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뱀의 습격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1
던컨 웰러 글.그림, 이병렬 옮김 / 마루벌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닌xx'라는 게임기를 꼽는다고 한다.(우리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작은 아이가 TV에서 이 제품 광고를 보고는 사달라고 졸라대곤 한다.) 아이들이 TV 만화영화나 컴퓨터게임, 혹은 게임기에 몰입해 있는 모습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다.

 과학문명의 발달의 소산인 TV, 컴퓨터, 게임기, DMB, MP3 등 각종 기계들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간의 대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눈은 모니터를 향해 있고, 귀는 헤드셋으로 막아버리고, 손은 마우스나 버튼을 조작하기 바쁜 사람들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우주뱀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눈길을 끄는 이 작품은 컴퓨터, 인터넷, 각종 기기에 빠져 현실 세상, 가족, 이웃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요즘 세태를 풍자한 그림책이라 하겠다.

 소행성 마을 사람들은 자기 소행성에 설치한 '인터펫'이라는 기계를 하루 종일 갖고 노느라 이웃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 인터펫이 '자기만의 우주'인 이 마을 사람들은 인터펫을 할 때 더 행복하고, 사람을 만나면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며, 바깥세상을 두려워한다. 거대한 우주뱀이 나타나 소동을 벌이자 공포에 떨던 소행성 사람들은 그 실체를 알게 되자 조롱하고 욕하며 쫓아버린 후 안심한다.
 
 하얀 별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선명한 까만색의 표지 중간 부분에 구멍을 내어 속지 그림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 특색 있다. 우주뱀만 연한 청록색을 부여하고 흑백으로 일관하던 그림은 소녀가 (우주뱀을 몰고 다니던) 작은 벌레를 자기별에 불러 함께 차를 마시는 장면에서 연한 초록색을 부여해 놓았다. 인터펫으로 인해 이웃 간의 교류가 사라진, 삭막한 소행성 마을 풍경과 달리 초록의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이 소행성은 자연이 주는 푸르름과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누군가의 글에 욕설을 늘어놓거나 인신공격성 글로 언쟁을 일삼는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거짓 소문을 흘리거나 상처 주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그런 글을 올렸던 사람을 찾아내 보면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행성 사람들을 놀라게 한 거대한 우주뱀의 실체가 나약한 작은 벌레였음이 드러나는 장면을 보며 가면을 쓰고 과격한 글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사람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점점 더 어렵게 여겨진다. 그리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고, 물건을 사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살피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게임을 하는 등 많은 시간을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는 터라 이 그림책을 보며 가슴이 뜨끔해졌다. 속표지 그림의 칠판에 적힌 "물건을 사랑하지 말고 사람을 사랑하세요"라는 문장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 같다.

* 인터펫 - 컴퓨터, 텔레비전, 전화, 비디오, DVD 플레이어, 3D 게임기, MP3, 입체 음향 스피커가 장착되어 있는 만능 기계.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나무집 2008-02-1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점점 더 어렵게 여겨진다. "
저도 이 대목에 공감합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불러내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 만나려고 버티게 되네요.
며칠 전에는 컴퓨터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말까지 했더랍니다.
대상이 몇 살인가요?

2008-02-15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6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 지음, 김석희 옮김, 헬린 옥슨버리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 학장의 딸에게 -아이시스 강에서 뱃놀이를 하며- 즉흥적으로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탄생하였다. 시계를 보며 허겁지겁 달려가는 하얀 토끼, 후추 때문에 끊임없이 재채기를 하는 공작부인, 다과회를 즐기는 삼월 토끼와 모자 장수, 카드 여왕과 병정들, 홍학과 고슴도치를 이용한 크로케 경기, 히죽거리는 웃음과 함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체셔 고양이 등등 독특한 매력과 개성을 발산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아이들을 매료시킬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이번에 웅진주니어에서 출간한 작품은 헬린 옥슨버리가 그림을 그린 것으로, 옥스버리는 민소매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은 앨리스를 선보인 이 작품으로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집에 다른 출판사(시공주니어)에서 나온 책이 있지만 이 책에 욕심이 났던 것은 바로 헬린 옥슨버리가 삽화를 그렸다는 점 때문이다. 펜으로 그린 날카로움이 살아 있는 존 테니얼의 삽화도 인상적이긴 하지만 아이들은 <곰 사냥을 떠나자>, <아기 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 등의 그림책을 통해 접해 왔던 옥슨버리의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화풍이 더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전문 번역가들 중에서 한 손안에 꼽히는 김석희님-<로마인 이야기/한길사>로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1997)을 수상함-의 번역이라는 점 또한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시공주니어판과 웅진주니어판을 함께 펼쳐놓고 비교하면서 보았는데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서 번역해서인지 낮은 연령대의 어린이들도 쉽게 읽힐 정도로 문체가 쉬웠다. 가령 '건조시켜 주지(시공주니어판)'라는 문장을 이 책에서는 '말려 주지(웅진 주니어판)'라고 번역하는 등, 어른들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이지만 아이들은 아직 단어의 뜻을 잘 모르는 단어는 최대한 절제하고 쉬운 우리말로 번역해 놓았다.

