선과 다르게는 살았어야 하는게 아닌가. 인생이 뭐 이래. 왜 다들 그러고 살아야만 하는 건데.. 마치 내 언니들이 겪은 일인양, 흥분하며 씩씩대었다. 읽으면서 내내 속상했지만. '옛적엔 다들 그렇게 살았'단다. '당연한 줄 알'았단다.


그래, 그땐.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란 게, 결국은 지금보다 덜 고생하고 덜 힘들게 살 수 있도록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보퉁이 하나 안긴 채 시집보내는 것이라면. 그것도 사랑일 것이다. 엄마보다는 덜 일하고, 엄마보다는 덜 구박받고, 엄마보다는 그래도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살아가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 그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 뱉을 수밖에 없는 말, 아아 제기랄, 딸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마지막, 은하와 엄마들과의 통화 내용을 읽으며 눈물이 나왔다. 최진영 작가, 독하다. 세 번째 책은 부디 행복했음 좋겠다. 주인공 모두. 부디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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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12-2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본 최진영 작가는 참 귀여운 얼굴이었는데, 작품은 하나같이 만만치않네요.
저도 <당신 곁을~>을 재밌게 읽은 독자로서 이 책도 읽어야겠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readersu 2011-12-27 10:26   좋아요 0 | URL
진짜, 작품마다 사람의 감정을 마구 뒤흔들어놓아요.
좋아하실 거예요. 마음 아파하면서(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지만, 그럼에도)
 
안철수, 경영의 원칙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안철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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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검색에 제일 많이 올라오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인 안철수,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안철수는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 V3를 개발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 그동안 여러 권의 저서와 다양한 행보를 모르지 않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경영인으로만 알았다. 그래서 지난 시장 선거 전, 이름이 거론되었을 때나 대선 주자로 말들이 오고갈 때 살짝 어리둥절하기도 했더랬다. 정치인도 아니고 박원순 시장처럼 사회운동을 한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그저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정치판에 얼굴을 내미니 그럴 수밖에. 또 그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다들 대선에 나오니 마니 하는 걸 보면서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기에, 하는 의문이 커졌더랬다. 그런 시점에 이 책을 읽었다. 시의적절.  

 

아주 얇은 책이었다. 서울대학교 관악초청 강연, 강연집이란다. 녹취해서 풀어 만든 책이라는 것. 가볍게 읽어보기 좋겠다 싶었다. 더구나 강연한 것을 풀어낸 것이니 그의 사상이나 평소의 신념들이 고스란히 들어있을 것이다. 역시 그랬다. 놀란 것은 읽으면 읽을수록 안철수라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 이게 어쩌면 게으른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겪어온 세월을 보면 그가 평소에 하는 일들의 5%도 하지 않고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머릿속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걸까. 

 

의대에 다니면서 꼬박 7년 동안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세 시간동안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고, 회사 경영이 잘 안 되는 이유가 궁금해 경영학을 공부하고(미국에서 공부하던 그 2년 동안 그는 이틀에 하루만 자면서 보냈단다. 7년을 새벽 세 시에 일어나고 또 다시 2년을 이틀에 하루 자면서 보낸 것. 징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참 잘 나가던 회사를 퇴임하고 적지 않은 나이에 토플시험을 다시 치고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정말이지 상상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나가는 그를 보며 다른 말은 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

 

