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할멈과 호랑이 - 2004 볼로냐아동도서전 수상작 꼬불꼬불 옛이야기 1
서정오 / 보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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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옛이야기에는 두려움의 대상인 강자를 약자가 꾀를 내거나 힘을 합쳐 골려 주는 형식의 이야기가 많은데, 호랑이가 약자를 억압하는 강자를 상징하는 동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옛이야기 또한 그런 류의 이야기로, 할머니를 잡아 먹으려는 호랑이를 주변 사물들이 합심하여 혼내주고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팥을 심던 할머니는 갑자기 불쑥 나타나 자신을 잡아먹으려 하는 호랑이에게 팥죽 쑤어 먹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하여 보낸다. 추운 겨울이 되어 할머니가 팥죽을 쑤어 놓고는 슬픔에 잠겨 있자 자라, 밤톨, 맷돌, 쇠똥, 지게, 멍석이 와서 팥죽을 한 그릇씩 얻어먹는다.

 할머니를 잡아 먹기 위해 다시 온 호랑이가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다 밤톨에게 눈을 다치는 것부터 시작하여 자라, 쇠똥, 맷돌 등에게 연이어 호되게 당하고는 결국 혀를 빼물고 멍석 위에 뻗는 호랑이의 모습이 통쾌함을 선사한다. 지게가 호랑이를 강물에 빠뜨리고 난 뒤 할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독자는 할머니의 안도감과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된다. 특히 이야기 속의 할머니가 아직 살고 계신다고 끝을 맺는 결말 부분은 아이들에게 정말일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함을 가지게 한다. 

 이 책에서는 "팥죽 한 그릇 주면 내 살려 주지."라는 문장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아이들은 이처럼 반복되는 문장이나 이야기 구조를 선호한다. 그리고 '엉금엉금, 떼굴떼굴, 왈강달강, 겅중겅중' 등과 같은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와 구수한 입말이 입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호랑이를 물리치기 위해 부엌 곳곳에 숨은 사물들을 그림 속에서 찾아보는 것도 보는 재미에 한 몫을 한다. 마지막으로 그림 장면마다 까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니 그림 작가가 까치 호랑이 민화를 바탕으로 하여 그림을 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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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서점에서 옛이야기 책을 살피다 <팥죽 할멈과 호랑이/보리>와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보림>, 두 권을 꺼내 놓고 어느 그림책을 선택할까 한참을 고심했던 적이 있다. 두 그림책 다 할머니를 잡아 먹으러 온 호랑이를 여러 사물이 합심하여 혼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문체나 내용도 조금 다르고(서정오님이 글을 쓰신 그림책은 내용이 짧고 간결한 편), 그림도 차이를 보였다.

 두 권 다 욕심이 났는데 나는 세밀화풍으로 사실적인 느낌을 살린 그림이며 호랑이의 거대함을 잘 살리고 있는 커다란 판형의 이 그림책에 좀 더 끌렸다. 반면 아이들은 호랑이의 무서움이 부각되는 이 그림책보다 만화적인 화풍으로 해학과 익살적인 느낌을 한껏 살린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를 더 재미있어 하여 결국 후자를 선택하였다. 

 - 작년에 또 한 권의 <팥죽 할멈과 호랑이/시공주니어>를 보았는데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씨가 그림을 맡은 이 작품은 한지 종이로 만든 인형으로 할머니와 사물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부분이 특색 있으며 더욱 정감 있게 다가왔다. 호랑이나 알밤, 자라 같은 대상보다 다양한 표정으로 감정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할머니의 실감나는 모습에 시선이 집중된다. 이 책 해설을 보면 할머니가 내놓는 음식이 '팥죽'인 까닭은 (팥처럼) 붉은 색에 나쁜 기운을 쫓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여긴 우리 조상들의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 세 권을 두고 아이들의 생각을 물어보니 <팥죽 할멈과 호랑이/보리>는 사실적인 그림이 멋지고,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보림>은 내용이 재미있고, <팥죽 할멈과 호랑이/시공주니어>는 한지 인형으로 만든 할머니가 나와서 마음에 든다고 한다. ^^

 옛이야기는 그 내용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지만 책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방법은 극적인 요소와 입말을 얼마나 잘 살려서 읽어주는가에 달려 있다. 호랑이 울음 소리도 "어흥~"하고 커다랗게 울부짖어 주고, 훌쩍거리며 우는 시늉도 하고, 쿵~ 하고 나자빠지는 모습도 그럴싸하게 연출하면서 들려 주어 보라. 글도 가락을 실어 읽어주면 듣기에도 흥겹고 한층 이야기의 느낌이 살아나서 듣는 재미에 폭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관객)은 책 한 권으로 연출해 내는 이 연극에 단박에 혹하여 한동안 그 책만 읽어달라고 들고 오게 된다.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같은 이야기라도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거나 표현을 달리하는 것처럼 꼭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만 읽어주지 않아도 좋다. 바로 그런 점이 같은 이야기라도 늘 색다르게 다가오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책을 몇 번 읽어주다 보면 아이가 책 속에 반복해서 나오는 대사를 외워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되는 묘미도 생겨난다. 엄마, 아빠가 연출가, 배우, 음향효과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책을 읽어준다면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누렸던 즐거움을 내 아이들에게도 누릴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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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1-2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공꺼 사서 읽어줬었는데 애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님의 얘기를 듣다보니 나머지 저 책들도 모두 보고싶네요. 아이들이 아는 얘기라고 안볼려고 할까요? 도서관에 다음에 가면 찾아봐야겠어요.

마노아 2008-01-2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희나 작가 책 보고 맘에 들어서 샀는데 다른 출판사 책도 궁금해요. 같은 이야기도 다른 그림으로 읽혀주면 또 그 나름대로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순오기 2008-01-29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는 보림이 젤 재미있고, 시공은 백희나 작품에 압도당하고...보리는 그림이 좋았다고 기억되고, 세권 다 나름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낸 책이라 생각돼요.

책향기 2008-02-0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림에서 나온 책을 갖고 있어요. 한 이야기에 여러 책을 비교해보는것도 재미있네요^^