 - 참고로 주석은 시공주니어판이 조금 더 충실하다. 체셔 고양이가 앨리스에게 삼월 토끼가 5월에는 3월만큼 미쳐 날뛰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시공:90쪽, 웅진:105쪽)의 경우, 시공판의 주석-3월이 짝짓기 계절이기 때문-덕분에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이런 주석이 없어도 작품 자체로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터이지만, 등장인물들이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아는 것 또한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영어 단어가 지닌 의미나 특성을 이용한 수수께끼나 말장난 같은 것이 많이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단어의 의미대로만 번역을 하면 그 묘미가 감소하거나 본질을 잃게 된다. 가령 작품 에 등장하는 'tale(이야기)와 tail(꼬리)', not(아니다)와 knot(매듭), 'axis(축)와 axes(도끼의 복수형)' 같은 단어들처럼 영어에도 글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단어들이 있다.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나라 언어의 유희가 지닌 묘미를 얼마나 잘 살려내는지, 단어에 담긴 여러 가지 뜻에서 작가가 의도하는 맥락을 짚어내는 것 등은 번역하는 이의 역량에 달려 있는데,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에 번역의 어려움이나 한계가 존재하는 것일 게다.

 작품 뒤에 실린 '옮긴이의 덧붙임'에 번역자분이 지적한 것처럼 대부분의 어린이 책이 교훈이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어린이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탄생하였다. 앨리스가 "세상 만물은 무엇이든 교훈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공작부인을 보며 "공작부인은 무슨 일에서나 교훈을 찾는 게 취미인가 봐!"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바로 이런 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신기한 모험 이야기로 가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무한한 상상력을 지닌 우리 아이들에게 상상하는 재미와 책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작품이 될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나무집 2008-02-05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에도 시공에서 나온 책이 있는데 님의 리뷰를 보니 또 탐이 나네요.
설 즐겁게 보내세요.

totorojjan 2008-03-18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앨리스 있는데 이 글 보고 하나더 샀습니다. 우리둘째가 워낙에 앨리스 팬이라서요 ^^

아영엄마 2008-03-18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보면 애들 다 컸어도 탐이 나죠. ^^
토토로짱님~ 조금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을터이니 두 책의 문장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토트 신전의 그림자] 서평단 알림
토트 신전의 그림자
미하엘 파인코퍼 지음, 배수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런던과 이집트를 무대로 한 작품으로 연쇄 살인사건과 주인공이 고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비밀의 책을 찾아 떠나는 모험, 추리, 로맨스 등을 버무려 놓은 작품. 550여 쪽의 두툼한 한 권의 책 속에 런던을 배경으로 한 1권과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2권을 모두 담았다. 숙녀의 품위와 귀족의 체면을 중시하고, 여자는 남자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으로 여성은 학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폐쇄성, 자국의 식민지 나라 사람들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등의 시대상을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 

 런던 이스트엔드의 음침한 뒷골목에서 거리의 여인들이 무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자는 희생자의 장기(간, 폐 등)를 가져가고, 현장 근처의 벽에 토트 신을 상징하는 눈 모양의 상형문자(이비스)를 그려 놓고 사라진다. 여주인공 레이디 새라 킨케이드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학구열, 그리고 모험가의 기질과 열정을 지닌 인물이다. 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지니고 영지에 칩거하던 중에 아버지 친구로부터 런던으로 가서 스코틀랜드 야드(경시청)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영국 왕실의 후계자인 젊은 공작이 연쇄 살인사건의 배후인물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 새라는 대영제국을 무너뜨리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살인사건과 이집트 토트 밀교의 연관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 의견은 묵살되고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고서야 새라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일행 속에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이집트 연맹의 탐험대와 함께 이집트로 향하는 새라. '라의 불'에 관한 메시지가 적혀 있는 비밀의 책을 찾기 위해 찾아간 이집트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까? 제국을 위협하는 세력은 과연 내부의 적일까, 외부의 적일까? 

  나보다 먼저 -전철로 출퇴근하는 시간을 이용해 이틀 만에- 책을 본 남편은 개연성이 떨어지고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그에 비해 나는 짐작했던 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전반적으로 큰 긴장감은 없었다. 일주일에 걸쳐 짬 날 때 띄엄띄엄 읽느라 작품 몰입도가 떨어져 이야기의 맥과 긴장감을 이어가지 못한 탓도 크고, 후반부 들어가서 결말이 빤하다 싶게 드러나서 그런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는 부분이 반복되는 탓에 이야기 진행 속도가 늘어지는 경향도 조금 있었다.