더구나 공부할 시간이 모자란다고 미리 잡지사에 전화를 해서 요즘 이슈가 되는 분야에 대해 글을 써보겠다고 먼저 제안을 한 후 마감을 잡고 그 이슈에 대해 공부한다는 부분을 읽고는 기가 막혔다. 오로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직접 만들어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사실. 그런 까닭에 그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일을 하는 것일테지만. 나 같은 사람은 흉내조차 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제목은 경영의 원칙이지만 어쩌면 이 책은 안철수가 살아가는 법이 더 맞을 듯하다. 그가 지키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들은 경영이라기보다는 좀더 인간적인, 인간 안철수를 느끼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삶을 대하는 자세라거나 미래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이 그 어떤 정치가나 경영인하고는 차원이 달라보였다. 그래서 내가 만약 이십대였다면, 혹은(물론 그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면서 그 후의 10년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젊었다면 그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나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기껏 10%도 따라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 다양함만큼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각양각색이겠지만 이 사람, 안철수 교수의 삶의 태도만큼은, 그래서 본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에는 단기적인 것이 있고 장기적인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우선은 주위 사람들이 다 원하는 길을 가게 되면 당장은 좋지만 만약에 본인이 행복하지 않는 경우라면 오래갈 수 없는 것 같아요. 정말로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면, 우선은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자연적으로 주위 사람들도 결국에는 이해하고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의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둘 다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어떻게든 같이 끌고 가려고 했지만 결국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정말로 어떤 일이 의미 있고 재밌고 잘할 수 있는 일인지, 그래서 결국은 제가 행복하게 되고 주위 삶들도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서 결정한 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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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8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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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8권이다! 무조건 사고 싶은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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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364일 블랙 로맨스 클럽
제시카 워먼 지음, 신혜연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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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종일 책만 읽었다. 오늘 읽은 책은 <열일곱, 364일>, 선착순으로 받은 신지가토 다이어리가 같이 왔다. 500쪽에 가까운 책. 생각 같아서는 반나절이면 읽지 않을까, 했는데 하루 종일 읽었으니 꽤 시간이 걸렸다. 보통 독서의 습관이 이 책 읽다가 저 책 읽다가 정신없이 다독을 하는 편인데 이 책은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시작하고선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른 책을 잡질 못했다.  

이 책이 끌린 것은 이 홍보 문구 때문이다. 

"넌 아니? 내가 왜 죽었는지……"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오고 가며, 사랑과 삶,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로맨틱 스릴러!" 

과거, 현재, 죽음. 더불어 로맨틱이라니! 각자의 취향이겠지만 이런 소설 참 좋아한다.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왔다갔다하는 이야기. 내가 겪어보지 못한 미래 이야기나 잊고 있었던 과거로의 여행이 주제가 되는 픽션들. 근데 이 소설은 조금 다르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비밀의 문을 통하지 않는다. 죽음이다. 죽음이 중심에 있다. 죽은 후에 되돌아보는 ‘나’의 과거라고나 할까.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는 인생. 그 인생들을 찾아가는 셈이다. 

우선 이 책, "블랙 로맨스"란다. 로맨스 소설이면 로맨스 소설이지 블랙 로맨스는 뭐람? 하다가 뒤쪽의 설명을 읽어보고 알았다. 무슨 뜻인지. 그것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나저나 로맨스 소설을 읽어본 게 언제였나. 정말 오래 전이다. 로맨스 소설이라는 걸 알고 나니 인물들의 배경이나 캐릭터에 대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로맨스 소설하곤 역시 좀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블랙 로맨스”인가? 암튼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은 읽고 나면(재밌게 낄낄거리며 다 읽고 나서 말이지) 에이, 유치해. 했었는데 이 책은 그 유치함은 없다. 미스터리 형식이라서 그럴지도. 그렇다면 매우 흥미로운 로맨스 소설. 블랙로맨스 맞다. 

아무튼 “블랙 로맨스”란, 이런 거란다. 

"로맨스라면 흔히 떠올리는 소재나 플롯 등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재를 다룬 신선한 소설,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기반으로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는 소설"
"기존의 로맨스 소설의 공식을 깨는 개성 넘치는 작품들로, 시대를 초월한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만을 선정했다. 추리, 호러, 스릴러, SF, 판타지, 역사, 좀비 등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에 로맨스라는 양념이 덧붙여진 종합선물세트" 

