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의 왕따 일기 ㅣ 파랑새 사과문고 30
문선이 지음, 박철민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언론매체를 통해 왕따와 관련된 기사나 글을 종종 접할 때면 그 심각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곤 하는데,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이다 보니 나 역시 왕따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이 책은 아이에게 친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아이들이 왕따를 시키거나 왕따를 당하게 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해 준다. 아이들도 왠지 끌리거나 마음에 들어서, 또는 인기가 많은 아이라서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특별히 사귀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주인공인 정화가 이번 학년에서 친구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은 못하는 것이 없는데다가 사람을 끄는 매력을 지닌 미희라는 여자 아이다. 미희의 성을 따서 지은 ‘양파’모임은 집도 잘 살고, 특기도 하나씩은 있는 소수 엘리트 집단으로 볼 수 있다.

 ‘양파’는 정화네 반 여자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데, 그 모임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누릴 수 있게 되는 여러 가지 혜택-부탁을 들어주거나, 수돗가 등을 양보 받는 등-을 보면 반 아이들이 그들을 선택된 집단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신들도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열망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양파의 리더인 미희는 자신의 말에 힘을 실어 줄 권력을 지니고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행동하며, 양파에 속한 아이들에게는 미희의 말은 곧 지키고 따라야 할 법이 되는 것이다. 미희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거슬리는 아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제재를 받고, 미희의 말에 따라 가까이 지내던 친구를 하루아침에 따돌림 시키기도 한다. 정화는 병원에서 미희를 만난 뒤에 가입 제의를 받고 마침내 양파의 일원이 되어 색다른 경험들을 하면서 무척이나 기뻐하는데, 마음에 담아 두었던 친구와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하겠는가.

 그러나 양파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정화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지출이 늘어나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게 되고, 미희가 싫어하는 음식을 대신 먹기도 해야 하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비방하는 일을 하라는 지시까지 받는다. 좋아하는 친구와 가까이 지내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화도 왕따 당하는 친구의 고통, 공포, 괴로움 등을 짐작하고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하지만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할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이 또한 공감이 가는 것이 그랬다가는 정화가 짐작하는 것처럼 그 자신이 왕따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희가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에 정선이에 대한 나쁜 말을 올리는 것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글이나 사진, 동영상 등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하면 그것이 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아이들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서 자신이 접한 것 자체만을 통해서 선, 악의 판단을 내리고, 그들의 공격을 받게 된 당사자는 막대한 피해를 입거나 괴로움을 겪게 되지 않던가!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또 한 가지 부분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이발사인 아빠에 대한 정화의 마음이다. 정화는 주말마다 의료봉사를 가시는 아빠가 밉기만 하다.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러 올만큼 사회적으로는 칭찬받는 사람일지는 몰라도 자식의 입장에서는 주말에 함께 놀러 갈 여가도 없이 봉사를 하러 다니는 아빠가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 역시주말에도 거르지 않고 출근하느라 놀아 줄 시간이 없는 아빠에게 서운한 마음이 가득하다. 가까운 공원에 놀러 가거나 하다못해 집 안에서라도 함께 놀고 싶은 마음에 아빠를 기다리지만 그런 날은 일 년에 이십여 일도 되지 않는지라 속상해 하는 정화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화는 방송국에서 촬영하러 나온 일을 기화로 아빠를 부끄럽게 생각한 것을 반성하는데, 아빠가 TV나 신문 같은 곳에 나오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우리 가족을 위해 애쓰시는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길 바란다.