- 사족:  초반에 새라가 생각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기억-'템포라 아트라(암흑의 시간)'때문에 혼란스러워 하는 것, 알렉산드리아에서 살해당한 아버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점이 궁금증을 유발하였다. 그러나... 작품이 끝나도록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 작품에서 그 부분에 가장 관심을 기울였는데... 혹 내가 놓친 부분이 있나 싶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살펴 봤지 뭔가. -.- 혹시 새라 킨케이드이 등장하는 시리즈물이 나와서 이런 부분들이 조금씩 밝혀지기라도 하는 걸까? '레이던'이라는 이름이 나중에 '레이든'으로 나와서 혼란을 주기도 했는데 재판을 찍는다면 수정해야 할 것이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의집 2008-02-05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쓰셨구나. 어제 제가 님의 방에 들어왔을 때, 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읽었거든요. 그리고 마우스 이동해서 아랫글 본다는 게 토드의 신전을 건너 뛰었군요.ㅎㅎㅎ
어제, 독서기록 읽으면서, 님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구나 싶었는데... 맘이 뒤숭생숭한가봐요. 저도 그래요.
전 요즘 제가 책을 왜 읽는지 모르겠어요. 리뷰는 왜 쓰고.. (일단, 책은 더 이상 안 사기로 했어요. 쌓아두기만 하기도 그렇고...)
저의 큰 애가 삼학년인데, 공부 좀 많이 봐주어야겠더라구요. 아후, 수학 왜 이렇게 어려워요.
참, 그리고 큰 애 영어 공부를 가르치고 싶은데 괜찮은 교재 뭐 없을까요?

2008-02-05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좀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하리라 다짐을 하고 새해를 맞이하였건만
그 결심이 너무 부담스러웠나, 오히려 책을 멀리하고 지내고 있다. -.-
시댁 식구들 다녀가고, 남동생도 다녀가고, 포항에도 다녀오고,
아이들 겨울 방학이라 여기저기 다니기도 하는 등
이런 저런 이유로 부산스럽게 보낸 달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암튼 요즘은 정신이 매우 산만하여 책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이달의 평-그림책 몇 권, 동화책 찔끔, 어른책은 거의 맹탕...
알라딘에서 받은 리뷰도서 기한이 다되어 가는데 하루하루가 참 아깝네그려~.
(어제는 오후 내내 스도쿠 이지~ 단계 2 문제 푸는 와중에
굳어버린 내 머리를 백 번쯤 쥐어 뜯다 포기하고 말았다. @@;;)

 

* 어린이 책

1. <아로와 완전한 세계>
2. <지팡이 경주>
3. <팥죽 할멈과 호랑이/보리>
4. <접동새 누이>
5. <북풍을 찾아간 소년>
6. <나무를 만져 보아요>
7.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리 몸 이야기>
8. <모두가 책을 사랑한 세상>
9. <재주 많은 처녀> 
10. <말하는 남생이>
11. <오래된 마법 동화>
12. <설빔> - 남자 아이 옷
13. <점이 모여 모여>
14. <나무를 만져 보세요>
15.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웅진주니어>

* 어른 책

1. <토트 신전의 그림자>
2.<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 (1권은 남편이 가지고 다녀서.. -.-)
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팥죽 할멈과 호랑이 - 2004 볼로냐아동도서전 수상작 꼬불꼬불 옛이야기 1
서정오 / 보리 / 199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 옛이야기에는 두려움의 대상인 강자를 약자가 꾀를 내거나 힘을 합쳐 골려 주는 형식의 이야기가 많은데, 호랑이가 약자를 억압하는 강자를 상징하는 동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옛이야기 또한 그런 류의 이야기로, 할머니를 잡아 먹으려는 호랑이를 주변 사물들이 합심하여 혼내주고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팥을 심던 할머니는 갑자기 불쑥 나타나 자신을 잡아먹으려 하는 호랑이에게 팥죽 쑤어 먹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하여 보낸다. 추운 겨울이 되어 할머니가 팥죽을 쑤어 놓고는 슬픔에 잠겨 있자 자라, 밤톨, 맷돌, 쇠똥, 지게, 멍석이 와서 팥죽을 한 그릇씩 얻어먹는다.

 할머니를 잡아 먹기 위해 다시 온 호랑이가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다 밤톨에게 눈을 다치는 것부터 시작하여 자라, 쇠똥, 맷돌 등에게 연이어 호되게 당하고는 결국 혀를 빼물고 멍석 위에 뻗는 호랑이의 모습이 통쾌함을 선사한다. 지게가 호랑이를 강물에 빠뜨리고 난 뒤 할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독자는 할머니의 안도감과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된다. 특히 이야기 속의 할머니가 아직 살고 계신다고 끝을 맺는 결말 부분은 아이들에게 정말일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함을 가지게 한다. 