다 얘기해버리면 재미없으니까, 책 소개에 나오는 정도의 내용을 말하자면 이렇다. 주인공인 리즈는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답게 부잣집 딸이다. 외모 역시 눈부시다. 남자친구도 멋지다. 친구들 역시 죄다 부잣집 아이들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선생조차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 여기까진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의 배경이다. 한데 그런 대단한 소녀 리즈가 열여덟 생일을 앞두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렇다. 로맨스 소설에 ‘죽음’이 등장한다. 물론 로맨스 소설에 죽음이 등장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왠지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멋진 외모를 가진 남녀가 사랑을 하고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그런 달콤 쌉싸래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죽어버리다니. 이건 뭐지? 싶다. 근데 '내'가 '나'의 시체를 본다. 헉, 뭐야! 그럼 ‘나’는 죽은 걸까, 살아 있는 걸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깨닫기는커녕 죽었지만 살아있는(!) 리즈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자살을 했는지,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건지 아무것도 모른다. 황당해하는 리즈. 나라도 어이없겠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 것은 더욱 아닌 리즈. 그녀 앞에 일 년 전에 뺑소니에 치어 죽은 소년 알렉스가 나타나면서. 얜 또 뭐지?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동네에 살지만 그 둘 사이에는 전혀 친분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삶이 달랐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부잣집 딸.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왕따까지 당하는 알렉스. 그는 왜 리즈 앞에 나타난 걸까. 알렉스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 둘이 죽어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리즈 스스로 그걸 찾아야 한단다. 기억나지 않는 과거. 죽어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알렉스는 리즈의 과거와 현재에 동행한다. 그리고 그 둘의 연관성과 과거의 기억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기억을 찾으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좀 놀랍다. 소설에서 리즈는 말한다.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게, 죽음은 먼 세상의 이야기다. 다들 알다시피, 십 대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죽음에 대해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우리 엄마를 데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소녀들은 그런 것을 잊지 않는다."고. 알고 보니 리즈는 상처투성이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열일곱, 364일》의 주인공은 고등학생이다. 물론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생활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십 대는 통한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는 다양한 주제들이 나온다. 왕따와 흡연, 음주. 아직까지 마약을 다루는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없겠지만 좀 더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마약 판매상도 가능한 일인가 보다. 또 그런 고등학생들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부모의 불륜과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까지, 어른들에 의해 상처받는 십 대의 이야기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제 삼자가 되어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누구나 '나'였을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제 삼자가 되어 '나'를 바라볼 때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삶, 어이없는 행동들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제 삼자가 되어 그때의 ‘나‘를 바라보니 말도 안 된다. ’내‘가 저런 아이였단 말인가? 정말?! 이 소재는 매력적이다. 나도 어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 삼자가 되어 나의 행동을 바라보고 싶다. 잘 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나도 죽으면 나를 볼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한데 죽고 나면 뭔 소용일까. 그럼에도 돌아보며 후회하고 용서를 비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몰라. 미신적이지만 귀신으로 살지 말고 편히 쉬라는 의미. 어랏, 너무 깊게 들어갔나;; 

아, 그리고 어린 녀석의 순정이 대단하더라(-.-). 첨엔 그럴 리가, 했는데 역시 로맨스 소설이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 이 정도는 되어야만 사랑이고 로맨스다. 

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도 놓치지 않는다. 중간 중간 나오는 부자 부모님을 둔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이 읽는 책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기본이고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스콧 피쳐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  

책을 덮고 떠오른 또 하나, 세상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 잘 나가든 아니든 남들이 나를 우습게보든 말든. 내가 중심이었을 때는 모든 행동들이 다 이해되니까. 그래서 아무리 아니꼬운 부잣집패거리들이라도 알고 보면 다 '좋은' 친구들이라고 리즈는 변명한다. 왕따를 시키거나 마약을 팔거나 음주에 흡연을 하더라도 말이지. 내 중심에서는 그렇다는 거지.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단 맘에 들지 않는 한 가지, 인생이 구만리 같은 아이들을, 아무리 소설이라도 죽여 버리는 것, 난 왜 이런 게 싫지. 더군다나 결론을 보자면 죽음도 끔찍한데 죽임이라니. 그럼에도 좀 자극적이긴 하지만 《트와일라잇》 좋아하는 울 조카, 좋아할 것 같다. 넘겨줘야겠어! 소설이잖아. 그것도 블랙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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