 정화가 아빠의 직업이 이발사가 아닌 의사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양파에 가입할 수 있게 된 동기가 병원에서 미희와 마주치면서 생긴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같은 흰 가운을 입더라도 의사와 이발사를 대하는 사회와 사람들의 시선이 크게 다른 것이 현실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부모의 직업이나 사는 형편, 집 평수를 봐가면서 친구를 사귄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는 것에서조차 차별을 두고, 친구의 눈치를 보아 가며 지내야 하는 세상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어른들이면서 그저 이런 세태를 개탄하기만 할 뿐이다. 그로 인해 상처받는 것은 아이들인데도 말이다……. 우리 아이가 정화처럼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닐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왕따'가 없는 세상을 위해 ‘양정화’같은 아이들이 많이, 아주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유진과 유진 ㅣ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알게 모르게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이나 성추행에 노출되어 있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안에서 고의로 더듬는 사람, 으슥한 골목길을 따라와 덮치는 사람, 직장 상사나 동료, 이웃 사람, 친척, 의붓아버지 등등……. 그런데 유아든 어른이든 성추행(폭행)을 당한 피해 당사자나 그 가족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을 한 것 마냥 쉬쉬~ 하는 것이 현실이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주위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알 수 없는 냉담함, 아이의 미래에 드리워질 어두운 그림자가 무서워서이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죄를 지은 것 마냥 숨기고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암울하다. 그리고 비록 그 피해 사실을 주위에 숨긴다 하더라도 사고를 당한 당사자의 가슴에서 그 사실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는 힘들 것이며,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그 일을 어떻게 여기는지, 당사자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유진과 유진>은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여학생이 어릴 때 유치원 원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각기 다른 기억을 지니게 되기까지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해 왔는지를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사건이 있었던 무렵의 일을 큰 유진은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때라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작은 유진에게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은 목욕수건에 아프다고 울다가 엄마에게 뺨을 맞고, 사람들에게 측은한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눈길을 받은 기억만 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닌데 왜 때려야 했던 것일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몰랐던,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책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내가 제대로 보호를 하지 못해서 자식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런 심정이 아니겠는가 싶다. 속상한 마음에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를 다그치고 화를 전가시키는 것이 오히려 그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그런데 한 사람, 큰 유진은 가족들의 사랑으로 큰 고통 없이 극복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아예 그 사건을 기억을 지워버린다. 하지만 큰 유진과의 만남을 통해 작은 유진도 점차 기억 속에 묻어버렸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작은 유진이 그 일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기를 강요한 것은 엄마였다. 때리면서, 살갗이 벗겨지도록 아프게 때밀이 수건으로 씻기면서, 잊지 않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고 협박하면서 작은 유진에게 잊을 것을 강요한 것은 엄마였고, 냉대의 시전으로 대한 것은 주위 가족들이었다. 작은 유진 곁에는 사랑으로 감싸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티에리 르냉이라는 작가가 쓴 <운하의 소녀>라는 작품에서 '사라'라는 여자아이가 지닌 인형에 대해 나온다. 벌거벗겨져 있고, 배에 라이터로 지진 흉터가 있으면 머리카락이 흉하게 잘려져 있는 인형의 모습이야 말로 바로 감추어져 있던 사라의 진정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작은 유진이 인형 목을 자르고 다리를 찢은 것도, 유진이 인터넷으로 찾아 낸 사례에서 나오는 아이가 인형에게 한 행동도 인형을 통해 상처 입은 자신을 나타내고, 자신에게 벌을 주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는지도 모르겠다. 이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인 것을 사람들은 왜 알지 못하고 무조건 덮어서 가리려고만 하는 것일까.

 비록 부모가 사랑으로 아이를 다독거려 주었더라도 주위에는 ‘그런 일을 겪은 아이는 문제가 있다’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자신이 나서서 성추행 문제를 해결했으면서 큰 유진을 자신의 아들과 거리를 두게 하려는 견우의 엄마를 탓할 수만은 없지만 이로 인해 큰 유진은 또 한번의 커다란 상처를 입었지 않은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그 아이에게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인데...

 요즘도 간간히 유아들을 성추행 또는 성폭행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곤 한다. 딸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기사를 접할 때면 분노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늘 불안해한다. 기사나 보도를 접하는 날에는 특히나 더 아이들에게 누가 몸에 손을 대게 하지 말라는 당부를 곱절로 하게 되는 것이다. 제발 아이들을 상대로 한 범죄는 그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아닌 주위 여러 사람들의 가슴에 평생을 지고 갈 커다란 상처와 그림자를 안겨주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반딧불,, 2005-03-0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이 정말 아쉬운 책이었어요. 우연의 남발도...
그런데도 좋은 책이었지요. 어른들이 많이 좀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반딧불,, 2005-03-0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근소근)별언냐는 그냥 서점에서^^;;

바람구두 2005-03-04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좋은 책에 좋은 서평이네요. 추천추천,,,,
 