 이 책에서는 "팥죽 한 그릇 주면 내 살려 주지."라는 문장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아이들은 이처럼 반복되는 문장이나 이야기 구조를 선호한다. 그리고 '엉금엉금, 떼굴떼굴, 왈강달강, 겅중겅중' 등과 같은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와 구수한 입말이 입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호랑이를 물리치기 위해 부엌 곳곳에 숨은 사물들을 그림 속에서 찾아보는 것도 보는 재미에 한 몫을 한다. 마지막으로 그림 장면마다 까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니 그림 작가가 까치 호랑이 민화를 바탕으로 하여 그림을 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서점에서 옛이야기 책을 살피다 <팥죽 할멈과 호랑이/보리>와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보림>, 두 권을 꺼내 놓고 어느 그림책을 선택할까 한참을 고심했던 적이 있다. 두 그림책 다 할머니를 잡아 먹으러 온 호랑이를 여러 사물이 합심하여 혼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문체나 내용도 조금 다르고(서정오님이 글을 쓰신 그림책은 내용이 짧고 간결한 편), 그림도 차이를 보였다.

 두 권 다 욕심이 났는데 나는 세밀화풍으로 사실적인 느낌을 살린 그림이며 호랑이의 거대함을 잘 살리고 있는 커다란 판형의 이 그림책에 좀 더 끌렸다. 반면 아이들은 호랑이의 무서움이 부각되는 이 그림책보다 만화적인 화풍으로 해학과 익살적인 느낌을 한껏 살린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를 더 재미있어 하여 결국 후자를 선택하였다. 

 - 작년에 또 한 권의 <팥죽 할멈과 호랑이/시공주니어>를 보았는데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씨가 그림을 맡은 이 작품은 한지 종이로 만든 인형으로 할머니와 사물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부분이 특색 있으며 더욱 정감 있게 다가왔다. 호랑이나 알밤, 자라 같은 대상보다 다양한 표정으로 감정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할머니의 실감나는 모습에 시선이 집중된다. 이 책 해설을 보면 할머니가 내놓는 음식이 '팥죽'인 까닭은 (팥처럼) 붉은 색에 나쁜 기운을 쫓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여긴 우리 조상들의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 세 권을 두고 아이들의 생각을 물어보니 <팥죽 할멈과 호랑이/보리>는 사실적인 그림이 멋지고,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보림>은 내용이 재미있고, <팥죽 할멈과 호랑이/시공주니어>는 한지 인형으로 만든 할머니가 나와서 마음에 든다고 한다. ^^

 옛이야기는 그 내용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지만 책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방법은 극적인 요소와 입말을 얼마나 잘 살려서 읽어주는가에 달려 있다. 호랑이 울음 소리도 "어흥~"하고 커다랗게 울부짖어 주고, 훌쩍거리며 우는 시늉도 하고, 쿵~ 하고 나자빠지는 모습도 그럴싸하게 연출하면서 들려 주어 보라. 글도 가락을 실어 읽어주면 듣기에도 흥겹고 한층 이야기의 느낌이 살아나서 듣는 재미에 폭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관객)은 책 한 권으로 연출해 내는 이 연극에 단박에 혹하여 한동안 그 책만 읽어달라고 들고 오게 된다.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같은 이야기라도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거나 표현을 달리하는 것처럼 꼭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만 읽어주지 않아도 좋다. 바로 그런 점이 같은 이야기라도 늘 색다르게 다가오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책을 몇 번 읽어주다 보면 아이가 책 속에 반복해서 나오는 대사를 외워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되는 묘미도 생겨난다. 엄마, 아빠가 연출가, 배우, 음향효과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책을 읽어준다면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누렸던 즐거움을 내 아이들에게도 누릴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8-01-2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공꺼 사서 읽어줬었는데 애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님의 얘기를 듣다보니 나머지 저 책들도 모두 보고싶네요. 아이들이 아는 얘기라고 안볼려고 할까요? 도서관에 다음에 가면 찾아봐야겠어요.

마노아 2008-01-2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희나 작가 책 보고 맘에 들어서 샀는데 다른 출판사 책도 궁금해요. 같은 이야기도 다른 그림으로 읽혀주면 또 그 나름대로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순오기 2008-01-29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는 보림이 젤 재미있고, 시공은 백희나 작품에 압도당하고...보리는 그림이 좋았다고 기억되고, 세권 다 나름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낸 책이라 생각돼요.

책향기 2008-02-0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림에서 나온 책을 갖고 있어요. 한 이야기에 여러 책을 비교해보는것도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