우포늪엔 공룡 똥구멍이 있다 ㅣ 작은도서관 5
손호경 글 그림 / 푸른책들 / 200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우포늪에 있는 구멍이 공룡의 똥구멍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아이들이 엮어가는 이야기 속에 늪지대의 생태와 환경과 관련된 문제들을 적절히 배합시켜 놓고 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푸름이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아이로 우포늪과 친구 마루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푸름이와 마루는 우포늪에 있는 공룡 똥구멍이 언젠가는 방귀를 낄 것이라는, 그리고 잠꾸러기 공룡이 언젠가는 깨어날 것이 기대를 품고 있다. 그리고 호박이 누렇게 익을 무렵이면 돌아오신다며 막노동을 하러 떠난 아버지가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하루라도 호박이 빨리 열리라고 자신의 오줌을 비료삼아 주곤 한다. 작가는 푸름이 아버지를 통해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농, 어촌 사람들의 모습을 담으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환경 문제는 농약문제, 가축농장의 인분 처리문제, 밀렵꾼 등에 관한 것으로 새로 이사 온, 동물 병원의 의사이신 선호 아버지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솔직히 나 같아도 외지에서 온 사람이 갑자기 환경을 걱정해야 한다며 이 일 저 일 간섭한다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우포 마을 사람들처럼 그다지 좋게만 여겨지지는 않을 것 같다. 자연을 보호하고 깨끗함을 보존하는 일이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다만 사전을 찾아봐야 아는 선호아버지보다는 우포늪에 대해 더 잘 아는, 그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푸름이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그 일에 앞장선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환경을 걱정하고 사람들을 계몽하려 애쓰는 선호 아버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포늪은 예전부터 공룡 서식지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책을 통해서야 이 지명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 강변 근처에서는 살아봤지만 늪지대는 가본 적이 없어서 어떤 생태를 간직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지라 이 책의 글과 그림에서 보이는 풍경을 통해서나마 짐작해 본다. 우리 아이들은 포함하여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은 이런 자연의 모습을 일상에서는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우포늪에 살고 있는 식물이나 동물의 세밀화들로, 도감에서나 보던 것들을 동화책에서 보니 색다른 맛이 느껴지고 참 좋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3-05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점 정리가 명징한 서평을 올리셨군요. 오늘 님 서재에서 마음을 다독거리고 갑니다.^^

아영엄마 2005-03-05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파란여우님의 평이 더 멋집니다. '명징'!
 
늑대왕 핫산 ㅣ 낮은산 어린이 4
백승남 지음, 유진희 그림 / 낮은산 / 200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펼치자 눈에 들어오는, 막 퇴근해서 문간에 들어서는 아빠.  그 표정이 너무나 지쳐있고 기운이 빠진 모습이다.  무척 피곤한가보다, 얼른 누워서 쉬고 싶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아빠를 기다리던 산하와 강산이는 그저 오랜만에 일찍 들어온 아빠와 함께 놀 수 있다는 것이 좋은 모양인지 매달리며 늑대가 된 아빠의 등에 타고 노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기어 다니며 늑대 울음소리도 그럴듯하게 낼 줄 아는 진짜 늑대왕 아빠이니 얼마나 실감나고 신이 나겠는가! 문득 '함박웃음을 머금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피곤한 아빠도 그 순간만큼은 기운이 나고 신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본 큰 아이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부러운 모양이다. 애들 아빠는 한 달에 쉬는 날이 하루나 이틀 정도 밖에 되지 않고, 대개 밤 12시나 되서야 퇴근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놀 시간과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요일에는 산하 아빠처럼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오늘은 회사가지 말고 우리랑 놀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두고 또 출근을 한다. 피곤에 절은 남편을 보면 안쓰럽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가족과 함께 구경도 다니고 놀아주기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는 이제 내가 발목에 앉히고 쿵덕쿵덕 방아 찧어주거나 비행기를 태워주기에는 너무 버겁다. 두 아이 다 서로 해달라고 달려들 때면 '아이 아빠가 있으면 사이좋게 두 딸 아이를 한꺼번에 즐겁게 해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특히나 더 들곤 하는 것이다.  

 

 '과로사'로 쓰러져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등진 아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작별인사도 못한 채 남편을 보내고 졸지에 미망인이 된 아이 엄마의 심정은 또 어떨까! 산하의 눈물 젖은 얼굴과 강산이를 보니 우리 아이들 또래라 이 책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아빠 몫까지 해야 하는 엄마,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 또한 많이 고단해 보인다. 그리곤 집에선 아이들이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시고 안 계신 집에 들어가는 것은 참 쓸쓸하고 허전한 일이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내내 직장을 다녀서 자주 텅 빈 집에 들어서곤 했던 날이 많았던지라 이 아이들의 외로움을 알 것 같다.

 

 아이들이 그린 늑대 그림. 애초에 아빠를 그리려 했던 그림이라서 일까, 아니면 진짜 늑대왕 같았던 아빠가 아이들이 못내 그리워 다시 찾아 온 것일까?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의 늑대가 모습을 드러내고는 아빠가 아이들을 등에 태워 기어 다닌 것 마냥 아이들을 자신의 등에 태우고는 밤하늘을 날아 엄마가 계신 공장으로 향한다. 아빠의 뼛가루를 뿌린 곳에도 가본다. 두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는 밤 시간이 늑대왕 핫산 덕분에  덜 힘들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강산이가 엄마가 보고 싶어 보챌 때 산하는 아빠의 빈자리를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아빠의 뼛가루를 날려 보낸 바람이 늑대왕 핫산도 데려가 버린 날, 산하는 또 한 번의 이별을 한다. 아빠도 늑대왕도 하늘나라에서 이 두 아이를 오래 오래 지켜봐 줄까? 책을 덮으면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뜨거운 용광로 근처에서 날마다 야근, 철야를 해가며 고생하느라 곳곳에 화상자국을 달고 다니시던 아버지. 한 번 편히 쉬어보지 못하시고 과로로 얻은 병으로 힘겨운 일 년을 보내시다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다. 가끔 '가족을 염려하던 아버지가 하늘에서 우리를 보고 계실까?'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고, '아버지, 엄마가 힘든데 하늘에서라도 좀 도와주세요.'하고 혼자 속삭여보기도 한다.

 

 아버지는 한 가족의 기둥이라는 말,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더 가슴에 와 닿게 된다. 지금 나와 두 딸아이의 기둥은 우리 남편이다. 애들 아빠도 가족들을 위해서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지만 자기 몸 생각도 해가면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하 아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만 남겨두고 가지는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 책을 본 아이는 우리 아빠가 죽지 않고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단다. 오래 오래...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세실 2005-03-0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슬픈 현실입니다~ 아영엄마님 힘내세요~
 
그리고 네가 태어났단다 ㅣ 꼬마야 꼬마야 9
레이첼 이사도라 글 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재럴드 맥더멋의 작품인 <하늘과 땅을 만든 이야기>이라는 그림책도 세상이 만들어진 천지창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책은 같은 내용이되 좀 더 연령층이 낮은 영아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다. 몇 페이지는 단어(빛, 하늘, 땅과 바다, 태양 등) 위주로 나오고, 대부분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어주는 책이 아니라 엄마가 영유아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보는 그림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처음부터 '아기'의 모습이 등장하고 아기들의 모습들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 천국과 먼지만 존재하던 시기에 존재하는 아기들의 모습은 어둠에 휩싸여 있다. 어둠 속에서 아기들은 부유하듯이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형상이다(솔직히 조금 무섭게 보이기도 한다). 아기들은 세상에 태어나도록 예비되어 있다는 뜻일까?

 앞서 언급한 책이 창조의 과정들에 초점을 맞추어 그 과정을 그림에 담고 있다면 이 그림책은 세상이 창조되는 것이나 '아기'의 존재가 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다. 저자는 하늘이, 그리고 땅이 생겨 난 것만큼이나 아기 한 명 한명의 존재가치가 큰 의미,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아기를 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살펴보면 빛이 생겨난 것을 보여주듯 아기를 눈부시도록 환히 비추고, 하늘의 구름 위에 아기(흑인)가 앉아 있다. 땅과 바다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아기들이 바닷가에서 무리지어 놀거나 헤엄치고 있다. 날아오르는 한 장의 나뭇잎을 잡으려는 아기, 금빛 태양을 받은 아기, 세 명의 아기가 각각 달과 별이 자리 잡은 하늘 위와 다양한 생명이 존재하는 바다에서 노닐고 있다. 어디론가 뛰어가는 동물들을 웃으며 바라보는 아기 등등.. 본문에서 아기가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부분은 아기를 밴 엄마와 아빠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장면이다.

  다양한 인종의 아기들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흑인 아기도 등장하긴 하는데 솔직히 백인 아기들만큼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후반부에 나오는 부부도 그렇고, 태어난 아기를 어르는 엄마도,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도 모두 금갈색의 머리색을 지닌 백인인지라 그 점은 좀 불만스럽다. 아기의 소중함과 함께 천지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부모가 함께 해주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림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반딧불,, 2005-02-2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을 읽으면서 대하게 되는 것들이고 고민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정말로 백인지상주의구나.
실상 황인족도 다 백인처럼 그려진 것이 현실이잖아요.
가끔 생각합니다. 살색이라는 것이 없어졌다곤 하지만 아이들도 이미
백인의 색에 대한 컴플렉스에 익숙하다구요. 제 피부가 통상 말하는 검은 빛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참 하얀 것에 대한 컴플렉스를 대물림하고 있다는 생각이요.

책읽는나무 2005-03-01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종얘기를 들으니 말인데요!
저도 오늘 문득 이상한점을 발견했어요!
아이와 함께 텔레비젼을 보는데 마침 예전에 보았던 <톰과 제리>만화영화가 방영되길래 신기해서 한참 보고 있었는데...그집주인 여자가 등장을 하더군요!
거의 발아래부분밖에 안나오던데...헌데 주인여자가 흑인이더라구요!
전 오늘 그걸 깨달았어요!
흑인이라는 그점이 제눈엔 좀 거시기하게 비치더군요!
웬만해선 흑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데...생쥐가 들락거리는 집이라서 부러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기도 했고...만화가가 흑인이었나? 라고도 생각했지만..전 전자가 아닌가? 란 생각을 했어요!
책 이야기와 좀 거리가 멀지만..갑자기 생각이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